사실 저는 톨켄의 소설 '반지의 제왕'의 팬은 아닙니다. 사실 그런 소설이 있다고 알고 있는 정도였지, 특별히 읽어보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도 없었죠. 그러다가 2001년 겨울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영화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 가 개봉되었습니다. 소설의 영향력 등을 생각해 볼 때 영미권에서의 반응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고 국내에서도 그에 미치지는 못한다 해도 상당히 열기가 고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있더니 아카데미 열한 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질 않나, 역대 최고의 영화로 손꼽힐 정도라는 평이 나돌질 않나, 하여간 대단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난리법석에도 불구하고 저는 '반지원정대'를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비고3이었던 저는 나름대로 결의를 다지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몬스터주식회사'를 보고 나서 [앞으로 일년동안 영화는 절대로 안본다!] 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쪽팔린, 말도 안되는 맹세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도, '반지원정대'도 패스였습니다. (그 맹세에 대해 덧붙이자면, 결국 몇 달 후 스파이더맨과 스타워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그리고는 한술 더 떠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수능시험의 위기감이 더해오던 여름방학에, eDonkey를 이용해서 '반지원정대'를 다운받았습니다. 갑자기 무슨 변덕으로 하필이면 그 영화를 택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감상했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더군요. 웬만한 영화와는 비교가 안되는 스케일에서부터 완벽에 가까운 특수효과까지. 너무나 감동받은 나머지 몇 번이고 다시 보고, 또 몇몇 부분만 골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책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죠) 그리고 당연하게도 2부를 기다리던 중, 드디어 지난 18일 영화의 두 번째 파트, '두 개의 탑'이 개봉했습니다. 저는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가서 볼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부에 이어 2부까지, 정말 대작이 나왔다는 겁니다. '두 개의 탑'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한 영화입니다. '반지원정대'의 경우 스토리텔링에 치중해 지루하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두 개의 탑'은 확실히 속도감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반지원정대'보다 한층 파워업된 영상미는 세시간 동안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합니다. 1부에서 엘프들의 마을 '리븐델'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던 제작팀은 이번엔 인간들의 나라 '로한'을 창조해냈습니다. 자연지형과 어우러져 위치한 로한의 도시,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전투가 벌어지는 헬름 협곡까지, 뉴질랜드의 경치와 맞물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아름답고 장대한 영상에 덧붙여, 음악 역시 한몫을 합니다. 1부에서 이미 등장했던 메인테마를 다시 듣는 것도 좋았지만, 저는 특히 로한의 테마음악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로한은 말(horse)로 특징지어지는 나라인데, 로한의 테마는 마굿간을 연상시키는(뭔가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습니다.
영화의 최고 장면이자, 이제까지 제가 본 어떤 영화의 전투장면보다 완벽하게 묘사된 장면인 헬름 협곡에서의 전투는.. 짧은 글솜씨로 표현할 성질이 아니라고 봅니다. 영화 내내 전투는 여러 곳에서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특히 헬름 협곡에서의 싸움은, '글래디에이터'의 초반 전쟁장면을 애들 장난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합니다.
물론, 여전히 작은 문제점들은 있습니다. 세시간에 달하는 영화의 분량은, 사람들에 따라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또, 1부보다 스토리 전개가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흔히 보는 액션물에 비하면 결코 박진감있는 전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시 자칫 잘못하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겠죠. 마지막으로, 1부 '반지원정대'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2부 '두 개의 탑'은 혼란만 가져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1부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때문이죠.
그리고 원작과 관련하여, 이번 '두 개의 탑'은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원작과의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전 게으른 탓에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톨켄의 골수팬들에게 있어서는 좀 탐탁치 않을 수도 있다는군요. 하지만 책에 지나치게 충실해서 영화를 망친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 왔습니다. 오히려 저는 해리포터처럼 엄밀하게 원작을 따르는것보다(해리포터의 영화화가 실패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감독이 적절하게 변형을 가한 이 경우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감독 피터 잭슨 역시 원작 소설의 골수팬이라더군요) 또, 원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스토리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을 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난데없이 골룸의 본명이 튀어나오는 부분이나, '두 개의 탑'이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그와 관련된 언급이 영화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렇죠.
이번 '반지'는 정말 대단한 히트가 될 거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연일 매진 행진이 계속되고 있고,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도 전작을 뛰어넘는 성적을 올리고 있다는군요. 이 영화는 그 스케일과 영상, 그리고 음악만을 고려하더라도 반드시 빅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 [비디오로 봐도 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릅니다(제가 '반지원정대'를 가지고 그랬던 것처럼). 저는 메가박스 1관에서 다시 볼 생각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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