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어."
"우리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고, 어찌 보면 지금 우리 이야기일지도 몰라."
영화가 끝나고 난 뒤, 화장실에서 우연히 들은 [브이포벤데타(V for Vendetta)]에 대한 두 가지 매우 다른 감상이다. 첫 번째 볼멘소리는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사람이 같이 영화를 본 친구에게 실망스럽다는 투로 내뱉은 것이다. 두 번째 관전평은 나보다도 좀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역시 그와 함께 영화를 본 듯한 친구에게 한 말이었다.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영화를 본 뒤에는 일부러라도 화장실에 들러서 사람들의 관전평을 주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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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쇼스키 형제'라는 이름을 홍보에 대대적으로 써먹은 탓에, [브이포벤데타]를 보려고 영화표를 끊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마도 [매트릭스]류의 현란하고 삐까뻔쩍한, 간지가 줄줄 흐르는 액션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는 식의 소감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브이포벤데타]에는 분명히 [매트릭스] 시리즈의 스타일이 살아 있고(비록 와쇼스키 형제가 각본을 썼을 뿐이고 감독은 다른 사람이 맡았다고 하지만, 그 '다른 사람'이래봐야 [매트릭스] 시절 제1조감독을 맡았던 제임스 맥타이그다. 조감독 시절 맥타이그씨가 어깨너머로 뭘 보고 배웠을지는 뻔하다), 실제로 '네오 vs. 스미스'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잠깐잠깐 동안일 뿐이다. 영화는 결코 뽀대다는 액션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건 영화 안에 담겨 있는 메세지다.
영화의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제3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주의 사회가 돼 버린 영국이다. 전후의 경제 위기, 그리고 괴 바이러스 유행이 영국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가운데 독재자를 앞세운 정당이 바이러스의 백신을 앞세우며 등장했고, 영국의 시민들은 안전의 대가로 자유를 헌납했다. 언론은 철저히 통제되고, 독재자 국회의장과 현재 당국의 정책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 철권 통치 아래 사람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멸종된 상태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섬뜩하게 묘사한 이래로 하나의 전형이 되어 버린,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우울한 디스토피아의 모습 그대로다.
그런 와중에 수수께끼의 인물 '브이(V)' 가 등장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테러리스트 브이는, 어느 날 밤 핑거멘(Fingermen)이라 불리는 일종의 자경단(이런 류의 디스토피아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치안유지를 내세워 온갖 폭력을 일삼는)으로부터 '이비'라는 아름다운 여인(나탈리 포트만!)을 구해내더니, 곧이어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형사재판소를 폭파시켜 버린다. 그리고는 다음 날에는 텔레비전 방송국을 장악하여 전국의 시민들 앞에 나타나 담화를 발표한다.
"정부는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왜냐하면 말이야말로 거짓을 뚫고 진리를 전하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지금 여러분에게 진정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정확히 1년 뒤, 11월 5일(옛날 가이 포크스가 의사당 폭파 미수사건을 일으킨 이래 영국에서 가이 포크스 축제일이 된 날이다. 영화에서 브이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다닌다)에 난 국회의사당을 박살낼 것이다. 내가 힘이 되어 주겠다. 나와 함께 일어서자. 11월 5일을 기억하라(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그리고 1년 동안, 브이는 절반은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 버린(그 덕택에 초인이 되기도 했지만) 과거의 적에게 복수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절반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일깨우고(이비를 각성시키는 데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자유를 되돌려 주는 투사로 활약한다.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브이를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 애쓰지만 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브이가 정권의 요인들을 하나하나 처치해 나감에 따라(영국 사람들로선 운 좋게도 브이가 개인적 원한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당국의 주요 인물들이다), 그리고 약속된 11월 5일이 다가옴에 따라 시민들의 흥분 역시 더해가고, 마침내 그들은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고 일어서서 가이 포크스 가면 아래 결집한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한데 모인 사람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승리는 언제나 그들의 것이다.
불과 20년 전까지 전체주의에 맞서 격렬하게 싸웠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겐 [브이포벤데타]가 전하는 메세지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독재는 나쁜 것이고, 개인의 자유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얘기고, 새로울 것도 없네 뭐.
그러나 파시즘은 바로 그런 게으름을 먹고 자란다. 경제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번져나간다. 안전-그놈의 '안보'-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자유를 포기할 태세다(영화에선 바이러스였고, 오늘날 우리에겐 전쟁이다. 제2의 한국전쟁이든, 테러와의 전쟁이든 뭐든 간에).
만약 브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잠자고 있던 사람들을 깨우고 그들의 분노에 불을 당겨 줄 초인이 없다면? 모두가 잠든 채로 계속 살아간다면 [1984년]의 세계처럼, 혁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완벽한' 디스토피아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에선 브이와 같은 슈퍼맨 같은 인물(열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의 기관총 난사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재장전을 하는 그 잠깐 사이에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_-;;)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게으름은 더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브이포벤데타]를 보고 나서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지금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8천원은 아깝지 않다.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4월 19일이든, 87년 6월이든, 우리도 기억해야 한다.

[+] 나탈리 포트만은 삭발을 해도 아름다우시다.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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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3 22:17
2006/04/11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