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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5/08/07 15:17
처음에는 마이클 키튼이었다. 위로 치켜올라간 눈썹, 굳게 다문 입가에 패인 주름. 키튼은 결코 편안한 인상을 주는 배우가 아니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갈라져 나왔다.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는, 심기가 불편한, 불안정한 인간. 브루스 웨인에 그는 잘 어울렸다.

그 다음에는 발 킬머였다. 키튼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던 물론이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입술이었다. 알다시피 배트맨은 입술 빼고는 얼굴 전체를 가면으로 가리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브루스 웨인은 입술이 특이하기 그지없게 생긴 사람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만약 브루스 웨인이 발 킬머같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면, 정체를 숨기고 배트맨 짓을 하고 싶었다면 다른데는 다 드러내놓더라도 입술만큼은 반드시 가리고 악당을 때려잡으러 다니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브루스 웨인은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조지 클루니가 역을 맡았다. 키튼의 분위기 같은건 아무래도 좋았다. 킬머의 입술만 아니면 됐다. 그점에선 일단 클루니는 합격이었던 셈.
그러나 아무래도 브루스 웨인하고 클루니는 통 어울리지가 않았다. 가면을 벗은, 바람둥이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 역에는 어느정도 어울렸을지는 몰라도, 밤의 기사 배트맨에는 영 어색했다.
게다가 시커먼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버리기엔 이시대 최고의 미중년 클루니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2005년, 크리스찬 베일이 브루스 웨인으로 나타났다. 썩 괜찮다. 입술이 잘생긴 것도 큰 장점이고, 약간은 우수에 깃든 듯한 표정도 좋다. 마이클 키튼같은 배트맨이 다시 나타나는건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터. 그래도 크리스찬 베일은 브루스 웨인으로 흠잡을 데가 별로 없다.

...


처음에는 팀 버튼이었다. 고담시는 어둡고, 기괴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 다시 말해 팀 버튼의 전매특허 분위기(크리스마스의 악몽을 한번 생각해 보라) - 를 풍겼다. 배트맨은 만화를 통해 우리에게 낯익은 남색/회색/노란색의 타이즈 대신, 온통 시커먼 색으로 뒤덮였다.

그걸 조엘 슈마허가 이어받았다. 그는 고담시를 발랄한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번쩍이는 총천연색 복장을 한 로빈이 마침 등장했고, 배트맨도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덩달아서 그의 옷을 번쩍거리는(그리고 푸른색이 필요이상으로 가미된) 소재로 바꿨다. 도시 전체가 무슨 카니발이라도 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슈마허는 자기 스타일대로 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그 스타일이 배트맨 영화에는 꽝이라는 것. 슈마허는 [오페라의 유령]처럼, 총천연색의 화려함이 필요한 영화만 만드는 편이 낫다. (흑백의 현재를 호화찬란한 과거가 뒤덮어 버리던, 오페라 하우스에 빛깔이 되살아나던 그 인상깊은 첫장면을 생각해보라)

2005년, 슈마허의 손을 거치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던 배트맨 시리즈는 [메멘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에게 넘어갔다. 내가 [메멘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당연히 놀런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제발 박쥐씨를 살려내다오.


...놀런은 성공했다.


more.. (스포일러 주의!)



배트맨 시리즈는 부활했다. [배트맨 비긴즈]의 성공을 발판으로 앞으로 새로운 배트맨 영화가 계속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나로선 제발 크리스토퍼 놀런이 계속 감독을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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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7 15:17 2005/08/07 15:17
  1. kizna
    2005/08/07 15:34
    안녕하세요. 태터 센터에서 보고 들렀습니다.
    정말 좋았지요 비긴즈 ;ㅅ;
    저도 대사 반복하는 게 정말 너무 좋았던지라, 반가워서 답글 남깁니다 ^^
  2. onecent
    2005/08/12 16:26
    안녕하세요. 태터홈에서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비긴즈가 아마도 스타워즈를 제외하곤 올여름 제가 본 영화중 제일이 아니었을지. ㅎ
    써놓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대사 반복되어 나오는게 저거 말고도 몇개 더 있었던 것 같네요. 여튼 인상적이었습니다.
  3. GS.
    2005/08/12 23:03
    봤다하면 제일이야. -_-;
  4. 종현.
    2005/08/15 04:13
    그도 쟈니잉글리쉬와 익스트림OPS에게는 서슴지 않고 혹평을 퍼부어댔지. 그 거셈이 마치 쓰나미같았어.
  5. onecent
    2005/08/17 10:40
    GS./분명히 '스타워즈를 제외하곤' '올여름' 으로 한정시켰다고. 이건 오버하는게 절대 아니야.

    종현./2009 로스트메모리즈 이야기도 한번 들어볼테냐?
  6. 종현.
    2005/08/19 21:51
    한번 들어볼게. 시작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