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워즈 :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티저 포스터다.
제다이는 분노를 모를지어다.
증오도.
사랑도.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분노에 찬 제다이였다. 그의 분노는 결국 증오가 되어 들끓었다. 그리고 바로 사랑 때문에 그는 분노했고 증오했다.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요다가 한 그 유명한 말을 떠올려보자.
"두려움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으며,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득차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을 때 아나킨은 눈이 뒤집혀 날뛰었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 순간, 아련하게 제국의 테마음악 "The Imperial March"가 들려온다), 사랑하는 파드메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글자 그대로 '눈이 뒤집혀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사람이다.
분노하지 않고 증오도 없으며 사랑도 모르는 건 로봇이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건 보통 사람이 아니라 도사다.
말하자면 제다이는 죄다 도사들인 셈인데, 도사들만 줄줄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재미있을 리가 없다. 무슨 격렬한 사건이 있을리 없으며 모두가 다 원만하고 지혜롭게, 냉철하게 일처리를 해낼 테니 말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으음'하고 신음 약간 흘리고 마는 위대한 제다이 마스터 요다.
자기가 사랑한 제자가 악의 화신이 되어 제다이 학살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도 무슨 옆집 애들 싸움 보듯이 무심하게 '오, 더이상은 못보겠어' 라고 덤덤하게 내뱉고 마는 오비완 케노비. (만약 그 장면이 감정을 완전히 초탈한 제다이를 연기하려 했던 것이라면 이완 맥그리거는 훌륭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올해 골든 라즈베리상은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무조건 이완에게 낙점이다)
요다 카리스마 넘치는거야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우중충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어도 수염 한번만 만져 주면 우아함까지 묻어나오는 케노비가 매력적인 캐릭터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조연이기 때문에 멋져 보이고 위대해 보이는 것이다.
요다나 케노비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두시간 반짜리 영화가 나온다면 관객은 그야말로 곤욕을 치러야 할 거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요다의 도치법이나 케노비의 시니컬하면서도 우아한 영국 액센트를 들어 주는 것도 한시간이 한계다.
그렇기에 스타워즈의 주인공은 전편 삼부작이나 후편 삼부작이나 모두 '제다이 수련을 시작하기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은' 녀석들, 다시말해 사람의 감정이 이미 뿌리깊게 박혀있는 녀석들이 해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편 삼부작의 경우, 루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솔로가 더 인기가 많다. 누군가의 말처럼 "돈과 사랑에 움직이는" 솔로야말로 우리가 동일시할 수 있는 녀석이니까.)
[시스의 복수]는 감정이 증발해 버린 제다이들의 세계에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뒤틀린 감정이 폭발하면서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시스의 복수]를 세 번이나 봤는데, 볼 때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불쌍해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악의 화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야 한다. 팰퍼틴에게 무릎을 꿇는 아나킨을 보면서 도저히 "저 멍청한 녀석. 역시 내공이 부족했던게지" 라고 할수가 없다. 사실 내가 더 닮고 싶은 건 쿨함이 줄줄 흐르는 케노비였지만, 베이더의 분노가 절절하게 와닿았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케노비와의 동일시에 크게 흠을 낸 건 역시 이완의 '오, 더이상은 못보겠어' 였음을 밝혀둔다.)
베이더가 탄생하는 과정까지 다 지켜보고 나니 스타워즈 전체 스토리가 좀더 풍부한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쉭쉭거리는 숨소리만 들어도 모두들 벌벌 떠는 악의 화신, 조금만 맘에 안들면 원거리 목조르기에 들어가는 바로 그 다스 베이더가 아들 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허물어지는 게 이제는 얼마나 당연하게 느껴지는지.
게다가, 가면 때문에 베이더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는 게 얼마나 오묘한가.
베이더가 케노비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가 케노비의 포스를 느끼고는 "느껴본지 오래 된 포스다" 라고 말할 때. 그리고 마침내는 "내가 네 애비다" 라고 할 때까지.
그 암흑투구 속에 대체 무슨 표정이 떠올랐을까.
루카스가 미래를 꿰뚫어 보고 일부러 30년전에 베이더의 투구를 그런 모양으로 만들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베이더에게 무표정의 투구를 주었기 때문에 거꾸로 지금 시점에서 사람들은 그 투구에 아나킨의 표정을 마음껏 덧씌울 수 있게 되었다.
오비완과 다시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분노에 찬, 그러면서도 예전보다 더 여유가 있는 표정을.
루크를 앞에 두고 말할 때는, 파드메 앞에서만은 훨훨 타던 시뻘건 눈을 거두고 어린애같이 되어버리던 바로 그 표정을.
무표정의 투구 덕분에 전편 삼부작과 후편 삼부작은 3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아귀가 딱 맞는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4-5-6, 1-2-3 의 다소 이상한 순서에 따라 영화를 만든 건,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스의 복수]의 엔딩을 보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기 때문이다. [제다이의 귀환]의 엔딩에서는 '이제 정말 끝'이라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베이더와 루크, 레이아 (그리고 솔로)의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기에 [시스의 복수]가 끝났음에도 스타워즈는 끝이 아니다.
이거야말로 돌고도는 스타워즈의 세계관에 딱 들어맞는 엔딩 아닌가.
May the Force be with us all.
꼬리말



2005/07/03 21:22
2005/07/04 01:19
2005/07/04 03:40
2005/07/05 11:54
영태/ 틀렸다. 네가 아는 사람인건 맞다만. ㅎ
2005/07/06 18:09
2005/07/08 20:38
2번항목에서 나이와 연기의 상관관계는 글쎄.
사무엘 잭슨과 이언 맥디미어드는.... 한살차이인데? ^^;;
2005/07/08 23:58
4,5,6 덕분에 3편의 엔딩이 여운을 오래 남긴다는 건 정말 공감한다.
1,2,3편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구.
(영화관 안내원이 인상을 쓰고 바라보는데도 스탭롤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었지.)
전반적으로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네가 지적한 단점에 대해 "아니야!!!!"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좀 아니라고 느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인정을...;;
(그 이유가 대본 때문이었나...)
후후후. 이건 빨리 빨리 써줬어야지~~ ^^
(네가 이걸 빼먹지 않으리란 건 짐작했다만)
2005/07/10 13:19
Justine/ 요다는 800살도 넘었잖습니까. 다들 어린것들 맞죠 뭐. 황제는 몇살이나 먹었는지 모르겠지만..그래도 명색이 시스 군주니 좀 먹긴 먹지 않았겠습니까;
맥디미어드하고 잭슨하고 나이차이 진짜 안나는군요. -_-;
...그런데 써놓고 보니, 나이 많이 먹은건 윈두도 마찬가지일텐데; 요다가 윈두보고 함부로 어린녀석이라고는 못할듯.
가넷/ 제가 처음 보러 간 날이 개봉일이었는데, 온 사람들이 죄다 팬들이었는지 시작할 때부터 박수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아주 신나게 볼 수 있었죠;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그 영화관에서 일찍 나간 사람이 열명이 채 안됐던 거 같은데; 하여간 대단했죠.
이번 스타워즈가 여섯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편이 아니었을지.
2005/07/27 00:57
미디클로리언인가 하는게 유전병이라 삼대째 내려오는거래
2005/08/07 17:48
누구나 훌륭한 작품에 명공연임을 인정하고 절절한 감동을 받았다고들 하는데, 여자친구와 함께 간 나는 정작 그리 큰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뭐, 주인공이 노래부를 때 소름이 끼친 적은 있었지만.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을 보고서도...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이 실망했었다. 웅재와 내가 우리나라 드라마 보면서 딴지걸기 식으로 막 말을 쏟아낼 때처럼 거의 모든 장면마다 마음속으로 딴지가 걸리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감동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왕이면 나도 감동을 느끼는 쪽이었음 좋겠다.
근데, 웅재야 이런 글 써도 되남? ㅋㅋ
2005/08/10 14:11
건/ 물론 이런 글 써도 되지. ㅎ
흠. 근데 에피소드3이 흠이 역시나 이전 두편처럼 어설픈 구석이 많긴 해도; 엄청 드라마틱하지 않았나;;
실망했다니 안타깝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