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크루그먼이 내리는 결론은, 경제학자보다는 정치학자가 내릴 법한 것이다(그 스스로도 처음에는 이러한 결론에 이르리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적 불평등의 부침은 외부적 시장경제적 요인이 아닌 정치적 요인에 의해서 일어났다. 일련의 정책에 의해 뉴딜 시대의 소득의 (상대적)균등과 그에 따른 탄탄한 중산층 사회의 형성이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후 우경화한 공화당과 그들의 집권에 따른 정책변화가 오늘날의 양극화를 낳았다. 다시 말해,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는 시장경제의 흐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정치적 활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역으로, 우리의 정치적 활동에 의해 현재의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은 완화될 수 있다. 외부의 경제적인 요인이 불평등을 해소해 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새로운 뉴딜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크루그먼이 진보주의자(Progressive : 그는 이 책에서 'progressive'를 '행동하는 리버럴 liberal'이라고 정의한다)로서 미국 사회에 전하는 메세지다.
잠깐 용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난 아직 미국 사람들이 말하는 'liberal'이라는 단어를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저 단어의 본뜻대로 '자유주의자'라고 번역해서는 저 단어가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냉전의 시대를 극심하게 겪은 미국에서 '좌(the left)'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인상 때문에 미국에서는 좌우(left/right)라는 보다는 'liberal/conservative'라는 말로 정치적 성향을 구분한다. 한국전쟁을 통해 북한과 그들이 대변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형성하게 된 우리나라에서 '좌/우'가 아닌 '진보/보수'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크루그먼은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연이은 보수의 공격으로 'liberal'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되었음을 이야기하며 그 대안으로 'progressive'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물론 그 스스로는 'progressive'라는 말을 앞서 본 것처럼 'liberal'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어떤 한 단어에 부정적인 인상을 심기 위해 노력하고, 나중에는 그 단어 자체를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가령 반정부적 정책이면 모조리 '좌파' 또는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정치적 공격방법을 생각해 보라)은 미국이나 여기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말' 자체가 아닌 그 말이 지칭하는 실질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린 껍데기 때문에 실질을 너무 쉽게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크루그먼은 행동하는 리버럴(마땅한 번역어를 못 찾겠으므로 부득이 소리나는 그대로 쓰겠다)로서 오늘날의 미국 사회에 전하는 메세지를 이 책에 담았다. 그러나 그의 메세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게 먹힌다. 오늘날의 미국 사회와 미국의 정치지형도가 우리 나라와 놀라우리만치 닮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보자.
"21세기 초반 미국 사회의 모순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를 리버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중요한 측면에서 [오히려]보수적이고, 스스로를 보수(conservative)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개 매우 급진적이라는 것이다. ...리버럴들은 우리의 민주주의 원칙들과 법치주의를 존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독재자의 권력을 갖기를 바라며 부시 행정부가 혐의도 없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는 것에 박수를 보내 왔다."
크루그먼이 보기에 오늘날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와 과두정을 선호하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오로지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람들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아직도 미국이라면 덮어놓고 신 떠받들듯 하는 분위기가 잔존해 있는 우리나라인만큼 미국 사회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2008년 가기 전에 사서 읽자.
"I believe in a relatively equal society, supported by institutions that limit extremes of wealth and poverty. I believe in democracy, civil liberties, and the rule of law. That makes me a liberal, and I'm proud of it."
[나는 부와 빈곤의 양극단을 제한하는 제도들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를 믿는다. 나는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법치주의를 믿는다. 따라서 나는 리버럴인 셈이고,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
맨 마지막 문장은 인용부호 밖으로 빼 내도 되겠다.


2009/01/16 08:23
한 구절 한 구절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일부분만 들었는데도 정말 우리나라와 똑같다는 걸 느꼈지.
맨 마지막 문장은 나도 동감!!
2009/01/21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