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 몇 권.

日常 Posted at 2006/04/03 00:21
1. George Orwell, 1984

[1984]의 전반부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빅 브라더'로 대표되는 [1984]의 음울한 사회는, 이제는 새삼스레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Newspeak (新語)'은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윈스턴이 당에 저항하다가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차츰차츰 그의 정신이 산산조각이 되어 결국은 인간성이 완전히 말살되고 마는 모습은 실로 섬뜩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게 항상 잠들기 전, 늦은 밤이어서 무서움이 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최근에는 읽은 책들과 본 영화들은 기묘하게도 서로 겹치는 구석이 많았다. 한창 이 책을 읽던 중에 마찬가지로 음울한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영화(브이 포 벤데타)를 본 데다가, 책 속에 나왔던 고문 장면들이 머리속을 떠돌고 있던 가운데 영화 [청연]에서 주인공들이 끔찍하게(!)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그러고 보니 [브이 포 벤데타]에도 고문 장면이 나오긴 한다. [청연]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지만;). 게다가 또,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제목부터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이다. 이 책에 대해선 아래에서 따로 언급하겠지만, 일단 조지 오웰과 [1984]에 대한 글에서 두 구절을 인용하면 좋을 것 같다.(강조는 내가 멋대로 가한 것이다)

"오웰이 발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운영자들이 분별력을 갖추기는커녕 자신의 동료들과 더불어 비합리적 충동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충동에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리가 상상했던 자유주의가 전체주의의 악몽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오웰은 생애의 남은 기간 동안 자신이 믿는 사회주의의 인간적·개인적 성격을 강조했다. 비평가들은 고전적 스토아 철학으로 복귀하여 진보를 포기했다는 이유로 오웰을 음울한 작가로 간주한다. 그러나 인간사를 조직화하는 이데올로기의 상대주의가 없다면 남는 것은 오직 순수한 절대적 인간성이다. 오웰이 [1984년]에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순수한 절대적 인간성,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1984년은 이미 한참 지났고(다시 한 번, 기묘하게도 난 1984년생이다 -_-), 오웰이 만들어낸 '빅 브라더'는 상투적인 용어가 돼 버렸지만 여전히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나만 빼고는 이미 다 읽어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대신 심약하신 분들은, 윈스턴이 잡혀가는 대목에 이르면 일단 책을 덮고, 그 뒤부터는 밝은 대낮에 읽으실 걸 권한다(네녀석이 겁이 많아서 그래!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읽은 Signet Classics 판에는 에리히 프롬의 서평이 뒷부분에 부록으로 달려 있다. 프롬이 이 책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약간 궁금하긴 하지만, '(드디어)책 한권 다 읽었다'는 기쁨을 빨리 만끽하고 싶어서 "본문은 여기까지야", "남의 서평을 읽으면 자기 생각을 세우지 못해"라고 얼토당토않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책을 덮고 치워버렸다.

2.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2, 한겨레출판사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언제 읽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구술면접을 준비한답시고 온갖 책을 다 뒤적거리다가 읽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한창 머리가 깨어나고 있는 중이었고, 박노자씨의 그 책 역시 내가 사회 의식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한창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던 시절에 읽었으니 그의 날카로운 문제제기에 깊이 공감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렀고, 그 시절의 날카로움을 조금이라도 되찾고 싶어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2]를 집어들었다. 바보 되기 딱 좋은 시험공부가 (일시적으로나마) 끝나고 나서 가장 먼저 산 책이 바로 이거였다. 박노자씨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병영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그의 문제제기,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상황에 대한 비판 등 예전의 책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주제들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찌 보면 진부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문제제기로도 지금의 내 무뎌진 머리에겐 신선한 자극이었다.

3. 윌리엄 L. 랭어 엮음(박상익 옮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푸른역사

얼마 전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났는데, 선생님이 들고 온 책이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라는 책이었다. 재미있는 책이라고 하시면서 원래는 두 권짜리로 된 책 중 첫번째 권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뭐든 따라하고 싶어하는 유치한 제자로서 바로 다음 날 학교 책방에 가서 책을 찾아봤는데,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는 없고,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만이 재고가 남아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없는 돈을 털어서 (꽤나 비싸다 -_-;;)사서 읽어 보았다.

여러 사람들이 서양 근현대사의 여러 주제에 대해 쓴 글을 묶어 놓은 역사책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서술한 게 아니라 책 전체를 꿰뚫는 연속성은 없지만, 그게 흠이 되진 않는다. 넉넉히 시간을 두고 많은 분량을 한꺼번에 읽는 게 쉽지 않은 나로선 짤막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는 게 오히려 이점이 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라든가, 영국 엔지니어 브루넬, 그랜드 투어 등,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뉴턴이나 루소, 마르크스와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점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책 중반부 계몽주의-루소-로만주의(낭만주의) 로 이어지는 세 개의 글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내용 면에서 연결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조망 역시 가능하게 해 준다. 그 부분이 내가 가장 주의를 기울여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계몽주의 시대에서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은 흥미를 끄는데, 전에 읽었던 [낭만주의의 뿌리]라는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한번 읽은 책의 내용 중에 제대로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는 건 참 분통터질 노릇이다)

'우리 시대에 계몽주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글 중에서 특히 울림을 주는 구절을 옮겨 놓는다.

"덧없는 충동에 복종하고, 변덕스런 생각을 따르고, 격정에 굴복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일 뿐이며, 그것은 다른 형태의 노예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유인은 법을 따른다. 하지만 그의 자유는, 그 자신이 자유로운 가운데 법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그리고 그 법이 자신의 환경과 가능성 및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적 검토로부터 출현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러한 법을 자제심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을 따를 때, 그리고 안이한 타협이나 절망의 유혹적 마력을 거부할 때 인간은 자신이 만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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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3 00:21 2006/04/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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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현
    2006/04/08 20:26
    '1984'를 읽은지 몇 년 흐르긴 했지만 그 섬뜩함은 아직도 생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