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양의 책을 쓴다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정신나간 짓이다. 단 몇 분에 걸쳐 말로 완벽하게 표현해 보일 수 있는 어떤 생각을 500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어뜨리는 짓. 보다 나은 방법은 이미 그러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책들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하나의 코멘트, 즉 그것들의 요약을 제시하는 척하는 것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1994, p.16.


<리비도>라는 명칭은 에로스의 힘의 발현을 죽음 충동(원래의 번역본은 '본능'이라고 번역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엄연히 본능(Instinkt)과 충동(Trieb)을 구별했다. 원어 Todestrieb는 '죽음 충동'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이하에서도 '본능'을 '충동'으로 모두 고쳐서 인용했다)의 에너지와 구별하여 가리킬 때에도 사용할 수 있다. ... 우리가 죽음 충동과 에로스의 관계 및 그 충동의 본질을 가장 뚜렷이 통찰할 수 있는 것은 사디즘에서다. 사디즘에서는 죽음 충동이 고유한 의미에서의 성적 목적을 왜곡하면서도 성 충동을 충분히 만족시킨다. 그러나 사디즘이 성적 목적과는 관계없이 맹목적인 파괴성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도 우리는 그 충동의 만족이 강렬한 나르시시즘적 쾌락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파괴 충동을 만족시키는 것은 전능에 대한 자아의 오랜 원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열린책들, 2003, pp.300-301.


내 인생에서 일어나곤 했던 굉장히 치욕적이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이며 비열하고, 무엇보다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라면 뭐든 간에, 언제나 내게서 한량없는 격노와 더불어 무궁무진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흡사 범죄의 순간처럼,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만약 내가 뭐든 훔쳤다면, 나는 훔치는 일을 수행하면서도 나 자신의 저열함의 깊이를 의식하는 데서 나오는 환희를 느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한 것은 이 저열함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나의 의식은 전적으로 온전했다), 저열함에 대한 고통스러운 의식에서 나오는 환희가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다 그랬지만, 결투선에 서서 적수의 일격을 기다리고 있을 때면 나는 꼭 그와 같은 치욕적이고 광포한 감각을 느끼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는 그 느낌이 굉장히 강했다. 자인하건대, 그것이 내겐 이와 같은 종류의 그 어떤 것보다더 더 강렬한 것이었기 때문에 내 쪽에서 그것을 추구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악령(하), 열린책들, 2002, p.1065.


- 이것은 여기에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절해나가는 무의식적 본능의 완벽한 기능의 확실성이나, 심지어는 위험이든 적이든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 같은 어떤 어리석음이, 아니면 그 어떤 시대에도 고귀한 영혼이 스스로를 다시금 인지하게 되었던 분노, 사랑, 경외, 감사, 복수 등을 열광적으로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책세상,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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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7 23:59 2004/10/0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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