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앨범

日常 Posted at 2007/03/04 01:04
지난주 월요일에 졸업앨범을 받았다.
앨범에 실린 개인사진이야 미리 별도로 인화신청을 해서 확인해 봤던지라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 할 일이 없었고, 그 외에 조별촬영 사진이나 이미지사진은 워낙 작게 나와서 눈을 앨범에 들이대고 살펴봐야 이목구비가 분간될 정도였으니 이상하게 나왔다 해도(물론 실제로 이상하게 나오기도 했지만) 내 얼굴을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 볼 사람이 있을리가 없으니 마음쓸 게 아니었다.

친구들 얼굴이 어떻게 나왔나 살펴보면서 '아 잘 나왔네' 내지는 '정말 똑같이 나왔네(이런 류의 앨범에는, 얼굴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그사람 성격까지도 사진에 그대로 묻어있는 사람들이 가끔씩이지만 꼭 있다)', 또는 '아, 실물이 더 낫네' 하고 혼자 생각해 보는 게 은근히 재미가 쏠쏠하다.

다 좋은데, 문제는 이놈의 앨범이 무지막지한 크기와 두께, 그리고 그에 걸맞는 중량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의대를 제외한 전 단과대학 사람들 사진이 다 실려 있으니 페이지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법대 졸업사진은 무려 400페이지가 넘어가서야 나온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법대 말고 다른 단과대 사람들 사진도 실려있는 앨범을 받게 되니 고시식당 식권을 마흔장 가격에 오십장을 사는 것처럼 뭔가 덤으로 더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만, 앨범을 들춰보고 나면 그게 오산이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이리저리 마주치면서 얼굴만 알게 된 사람들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내가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을 제외하고 그렇게 '어디선가 봤지만 누군지는 모르는' 사람을 처음으로 찾아낸 건 무려 94페이지나 지난 다음이었다. -_- 앨범 전체를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 다 열심히 들여다보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졸업앨범의 쓸모는, 아마도 나중에라도 '아 그때 우리학교에 그런 녀석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면 얼굴이나 다시 뒤적여 보는 데 써먹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묻혀 있던 옛 추억도 떠오르고 하면서 혼자 키득댈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번에 받아 온 저 육중한 졸업앨범 중에서 나한테 진정으로 쓸모가 있는건 400페이지부터 한 열두어쪽 정도 뿐이다. 그 부분만 찢어내서 스테이플러로 철해 놓는 게 나중에 찾아보는 데 훨씬 좋을 거다. 무거운 책 들었다 놨다 책장 넘기면서 팔운동까지 겸하려는 게 아닌 이상.

차라리 법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앨범을 만드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만드는 김에 졸업하는 사람들(물론 올해 졸업앨범에 실린 법대생들의 절대다수는 올해 진짜로 졸업을 하진 않을 테지만ㅎ) 얼굴만 넣지 말고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재학생들 사진을 다 실어서 만들면 어떨까? 그러고는 졸업생들 아닌 재학생들에게도 앨범을 나누어 주는 거다. 물론 이렇게 되면 앨범을 '졸업앨범' 이 아닌 뭔가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1학년 때부터 4학년을 마칠때까지 매년 같은 과 학생들 얼굴이 실린 앨범을 하나씩 갖게 된다면 친구들 늙어가는 모습, 변신하는 모습 망가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동기들 뿐 아니라 선배 후배들 얼굴까지 나중에 찾아볼 수 있으니 키득댈 일도 늘고 일석多조다.


아 물론. 내 얼굴 보면서 키득댈 사람도 덩달아 늘어난다는 게 부작용이겠지만, 나 보는 데서 키득대진 않을 테니 그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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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4 01:04 2007/03/04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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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영
    2007/03/06 11:42
    오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_+
    난 민지 민정이랑 메뉴판과 비교해보며 비포&애프터를 감상했어ㅋㅋㅋ
    • onecent
      2007/06/25 00:41
      메뉴판과의 비포/애프터 재밌겠다.
      나도 한번 해봐야지..
      그러나 문제는 졸업앨범을 신림동에 두고 왔다는거;;
  2. 비밀방문자
    2007/03/06 11:4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3. 가넷
    2007/03/29 00:08
    좋은 생각이네.
    다른 과는 몰라도 법대는 그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졸업은 했지만 계속 학교에 있는 사람들도 매년 같이 사진을 찍는 것도...
    (아, 이건 좀 그런가... 나름 재미있을 것 같은데...;;;)
    • onecent
      2007/06/25 00:42
      사실, 저도 졸업 했지만 계속 학교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이 찍는게 제일 좋을거란 생각입니다. 근데 막상 그렇게 할 생각을 해 보니 대체 어디까지 포함을 시키고 어디부터는 제외해야 할지가 감이 안잡히더라구요; 졸업생 전원을 상대로 원하는 사람들한테 신청을 받아야 하려나; ㅎㅎ
  4. beau casino resort rivage
    2008/01/14 04:34
    아주 재미있는 지점. 감사.
  5. GUna
    2008/01/14 10:51
    ↑↑↑ 와... 댓글 기계의 이 무시무시한
    Artificial Intelligence라니..ㅋㅋ 적절한 시니컬함까지 겸비했어;
  6. onecent
    2008/01/16 10:57
    저 댓글 기계는 끊임없이 진화해 왔어.
    원래는 영어로 아주 일상적인 멘트를 남기는 형태였어. 그러자 사람들은 본문이 영어로만 되어 있는 글을 차단하는 방법을 통해 댓글을 차단했지. 영문 사이트면 몰라도 방문객의 절대 다수가 한국 사람인 우리나라 블로그에서는 영어로만 댓글을 다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저 방법은 스팸 댓글 막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어. 나 역시 그 방법을 쓰고 있었고..

    한참동안 스팸댓글 못 봤나 싶더니만, 얼마 전부터는 저렇게 한글로 댓글을 남기는 방식으로 진화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지. 물론 원래 영어 쓰는 사람들이 개발한 거라 그런지 한글은 영어를 한 단어씩 직역한 거라 표현은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스팸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댓글 내용을 전달하는 데는 애초에 관심이 없으니까 상관이 없지.

    가령 요 바로 위의 댓글은 원래 "Very interesting site. Thanks." 라고 남겨야 할 걸 한글로 번역한 거라고 봐야겠지. ㅎㅎ 어색한 번역 탓에 요새는 스팸 댓글 지우면서도 피식피식 웃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아무래도 골치가 아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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