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의 몸에 센서를 달고 그 센서가 보내는 신호를 잡아내서 컴퓨터 영상으로 재현해 내는 기술을 모션캡쳐라고 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을 만들어 내는 데 바로 이 모션캡쳐 기술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골룸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인 앤디 서키스가 또 하필 체조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탓에 구부정하게 네 발로 기듯이 돌아다니는 골룸의 몸놀림 또한 그가 직접 모션캡쳐 센서를 달고 연기했다고 한다. 이 때의 활약이 피터 잭슨을 어지간히 감동시켰는지 피터 잭슨의 차기작 [킹콩]에서 서키스는 배우로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그 애꾸눈에 파이프 물고 다니던 선원 역으로), 다시금 센서를 온몸에 달고 이번에는 킹콩의 움직임을 연기해 냈다. 덕분에 '괴수전문배우'라는 말도 심심찮게 듣게 된 모양이지만.
(이건 내 생각이지만, 킹콩 역할 안 하겠다는 서키스를 피터 잭슨이 배역 하나 던져주면서 꾀었던 게 아닐까. 그 선원 역할은 솔직히 없어도 그만인 거였고, 그다지 인상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모션캡처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켜서 배우의 얼굴에까지 센서를 무수히 달고 얼굴 근육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읽어내 컴퓨터 영상으로 재현해 냄으로써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처럼 연기하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들어 보려고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포레스트 검프]의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인데, 지난 2004년 크리스마스 시절을 노리고 야심차게 개봉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폴라 익스프레스]가 바로 이런 새로운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향한 첫 번째 시도였다. 당시에는 사람들의 표정이 진짜에 가까워지긴 했어도, 사람의 눈이 뿜는 생명력을 재현해 내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흡사 넋 나간 좀비들을 그려낸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 탓에 영화가 실패한 거고.
[폴라 익스프레스]의 실패를 딛고 저메키스가 새롭게 선보이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바로 [베오울프]다. 이번에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눈꺼풀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캡쳐해 냄으로써 사람의 눈이 표현하는 감정까지도 재현해 내려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베오울프]에서 배우들(과연 '배우들'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의 눈동자는 결코 넋나간 사람의 죽은 눈이 아니다. 젊은시절의 베오울프의 눈에서는 넘치는 자신감과 혈기가 느껴지고, 나이 든 베오울프의 눈에서는 회한을 읽어낼 수 있다. 실로 기술의 진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기술수준이 완벽의 경지에 이른 건 아니다. 목각인형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장면도 심심찮게 나온다. 특히 존 말코비치의 눈은 유달리 생명력이 없고, 다른 배우들에 비해 유독 존 말코비치의 얼굴이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다. 왜 그럴까? 존 말코비치는 실제로도 알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을 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그렇지만 미묘한 분위기 풍기는 얼굴로 치면 안젤리나 졸리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인데, 영화에서 안젤리나 졸리의 얼굴은 말 그대로 '치명적 유혹'의 향기를 있는대로 뿜어내는 모습으로 생생하게 재현됐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특징들이 모여 미묘함을 만들어 내는 것과 쉽게 드러나는 특징들이 미묘함을 만들어 내는 것의 차이일까?)
이 영화는 3D로 보는 게 좋다. 가장 이상적인 건 3D IMAX 화면으로 보는 것이었겠지만, 그러자면 용산이나 일산에 가야 했기에 아쉬운 대로 작은 스크린이지만 3D로 보는 쪽을 택했다(메가박스 11관). 3D로 보는 게 좋은 이유는, 애초부터 3D를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라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을 때 극대화되는 시각효과를 노린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뚝뚝 떨어지는 피를 아래쪽에서 잡은 장면이라든지(피가 스크린에서 내 눈 속으로 떨어져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절벽 저편에서 불을 뿜으며 공격하는 용을 화면 한켠에서 잡으면서, 반대편에서 절벽을 따라 달려가는 베오울프를 중심으로 시점을 이동시키는 장면이(이 장면이 그 스케일로 치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권인데, 베오울프와 용 사이에 있는 절벽의 원근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냥 평면 화면으로 볼 때보다 한층 웅장함이 느껴진다) 그 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3D 영상이 주는 신기함을 일부러 강조하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그 기술력이 실로 감탄할 만하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스토리도 그런대로 흥미로운 탓에 두 시간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잘 맞지 않아서 거추장스러운(나처럼 안경 쓴 사람한테는 두배로 거추장스럽다) 3D 안경을 쓰고서 두 시간 동안 시각적 즐거움을 만끽하다 나오면 그걸로 충분히 영화값(무려 만천원!)이 아깝지 않다.
[+] 영화 시작하기 전에 3D안경에 뭐 묻은 건 없나 살펴보고 좀 닦아 놓는게 좋다. 나처럼 영화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경이 뿌옇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닦으려 드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 바다괴물을 기운차게 베고 난 뒤 베오울프는 대체 왜 그렇게 벼략같이 목청이 터져라 자기 이름을 외쳐야만 했던 것일까? 영화 내내 베오울프는 틈만 나면 자기 이름을 고래고래 외쳐대는데("스파르타!!"를 대체할 유행어라도 만들어 볼 생각이었던 걸까?), 다른 경우는 그래도 외쳐 봄직한 상황이었다 쳐도 여기서는 정말 뜬금없다.
그 뜬금없음으로 치면 [스타워즈 : 시스의 복수]에서 팰퍼틴이 밑도 끝도 없이 별안간 "파워~~!!!!"를 외쳤던 거하고 맞먹는다. -_-; 배우는 완전 진지하지만 보는 사람은 배가 찢어지게 웃긴 것도 똑같다.
[+++] 보러 가기 전에 마음을 약간 굳게 먹을 필요가 있다. 영화 초반에 괴물 그렌델이 등장하는 장면은 정말 끔찍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렌델도 정말 끔찍하게 생겼고..-_-; 영화 초반은 거의 호러 영화 수준.
졸리의 눈빛


2007/11/26 00:02
역시... 3D 상영을 위한 영화이기에 3D로 봐야할텐데...
후회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보러 가야겠구만.
애초에 3D IMAX로 봤어야 했어...ㅠ_ㅠ
(올해 대구CGV가 생겨서 대만족!!! 좌석도 편안하고 공간도 넓고~ IMAX관까지 있더라구!!! 게다가 CGV에서만 개봉하는 영화들도 있을테니 앞으로 기대기대!!!)
2007/11/30 20:27
근데 사실 두 번씩이나 볼 만한 영화인지는 잘..;;
아이맥스 쓰리디 경험해보는 셈치고 가면 되긴 하겠습니다만..ㅎㅎ
2007/12/05 17:11
듣자마자 달려가서 봤을텐데.
2007/12/09 12:01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