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지에 실린, 이 블로그에 먼저 쓰고 뒤에 연수지 글마당에 응모했던 [다크나이트]에 관한 글을 모처럼 다시 읽어보았다.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이 떠올라서 적어두려고 한다.

고담시의 법질서와의 관계에서 배트맨은 그 존재 자체가 모순이다. 배트맨은 법질서를 수호하려고 하지만, 그는 스스로 법질서를 어기면서 그 법질서를 수호한다. 그에게 적법절차 따위는 없다. 공권력이 부여된 사법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범죄자들을 두들겨패고, 자기 멋대로 단죄하고,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범죄인인도조약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며 외국으로 도피한 범죄자를 납치해 온다.
다시 말해 고담시의 법질서는 무법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의 역할은 숨겨져야 한다. 법을 어기는 녀석에 의해서만 법질서가 존속할 수 있다는 모순점은 감춰져야 한다. 그래야 법질서가 '질서'정연한 체계로서 성립할 수 있기 때문(또는 그러하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고담시의 법질서 속에서 배트맨이 갖는 위상은 민법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이 차지하는 위상과 똑같다. 신의성실은 민법 제2조에 규정되어 있어서, 다른 여러 조문에 규정되어 있는 민법의 다른 원칙들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민법에 규정되어 있는 다른 모든 원칙들이 상황에 따라서는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의 원칙이다.

이런 식이다: 민법에 규정된 대로라면 갑이 소유권을 갖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 따라서 갑의 소유권행사는 부정된다.

즉, 신의성실의 원칙은 민법을 어기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법원칙이다. 배트맨과 똑같은 모순덩어리다.

그리고 법학자들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대하는 태도 또한 고담시 시민들이 배트맨을 대하는 태도와 똑같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나쁜 놈' 취급을 받는다. 그 역할은 언제나 필요최소한도로 제한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신의칙은 결코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문제를 신의칙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어느 민법교과서를 봐도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신의성실의 원칙이 있기에 민법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신의칙이 없다면 일견 정치해 보이는 민법은 복잡다양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만 죽은 글자들의 집합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법 문언대로만 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법에 의해' 이러이러한 결론이 나온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신의칙이다. 신의칙에 의해 법개념들은 확장과 축소를 거듭할 수 있고, 법은 신의칙에 의해 비로소 규범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신의칙의 역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면, 민법 제2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규정들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법의 체계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신의칙을 위험한 놈이라고 생각한다/해야만 한다.
그래서 오늘도 고담시의 경찰은 배트맨을 쫓는다/쫓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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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1 12:18 2008/12/2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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