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는 출간된 지 50년도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불후의 베스트셀러인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라고 한다. 그 소설은 영화화된 것만 이번이 세 번째라고 하니 그 인기가 과장된 게 아니라는 걸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는 혹평 뿐이었고, 지금 보니 네이버 평점도 그다지 높지 않은 걸로 봐선 사람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함께 본 친구녀석도 '최악이다'라며 독설을 퍼부었고.
워낙 들은 이야기가 안 좋아서 기대를 안 한 탓인지는 몰라도, 난 꽤나 만족스러웠다. 황폐해진 맨해튼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영화 보는 내내 긴장감도 유지되고. 윌 스미스도 괜찮았다. 희망없는 고독과 공포의 늪에서 점차 미쳐가는 네빌의 모습을 연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중간에 감회에 젖어 밥 말리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짠했고.
(아. 그리고 윌 스미스의 식스팩도 괜찮았다.)
폐허가 된 맨해튼 그려내는 데 쓴 돈을 조금만 좀비들 만드는 데 썼으면 좀더 리얼한 좀비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그렇지만 이건 오히려 사소한 거고, 정말 기분이 찝찝해지는 건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듯이 스토리 개연성이 막판에 급격히 무너져서도 아니고(물론 좀 무너지긴 한다), 또 어떤 사람들 말처럼 결말이 '허무해서'도 아니다(그다지 허무하지 않았다).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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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 인간 생존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정착촌에 애나와 에단이 도착한다. 정착촌의 육중한 쇠문이 천천히 열리자.. 우리 눈앞에 바로 들어오는 건 우뚝 솟은 십자가 첨탑이 있는 교회, 그리고 그 옆에 나부끼는 성조기다.
이 영화는 후반부 들어서부터 노골적으로 기독교적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신은 없어!'라고 외치던 네빌 박사는 죽었다. (물론 죽기 직전에 애나에게 '이게 아마 당신이 여기 온 이유일거야'라면서 회개하는 걸 잊지 않았지만) 그리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맹목적이고 순진하게 '신이 우리를 구해주실 것이다' 라고 믿던 애나와 에단은 결국 살아남는다. 그런 데다가 인간의 최후 거점이자 새로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인 정착촌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 또한 교회다.
기독교적 색채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감독이 기독교를 믿든, 이슬람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내 알 바 아니고, 그 사람 자유다. 예수가 인류를(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류 가운데서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 사람의 신앙이고, 그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저 장면에서 성조기와 교회가 함께 등장하는 모습이 오늘날 점점 기독교 근본주의 국가가 되어 가는 미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하다. 이라크전쟁이 신의 계시를 받은 것이라고 우기는 부시, 그리고 '무신론자들은 미국 시민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아버지 부시가 떠올라서 찝찝하다. 관용 없는 종교적 근본주의가 이제껏 부른, 그리고 앞으로 부를 피가 떠올라서 찝찝하기 그지없다.
정착촌은 바이러스라는 대재앙을 이겨낸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곳이다. 그러나 인류의 새로운 시작이 종교적 근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머지않아 인류는 또 한번 스스로를 멸망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냥 잠깐 스쳐가는 장면 하나 때문에 멸망 운운하는 건 분명히 어처구니없는 오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게 오버에 불과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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