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형사소송법상의 소인 개념을 형사소송법의 해석에 도입할 이유는 전혀 없다. 소인을 '법적 구성요건에 대입하여 재구성된 사실'이라고 보는 이상, 이는 형사소송법상 '공소사실'(엄밀히 말하면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 개념과 동일한 의미이다. 소인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용어만 증가시켜 불필요하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소인 개념을 전제로 하는 절충설과 소인대상설은 (판례가 흔히 쓰는 표현을 빌자면) '취할 바 못된다.'
이원설과 범죄사실대상설 중에서는 어떤 견해가 타당한가?
두 학설의 차이는, '현실적 심판 대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이원설에서 말하는 '잠재적 심판의 대상'은 범죄사실대상설에서 말하는 '범죄사실'과 동일한 개념이기 때문에, 결국 심판 대상을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으로 나누는지 여부만이 두 학설의 차이점이다.
나는 '현실적 심판 대상'이라는 개념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원설을 지지하는 이재상 교수의 설명을 보자.
"법원의 현실적 심판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이고 그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사실은 공소장변경이 있을 때에 비로소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에서 잠재적 심판의 대상에 불과하다.." (형사소송법(제6판), p.382 25행 이하)
그러나 이러한 이원설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할 수 없다.
1. 심판의 대상(소송물)이라는 개념을 설정하는 취지 자체에 반한다. 소송물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의 실천적 의미는, 그것이 이중기소가 금지되는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기판력이 미치는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도 된다는 데 있다. 법원이 그 사실에 대해 심판하였기 때문에 판결이 확정된 뒤 다시 공소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고(기판력), 법원이 그 사실을 이미 심판하고 있기 때문에 중복해서 심판을 청구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이다(이중기소). 이원설은 기판력의 범위와 이중기소가 금지되는 범위를 '잠재적 심판의 대상'의 범위와 동일하게 설정하는데, 그렇다면 '잠재적 심판의 대상'만이 본래 소송법 이론에서 말하는 '소송물(=심판의 대상)'인 것이다. 심판의 대상과 기판력이 미치는 범위, 이중기소가 금지되는 범위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미 소송물 개념을 해체시켜 버리는 것이다.
2. 법률의 규정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법원은 심리의 경과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소사실 또는 적용법조의 추가 또는 변경을 요구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98조 제2항). 만약 이원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잠재적 심판의 대상'에 대해서는 공소장 변경이 있기 전까지는 법원이 심리를 할 수 없다고 본다면, 대체 무슨 수로 법원이 "심리의 경과에 비추어" 공소장을 변경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제298조 제2항은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 이외의 사실에 대해 법원이 심리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규정이다.
3. 공소장변경 없이 공소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공소장 변경이 없어도 (1)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불이익을 미치지 않는다면 (2)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일관된 판례 법리인데, 이 역시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사실', 즉 '잠재적 심판의 대상'에 대해 법원의 심리가 가능함을 전제로 할 때에만 나올 수 있는 결론이다. 다수설은 이 문제를 이른바 "축소사실의 인정"이라는 이름하에 논함으로써 마치 공소사실에 완전히 포섭되는 "축소사실"인 경우에만 공소장변경필요성이 없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그래야 '현실적 심판 대상'의 범위 안에서 법원이 심리판단하는 이원설과 들어맞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시내용으로부터는 결코 축소사실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법리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지난 일주일간 쌓인 울화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이재상 교수의 범죄사실대상설에 대한 비판 부분을 조목조목 뜯어보기로 하자.
"공소사실대상설(=범죄사실대상설)도 심판의 범위를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모든 사실에 확대하는 결과 피고인의 방어권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이 특히 공소장변경제도를 인정한 취지를 무의미하게 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공소사실대상설은 공소불가분의 원칙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247조 제2항에 치중한 나머지 같은 법 제254조와 제298조를 완전히 무시한 이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p.382)
범죄사실대상설에 따르면, 이른바 '현실적 심판의 대상'보다 심판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사실이고, 그에 따라 피고인의 방어권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298조의 공소장변경 제도가 필수불가결한 것이 된다. 법원이 심판하는 범위는 전법률적, 사회적 관점에서 파악된 사실(즉 '범죄사실')이지만, 공소장에 검사가 기재한 공소사실만을 인정할 수 있음이 원칙이다. 즉, 검사가 적용을 구한 범죄구성요건이 아닌 다른 구성요건이 충족됨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예상을 깨는 재판을 하지 않기 위해 공소장변경 절차를 거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민사소송법 제136조 제4항의 법적 관점 시사의무와 구조가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므로 범죄사실대상설은 "형사소송법이 특히 공소장변경제도를 인정한 취지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사소송법이 왜 '특히' 공소장변경제도를 두어야만 했는지를 적절하게 설명해 주는 학설이다. 그리고 법 제254조와 제298조는 피고인 방어권 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장치로서 그 중요성이 한층 강조되는 것이지, 이들 조문이 "완전히 무시"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원설 측에서 범죄사실대상설에 가하는 비판은 어느 하나 타당한 것이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덧붙이자면, 형사소송법의 소송물을 '범죄사실', 즉 전법률적,사회적 관점에서 파악된 사실이라고 규정하고 나면, 민사소송과 형사소송, 행정소송(항고소송)을 관통하는 통일적 소송물 개념을 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바로 [전법률적,사회적 사실관계]를 그 핵심으로 삼는 소송물 개념으로서, 민사소송에서는 이른바 이원설의 입장과 맞아떨어지고, 항고소송의 경우 처분사유 추가변경의 한계와 관련해서 논의되는 '기본적 사실관계' 와도 맞아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