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지구에 무시무시한 극저온 거대태풍이 휘몰아치고 급기야는 새로운 빙하기가 도래한다는, 실로 오래간만에 등장한 재난영화보다 이 무덥고 습한 여름에 알맞는 게 또 어디 있을까. 게다가 영화의 연출을 맡고 대본까지 쓴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인디펜던스 데이] 와 [고질라]의 감독 롤랜드 에머리치라는데. 인류가 공들여 쌓아놓은 대도시의 건물들 폼나게 박살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 단단히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실제로 '투모로우'에서 역시 미국 대도시들 초토화되는 모습은 정말 볼만하다 - 문제는 볼만한 게 그것밖에 없다는 데 있지만)

그래 좋다 이거야. 마침 덥고 짜증나는데, 파괴적인 영상에서 오는 오싹함과 화면을 내내 채우는 얼음 속에 파묻혀서 두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게다가 영화와의 시너지이펙트를 고려해서인지 온 힘을 다해 에어컨을 돌리는 메가박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표한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가 여름의 무더위를 쫒는 데 있어 세운 가장 혁혁한 공은, 영화의 내용도 아니요 메가박스의 에어컨도 아닌, 바로 영화 제목에 있다.

떠올릴 때마다 척추를 따라 냉기를 흐르게 만드는 그 이름. [투모로우].

한국판 포스터와 원 포스터를 비교해 보자.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The Day After Tomorrow], 즉 직역하자면 '내일모레'가 된다. 그리고 [투모로우]는, 모두가 알다시피, '내일'이다.

아니, 하루는 어디다 내다 버린거지? 미국에서 내일모레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보면 내일이 된다는, 시차를 고려한 정교한 번역인가? ...그럴 리는 없고. -_- 하루 잘라내는 게 그리도 좋다면, '80일간의 세계일주'는 '79일간의 세계일주'가 되고, 심지어 '식스센스'는 '오감'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 라고 자르지 않고 쓰려니까 너무 영화 제목이 길어서 도무지 어색해 보였다고 변명을 할 수도 있다. 관사 the 빼도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는 발음도 잘 안될 뿐더러 너무 길다. 그래 좋다. 그러면 침을 난사하지 않고는 도저히 발음이 불가능했던 [로드 투 퍼디션]은 뭐였는데? 포스터 제대로 뜯어보기 전까진 [War War Soldiers]인줄만 알았던 [위 워 솔져스]는 또 어떤가?

번역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이 영화의 경우 특히나 번역이 쉽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 실제로 day after tomorrow 는 직역하면 '내일모레' 가 되지만, 여기서는 앞에 'the'를 붙여서 좀 더 특수한 의미가 붙게 되고, 따라서 '내일의 다음날', 즉 다시 말해 '내일 너머..'라는 식의 의미를 같게 된다. 물론 '내일모레'라는 원래의 관습적 의미가 섞여서 중의적 표현이 됨은 물론이다. 따라서 번역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투모로우]로 간단명료하게 해치워 버린 건 좋게 봐 줄 수가 없다. 저 정도 되면 번역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잘난 네녀석이 해봐! 라고 한다면 나 역시 뾰족한 수는 없다. -_-; 잘 해봐야 '내일 이후' 정도? (그래 놓고 영화 대사 중에 '내일 이후'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면 아쉬운 대로 아귀는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성의없음을 풀풀 풍기면서 원제목의 발음 그대로 옮겨놓는 게 최선의 방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역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제목의 의미를 잘 살려 내는 번역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원제가 [Ghost]였던 [사랑과 영혼]. 저걸 '고스트' 라고 했다거나 '유령'이라고 했다고 상상을 해보라. 졸지에 공포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을 터. 스타워즈 시리즈의 번역 역시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다. 물론 [스타워즈]를 [우주전쟁]이라고 번역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봐 줄 수 있다. 번역센스가 빛을 발하는 것은 부제, 즉 각 편의 소제목에서다.
Star Wars (episode 4) : A New Hope -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
Star Wars (episode 5) : The Empire Strikes Back -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
Star Wars (episode 6) : Return of the Jedi -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
Star Wars (episode 1) : The Phantom Menace - 스타워즈 : 보이지 않는 위험
Star Wars (episode 2) : Attack of the Clones - 스타워즈 : 클론의 습격

역시 자네밖에 없네, 베이더

'The Empire Strikes Back' 을 '제국의 역습' 단 다섯글자로 완벽하게 번역해 낸 것은 정말 기가 막히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위험'은 또 어떤가? 이런 번역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증거가 널려 있는 마당에, [투모로우]를 보고 어찌 등골이 쭈뼛쭈뼛하지 않으리오. 스타워즈 시리즈 제목을 번역하시는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한 사람의 작품이라면 그 분에게 모든 영화제목의 번역을 맡기고 싶을 정도다. 의미전달이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글자수가 평균 다섯자, 많아 봐야 일곱자를 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시라. 다 집어치우고라도, 이 제목들에서는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묻어난다는 게 중요한 점이다.

문학 분야에서는 이런 성의없는 '소리나는대로옮기기'나 [투모로우]에서 보여줬던 궁극의 필살기 '하루줄이면서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이 별로 쓰이지 않는 듯하다. 원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였던 [뷰티풀 마인드]는, 책의 경우 [아름다운 마음]으로 번역되어서 나왔다. 책의 경우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경우는 번역상의 어려움이 그리 크다고도 할 수 없는 경우인데도 '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이 남발되고 있다.

모든 영화 제목을 간결하면서도 의미의 손실 없이, 눈길을 잡아끌게 번역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성의라도 보여 달라 이거야.

...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해 주는 특선영화가 [홈얼론]이 아닌 [나홀로 집에]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겨울에 가뜩이나 추운데 등골까지 시리면 고통스러울 테니까.

+ 최근 개봉한 [착신아리]도 어처구니없는 번역센스라던데, 일어 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얼마나 어이없는지는 체감할 수 없다. 사람들 반응을 보면 [투모로우] 못지않게 제목만으로도 더위감소효과를 내는 모양이던데.

+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투모로우에 등급을 매긴다면 별 두개. ★★ 주인공 배우 제이크 길렌할과 에미 로섬(!)은 참 마음에 들지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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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5 17:40 2004/07/05 17:40
  1. GS.
    2004/07/07 01:29
    에어컨 효과로 별 반개쯤 추가;; 쿨럭;; ㅋ
  2. onecent
    2004/07/07 10:25
    메가박스 번 돈을 다 전기값으로 쓰고 있을거야. 분명해.
  3. J.
    2004/07/15 23:50
    제이크 질렌할과 키얼스틴 던스트..
    두 커플의 영화가 모두 크로스오버를 점령했군. ㅎㅎ

    제이크 원츄.
  4. 가넷
    2004/07/20 18:44
    이런이런... 태터툴즈로 바꿨구나!!!
    이젠 그놈의 광고글 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살의가 불끈불끈...)
    태터툴즈로 새롭게 시작하게 된 것 축하하고.
    앞으로 자주 들르마. ^^ (링크란 빨리 정리해야하는데...)

    "착신아리"는...;;; 휴대폰에서 메시지가 도착하면 뜨는 말이라는데
    착신은 말 그대로 착신. "아리"는 "있음"이라고 해.
    네가 말했듯이... '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의 남발이다.
    포스터에 작은 글씨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라고 적은 게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론 "메시지 도착"이라고 번역하는게 나았으리라고 보는데.
  5. onecent
    2004/07/21 15:37
    J./ 아. 그런데 그 친구 이름이 질렌할이라고 발음해야 맞는 건가요? 줄곧 ㄱ 발음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_-;
    그 친구 누나도 배우라는 이야기도 들은 듯 합니다만..

    가넷/ 태터툴즈로 바꿨습니다. 오랜만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JH님 홈페이지에 들러보고 와 이거 좋구나 하고 충동적으로 바꿔버렸죠. ^_^;
    그러나 방명록은 적어도 당분간은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에.. 광고글을 영원히 안 보게 되는 날은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할 듯 하군요. 며칠전에도 하나 써놓고 가던데;

    착신아리. 역시 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이 빛을 발하는군요. -_-







폴 오스터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4/07/03 21:50

폴 오스터의 초상화. 출처는 rednotebook.com

사실 폴 오스터란 작가에 대해 올해 초만 해도 아는 게 전혀 없던 터. 그러다 아무 생각없이 책방에서 집어들게 된 책이 바로 [뉴욕 삼부작]이었다. (사실상 열린책들의 예쁜 책 디자인이 한몫했다; 밋밋하고 멋없는 책이었으면 지나가다가 집어들게 되었을 리가 없다 -_-)

그리고 나서 봤더니만, 이미 상당히 유명한 작가잖아 이거. 책 속지의 작가 사진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도 인상적이었고.. 뒷표지는 찬사들로 가득차 있고. 뭐 한번 읽어보자..라는 심정으로 사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그 이후 며칠동안 붙들고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버렸다.

그 뒤로는 차례로 [달의 궁전]을 사서 역시 단숨에 읽었고, 바로 오늘 세 번째로 선택한 [환상의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는 다시 [리바이어던]을 집어들고 사 왔다. 한 작가에게 이렇게 몰두해 본 건 처음인 듯 싶다. 그만큼 폴 오스터의 소설은 매력적이다.

그의 책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삶을 스스로 파괴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여 삶이 완전히 소진될 지경까지 이르러서 다시금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등장 인물. 그의 글에서 풍겨나오는 환상적이고 기묘한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는다. 대화가 거의 없고 독백으로 이어지는 글. 그만큼 오스터의 소설은 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데 주력한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 그게 폴 오스터의 매력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이 하루 만에 이울지만 오래 사는 사람은 누구나 살아서 죽는다. 삶을 헤쳐 나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서너 가지 모습을 뒤에 남기는데 그 하나하나의 모습은 다른 모습과 다르다. 우리는 과거라는 안개 너머로 다른 시대의 우리 초상들을 보듯 그 모습들을 본다.>


<만일 내가 삶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 삶을 파멸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야 한다.>


<위기의 순간들이 사람들에게서 배가된 생명력을 창조해 낸다. ... 사람들은 곤경에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충실한 삶을 살지 못한다.>


-'환상의 책' 중에서


내가 읽은 세 권의 책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뉴욕 삼부작]이다. 다른 두 소설에서 나타나는 모티브의 원형이 바로 뉴욕 삼부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좀더 환상적이고 난해한 형태로. [달의 궁전]과 [환상의 책]은 뉴욕 삼부작에 비하면 더 읽기 쉽고, 줄거리의 면에서는 더 재미있다. 그렇지만 뉴욕 삼부작이야말로 강한 충격을 주는 책이다.

한번쯤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폴 오스터를 권한다.

+ 관심이 있다면 http://www.rednotebook.com (폴 오스터의 팬사이트) 에 들러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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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3 21:50 2004/07/03 21:50







그가 돌아왔다!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4/07/02 13:39
이번에도 메가박스가 뒤통수를 때렸다.
6월 30일 전세계 최초 개봉이라길래 얼씨구 좋구나 하고 30일 아침 일곱시 오십분 조조를 예매해놓고 있었더니만, 29일 밤부터 상영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_-+ 이미 반지3 때 똑같은 수법에 당했었는데..쳇.

어쨌든. 그가 돌아왔다. 빨강과 파랑 타이즈를 입고 거미줄을 쏴 대며 도심 하늘을 누비는, 가장 사랑받는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스포일러 주의! 스파이더맨 2의 내용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본다! (클릭)




★★★★(..스파이더맨의 팬이라면 별 하나 더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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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2 13:39 2004/07/02 13:39
  1. onecent
    2004/07/12 02:59
    다 좋은데, 1편과 마찬가지로 닭살돋는 대사가 난무한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 1편에 비해 그 정도가 약해졌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이제 그만 좀 들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벤 아저씨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이 멘트를 날리며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었다. -_-+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4/05/07 10:40
에이 저게 뭐야. 장풍을 쏘고 빌딩을 뛰어넘어다니고..
애들 영화구만. 유치하잖아.



그래?

그래 좋다. 스토리라인은 빈약하고. 주인공의 성장스토리가 감동적으로 그려지지도 않았고, 주인공들 간의 러브스토리도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갈 뿐이다. 악역은 눈빛만은 카리스마가 넘치는데 캐릭터는 카리스마가 없다. 다 좋다 이거야.


그렇지만 유치해서 못봐주겠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아닌걸.

이 영화는 솔직하다. 황당하다 싶을 정도..의 설정이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도 그건 충분히 알고 있다. 괜히 얼토당토 않은 걸 현실로 믿게 만드려고 애쓰지 않는다. 좀 진지해진다 싶으면 개그를 쳐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오히려 영화 속 상상력에 공감하게 된다. 영화가 억지로 리얼리티를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유치해서 못봐주겠다고 외치는 사람이라면..미안하지만 상상력이 메말라 버렸다고 할 수밖에.

게다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의 결투는, 장풍을 쏘고 검기를 휘날리고 하지만, 우리와는 동떨어진 초고수님들께서 펼치는 대결보다 훨씬 친숙하게 다가온다. 막 싸우는 개싸움과 무도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형태라고나 할까.

배경이 서울 한복판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도복 산뜻하게 갖춰입고, 산 좋고 물 맑은 어딘가에서 '핫 핫' 하는 점잖기 그지없는 기합을 뱉어내며 무용과도 같은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너덜너덜한 츄리닝 비스무레한 평상복에, 고층빌딩 앞 분수대에서, 핏대를 세워가며 '으아아아아악!' 하고 고함을 질러가며, 또 결전에 앞서 윙크를 날리는 여유를 보이며 전투를 펼친다 이거다.


류승범이 영화의 생명력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무술감독 정두홍씨의 어색함에 비한다면...-_-;;;
조연들도 하나같이 많지 않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생명력 넘치는 연기를 선사하고. 무엇보다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웃기다는 것. (정두홍씨 같은 경우는..전혀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 웃기다. -_-;;; 정두홍씨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너무나도 유쾌한, 시종일관 정신없이 신나는 영화.
긴말이 필요없다. 당신이 상상력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나만큼은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게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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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7 10:40 2004/05/07 10:40







콜드 마운틴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4/03/14 10:36
아카데미 주요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콜드 마운틴을 꼭 보고 싶었던 이유는 출연배우들 때문이었다.

[디 아워스]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니콜 키드먼은 말할 것도 없고, [미, 마이셀프, 아이린]에서 처음 본 이후 팬이 되어버린 르네 젤위거에다가, 끝내주게 멋있는 주드 로까지. 세 명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었으니 어찌 안 보고 배기랴.

영화는 두시간 반의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전개는 급박하지 않고 차분하고 조용하게 흘러간다. 그 때문에 약간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등장하는 콜드 마운틴의 아름다운 자연이 그림처럼 펼쳐지면서 지루함을 메꿔준다. 초반의 전투씬은 어느 전쟁영화보다도 끔찍하고 처절하지만, 그 이후 주인공 인만과 에이다의 장소를 초월한 사랑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는 호흡이 많이 느려지는 것이 사실.

세 명의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일단 셋 중 가장 멋졌던 건 단연 르네 젤위거. 기존의 귀엽고 예쁜 이미지를 완.전.히. 집어던지고 생활력 강하고 괄괄한 아줌마..틱한 시골아가씨를 소화해 냈다. 그녀가 닭 모가지를 사정없이 비트는 장면이란.
무겁고 우울한 영화에서 르네 젤위거는 적시에 유머를 제공해 줌으로써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니콜 키드먼..의 경우가 사실 셋 중에 가장 평범했다고 할 수 있다. 뭐 키드먼이야 가만히 있어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 역은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딱히 뛰어난 연기를 필요로 한 것도 아니긴 하다. 그래도 남부 사투리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주드 로는, 멋있는 사람들은 뭘 해도 멋있다..라는 (열받는) 공식을 확인시켜 주었다. 깔끔하고 지적인 모습 대신, 거칠고 강한 이미지의 인만을 연기했는데, ....멋있었다. -_-+ 남부 사투리도 키드먼보다 더 자연스럽고.


내가 놀란 건, 중간에 단역으로 나탈리 포트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단역이라고는 해도 꽤 중요한 사건에서 등장해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니콜 키드먼, 르네 젤위거, 주드 로에다가 나탈리 포트만이라니.
이쯤 되면 onecent가 좋아하는 배우 총출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시 미국 남북전쟁의 참혹한 모습, 가슴아픈 모습들을 사랑이야기와 적절히 섞어서 풀어냈다. 촬영도 훌륭하고..음향 역시 인상적이다. 배경음악을 아예 깔지 않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 때문에 분위기가 사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듯.

물론 중간중간 정말 지나치게 상투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장면들이 나오기도 한다. (에이다의 아버지가 비바람 속에서 죽는 장면.. 솔직히 상투적 수법의 전형이다 --+)


급박한 전개가 아니면 지루해서 못 본다...라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주연배우들을 좋아한다면 볼 만한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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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4 10:36 2004/03/14 10:36







태극기 휘날리며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4/03/01 10:35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한국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로 제작 전부터 관심이 높았던 영화였다.

극장에서 예고편을 처음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예고편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의 놀라운 스케일과 정교함. (예고편에서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보여준다..라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러나 예고편 보고 잔뜩 기대하다가 완전 실망했던 [원더풀 데이즈]의 기억을 되살리며 최대한 기대치를 낮추었던 것이 사실.

뚜껑이 열리자,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죄다 찬사를 퍼부었고..
나도 결국 가서 봤다.


결론부터 말해서, 난 [태극기]가 정말 엄청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의 힘을 여지없이, 과시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여준 영화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키는 전쟁 장면의 리얼리티를 비롯해, 정말 제작비가 왜 그렇게 많이 들었는지 이해되고도 남는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나 수백명의 피난행렬을 원거리로 잡은 장면이랄지, 밀려오는 중공군의 원거리샷은 헐리웃에서나 볼 수 있는 스케일을 자랑했다.
(그와 같은 대규모 장면을 줌 아웃해서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력의 진보인가)

내용도 이 정도면 괜찮다. 배우들의 연기도 볼 만 하고. (장동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해 원빈은 여전히 그 특유의..-_-+)
다만 사람들의 눈물샘을 일부러 자극하려는 의도가 좀 보여서..;;;
(예를 들면, 감동유발노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쓸데없이 웅장한 배경음악이 바로 그렇다)

어느 친구의 말을 빌자면, "울어! 울어! 울어!" 라고 끊임없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영화다. -_-


한국전쟁의 가슴아픈 모습도 잘 그려냈다고 본다.
이은주가 죽는다는 사실은 예고편에서부터 공개된 것이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녀가 죽는 그 상황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 전선이 왔다리 갔다리 하며 생겨난 무수한 피해자들.

형제의 갈등..은, 스토리의 메인 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느낌이다. 원빈이 갑자기 북쪽으로 돌아선 형을 목숨걸고 찾아가게 되는 급격한 심리변화랄지, 계속해서 같은 형태로 반복되는 둘의 갈등이랄지. 그 둘 사이의 대화가 의외로 적다는 점 등등.


위대한 영화는 아니지만, 충분히 볼 만한 가치는 있는 영화다. ★★★


P.S. 어느 분의 말마따나, [태극기]가 [실미도]의 흥행기록을 깨기는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전쟁씬이 장시간 계속되는 이 영화는, 보고 있기가 상당히 힘이 드는 영화다. 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려면 두 번 이상 보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태극기는 선뜻 두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나진 않는다.

P.P.S. 물론, 나는 실미도보다 태극기가 더 완성도 높은 영화라고 생각하긴 하지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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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1 10:35 2004/03/01 10:35
  1. 가넷
    2004/07/21 10:18
    어라, 난 태극기 휘날리며가 실미도의 흥행기록을 깰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넌 별로였던가 보구나. 으음~ 난 정말 좋았는데.
  2. onecent
    2004/07/21 15:32
    저도 태극기가 실미도보단 더 재미있는 영화라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그 잔혹함 때문에 두 번 이상 보기가 힘들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Reloaded, Revolutions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12/19 09:59
매트릭스 레볼루션즈가 지난 11월 개봉한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릴 것 없이 실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고, 아직까지도 레볼루션즈의 해석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1편때부터 지겹게 들어 온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해석에서부터 음양오행사상, 불교철학, 인도철학 할 것 없이 온갖 사상과 매트릭스 시리즈와의 접목을 시도하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보드리야르와 프로이트 등등의 사상가들의 이름까지 거론되며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매트릭스 시리즈를 이해하고, 평가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개봉일 매트릭스 레볼루션즈를 본 이래로 지금까지 무수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시험공부를 할때에도 하루에도 몇번씩 기억 저편에서 슬그머니 떠올라 나를 잡념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매트릭스 시리즈. 와쇼스키 형제는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속 시원한 해답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돼서 이렇게 된거지' 라는 식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토리를 등장인물이 한번 총정리를 해주고 끝내는 유치한 구성을 취하지 않은 건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고,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다.

매트릭스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나 나름대로 매트릭스를 이해한 방식을 몇자 끄적여 보고자 한다. 내가 배경지식이 원체 부족한 탓일 수도 있지만, 기존에 나온 여러 설들은 하나같이 성경에의 깊은 이해, 혹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하고 있어 나로선 완벽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들이었다(이럴땐 일찌감치 종교라도 가져 볼걸 하고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굳이 다른 출처와의 상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요즘 나도는 기독교적 해석의 대부분은, 무조건 영화의 요소들을 기독교와 연결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를 거듭한 나머지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어디까지나 영화 내부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1편과 2편, 3편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장면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등을 위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 가도록 하겠다. 성경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무하므로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최소로 줄이고. 불교는 물론이요 인도철학에는 더더욱 문외한이므로 역시 패스.
그러나 사실, 어떤 외부 소스도 끌어들이지 않고 작품만 가지고 해석하는게 사실 가장 바람직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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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al Matrix, Reloaded....and Revolutions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건, 매트릭스가 원래 3부작으로 계획되었다고는 하지만, 와쇼스키 형제가 처음 매트릭스 1편을 찍을 때부터 속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영화가 얼마나 흥행에 성공하고 인기를 끌 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에, 와쇼스키 형제는 영화사가 속편을 위한 제작비를 지원해 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첫편부터 투비 컨티뉴드를 때려버린 [백투더 퓨처] 시리즈나, 애시당초 에피소드 6 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스타워즈]와는 엄연히 다르다. 때문에 매트릭스 1편은 그 하나로 완결된 영화의 모습을 띠고 있다. 네오의 각성, 그리고 매트릭스가 스톱되고 네오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으로 끝나는 오리지널 매트릭스는 시작과 끝이 잘 매듭지어진 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와는 달리 리로우디드와 레볼루션즈는 사실상 두 편의 영화가 합쳐져서 한 편의 스토리를 구성한다고 봐야 한다. 리로우디드의 끝에 to be concluded 라는 메세지만 떡하니 등장하며 영화가 끝난 점만 보더라도 분명하다. 따라서 리로우디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레볼루션즈를 이해하는 일도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레볼루션즈를 보지 않고서는 리로우디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매트릭스 1편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도 거의 없다;). 제일 많이 본 것도 역시 1편이다(횟수를 세려면 손가락이 모자란다 -_-). 그렇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가 알려지고 또 그에 관련된 책만 해도 몇권이나 되는 1편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그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편에 관해 좀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시중에 번역되어 팔리고 있는 관련 서적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공정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것은 리로우디드+레볼루션즈다. 찬사를 쏟는 사람들도 많지만, 혹평을 퍼붓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만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읽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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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the Matrix? / What is 'Human'?

매트릭스 1편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What is the Matrix?' 로 압축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사실 몽땅 다 허구일 수 있다는 사실. 진실을 가리고 있는 '매트릭스'라는 장막. 그것의 존재를 폭로하고 '진실'을 찾는 과정이 1편에서는 그려졌다. 진실과 허구라는 두 대립항이 1편의 축을 이룬다.

그렇다면 속편들의 주제는 과연 무엇인가? 이제는 더 이상 '이게 몽땅 다 짜가야!' 라는 쇼킹한 깜짝쇼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속편들에게 실망한 대다수의 관객들이 그와 같은 깜짝쇼를 기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사람들은 매트릭스에 대해 알고 있다. 물론 '현실세계인줄 알았던 곳도 알고보니 또 짜가더라!' 라는 식의 반전 아닌 반전 역시 가능했겠지만; 장난 치는 것도 아니고 -_-;

리로우디드와 레볼루션즈를 열심히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 두 편의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인간과 기계가 다른 점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어찌 보면 진부한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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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maly

2편의 내용을 잠시 상기해보자. 2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아키텍트와 네오의 대화 장면이다.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네오는 유일무이한 the One 이 아니었다. 매트릭스는 이제까지 총 여섯번 재가동(reload)되었으며, 그때마다 매트릭스를 리셋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바로 the One으로, 네오는 여섯번째 the One 이라는 것이다. 왜 매트릭스는 주기적으로 리셋되어져야 하는가? 아키텍트는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맨 처음 만들어진 매트릭스는, 이미 1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완벽한 유토피아적 세계였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유토피아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깨어나 버렸다. 1편에서 스미스 요원이 멋드러지게 표현했듯이, '인간은 괴로움을 통해서 현실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원래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과 완벽한 프로그램은 결코 공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완벽한' 매트릭스는 폐기되었고, 아키텍트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성해야 했다.

이 때 아키텍트는 오라클의 도움을 얻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매트릭스를 재구성한다. 오라클은 원래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매트릭스를 제대로 작동하게끔 하기 위한 열쇠는, 인간들이 애시당초 불완전하다면 시스템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수학적 논리 연산으로 파악하는 아키텍트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불가능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에 반해 오라클은, 분명 프로그램이지만 불완전성을 띠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녀가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었단 점을 잊지 말자) 따라서 이후의 매트릭스는, 혼돈으로 가득찬 세계, 즉 인간 문명이 정점에 달했던 20세기말-21세기로 짜여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매트릭스를 현실로 착각하고 플러그가 꽂힌 상태로 얌전히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완전한 세계를 만들어냈다고는 하나 어찌 되었건 매트릭스는 기호와 수학적 연산의 집합인 하나의 거대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아키텍트는 매트릭스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인간의 '선택'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이라면 1+1의 상황에서 언제나 2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도저히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녀석들이었다. 원초적인 불안정성이 인간에게는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불안정성이 일정 정도 누적되면서, 시스템의 통제를 거의 완전히 벗어나는 존재가 생겨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the One인 것이다. The One은 매트릭스 안의 불완정성의 결집체에 다름 아니다. 결국 아키텍트는 이와 같은 근본적 불안정성을 인정하고, the One을 이용하여 매트릭스를 아예 처음부터 재가동시키는 쪽을 택한다. 불안정성의 결집체인 the One 이 소스로 돌아가면 매트릭스는 리셋되고 다시 처음부터 주기가 시작될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매트릭스의 리셋 역시 불안정성에 맡겨져야 했다는 것. 아키텍트는 the One으로 하여금 소스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키텍트가 할 수 있는 것은 the One의 선택 확률을 높이는 것 뿐. 그래서 그는 인류애가 강한 사람들 중에서 the One을 뽑는 등의 조치를 취해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서 the One이 매트릭스에 플러그꼽힌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매트릭스를 리셋시키는 쪽을 택하게끔 몰아갔던 것이다. 그와 같은 아키텍트의 계획은 이제까지 다섯번이나 성공했다. 그러나 여섯번째 주기가 끝났을 때, 인간은 프로그램의 연산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여섯번째 the One, 즉 네오는 아키텍트의 방에서 다른 쪽 문을 택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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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ose

인간과 프로그램이 다른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열쇠는 스미스가 쥐고 있다. 스미스는 1편에서 네오에 의해 파괴되면서, 네오의 코드의 일부가 덮어씌워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매트릭스 시스템으로부터 'unplugged'된 상태가 된다. 즉, 더 이상 스미스는 시스템의 통제를 받는 요원이 아니게 된 것이다. 2편에서 스미스가 네오에게, 그가 1편에서 요원으로 등장할 때 항상 귀에 꽂고 있었던 플러그를 소포로 보내주며 '네가 나를 해방시켰다' 라고 한 장면을 생각해 보자.

문제는 이같은 변화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만들어진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날씨를 바꾸는 프로그램, 비둘기들을 통제하는 프로그램, 탈주자들을 붙잡아 질서를 유지하는 프로그램 등등. 모든 프로그램들은 매트릭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서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졸지에 '목적 없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원래 요원 프로그램이었고, 따라서 그에 알맞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더 이상 요원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그는 목적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스미스에게 있어 이러한 목적의 부재는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이유, 존재목적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그가 내린 결론은, 결국 어쨌든 네오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는 것. 따라서 네오가 그의 존재이유라는 것. 그래서 스미스는 네오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 스미스100명 대 네오의 대결장면에서, 스미스는 네오에게 말한다. 목적이 우리를 만들고, 목적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이건 다분히 프로그램적인 발상이다.

인간이라면 어떤가? 존재 목적이 있는 인간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당신은 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어느 누구도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자신이 왜 삶을 유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존재의 공허함을 전제로 한 주체들일 뿐이다. 스미스는 결국 인간처럼 되어 버린 프로그램이다. 수학적 연산, 확정적인 계산의 세계의 산물인 스미스는 이러한 공허함과 그로부터 오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가 취하는 대응방식은 네오에게 집착하는 것,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3편에서 그는 말한다. '생명의 목적은 결국 끝나기 위한 것'이라고. 이것이 존재목적을 찾다 찾다 스미스가 내린 파멸적인 결론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Agent Smith 에서 Smith로의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Agent Smith라고 불릴 때, 스미스는 개별성을 갖지 못한 하나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이름이 없고 스미스라는 성만 있는 점, 그리고 그 성이라는 것도 미국에서 제일 흔한 성 중의 하나인 스미스라는 점을 주목) 그러나 2편과 3편에서 그는 그냥 '스미스' 라고 불린다. 스미스는 이제 그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는 개별적인 주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공허함을 스미스는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사실 매트릭스로부터 제거되어야 할 프로그램들, 그러나 도망치기를 원한 프로그램들(메로빈지언이나 키메이커나 사실 모두 엄밀히 말하면 도망중인 프로그램, 말하자면 버그가 되어 버린 프로그램들 아닌가?)은 모두가 본래의 탄생목적을 상실한 프로그램들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나름대로 기존의 자신의 기능을 약간 변형된 형태로 수행하면서 존재한다. 스미스가 특별한 것은 그가 원래 Agent였다는 점, 그 때문에 그의 기능을 써먹을 다른 어떤 목적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사실 이 부분은 명쾌히 해답을 찾지 못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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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오라클과 네오가 벤치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2편의 장면을 회상해 보자. 네오는 그가 꿈에서 보았던 장면, 즉 트리니티가 빌딩에서 떨어지는 장면에 대해 오라클에게 이야기한다. 오라클은 '트리니티가 죽는 것이 보이느냐' 라고 묻고, 네오는 '죽는지 죽지 않는지는 보지 못했다'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오라클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하는 법' 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해 준다.

그렇다. 예측할 수 없는 것. 수학적 연산에 의한 인과관계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지점, 다시 말해 오라클의 예지능력도 미치지 못하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은 '선택'이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 사실 지극히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과 프로그램을 구별짓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비합리성의 극에 달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하고, Z는 링크를 위해 전쟁터에 남아 폭탄을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한다. 트리니티와 네오가 기계 도시를 향해 '무모하기 그지없는' 비행을 하는 건 또 어떤가? 트리니티가 네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해 보자.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줘. 그럼 믿을테니'(그리고 네오가 '해낼 수 있다' 라고 하자 트리니티는 비행한다) 그 맹목성, 멍청함, 우둔함. 기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 너머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오라클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오라클은 분명 인간에 상당히 가까운 프로그램이고 인간과 공존하는 길을 원하고 있지만(2편에 아주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온다. 네오가 '당신이 원하는 게 대체 뭐냐' 고 묻자, 오라클은 'The only thing I'm interested in is the future. And the only way to get there is TOGETHER.'이라고 답한다), 그녀 역시 프로그램이라는 본질적 한계를 지니고 있을 뿐. '오라클의 눈'은 모든 것을 보진 못한다. 3편에서 오라클과 네오의 최후 대면 장면에서, 오라클은 말한다. '네가 올 때까지 쿠키를 다 구워두려 했었는데..' 네오는 이미 오라클의 예지력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어서, '오라클의 눈'에 대해 간단히 언급을 해야 될 듯 싶다. '오라클의 눈'은 이제껏 한번도 언급되지 않다가 난데없이 3편에서 메로빈지언이 '오라클의 눈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사실 그 은유적 의미에서 쉽게 유추가 가능하지만, 오라클의 눈은 아마도 오라클의 예지능력, 미래의 장면들을 보는 그런 능력을 의미할 것이다. 네오가 꿈에서 미래의 장면들을 본 것처럼, 오라클 역시 앞날의 광경을 미리 보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개념이 3편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열쇠가 되는 것은 스미스와 오라클이 하나가 되면서부터다. 스미스가 오라클을 흡수-복제한 다음, 오라클이었다가 이제는 스미스가 된 그 녀석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는가? 그는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휘날리며 대차게 웃음을 터뜨리고.. 오라클이 가진 매트릭스 내에서의 힘을 그 스미스가 얻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후의 대결에서 스미스와 네오가 일대일로 격투를 벌일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스미스 역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다. (최후 대결의 그 스미스는 다름아닌 오라클을 흡수한 스미스다)

장대비가 퍼붓는 가운데, 네오와 스미스가 첫 펀치를 날리기 전의 대사 역시 이를 암시한다.

Neo : It ends, tonight.
Smith : I know. I've already seen it. (자막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뭐. 다들 아시겠지만, 마지막 스미스의 최후 직전에도 스미스는 '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see라는 동사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 그리고 오라클의 눈. 이 사이의 연관이야 더 이야기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참고로, 마지막 스미스가 말하는 바로 그 '이미 본 적이 있다' 라는 건, 내 생각에는 오라클이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었다고 해석하기보단, 그때가 되어서야 네오의 선택(혹은 오라클 자신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 것(따라서 이후의 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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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I Choose To

Smith : 대체 왜 계속해서 싸우는거지? 어째서 포기하지 않나?
뭘 위해서 싸우는거지?
네 싸움에 그냥 단순히 삶이라는 것 이외의 더 원대한 목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평화? 행복? 설마 사랑?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의 무의미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 뿐이야.
그 모두가 매트릭스 만큼이나 인공적이야.
...
왜, 앤더슨? 대체 왜, 왜, 왜, 왜?


Neo : Because I choose to.

존재의 공허를 인간이 가리는 것. 그건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매트릭스 만큼이나 인공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뻔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삶을 계속해 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사랑이 무의미한 것이면 어떤가. 그것에 집착하기로 선택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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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ether

프로그램과 인간의 결정적 차이가 바로 '존재목적의 부재'에 있다면, 실제 현실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계들은 어떤가? 사실상 그들 역시 어떤 주어진 존재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사실상 그들은 인간과 똑같은 주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아키텍트와 네오의 대화 장면으로 돌아가자. 처음 아키텍트가 '네가 여섯번째야'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자, 네오의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거짓말하지마!' 였다. 그러자 아키텍트는 냉소를 띠며 '부정(denial)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방어기제이지' 라고 말한다. (실제 이 말은 프로이트가 한 말이라고 한다. 아키텍트와 프로이트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부각시킨 글도 인터넷에 나돌고 있었는데..그렇다면 아키텍트-프로이트의 연관은 어느정도는 사실일지도)

이번에는 3편에서 기계마왕(이모양의 너무나도 적절한 호칭붙이기에 따라 이 호칭을 사용하기로 한다-_-)과 네오의 대면 장면을 생각해 보자. 네오가 3편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사 - 'Program Smith has grown beyond your control. You can't stop him. I Can.' 이라고 말하자, 기계마왕의 반응은 어땠는가? '네 도움은 필요없어!' 라고 외치며, 거의 치기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바로 인간과 똑같은 '부정'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기계와 인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 둘 사이의 평화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들의 몫이다. 애니매트릭스의 세컨드 르네상스 편에서도 잘 나와 있지만, 먼저 기계들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전쟁을 벌인 것 역시 인간이었고, 가까스로 맺어진 새로운 휴전협정을 깰 수 있는 것 역시 인간들이다. 기계들은 약속을 지킬 수 밖에 없으니까. 아키텍트가 3편의 마지막에서 단 한마디의 대사로 이를 명백히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오라클 : 매트릭스 안에 아직 갇혀 있는 인간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아키텍트 : 풀어 줘야겠지.
오라클 : 그 말, 믿어도 되겠나?
아키텍트 : 당연하지. 내가 인간인 줄 알아? (What do you think I am,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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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9 09:59 2003/12/19 09:59








I see in your eyes, the same fear that would take the heart of me!
그대들의 눈에 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과 똑같은 공포가 보인다!

A day may come, when the courage of men fails!
인간의 용기가 꺾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When we forsake our friends, and break all bonds of fellowship..
우리가 친구들을 배신하고 모든 동맹을 깨게 되는 그런 날이!

But it is not this day.
그러나 오늘은 그 날이 아니다!

This day, WE FIGHT!!
오늘, 우리는 싸운다!!



...3년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너무나 짧은, 그들의 여행이 끝났다. 그 기간 내내 그들과 함께했던 내 여행 역시 함께 끝났다.

한 편의 영화로 이와 같은 숭고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니.



하하. 난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와 함께 했다.
생생한 개봉의 순간, 그 흥분과 감동. 그 순간에 나는 언제나 함께 했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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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8 10:24 2003/12/18 10:24







메멘토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11/02 09:58
!! 경고! 영화 [메멘토]의 내용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알고싶지 않으신 분은 읽지 마십시오 !!

Some Memories Are Best Forgotten...

개봉 당시부터 그 기발한 스토리구성과 연출로 인해 화제가 되었던 메멘토. 사실 영화가 버젓이 영화관에서 상영되던 당시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만 듣고 정작 영화는 보지 못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나도록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어영부영 지내다가, 언젠가 우연히 영화채널에서 틀어주는 걸 발견하고 아무 생각없이 보기 시작해서.. 그대로 채널을 고정하고 끝까지 단숨에 봐 버렸다. 영화 막바지에서 느꼈던 그 충격.. [식스센스]에서의 그 유명한 반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쇼크로 꼽히는 스타워즈의 '아임 유어 파더'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으니..

사실, 메멘토는 한번 보고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난해한 영화다. 딱히 스토리 자체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그 구성이 관객을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주인공 레너드 셸비는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그래서 새로운 기억을 전혀 만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이다. 어느 날 밤, 화장실에서 아내가 강도들에게 강간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강도와 싸움을 벌이다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덮치고 있던 사내를 총으로 쏘았지만, 강도는 2인조였고 나머지 한명이 레너드를 뒤에서 공격한 것이다. 레너드는 머리를 거울에 세게 부딪쳤고, 쓰러져 의식을 잃으며 아내가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사건 이후 레너드는 기억장애를 갖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는, 모든 것이 낯선 상황이다.

레너드는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자신의 인생을 망쳐놓은 그 범인 - 자신이 쏜 사람 이외의 제2의 인물 - 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도 그는 복수만은 잊지 않기 위해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방법으로 메모를 남긴다. 바로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겨놓은 것이다. 그가 나름대로 수사를 통해 알아낸 그 범인의 이름 John G. John G를 찾기 위해 레너드는 자꾸 사라져가는 기억을 어떻게든 붙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항상 수사에 관련된 사항을 모아놓은 파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물론,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그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찍고 메모해 놓는다.

영화의 줄거리를 주절주절 여기에 늘어놓는 것은 사실 무의미히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 자체가 아니라 그 스토리에서 무엇을 찾아내는지에 있기 때문에.

보통 메멘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록된 사항의 불완전성(레너드는 기억의 불완전함을 이야기하며 메모와 기록을 통해 얻어진 사실들 Facts이 더 믿을만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결국 그 기록조차 왜곡되었음이 밝혀진다)을 지적하면서, 정보의 믿을 수 없음을 꼬집고 있다고 해석한다. 메멘토 DVD에는 평론가의 평까지 부록으로 붙어 있는데, 그 평론가에 의하면 '범람하는 정보사회에서 진실된 정보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현대인'의 모습이 바로 레너드의 모습이란다.

물론 이러한 해석 역시 흥미롭지만, 내가 최근 일부러 메멘토를 친구에게 빌려서 다시 본 것은, 보다 흥미로운 점이 영화에 녹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메멘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레너드가 그렇게 신봉했던 그의 사진과 메모들이 결국 왜곡되고 꾸며진 정보였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바로 '레너드 스스로 정보를 왜곡시켰다' 라는 데 있다. 마지막 장면,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레너드의 아내는 사실 그날 그 사건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 레너드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같이 살았으며, 그 기간 내내 레너드의 아내는 남편의 기억장애 때문에 심한 마음고생을 했었다. 레너드가 그와 비슷한 기억장애를 겪었던, 자신의 고객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던' 샘 쟁키스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 레너드 자신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레너드의 아내는 레너드의 기억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았고(그녀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는데, 레너드에게 계속해서 인슐린 주사를 놔야 한다고 말하자 레너드는 불과 몇분전 주사를 놔 준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사를 놓는다) 인슐린 과다로 죽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실 레너드는 이미 그가 그토록 찾던 John G를 찾아 죽인 후였다. 진범을 찾아 복수를 완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기억하지 않았다.

왜? 어째서? 어째서 레너드는 그의 이야기를 샘 쟁키스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기억을 왜곡했는가? 왜 John G를 이미 죽였음을 기억하기를 거부했는가?(영화 마지막 부분에 레너드와 그의 아내가 같이 누워있는 장면에서, 분명 레너드의 가슴의 비어있는 부분, 그가 복수가 완성되었을 때를 위해 비워 놓았다는 그 부분에 'I HAVE DONE IT(나는 해냈다)'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음이 보인다. 결국 레너드는 그 문신을 지워 버린 것이다)

레너드는 그의 삶의 공허를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너드의 기억은 계속해서 지워지고, 그의 삶 자체는 단절의 연속이다.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그 불안감. 그리고 지금 하는 일도 어차피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불안감. 그 공허함, 그 결여를 레너드는 견뎌내지 못한다. 마지막 레너드의 독백에서 그는 '나는 내 행동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고 말한다. 그 무의미함, 견딜 수 없는 공허함. 텅 비어 있는 그의 삶은 극도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레너드의 모습은 정신분석 이론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결여된 주체이다. 주체는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어떤 대상에 집착하고 욕망한다. 사실은 무의미한 그 대상이 자신의 빈 곳을 완전히 채워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의 대상을 얻어도, 즉 욕망이 충족되어도 주체는 결코 그 빈 곳을 채우지 못한다. 결국 주체는 다른 무의미한 대상을 찾아 다시 집착하고 욕망한다. 자신의 결여를 인정하는 것, 즉 자신이 실제로는 '욕망의 만족을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가장 불쾌한 경험이다.

레너드는 John G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복수, 그것은 그의 무한한 공허를 채워 주는 대상이었다. 그것을 통해서만 레너드는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레너드는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무의식 이론을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레너드에게 있어서는 의식 자체가 바로 무의식이다. 무의식이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따라서 억압된 기억이 남겨지는 장소, 즉 기억의 공백에 위치하는 장소라면, 레너드는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며 살고 있다. 자꾸만 사라져가는 그의 기억.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공백'을 레너드는 너무도 생생하게 매 순간 체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겪는 공포, 그가 겪는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빈 공간을 어떻게 해서든 채워야 했다. 그는 아내가 강도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았음을, 결국 인슐린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서 죽었음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 자신의 일을 샘 쟁키스의 일로 만들어 버렸다. (Remember Sammy Jankis 라는 문신을 새김으로써) '나는 해냈다' 라는 문신은 지워 버렸다. John G가 살아 있다고, 그래서 그의 복수는 미완인 것이라고 그는 믿고 싶었던 것이다. 완전했던 그의 수사파일에서 일부러 중요 부분을 없애 버렸고, 글자들을 지워 버렸다. '풀 수 없는 퍼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부분 역시 기가 막히게 무의식 이론과 연결된다.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풀 수 없는 퍼즐, 지워지고 내용이 빠진, '결여된 타자' 라는 것이다)

John G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것은 그냥 레너드의 결여를 채우고 있는 무의미한 대상일 뿐. 그는 이미 진짜 John G를 죽였지만 그것은 그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결국 또 다른 John G를 찾아서 죽이고, 또 죽이고..(역시 우연히도 John G인 테디를 죽이는 것으로 영화의 스토리는 끝난다(첫장면)) 그는 계속해서 그의 공허를 채워 줄 John G를 찾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John G를 만들어 낼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레너드가 내뱉는 말은 인상적이다. '기억을 조작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그렇게 하겠다.' 진실-그가 이미 John G를 죽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그의 공허함, 그 무의미와 직면하는 것이다. 레너드는 그 공포스러운 대면을 거부했다.

레너드의 모습은 결국 우리들 모두의 모습이다. 우리는 결국 스스로의 결여를 채우기 위해 무의미한 대상을 욕망하고 있다. 욕망의 대상은 계속해서 교체될 뿐, 주체의 빈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기억을 왜곡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욕망의 대상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환상을 가로지르는 것', 본질적인 공허함을 끌어안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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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2 09:58 2003/11/02 09:58







디 아워스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10/02 09:55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 이 세 여배우가 스크린에 한꺼번에 출연한다면 대체 어떤 모습일까. 사실 나를 처음 극장으로 이끈 것은 단지 그러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니콜 키드먼이 가짜 코까지 붙이고, 위험한 장면도 모두 스스로 찍었다는 바로 그 영화. 연기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메릴 스트립. 독특하면서도 신비한 매력을 가진 사람, 줄리안 무어. 이들이 한 편의 영화 [디 아워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기대를 훨씬 초월하는 작품으로 내게 다가왔다.

버지니아 울프가 우즈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충격적인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그러나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카메라는 한적한 교외 마을로 옮겨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디 아워스]는 세 시대를 사는 세 여인의 하루를 묘사한다.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녹아들어가고, 합쳐진다. 새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중인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댈러웨이 부인을 탐독하는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의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클라리사 번(메릴 스트립).

이들의 역할 - 이들의 삶의 모습 - 은 첫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의 첫 문장을 쓰고, 뒤이어 로라 브라운은 그 구절을 읽으며, 클라리사는 직접 그 말을 하는, 이들의 다르면서도 같은 아침이 시작되는 것이다.

표면상으로, 이들의 삶은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다.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할 것만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를 끔찍이도 위하는 남편과 하녀들에 둘러싸여 한적한 리치몬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로라 브라운 역시,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같은 남편, 그리고 귀여운 아들과 함께 평범하지만 행복할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클라리사는 세 여인 중에서 가장 뒤틀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녀가 필사적으로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그녀의 삶 역시 평범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내적인 갈등, 내적인 슬픔과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다. 미칠 듯한 우울함, 절망감. 그것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관객은 그 우울함에 완전히 사로잡히면서도(이는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에 기인한다) 그 원인을 쉽사리 발견하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은 평범한 피아노곡이다. 특별히 우울하지도, 특별히 감정을 고조시킬 만큼 기복이 심하지도 않은, 그냥 흘러가는 피아노곡.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음악이 관객들의 가슴을 찔러대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행위가 관객을 긴장의 최고조까지 몰아넣는다. 계란을 깨는 소리. 쓰레기통 뚜껑을 닫는 소리. 이 소리들이 몰입해 있는 관객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평범함이 감추고 있는 긴장, 행복이 숨기고 있는 절망과 우울함 - 그것이 디 아워스 전반의 분위기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증오한다. 그녀의 건강을 위하는 남편은 그녀의 자유를 끊임없이 속박할 뿐이다. 자신이 뭔가 의무를 제대로 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격지심 -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원치도 않는 의무를 뒤집어씌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 그 자격지심이 울프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하녀 넬리와의 대면 장면을 생각해 보자. 하녀에 불과한 넬리에게 울프가 위축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화에서 도리어 우위를 점하고 화를 내는 것은 하녀 넬리이다. 울프는 스스로를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그 둘 사이의 긴장상태에, 옆의 다른 하녀가 달걀 깨는 소리는 실로 화룡정점이다. 이 역설적인 긴장은 대체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가? 울프가, 일반적으로 하녀들이 기대하는 주인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넬리가 차려주는 식사를 먹지 않고, 넬리에게 무슨 요리를 준비하라고 전혀 지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의무 - 그러나 울프에게는 낯설기만 한 의무 - 그것이 울프를 구석으로 몰아세운다.
이러한 극단에 달한 그녀의 분노가 한꺼번에 표출되는 것이 바로 기차역에서 남편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남편이 ‘넬리를 봐서라도 그녀가 차리는 점심을 먹는 것이 의무(obligation)’ 라고 이야기하지 버지니아 울프는 비명을 지른다. ‘의무?! 그런 의무는 없어!’ 그녀는 남편의 과보호, 의사들의 과보호가 그녀를 속박하는 데 대해 쌓였던 울분을 토해낸다. ‘나를 누구보다 잘 진단하는 것은 내 자신이다.’

로라 브라운은 또 어떤가? 그녀 역시 일종의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다 해주는 남편, 지나치게 영특한 꼬마 아들. 그들 사이에서 그녀는 스스로의 무능함을, 순전히 자격지심으로 느끼게 된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아들과 그녀 사이의 관계이다. 일반적으로 우위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어머니가 도리어 아들의 시선에 구속받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된다. 지나치게 똑똑한 아이. 그 아이로 인해 어머니의 좌절감은 증폭된다. 케익을 만드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아들은 어머니에게 케익을 만드는 순서를 바로잡아 주고,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라고 이야기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적 일이지만 이것이 로라에게는 치명적이다.

세 번째, 클라리사를 보자. 클라리사는 나머지 두 여인에 비해 약간은 복잡한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다. 이는 그녀의 삶에는 리차드라는, 또 하나의 고통받고 있는 인간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리차드는 어려서 그의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그로 인한 상처를 병으로 신음중인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그런 그를 클라리사는 평생 돌보며 사랑해 왔지만, 그것은 응답받지 못한 짝사랑에 가까웠다. 리차드는 클라리사 대신 다른 남자(제프 대니얼즈 - 극중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쉽게도)와 함께 사는 것을 택했으며, 클라리사는 이같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역시 다른 사람(샐리 - 이번엔 배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_-+)을 택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정자를 받아 딸을 낳은 것 역시, 리차드로부터 끝내 얻지 못한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워 보려는 시도가 아니었을지.
그런 그녀에게 리차드는 삶의 전부이다. 리차드는 이것을 못견뎌한다. 자기가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는 이유가 다른 사람, 즉 클라리사를 위해서라는 사실이 그에게 본질적 허무감을 안겨준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 그는 여기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결국 창 밖으로 몸을 던진다. 이 둘의 이같은 관계에서 클라리사 역시 마찬가지로 고통스럽다. 그녀의 행복은 전적으로 그녀 자신이 아닌 타인, 즉 리차드에 의존해 있다. 여기서 오는 허무감에 그녀는 언제나 절망한다.

스스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속박받아야만 하는 -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 허무함, 절망감. 이것이 세 여인(그리고 리차드까지)을 둘러싸고 있는 괴로움의 근원이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는,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의 방식이 정해지고 거기에 억지로 자신이 끼워맞춰져야 하는 현실을 증오했다. 로라 브라운은, 의사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규정지워진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클라리사 번은, 스스로의 삶 자체가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클라리사의 경우는 자의로 이런 속박상태에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로라의 경우도 약간은 그렇고, 버지니아 울프는 거의 완전히 타의에 의한 속박이다)

이들은 자신을 찾기 위해, ‘나’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에게 분노를 쏟아냄으로써, 그리고 결국 런던으로 돌아감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을 성취한다. (보다 궁극적으로 보면 자살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로라 브라운은, 자살의 문턱에서 마음을 다잡고, 대신 가족을 버리고 떠나 버린다. 클라리사는, 리차드가 죽음으로써, 그리고 리차드의 엄마인 로라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기차역에서 남편과 함께 돌아가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내뱉는다. To look at life in its direct face...(정확한 대사를 기억한다는건 내겐 무리다 -_-+)..삶을 똑바로 쳐다보고 맞서는 것..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 삶의 시간들 (the hours)을 당당히 맞는 것.. 그것이 ‘나’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



굳이 때 지난 영화에 대한 내 이야기를 이렇게도 길게 풀어놓은 것은, 사실은 얼마전 구입한 디비디 때문이다. 디 아워스는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정말 온몸으로 느끼면서 본 영화였고..그래서 디비디로 가장 먼저 산 타이틀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댈러웨이 부인 소설책까지 끼워서 파는데 안사고 배기랴). 두 번째 봤을 때도 역시 디 아워스는 멋진 영화였고, 더할 나위 없이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당연히 강력추천(강력추천 안할거면 이렇게 긴 글을 썼을 리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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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2 09:55 2003/10/02 09:55







캐리비안의 해적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09/13 09:53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이거 또 괜찮은 거 하나 나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영화. 제리 브룩하이머가 프로듀서로 나섰으니 빠방한 제작비야 의심할 필요도 없고.. 게다가 [반지의 제왕]에서 거꾸로 몸 뒤집으며 말타기, 방패로 서핑하며 화살쏘기, 한화살에 두명 꿰기, 쌍화살 쏘기 등등 영화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개폼잡기를 선보이며 전세계인으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한 궁극의 캐릭터 레골라스(!)를 연기한 올랜도 블룸이 나온다니! 블룸이 레골라스 이외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본 적이 없는지라 이번에는 또 무슨 개폼잡기를 선보일지 기대되는 것이 당연. 그리고 예고편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특수효과 역시 감탄이 나올 정도임에 틀림없었다(하기야 브룩하이머가 제작비를 대는데 뭔들 못하랴).

그리고, 사실상 이 모든 것보다 더 영화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사실은, 바로 독특한 영화에 독특한 캐릭터로 출연해 독특한 연기를 멋지게 선보이기로 유명한 죠니 뎁이 주연으로 당당히 등장한다는 사실이었으리라. 그러나 사실 정작 나는 죠니 뎁이 주연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본 일이 없는지라, 그의 명성만 숱하게 들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죠니 뎁을 직접 본 건 [가위손]과 [슬리피 할로우]의 장면장면을 얼핏 본 정도였다. 그런지라 그 명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더 기대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추석 연휴에 맞추어 [캐리비안의 해적]이 개봉. 개봉 당일날은 학교 수업에다가 여러 가지 일이 겹쳐 시간을 내지 못했으나, 결국 개봉 다음날 조조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개강파티가 새벽 다섯시에 끝났음에도 조조를 보는 기염을 토했다 -_-)

영화는 무려 두시간 반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요새는 영화들이 대체로 엄청나게 러닝타임이 길어지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반지의 제왕 세시간, 매트릭스 리로우디드 두시간 반, 도그빌도 세시간, 심지어는 나쁜녀석들2도 두시간 반 -_-+), 그럼에도 저 정도 되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그러나 [캐리비안의 해적]은 두시간 반이 언제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영화는 두시간 반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준다. 해적들의 전설이 숱하게 떠돌고 온갖 이야기들이 난무하던 시대를 멋지게 재현해냈다. 바다를 가르는 범선이랄지, 유령선을 타고 약탈을 일삼는 흉포한 해적이랄지, 욕설과 싸움이 난무하는 부두의 술집 등 당시의 분위기가 충분히 살아 있다. 무엇보다 예고편에도 잠깐 등장했던 인간-해골 탈바꿈의 효과는 정말 기괴스러우면서도 멋있었을 뿐 아니라,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특히나 마지막 스패로우와 바르보사의 대결 장면에서 특수효과와 연출이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동굴 틈새로 스어들어오는 달빛을 넘나들면서 싸우고, 달빛이 닿을 때마다 해골로 변하는, 멋드러진 장면이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칼싸움을 훌륭하게 장식해낸 부분이다.

스토리 역시 잘 짜여진 편이다. 물론 디즈니가 제작한 영화인만큼 우울하고 비극적인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고,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로 동화틱한 해피엔딩이지만, 그만큼 유쾌하고 깔끔하게 엔딩크레딧을 즐길 수 있기도 하다. 때를 맞춰서 유머감각이 발휘되기도 하고. 무대가 영국이고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영국인인 까닭에 영화 내내 기품있는 영국식 발음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지극히 영국스러운 대사들이 튀어나오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흔히 듣는, 미국식 욕설은 하나도 안 나온다고 보면 된다-어찌 그리 천박한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으리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덧붙여서,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올랜도 블룸과 카이라 나이트리는 둘 다 매력적이다. 블룸은, 워낙 티끌 하나 안묻은 새하얀 얼굴의 레골라스에 익숙해져서인지는 몰라도, 콧수염을 달고 흐트러진 복장으로 등장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하다. 그럼에도 블룸은 충분히 멋있다(젠장 어떤 사람은 뭘 해도 멋있는 경우가 있다). 나이트리의 경우도, 이런 류의 영화에 등장하는, 약간은 전형적인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두 인물 모두 아역이 등장했을 때는 어색하고 거부감이 들었지만-역시 다 큰 배우들이 연기는 한수 위.

그러나. 그.러.나. 사실 블룸과 나이트리-윌과 엘리자베스-가 원칙적으로 주인공이긴 하나. 영화의 진정한 영웅은 한 여인에게 열정을 다 바치는 윌 터너(블룸)도 아니요, 누구보다도 용기있게 행동하는 엘리자베스 스완(나이트리)도 아니요, 능글맞으면서도 카리스마넘치는 악역 바르보사(고프리 러쉬)도 아니다. 건들건들거리면서 똑바로 걷지도 못하고, 엄청나게 잘난체를 해 대지만 실제로는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그래서 보다 보면 얘가 코메디를 하는 건지 진지한 건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는, 그러나 눈빛만으로도 카리스마를 뿜어대는...바로바로 우리의 '캡틴 잭 스패로우', 즉 죠니 뎁인 것이다!

실로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통의 괜찮은 어드벤쳐 영화에서 한단계 끌어올리는 것은 순전히 죠니 뎁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가 연기하는 '캡틴 잭 스패로우('캡틴'을 꼭 붙여서 불러야 한다!)'는 그 자체가 매우 독특한 캐릭터이다. 선악이 불분명한 것도 그렇지만, 초라하면서 기품있고, 멍청한 듯 하면서 누구보다 영리하고, 술에 취해 있는 것 같으면서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정말 말도 안되게 모순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인물 안에 버무려 넣는 뎁의 능력은 정말 탄복할 정도다.

블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반지의 제왕]에서는 그가 관객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에서는 실패했다고 봐야 할 듯. 침몰하는 배를 타고 콧대를 하늘높이 치켜든 채 '캡틴 잭 스패로우'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오로지 죠니 뎁만을 찾게 된다. 나머지 사람들(당연히 올랜도 블룸도 포함이다)은 순식간에 조연으로 전락해 버린다고나 할까. 그만큼 뎁의 연기는 훌륭하고, 그를 지켜보는 것은 즐겁다.

영화는, 긴 러닝타임 때문에 약간 페이스가 느려지는 부분에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디즈니가 제작한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가벼운 톤으로 일관하고, 심각한 주제의식 같은 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지만..사실 모든 영화에서 그런 걸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 뿐더러, [캐리비안의 해적]은 훌륭한 배우들, 독특한 특수효과, 그리고 너무나도 멋진 '죠니뎁'으로 무장한,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강력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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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3 09:53 2003/09/13 09:53








2003년 7월 25일~7월 30일. 남반구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여행하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곳.

[여행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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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31 09:48 2003/07/31 09:48







원더풀데이즈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07/23 09:35

 

:: Spoiler Warning! ::
[원더풀데이즈]의 내용이 (조금) 공개되어 있습니다!

 

 

제작비 120억. 제작기간 8년. 미니어처와 3D 컴퓨터그래픽, 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놀라운 기술. 재패니메이션에 도전하는 대형 한국 애니메이션.

이것이 [원더풀데이즈]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이다.

내가 원더풀데이즈를 처음 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몇달 전 극장에서 원더풀데이즈의 예고편을 보게 된 것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기다림도 시작되었다.

본 사람들을 알겠지만, 원더풀데이즈의 예고편은 정말 멋있었다.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대형 트럭, 총격전, 멋있게 생긴 오토바이 등등. 기대감은 정말 치솟았다. 뭔가 물건이 나왔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엄청난 기대를 안고 본 영화가 기대감을 충족시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세상 만사가 기대가 크면 실망이 비례해서 큰 법. 큰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던 영화는, 지금와서 생각해 봐도 그리 많지 않다. [반지의 제왕]이나 [엑스멘2]정도..?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원더풀데이즈는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분명, 배경을 미니어처로 제작해서 2D 셀 애니메이션과 결합한 방법은 독특했고 훌륭했다. CG의 사용도, 일부에서는 어색했다고 비판을 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엔 훌륭했다. 2D와 이질적이라 CG가 잘 드러나는 건 분명했지만, 원더풀데이즈는 그림과 CG를 구별 불가능하게 하는 게 애시당초의 목표가 아니었던 듯싶었다. 대신 CG는 미니어처 배경이 가지는 이질감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분위기에 독특함을 심어 주는 효과를 주고 있다. 물론 기술력 자체로 보면, [신밧드]에서처럼 어떤게 컴퓨터그래픽이고 어떤게 그림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만드는 것이 더 수준높은 것이겠지만, 원더풀데이즈에서의 CG 사용은 그 나름대로 잘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영상미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문제는 스토리의 구성에 있다.
소재 자체는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파란 하늘이 사라진, 오염물질로 뒤덮인 미래의 세계. 에코반과 마르 사이의 갈등. 죽은 줄 알았던 옛 친구. 사랑과 질투 등등. 어찌 보면 진부한 소재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원더풀데이즈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법, 즉 플롯을 짜는 데 있어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영화는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객에게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에코반이 오염물질을 토대로 에너지를 얻고 있으며, 따라서 오염물질의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는 설정조차 영화 내에서는 속시원하게 드러나지 않는다(이 내용은 팜플렛을 비롯한 여러 홍보물에 적혀 있어서 난 알고 있었지만).

배우들은 대사가 별로 없다. 그들은 그냥 짤막짤막한 말 한마디씩을 던질 뿐이다. 그러니 관객은 답답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면 왜 저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도통 알 길이 없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에코반 침투작전만 봐도 그렇다. 수하와 마르의 레지스탕스가 어떤 작전을 세운 건지, 어떻게 해야 하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관객은 전.혀. 알수가 없다. 영화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일의 단편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부재는, 관객이 스토리에 접근하는걸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마지막에 먹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나타날 때도, 관객은 감동을 받기보단 대체 왜 갑자기 먹구름이 걷히는건지에 대한 속시원한 설명을 원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는 연결되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 툭툭 끊어진다. 그래서 스토리 전개가 울퉁불퉁하고 지나치게 빠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수하가 물이 콸콸 쏟아지는 하수도에 있다가 갑자기 다음 장면에서는 자기 집에 앉아 있는, 이런 식이다. 그 중간의 탈출 과정이랄지에 대한 묘사는 생략되어 버렸다. 이러니 스토리가 뭔가 연결이 안된다 싶은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수하의 편지를 받고 우디의 침대 곁에 있던 제이는, 조금 후 난데없이 에코반에 등장한다. -_-; 스토리텔링을 무시하는 대신 영화는 쓸데없이 오토바이의 주행장면을 길게 잡고, 주변 황량한 풍경에 너무 오래 시간을 허비한다.

물론 이 때문에 스토리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관객은 보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 수하는 하수구를 탈출했겠구나. 제이는 수하의 편지에도 불구하고 에코반으로 향했던 거구나. 수하와 제이가 에코반의 에너지시스템을 파괴해서 먹구름이 걷히는 거구나...라고. 그렇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스토리에 몰입하는 것과는 천지차이가 있다.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음악과 성우에 관한 것이다. 원더풀데이즈는, 음악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하다. 영화는 너무도 아무런 음악 없이 그냥 대사만 나오거나 경치만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배경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으니 뭔가 허전하단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또, 성우들의 연기는 실망스러웠다. 특히 주인공인 수하의 연기는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와 같은 문제는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김승준씨나 이규화씨가 수하 역을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답답했다. 뿐만 아니라 안타까웠다. 뭔가 엄청난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이었다. 감독의 역량 부족(역량 부족인지, 뭔가 여건이 안좋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문에 아까운 자원이 낭비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원더풀데이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그러나 이 수준에 와서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것으로 결코 영화를 만족스럽게 볼 수 없게 된 것이 또한 현실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있어서의 [쉬리]가 되어주길 바랬던 원더풀데이즈. 아직은 역부족인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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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3 09:35 2003/07/23 09:35







자니 잉글리쉬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07/08 09:34
'미스터 빈'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배우 로완 앳킨슨. 다들 그가 짧은 단편 형식으로 되어 있는 코메디 '미스터 빈' 시리즈에서 보여준 황당무계하고 골때리는 유머를 기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대사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동작만으로 기가 막히게 웃긴 장면을 연출하는 건, 어찌 보면 로완 앳킨슨의 천부적인 재주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러한 미스터 빈의 인기에 힙입어 몇 년 전에는 [빈 Bean] 이라는 영화가 출시되어 앳킨슨과 미스터 빈은 스크린에 공식 데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TV 시리즈와 거의 동일한 형식이었죠. 우리의 얼빠진 영웅 미스터 빈이 출연해서 엎어지고 자빠지며 온갖 개그를 선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터 빈 영화는, 그 넘쳐흐르는 어이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웃을 수 있는(어쩌면 어이없기 때문에 웃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였습니다.

자..그리고 올 여름, 그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미스터 빈이라는, 그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이름을 버리고, 자니 잉글리쉬라는 낯선 이름을 단 채 말이죠. 게다가 제임스 본드 냄새를 풀풀 풍기는 영국 비밀 첩보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전 또 한번 골때리게 웃긴 영화 나왔구나 싶었습니다. 예고편의 장면들로 미루어 보아 앳킨슨은 이름만 자니로 바꿨을 뿐이지 미스터 빈이나 다름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분명해 보였고, 그렇기에 '미스터 빈이 첩보원이 된다' 라는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던 거죠.

그리고 뚜껑을 열어 보니..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자니 잉글리쉬]는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어이없음을 모토로 삼는 코메디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이, 첩보원이 등장하는 첩보물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깊이는 엉망입니다. 우연의 일치가 겹치고, 사건은 너무나 단순히 해결되고 등등.(잠깐..그러고 보니 최근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은 어이없음을 모토로 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라인이 엉망이군요;) 뭐 이런거야 사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치밀한 플롯을 기대하는 건 절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토리라인이 허술하면 진짜 정신없이 웃기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것마저 제대로 터뜨려 주고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앳킨슨의 미스터 빈 시절 실력이 간간이 드러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영화의 코메디는 기대 이하입니다. 큰 원인은 아무래도 앳킨슨의 대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데서 찾아야 할 듯 싶습니다. 원래 미스터 빈이 웃긴 건 아무 말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만 모든 걸 말하는 데서 오는 우스꽝스러움이기 때문에, 주절주절 열심히 말하는 자니 잉글리쉬가 미스터 빈에 미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니 잉글리쉬] 에서 가장 웃긴 장면이, 바로 앳킨슨의 가장 '미스터 빈' 스러운 연기(화장실에서 춤추는 모습의 셀프카메라)라는 점은, 상당히 많은 걸 시사한다고 봐야겠죠. 앳킨슨은 마임으로 연기하는게 몇십 배는 더 웃깁니다.

영화는 가장 초반부 정말 골때리게 웃기게 시작합니다 - 개에게 고무공을 던져주는 장면, 코트를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장면 - 그렇지만 그 이후로는 파워를 잃고 지리하게 이어지죠. 똑같이 어이없는 영화지만 [미녀삼총사2]는 관객을 제대로 유쾌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는 반면, [자니 잉글리쉬]는 어정쩡한 웃음만을 선사할 뿐입니다.

미스터 빈이 그리워지는 영화였습니다. 영화관에서 볼 영화는 절대 아닌듯.. 뭐 지금쯤이야 더 이상 상영하는 영화관도 없으리라 봅니다만.. 비디오로 본다 해도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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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8 09:34 2003/07/08 09:34







장화, 홍련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07/02 09:32
:: Spoiler Warning! ::
[장화, 홍련] 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지 마십시오!




전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서우니까. -_-++ 에..그다지 담력이 센 편이 아닌지라..[쿨럭] 그래서 사실 [장화, 홍련] 역시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만..-_-;;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녀석의 꼬드김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는 관람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뭐. 영화는 그럭저럭 괜찮게 봤습니다. 공포영화를 원체 보지 않는지라 이게 수많은 공포영화 가운데 어느 정도로 무서운 축에 드는지는 제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만, 뭐 저 같은 경우는 그냥 가끔 무섭고 깜짝깜짝 놀라고 했었죠; 그렇긴 해도 의자를 박차고 영화관 밖으로 도망가야 할 정도로 무섭진 않았던 것이 사실. 그래도 영화 막바지에 등장하는 수차례의 반전은 나름대로 상당히 쇼킹했습니다;

'수연이는 죽었잖아' 로 시작되어서 새엄마(염정아)가 새롭게 등장하는 장면에까지..충격의 연속이긴 했습니다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것도 그다지 신선한 것은 못됩니다. 수연이와 수미가 같이 등장하는 장면에서조차 아빠와 수연이가 대화하는 장면은 전혀 없다는 장치는, [식스 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실제로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장치와 유사합니다. 수미가 새엄마의 역할까지 혼자서 하고 있었다..는 다중인격적인 장치는 분명 쇼킹합니다만..

일단, 복잡한 스토리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수연이는 아마도 귀신이라고 봐야 할겁니다. 수연이까지 수미의 분열된 또다른 인격이라고 보는 건 좀 무리가 있는거 같습니다만..그럼에도 수연이, 수미, 새엄마의 생리 날짜가 다 똑같다는건 세명이 모조리 다 수미라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_-+

뭐 수연이가 귀신이건 수미의 분열된 인격의 하나이건 간에, 그 집에는 귀신이 하나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바로 죽은 엄마의 귀신이죠.. 수미가 꿈에서 본 귀신, 새엄마(사실은 수미)를 싱크대 및에서 덮친 귀신, 마지막에 진짜 새엄마를 향해 이불 속에서 기어나오는(이 장면이 제일 무섭습니다 -_-+) 귀신은 아마도 모두 죽은 엄마의 귀신이라고 봐야 할거 같습니다. 수미는 엄마의 죽음을 모른체하고 동생을 죽게 내버려둔 데서 죄책감을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새엄마가 엄마의 귀신을 만나는건 어찌 보면 당연한거고;

분명 반전은 교묘합니다만, 문제는 영화의 진행속도에 있습니다. 수미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숨기려다 보니, 아빠와 수미의 대화는 영화 전반부 내내 관객을 답답하게만 만들 뿐입니다. 아빠는 끊임없이 '그러지 좀 마!' '제발 좀 그만해!' 를 남발하는데, 대체 뭘 '그러지' 말라는 건지, 뭘 좀 그만하라는 건지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_- 나중에 가서야 뭔 말을 하던 건지 알 수 있죠;

영화는 '수연이는 죽었잖아' 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정말 진행이 느리기 짝이 없고, 때문에 지루합니다. 지루함 속에서도 간간히 공포를 유발하는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영문을 모르는 상황에서 공포보다는 짜증이 앞서더군요..; 그리고, 대체 그 집 사람들은 왜 전등은 안 켜고 산답니까? 대낮인데 집 안은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고 -_-+ 불 좀 켜면 어디 덧나나 -_-

한 가지 탁월한은, 영화의 장면장면의 미감입니다. 특히나 영화 전반부 집 근처의 부둣가, 푸른 하늘 등등에 카메라는 오래 머물고, 그러한 풍경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데 필요 이상으로 공을 들여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스토리 전개를 지지부진하게 하는데 엄청나게 기여한다는 거죠.

[장화, 홍련]은, 영화 내내 관객을 긴장 속에 몰아넣고 서서히 조여오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경치를 즐기게 하다가 갑자기 긴장을 주고, 다시 느긋하게 경치를 즐기고...하다가 막판에 뭐가뭔지도 잘 모르게 몰아치는, 약간은 엉망인 전개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교묘하게 짜여진 반전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상이 남지 못하는 거 같네요. 관객에게 긴장을 불어넣는 것은, 괜히 어두침침한 장면에서 음침한 음악을 깔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법입니다([디 아워스 The Hours]를 보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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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2 09:32 2003/07/02 09:32







니모를 찾아서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07/02 09:30
전 원래부터 픽사 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팬입니다. [토이 스토리]로 픽사가 영화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때부터 그들의 재치, 깔끔하고 예쁜 화면, 탄탄한 스토리라인은 다섯번째 영화인 [니모를 찾아서]에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계속해서 발전해 왔다고 봐야겠습니다. 디즈니라는 거대한 이름에 묻혀서 픽사의 존재를 아직까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 픽사 스튜디오의 대작들을 나열하자면...

토이스토리 - CG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연 작품이죠.. 버즈와 우디는 이미 유명인사입니다; 벅스라이프 - 같은 소재로 드림웍스가 만들어낸 [개미] 보다 그래픽, 스토리, 유머 등등 모든 면에서 훨씬 앞섭니다. 제가 이제까지 본 영화 가운데 몇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이때 처음으로 픽사는 영화 끝난 후 소위 'NG모음'이라는 기발하고 골때리는 아이디어를 집어넣었죠; 토이스토리 2 - 속편이 전편보다 재미있는 아주 드문 케이스 중의 하나. 난무하는 패러디와 한층 더 깊어진 스토리라인, 그리고 변함없이 영화의 백미인 NG모음; 몬스터주식회사 - 그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그리고 너무나도 귀여운 부, 역시나 NG모음은 최고.

이쯤 되면, 픽사의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 또한 높게 마련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영화는 웨만한 수작이 아니면 인정을 받지 못하듯이. 그러한 기대 속에서 올 여름 나타난 것이 바로 [니모를 찾아서] 입니다. 당연히 제 기대치는 매우 높았습니다만...픽사는 역시 픽사였습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장난감들, 평범하지 않은 개미, 공포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몬스터들에 이어 이번에는 흰동가리와 상어, 가오리, 고래 등 온갖 바닷속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아들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피붙이를 잃은, 그래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흰동가리 말린.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과잉보호가 짜증나기만 하는 니모. 니모가 사람들에게 잡혀간 후 말린이 아들을 찾아서 머나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쉬지 않고 터져나오는 웃음. 신선하면서도 골때리는 유머의 연속일 뿐 아니라,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바닷속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재현해 낸 데에는 정말 탄성이 나올 뿐입니다. 픽사 특유의 화려하고도 예쁜 화면(픽사의 스타일이 어떠한가는 [벅스라이프]와 [개미]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실성을 강조하다 보니 어두침침한 색깔 일색이었던 [개미]와 달리 픽사의 [벅스라이프]는 총천연색의 향연입니다;)이 눈을 쉴새없이 즐겁게 해주는 것은 물론.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디즈니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영화의 주제의식..입니다. 가족의 소중함, 가족애를 강조하는 디즈니 특유의 방식이 이 영화에도 나타납니다. 진부하다고 해야겠죠. 그렇지만 진부함에도 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훌륭했습니다. 자식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그러한 세대의 갈등은..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와닿는 이야기였습니다. 거북이와 말린과의 대화에서 "애들이 준비가 됐는지는 어떻게 알지?" "알 수 없지. 그렇지만 그들이 됐다고 하면 된거야." 라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더군요.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이 꼭 좀 보고 배웠으면 합니다. -_-+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 멋진 화면, 와닿는 스토리와 감동...
[니모를 찾아서]는 강력추천입니다. ★★★★

PS. 정말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면, '니모'가 '매트릭스2'나 '엑스멘2'보다도 더 잘 만든 영화입니다. 이정도까지 말하면 어느 정도인지 알겠죠? (내 입으로 매트릭스와 엑스멘을 깎아내리는게 어찌나 슬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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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2 09:30 2003/07/02 09:30







미녀삼총사 2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07/01 09:28
미녀삼총사 1편을 보지 않은 상황이었는지라 2편을 먼저 선뜻 보기가 꺼려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1편 안봐도 전혀 상관없다' 라는 충고를 들은 뒤 '에라 모르겠다' 는 심정으로 관람. 보고 난 후의 결론은... 여전히 모르겠군요; 1편을 보고 나서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죠; 보통 이런 시리즈물은 군데군데서 전편과 연계되는 조크가 출현하게 마련이니까.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미녀삼총사(원제는 Charlie's Angels - 미국의 인기 TV시리즈를 영화화한 것이라고 합니다)는, 꽤나 유쾌한 영화였습니다. 스토리야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고, 실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뭔가 플롯이 있긴 하지만(;), 사실 영화의 주안점은 거기에 있지 않으니까요. 리얼리티를 따지자면 정말 말도 안되는 것 투성이; 다리에서 떨어지는 헬리콥터에 자석이라도 달린 듯이 척 하고 매달린다거나 하는;

그렇지만 확실히 볼거리에는 주안점을 많이 두었습니다. 카메론 디아즈, 드류 배리모어, 루시 리우 세명이서 아주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의상의 퍼레이드를 벌이고, 오토바이 레이싱, 서핑(수상 스포츠가 등장하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겁니다 -_- 그리고 얼마 안되는 데미 무어의 출연시간이 여기에 할애된 것 역시)에다가 총격, 쿵후 등등. 그리고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패러디 - 패러디에 관한 한 '아는 만큼 보인다' 가 진리죠..전 CSI 하고 매트릭스는 제대로 알아보았습니다만..이 외에도 훨씬 많은듯 - 와 반복되는 골때림 또한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드류 배리모어의 캐릭터가 제일 유쾌했습니다. 푸핫)

주연배우 세명 모두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끝나고 나서는 셋 중 적어도 한명쯤은 좋아지게 되어 버릴 듯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이정도면 괜찮다고 할 수 있겠죠; 스토리라인이 꽝인건 쟈니잉글리쉬나 마찬가지지만, 쟈니잉글리쉬보다 확실히 볼거리와 재미가 더 강력합니다. 좀 덥고 짜증난다 싶으면 영화관에 들어가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시길.(저거 말도 안돼! 라고 외치면서 보다간 스트레스 더 쌓일겁니다) ★★

PS. 아..그리고 그 Thin Man인가 하는 녀석..진짜 눈물나게 웃겼습니다. 최고. -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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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1 09:28 2003/07/01 09:28







매트릭스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3/07/01 09:22
|Bullet Time|

1999년, 쓰러지며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그 장면 하나로 영화 '매트릭스'는 영화계를 제압해 버렸다. 트리니티가 백조처럼 날아올라 날라차기를 하는 장면은 저 총알피하기 장면과 더불어 숱하게 패러디되었으며 이제는 고전적인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러한 장면들이 특별한가 하는 것이다. 감독 와쇼스키 형제와 특수효과 팀은 매트릭스에서 전례없는 촬영기술을 사용했는데, 이 기법은 저 유명한 총알피하기 씬으로부터 이름을 따 와서 'Bullet Time' 이라고 불린다.

'불릿 타임' 기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 1)연기자 주변을 삼백육십도 완전히 에워싸도록 수백개의 카메라를 늘어세운 뒤, 0.5초 간격으로 각 카메라의 셔터를 작동시킨다. 2) 이 작업이 끝나면,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연속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연속적인 사진을 얻게 된다. 3) 각 사진 사이에 존재하는 0.5초의 인터벌은 컴퓨터를 이용해 그려서 채워넣는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필름은, 감독이 원하는 만큼 느리게 재생시켜 슬로 모션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고, 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재생시킬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연기자 주위에 어떻게 배치시키느냐에 따라 완전히 자유로운 각도에서의 영상이 가능해진다.

자, 다음에 TV에서 매트릭스의 장면을 보여줄 때는 한번 유심히 봐 보자. 360도 시점이 회전하는 도중에, 슬로모션이 되었다가 재생속도가 다시 빨라지는 등 속도도 마음대로 변하고, 시점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불릿 타임의 놀라움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Lean, Mean, Green Screen|

매트릭스는, 그 매력적인 스토리라인 뿐만 아니라 영상에 있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영화였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부분 중 하나는, 영화 중 매트릭스 안의 세계는 옅은 초록색 톤을 띠고, 매트릭스 바깥의 현실 세계는 푸른색 톤을 띤다는 점이다(나도 두번째 볼때에야 깨달았다;). 매트릭스의 세계는 초록색의 코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같은 초록색의 이미지는 초창기 컴퓨터의 초록색 화면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선택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모피어스의 선글라스 양쪽에 양 손이 정확하게 나뉘어서 보인다거나, 앤더슨이 회사 빌딩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리자 떨어지는 핸드폰을 슬로모션을 잡는다거나, 네오가 헬기에서 기관총을 쏘아댈 때 떨어지는 탄피를 슬로모션으로 잡는다거나 하는 효과는, 영화에 한층 멋을 더해주고 있다. 이는 출연진 모두가 검은색 선글라스와 롱코트로 무장하고 있는 점과 어우러져 소위 '개폼'의 절정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What is 'Real'? How do you define 'Real'?|

매트릭스가 당대 최고의 '개폼잡기' 영화였음에는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대리석 파편이 난무하는 슬로모션 총격씬(공각기동대의 총격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애니메이션보다 한층 파워풀하다)이나, 드래곤볼에서나 있을법한 무술 격투 등등. 그러나 매트릭스는 단순히 폼잡는 영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대사 - 특히 모피어스의 대사 - 는 생각할 거리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많다. 처음 네오와 만나고 네오가 이상한 거울을 바라볼 때, 모피어스는 말한다. "너무나도 진짜같아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가던 꿈을 꿔 본 적이 있나?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꿈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지?" 이는 '장자의 꿈' 이야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알수 없다' 라는 장자의 이야기처럼, 무엇이 진짜Real 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론에 대한 질문은 계속된다. 현실 세계로 빠져나온 후 네오에게 현실 상황을 설명하며 모피어스는 말한다. "'현실'이라는 게 뭐지? 어떻게 '현실'을 정의내리나? 만약 네가 만지고, 냄새맡고, 보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건 단지 뇌에서 재해석된 전자 신호에 불과해."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진짜' 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감각 이외에 우리가 현실, 즉 '진짜' 를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이성이라는 게 그렇게 믿을만한 것인가? 만약 감각이 인식의 유일한 창이라면, 사실 감각을 떠나서 존재하는 현실 세계라는 걸 상정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고 허구적인 일 아닌가?

'무엇이 진정으로 '진짜' 인지 확신할 수 있는 길은 없다' -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네오와 모피어스가 현실, 진짜 세계라고 믿는 세계(즉, 기계가 인간을 사육하는 세계)조차도 허구에 불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같은 생각은 '매트릭스: 리로우디드' 를 이해하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Etc|

이 외에도, 매트릭스에 숨어 있는 다양한 모티브는 얼마든지 있다. 네오Neo 가 One의 철자의 순서를 바꾼 것이라는 점, 트리니티가 삼위일체를 의미한다는 것과 트리니티에게 네오가 '남자인줄 알았는데' 라고 하는 부분(신이 흔히 아버지라고 칭해지는 것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네오가 현실을 알아가는 그 첫번째 과정이 '흰 토끼'를 따라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앤더슨이 해킹 프로그램을 보관해 놓는 책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이라는 책이라는 점 - 그 책에서는 현대인은 시뮬라크르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기호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따라서 기호가 현실을 대체해 버린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매트릭스의 세계관과 아주 비슷하다 - 뿐만 아니라 네부카네자르 호에서 승무원들이 식사를 하며 나누는 대화, 사이퍼가 앤더슨 요원과 나누는 대화 등에서도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요컨대, 매트릭스가 철학적으로 엄청난 깊이를 가진 영화라고 보는것 역시 말이 안되겠지만(어찌 되었건 이건 액션영화다;), 분명 여러 가지 철학적, 신화적, 종교적 요소가 군데군데 반영되어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것을 찾아내고 또 그와 관련된 화두를 붙잡고 생각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매트릭스의 진정한 재미.

....매트릭스를 주의깊게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깊게 생각하며 다시 보는 것은 어떨지? 그러고 나서야 얼마전 개봉한 2편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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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1 09:22 2003/07/01 09:22







나는 조던을 봤다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3/04/19 09:19
마이클 조던이 은퇴했다. 93년, 99년에 이어 세번째로.
아쉽게도 위저즈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고, 지난 필라델피아 전이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마이클 조던. 오늘날 아무리 농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심지어 스포츠 자체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이키 가게 앞을 지나가며 그의 포스터를 한 번이라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티비에서 그가 출연하는 게토레이 광고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진열장에 전시된, 열여덟개(;;;)나 되는 에어조던을 신어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스스로 조던의 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96년 그가 처음으로 컴백했을 때, 난 조던이 싫었다. 그 이후로 내가 좋아하던 올랜도의 발목을 번번이 잡는 그와 시카고 불스가 싫었다.

그러나 어느덧 나는 조던의 팬이 되어 있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적어도 그가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의 끝을 모르는 투지와 천재성, 아름답기까지한 그의 플레이를 바라본 사람이라면.. 조던을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너희는 베이브 루스가 뭔지 모른다고. 그가 방망이를 치켜들고 '저기에 쳐서 넣겠다' 라고 외치던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캐시어스 클레이가 무하마드 알리가 되어 '내가 최고다' 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선동렬이 '무등산 폭격기' 로 불리던 시절을 모른다고.

그래, 난 모른다. 난 못봤다. 베이브 루스, 미키 맨틀, 알리,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모두 내게는 짤막짤막한 영상으로만 떠오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으켰던 센세이션, 그 속에 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난 봤다.
조던이 날아올라 덩크를 꽂는 모습을.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보지도 않고 골을 넣는 모습을.
그가 혀를 내밀고 돌파하는 모습을. 무인지경처럼 수비를 헤집고 덩크하는 모습을.

96년 그가 처음으로 컴백한 날, 바지를 거꾸로 입고 뛰던 그 때, 난 그를 봤다.
그가 경기 종료 버저와 함께 승리골을, 정말 말도 안되게 집어넣을 때, 난 그를 봤다.
컴백 후 아버지의 날에 우승컵을 거머쥐고 눈물을 흘릴 때, 난 그를 봤다.
그리고 2003년 그가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날 때에도, 난 조던이 만든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우리의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 자랑스레, 약간은 거만하게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에어조던을 신어 봤다고.

난 마이클 조던이 출연한 나이키 광고를 봤다고.

난 조던이 이루어낸 기적의 순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난 마이클 조던을 볼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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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9 09:19 2003/04/19 09:19
  1. 하영
    2004/07/11 23:30
    난 선동렬이 무등산폭격기였을 때를 봤어..+_+
    (역시 광주..ㅠ_ㅠ)







얼마전 새로 생긴 ManiaDVD 란 가게 앞을 지나던 중..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반지의 제왕 액션피규어가 진열되어 있는걸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피규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곳은 아니지만, 주문하면 원하는걸 갖다 주겠다고는 한다. 진열되어 있던 것은 섀도우팩스에 올라탄 갠달프와 브레고를 탄 아라곤이었는데.. 그리고 더불어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돌진하는 요다라던가, 오비완 케노비, 윈두를 비롯하여 악마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스폰까지, 하여간 구미를 당기는게 아주 많았다.

가게로 들어가 각 피규어의 가격을 물어보고 좌절을 금치 못하던 중(요즘 주머니사정이 아주 좋지 못하다).. 그 중에 그나마 저가였던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 피규어를 사들고 나왔다.

뭐. 스파이크야 원래 멋있으니. 이렇게 만들어놔도 멋있는건 마찬가지다. 얼굴이 그다지 스파이크와 흡사하지 않아 보이지만; 원래 피규어라는게 다 그런거니까; 게다가 중요한건, 왼손에 슬쩍 잡고 있는 저 담배인 것이다.



삐딱하게 선 폼하며, 잘난척 하는 듯하며 씩 웃는 표정하며.

아아. 카우보이 비밥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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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1 03:14 2003/04/11 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