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레볼루션즈가 지난 11월 개봉한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릴 것 없이 실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고, 아직까지도 레볼루션즈의 해석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1편때부터 지겹게 들어 온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해석에서부터 음양오행사상, 불교철학, 인도철학 할 것 없이 온갖 사상과 매트릭스 시리즈와의 접목을 시도하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보드리야르와 프로이트 등등의 사상가들의 이름까지 거론되며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매트릭스 시리즈를 이해하고, 평가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개봉일 매트릭스 레볼루션즈를 본 이래로 지금까지 무수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시험공부를 할때에도 하루에도 몇번씩 기억 저편에서 슬그머니 떠올라 나를 잡념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매트릭스 시리즈. 와쇼스키 형제는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속 시원한 해답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돼서 이렇게 된거지' 라는 식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토리를 등장인물이 한번 총정리를 해주고 끝내는 유치한 구성을 취하지 않은 건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고,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다.
매트릭스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나 나름대로 매트릭스를 이해한 방식을 몇자 끄적여 보고자 한다. 내가 배경지식이 원체 부족한 탓일 수도 있지만, 기존에 나온 여러 설들은 하나같이 성경에의 깊은 이해, 혹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하고 있어 나로선 완벽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들이었다(이럴땐 일찌감치 종교라도 가져 볼걸 하고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굳이 다른 출처와의 상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요즘 나도는 기독교적 해석의 대부분은, 무조건 영화의 요소들을 기독교와 연결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를 거듭한 나머지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어디까지나 영화 내부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1편과 2편, 3편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장면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등을 위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 가도록 하겠다. 성경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무하므로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최소로 줄이고. 불교는 물론이요 인도철학에는 더더욱 문외한이므로 역시 패스.
그러나 사실, 어떤 외부 소스도 끌어들이지 않고 작품만 가지고 해석하는게 사실 가장 바람직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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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al Matrix, Reloaded....and Revolutions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건, 매트릭스가 원래 3부작으로 계획되었다고는 하지만, 와쇼스키 형제가 처음 매트릭스 1편을 찍을 때부터 속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영화가 얼마나 흥행에 성공하고 인기를 끌 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에, 와쇼스키 형제는 영화사가 속편을 위한 제작비를 지원해 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첫편부터 투비 컨티뉴드를 때려버린 [백투더 퓨처] 시리즈나, 애시당초 에피소드 6 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스타워즈]와는 엄연히 다르다. 때문에 매트릭스 1편은 그 하나로 완결된 영화의 모습을 띠고 있다. 네오의 각성, 그리고 매트릭스가 스톱되고 네오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으로 끝나는 오리지널 매트릭스는 시작과 끝이 잘 매듭지어진 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와는 달리 리로우디드와 레볼루션즈는 사실상 두 편의 영화가 합쳐져서 한 편의 스토리를 구성한다고 봐야 한다. 리로우디드의 끝에 to be concluded 라는 메세지만 떡하니 등장하며 영화가 끝난 점만 보더라도 분명하다. 따라서 리로우디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레볼루션즈를 이해하는 일도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레볼루션즈를 보지 않고서는 리로우디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매트릭스 1편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도 거의 없다;). 제일 많이 본 것도 역시 1편이다(횟수를 세려면 손가락이 모자란다 -_-). 그렇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가 알려지고 또 그에 관련된 책만 해도 몇권이나 되는 1편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그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편에 관해 좀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시중에 번역되어 팔리고 있는 관련 서적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공정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것은 리로우디드+레볼루션즈다. 찬사를 쏟는 사람들도 많지만, 혹평을 퍼붓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만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읽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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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the Matrix? / What is 'Human'?
매트릭스 1편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What is the Matrix?' 로 압축될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사실 몽땅 다 허구일 수 있다는 사실. 진실을 가리고 있는 '매트릭스'라는 장막. 그것의 존재를 폭로하고 '진실'을 찾는 과정이 1편에서는 그려졌다. 진실과 허구라는 두 대립항이 1편의 축을 이룬다.
그렇다면 속편들의 주제는 과연 무엇인가? 이제는 더 이상 '이게 몽땅 다 짜가야!' 라는 쇼킹한 깜짝쇼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속편들에게 실망한 대다수의 관객들이 그와 같은 깜짝쇼를 기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사람들은 매트릭스에 대해 알고 있다. 물론 '현실세계인줄 알았던 곳도 알고보니 또 짜가더라!' 라는 식의 반전 아닌 반전 역시 가능했겠지만; 장난 치는 것도 아니고 -_-;
리로우디드와 레볼루션즈를 열심히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 두 편의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인간과 기계가 다른 점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어찌 보면 진부한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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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maly
2편의 내용을 잠시 상기해보자. 2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아키텍트와 네오의 대화 장면이다.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네오는 유일무이한 the One 이 아니었다. 매트릭스는 이제까지 총 여섯번 재가동(reload)되었으며, 그때마다 매트릭스를 리셋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바로 the One으로, 네오는 여섯번째 the One 이라는 것이다. 왜 매트릭스는 주기적으로 리셋되어져야 하는가? 아키텍트는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맨 처음 만들어진 매트릭스는, 이미 1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완벽한 유토피아적 세계였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유토피아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깨어나 버렸다. 1편에서 스미스 요원이 멋드러지게 표현했듯이, '인간은 괴로움을 통해서 현실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원래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과 완벽한 프로그램은 결코 공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완벽한' 매트릭스는 폐기되었고, 아키텍트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성해야 했다.
이 때 아키텍트는 오라클의 도움을 얻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매트릭스를 재구성한다. 오라클은 원래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매트릭스를 제대로 작동하게끔 하기 위한 열쇠는, 인간들이 애시당초 불완전하다면 시스템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수학적 논리 연산으로 파악하는 아키텍트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불가능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에 반해 오라클은, 분명 프로그램이지만 불완전성을 띠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녀가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었단 점을 잊지 말자) 따라서 이후의 매트릭스는, 혼돈으로 가득찬 세계, 즉 인간 문명이 정점에 달했던 20세기말-21세기로 짜여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매트릭스를 현실로 착각하고 플러그가 꽂힌 상태로 얌전히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완전한 세계를 만들어냈다고는 하나 어찌 되었건 매트릭스는 기호와 수학적 연산의 집합인 하나의 거대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아키텍트는 매트릭스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인간의 '선택'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이라면 1+1의 상황에서 언제나 2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도저히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녀석들이었다. 원초적인 불안정성이 인간에게는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불안정성이 일정 정도 누적되면서, 시스템의 통제를 거의 완전히 벗어나는 존재가 생겨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the One인 것이다. The One은 매트릭스 안의 불완정성의 결집체에 다름 아니다. 결국 아키텍트는 이와 같은 근본적 불안정성을 인정하고, the One을 이용하여 매트릭스를 아예 처음부터 재가동시키는 쪽을 택한다. 불안정성의 결집체인 the One 이 소스로 돌아가면 매트릭스는 리셋되고 다시 처음부터 주기가 시작될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매트릭스의 리셋 역시 불안정성에 맡겨져야 했다는 것. 아키텍트는 the One으로 하여금 소스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키텍트가 할 수 있는 것은 the One의 선택 확률을 높이는 것 뿐. 그래서 그는 인류애가 강한 사람들 중에서 the One을 뽑는 등의 조치를 취해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서 the One이 매트릭스에 플러그꼽힌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매트릭스를 리셋시키는 쪽을 택하게끔 몰아갔던 것이다. 그와 같은 아키텍트의 계획은 이제까지 다섯번이나 성공했다. 그러나 여섯번째 주기가 끝났을 때, 인간은 프로그램의 연산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여섯번째 the One, 즉 네오는 아키텍트의 방에서 다른 쪽 문을 택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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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ose
인간과 프로그램이 다른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열쇠는 스미스가 쥐고 있다. 스미스는 1편에서 네오에 의해 파괴되면서, 네오의 코드의 일부가 덮어씌워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매트릭스 시스템으로부터 'unplugged'된 상태가 된다. 즉, 더 이상 스미스는 시스템의 통제를 받는 요원이 아니게 된 것이다. 2편에서 스미스가 네오에게, 그가 1편에서 요원으로 등장할 때 항상 귀에 꽂고 있었던 플러그를 소포로 보내주며 '네가 나를 해방시켰다' 라고 한 장면을 생각해 보자.
문제는 이같은 변화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만들어진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날씨를 바꾸는 프로그램, 비둘기들을 통제하는 프로그램, 탈주자들을 붙잡아 질서를 유지하는 프로그램 등등. 모든 프로그램들은 매트릭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서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졸지에 '목적 없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원래 요원 프로그램이었고, 따라서 그에 알맞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더 이상 요원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그는 목적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스미스에게 있어 이러한 목적의 부재는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이유, 존재목적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그가 내린 결론은, 결국 어쨌든 네오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는 것. 따라서 네오가 그의 존재이유라는 것. 그래서 스미스는 네오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 스미스100명 대 네오의 대결장면에서, 스미스는 네오에게 말한다. 목적이 우리를 만들고, 목적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이건 다분히 프로그램적인 발상이다.
인간이라면 어떤가? 존재 목적이 있는 인간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당신은 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어느 누구도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자신이 왜 삶을 유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존재의 공허함을 전제로 한 주체들일 뿐이다. 스미스는 결국 인간처럼 되어 버린 프로그램이다. 수학적 연산, 확정적인 계산의 세계의 산물인 스미스는 이러한 공허함과 그로부터 오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가 취하는 대응방식은 네오에게 집착하는 것,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3편에서 그는 말한다. '생명의 목적은 결국 끝나기 위한 것'이라고. 이것이 존재목적을 찾다 찾다 스미스가 내린 파멸적인 결론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Agent Smith 에서 Smith로의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Agent Smith라고 불릴 때, 스미스는 개별성을 갖지 못한 하나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이름이 없고 스미스라는 성만 있는 점, 그리고 그 성이라는 것도 미국에서 제일 흔한 성 중의 하나인 스미스라는 점을 주목) 그러나 2편과 3편에서 그는 그냥 '스미스' 라고 불린다. 스미스는 이제 그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는 개별적인 주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공허함을 스미스는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사실 매트릭스로부터 제거되어야 할 프로그램들, 그러나 도망치기를 원한 프로그램들(메로빈지언이나 키메이커나 사실 모두 엄밀히 말하면 도망중인 프로그램, 말하자면 버그가 되어 버린 프로그램들 아닌가?)은 모두가 본래의 탄생목적을 상실한 프로그램들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나름대로 기존의 자신의 기능을 약간 변형된 형태로 수행하면서 존재한다. 스미스가 특별한 것은 그가 원래 Agent였다는 점, 그 때문에 그의 기능을 써먹을 다른 어떤 목적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사실 이 부분은 명쾌히 해답을 찾지 못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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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오라클과 네오가 벤치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2편의 장면을 회상해 보자. 네오는 그가 꿈에서 보았던 장면, 즉 트리니티가 빌딩에서 떨어지는 장면에 대해 오라클에게 이야기한다. 오라클은 '트리니티가 죽는 것이 보이느냐' 라고 묻고, 네오는 '죽는지 죽지 않는지는 보지 못했다'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오라클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하는 법' 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해 준다.
그렇다. 예측할 수 없는 것. 수학적 연산에 의한 인과관계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지점, 다시 말해 오라클의 예지능력도 미치지 못하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은 '선택'이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 사실 지극히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과 프로그램을 구별짓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비합리성의 극에 달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하고, Z는 링크를 위해 전쟁터에 남아 폭탄을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한다. 트리니티와 네오가 기계 도시를 향해 '무모하기 그지없는' 비행을 하는 건 또 어떤가? 트리니티가 네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해 보자.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줘. 그럼 믿을테니'(그리고 네오가 '해낼 수 있다' 라고 하자 트리니티는 비행한다) 그 맹목성, 멍청함, 우둔함. 기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 너머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오라클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오라클은 분명 인간에 상당히 가까운 프로그램이고 인간과 공존하는 길을 원하고 있지만(2편에 아주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온다. 네오가 '당신이 원하는 게 대체 뭐냐' 고 묻자, 오라클은 'The only thing I'm interested in is the future. And the only way to get there is TOGETHER.'이라고 답한다), 그녀 역시 프로그램이라는 본질적 한계를 지니고 있을 뿐. '오라클의 눈'은 모든 것을 보진 못한다. 3편에서 오라클과 네오의 최후 대면 장면에서, 오라클은 말한다. '네가 올 때까지 쿠키를 다 구워두려 했었는데..' 네오는 이미 오라클의 예지력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어서, '오라클의 눈'에 대해 간단히 언급을 해야 될 듯 싶다. '오라클의 눈'은 이제껏 한번도 언급되지 않다가 난데없이 3편에서 메로빈지언이 '오라클의 눈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사실 그 은유적 의미에서 쉽게 유추가 가능하지만, 오라클의 눈은 아마도 오라클의 예지능력, 미래의 장면들을 보는 그런 능력을 의미할 것이다. 네오가 꿈에서 미래의 장면들을 본 것처럼, 오라클 역시 앞날의 광경을 미리 보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개념이 3편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열쇠가 되는 것은 스미스와 오라클이 하나가 되면서부터다. 스미스가 오라클을 흡수-복제한 다음, 오라클이었다가 이제는 스미스가 된 그 녀석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는가? 그는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휘날리며 대차게 웃음을 터뜨리고.. 오라클이 가진 매트릭스 내에서의 힘을 그 스미스가 얻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후의 대결에서 스미스와 네오가 일대일로 격투를 벌일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스미스 역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다. (최후 대결의 그 스미스는 다름아닌 오라클을 흡수한 스미스다)
장대비가 퍼붓는 가운데, 네오와 스미스가 첫 펀치를 날리기 전의 대사 역시 이를 암시한다.
Neo : It ends, tonight.
Smith : I know. I've already
seen it. (자막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뭐. 다들 아시겠지만, 마지막 스미스의 최후 직전에도 스미스는 '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see라는 동사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 그리고 오라클의 눈. 이 사이의 연관이야 더 이야기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참고로, 마지막 스미스가 말하는 바로 그 '이미 본 적이 있다' 라는 건, 내 생각에는 오라클이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었다고 해석하기보단, 그때가 되어서야 네오의 선택(혹은 오라클 자신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 것(따라서 이후의 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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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I Choose To
Smith : 대체 왜 계속해서 싸우는거지? 어째서 포기하지 않나?
뭘 위해서 싸우는거지?
네 싸움에 그냥 단순히 삶이라는 것 이외의 더 원대한 목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평화? 행복? 설마 사랑?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의 무의미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 뿐이야.
그 모두가
매트릭스 만큼이나 인공적이야.
...
왜, 앤더슨? 대체 왜, 왜, 왜, 왜?
Neo :
Because I choose to.
존재의 공허를 인간이 가리는 것. 그건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매트릭스 만큼이나 인공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뻔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삶을 계속해 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사랑이 무의미한 것이면 어떤가. 그것에 집착하기로 선택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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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ether
프로그램과 인간의 결정적 차이가 바로 '존재목적의 부재'에 있다면, 실제 현실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계들은 어떤가? 사실상 그들 역시 어떤 주어진 존재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사실상 그들은 인간과 똑같은 주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아키텍트와 네오의 대화 장면으로 돌아가자. 처음 아키텍트가 '네가 여섯번째야'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자, 네오의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거짓말하지마!' 였다. 그러자 아키텍트는 냉소를 띠며 '부정(denial)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방어기제이지' 라고 말한다. (실제 이 말은 프로이트가 한 말이라고 한다. 아키텍트와 프로이트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부각시킨 글도 인터넷에 나돌고 있었는데..그렇다면 아키텍트-프로이트의 연관은 어느정도는 사실일지도)
이번에는 3편에서 기계마왕(이모양의 너무나도 적절한 호칭붙이기에 따라 이 호칭을 사용하기로 한다-_-)과 네오의 대면 장면을 생각해 보자. 네오가 3편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사 - 'Program Smith has grown beyond your control. You can't stop him. I Can.' 이라고 말하자, 기계마왕의 반응은 어땠는가? '네 도움은 필요없어!' 라고 외치며, 거의 치기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바로 인간과 똑같은 '부정'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기계와 인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 둘 사이의 평화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들의 몫이다. 애니매트릭스의 세컨드 르네상스 편에서도 잘 나와 있지만, 먼저 기계들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전쟁을 벌인 것 역시 인간이었고, 가까스로 맺어진 새로운 휴전협정을 깰 수 있는 것 역시 인간들이다. 기계들은 약속을 지킬 수 밖에 없으니까. 아키텍트가 3편의 마지막에서 단 한마디의 대사로 이를 명백히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오라클 : 매트릭스 안에 아직 갇혀 있는 인간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아키텍트 : 풀어 줘야겠지.
오라클 : 그 말, 믿어도 되겠나?
아키텍트 : 당연하지.
내가 인간인 줄 알아? (What do you think I am, human?)
2004/07/07 01:29
2004/07/07 10:25
2004/07/15 23:50
두 커플의 영화가 모두 크로스오버를 점령했군. ㅎㅎ
제이크 원츄.
2004/07/20 18:44
이젠 그놈의 광고글 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살의가 불끈불끈...)
태터툴즈로 새롭게 시작하게 된 것 축하하고.
앞으로 자주 들르마. ^^ (링크란 빨리 정리해야하는데...)
"착신아리"는...;;; 휴대폰에서 메시지가 도착하면 뜨는 말이라는데
착신은 말 그대로 착신. "아리"는 "있음"이라고 해.
네가 말했듯이... '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의 남발이다.
포스터에 작은 글씨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라고 적은 게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론 "메시지 도착"이라고 번역하는게 나았으리라고 보는데.
2004/07/21 15:37
그 친구 누나도 배우라는 이야기도 들은 듯 합니다만..
가넷/ 태터툴즈로 바꿨습니다. 오랜만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JH님 홈페이지에 들러보고 와 이거 좋구나 하고 충동적으로 바꿔버렸죠. ^_^;
그러나 방명록은 적어도 당분간은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에.. 광고글을 영원히 안 보게 되는 날은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할 듯 하군요. 며칠전에도 하나 써놓고 가던데;
착신아리. 역시 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이 빛을 발하는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