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편집위원장 영재군으로부터 문자메세지를 받았습니다. 2005년 AF자료집에 넣을 대표인사를 써 달라고 합니다. 이미 행사 시작 전에 영어로 써 놓은 게 있지만, 자료집에는 영어 외에 한글판으로도 글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한글로 된 문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냥 영어로 된 글을 번역해서 손쉽게 일을 끝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지가 않습니다. 해마다 자료집에 실리는,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로 시작해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와 ‘준비하느라 고생한 모두에게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틀에 박힌 대표인사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글 부탁을 받고 나니 문득 지난 3년간 내가 겪은 많은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8월말 그 덥고 힘들었던 일주일의 기억이 하나하나 되살아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냥, 고생을 사서 하는 것, 바로 그게 모든 알싸인들의 숙명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별 생각 없이 알싸에 들어왔습니다. 국제 교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동아리를 뭔가 하기는 해야겠다 하는 흐리멍덩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쩌다가 마지막엔 대표까지 맡게 됐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한번 빠지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들만큼 알싸가 주는 매력이 대단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일단 그 매력에 빠진 다음 순간부터는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알싸에 부족한 점들이 산더미처럼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고쳐 나갈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싸맸습니다.

회원 수는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새로 보는 얼굴이 등장해서 언제나 자기소개하기 바쁠 지경이었습니다. 지부 간 교류도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뚜렷한 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매년 한두 개의 국제행사를 치를 역량은 축적되어 있었지만, 그냥 여러 나라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목표가 불분명하다 보니 세미나 주제는 너무 광범위했고, 그만큼 깊이가 없었습니다. 주제는 천편일률적이었고,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깊이도 없었습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마찰도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저로선 힘들었습니다. 처음 대표직을 맡을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저는 똑같은 문제를 두고 끙끙댔고,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후배들에게 짐을 떠넘긴 채 도망치듯 동아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제 1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제가 후배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부탁은, 제가 여러분에게 떠넘긴 짐을 짊어 져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고쳐보려 했던 문제점들에 대해 여러분도 고민해 달라는 것입니다. 더 나은 알싸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알싸는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에 참가해 보는 것은, 정말 쉽게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입니다. 굳이 국제 행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러 대학의 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그 자체만으로 특별합니다. 처음에 제가 그랬듯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입해서 사람들도 좀 만나고, 외국에도 한두번 나가 보고 하면서 그럭저럭 불만 없이 한두 해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싸가 그저 밋밋한 대학 생활에 스케줄 몇 개를 마련해 주는데 그친다면, 할일 없이 지루한 긴 방학에 그나마 뭔가 이벤트가 되어 주는 데 그친다면, 그리고 그걸로 만족한다면 알싸에서 보낸 시간은 낭비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알싸가 갖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썩히는 것이 아깝습니다. 이십대의 황금같은 시간이 아깝습니다. 굳이 ‘동아리의 가능성’이니 ‘돌아오지 않는 젊음’과 같은 거창한 말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는 건 결국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알싸는 여러분의 허전한 곳을 채워주는 동아리가 되어선 안됩니다. 그래서는 얻을 수도 있을 보다 풍성한 경험을 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나마 채우고자 했던 허전함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테이블 토론 준비를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까 하고 머리를 싸매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며 싸우고 괴로워하고, 밥을 굶고 잠을 줄이며 쓰러질 때까지 바쁘게 뛰어다닐 때에만 허전함이 없어질 것입니다. 민감한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서 토론을 하고,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는 자료를 찾고 읽고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시간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어지간히 깊이 자국을 새겨 놓지 않으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 기억조차 남지 않습니다.

더 크게 뜻을 가져야 합니다. 매년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면서 치르는 행사가 그저 대학생들의 꽤 그럴듯한 방학 이벤트에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여름에 열리는 AF가 아시아 각국의 법학도들이 일년간 공부한 성과물을 발표하고 배워가는 자리가 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고, 한두 해 애를 쓴다고 이뤄질리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틀을 잡아 간다면 분명히 해낼 수 있습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전해에 했던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그럭저럭 큰 행사를 치러낼 수 있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발전은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노하우가 쌓이는 것입니다. 올해 저는, 방학이 아닌 학기 중에 국내 차원에서 어떻게 세미나를 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학기 중의 활동과 방학 때 행사에서 하는 활동을 연결시킬 수 있을지 애를 많이 썼습니다. 이 부분은 노하우가 아직 없기 때문에 방향을 정하는 것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잡는 것까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올해 겪은 시행착오들, 그리고 여러분이 겪을 시행착오들이 쌓여 가면서, 결국에는 역시 전에 했던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어느정도의 성과가 보장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겠죠.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동아리활동인데, 머리 아프게 고민만 하고, 억지로 책 붙들고 공부하고, 언성을 높여 싸워서 되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관계는 인간관계 그 자체가 목표일 때는 얻을 수 없습니다.


...


2005년 AF가 끝난지도 어느새 두달이 넘은 지난 주, 실로 오랜만에 알싸 동기들과 모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처음으로 다시 보는 얼굴이 많았습니다. 그 동안 임원엠티도 있었고, 총엠티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그때마다 일이 터지는 바람에 어느 쪽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그 덕에 동아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주가 돼서야 친구들을 보게 된 셈입니다. 행사가 끝나고 은퇴했을 당시에는 정말 지긋지긋해서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두달이 지난 후에는 그저 반갑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저 부담없이 웃고 떠들면서 보내는 시간은, 핸드폰 전화부에 등록된 사람 수는 늘려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보기만 해도 반가운 얼굴들을 남겨 주진 않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시간이 덮지 못할 정도의 자국을 내 놓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깊이 자국을 내 놓으면, 나빴던 기억들은 점점 사라지고 즐거운 기억만이 남더군요. 지금도 저는 8월 말의 그 일주일을 서슴없이 ‘악몽’이라고 부르지만, 그 악몽은 이제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악몽이 아니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코끝이 찡해지는 그런 악몽이 됐습니다.

어쩌면 악몽이었기 때문에 지금 코끝이 찡해질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정말 지긋지긋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보기만 해도 반가운지도 모릅니다.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알싸에 남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쏟은 3년이 전혀 허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지난 여름 제 악몽을 진정 끔찍한 악몽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 또한 여러분들에게 꽤나 악몽을 꾸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그 점에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알싸활동도 악몽의 연속이 되길 바랍니다. 코끝이 시릴 정도의 지독한 악몽의.



2005년 11월 13일
2004-2005 아시아법학생연합 한국지부 대표
김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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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3 21:54 2005/11/13 21:54
  1. 이재학
    2006/02/08 02:20
    처음 보는 글인데;;; 역시 김웅재 마무리까지 빡쎄다 ㅎㅎㅎ







아레오파기티카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5/10/29 19:29
http://news.nate.com/Service/natenews/ShellView.asp?ArticleID=2005102717575651112&LinkID=1&Title=%EA%B2%BD%ED%96%A5%EC%8B%A0%EB%AC%B8

...온갖 종류의 교리가 풀려나서 세상에 밀어닥치는 와중에도 진리는 전투를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가 검열제와 금지 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은 부당하게도 진리의 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진리의 논박이야말로 최선의 억압이며 가장 확실한 억압입니다. ...

진리가 전능한 신 다음으로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누구입니까.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필요 없고 전략도 필요 없으며 검열제 또한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오류가 진리의 힘에 맞서 싸울 때 사용하는 수단이며 방책입니다. 진리에게 자유의 공간을 제공해 주십시오. 그리고 진리가 잠들었을 때 묶지 마십시오. 진리는 묶여 있을 때는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

존 밀턴, [아레오파기티카]


그토록 '자유'를 목놓아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자유가 문제될 때는 딴소리를 한다.

아침에는 검은 가면, 저녁에는 흰 가면. 상황에 맞춰 가면을 바꿔쓰고 그 뒤에 숨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기회주의자라 부른다.

...


[+] [아레오파기티카]의 저 부분을 처음 읽은 건, 2002년이 다 저물어가는 어느 날 아침, 부들부들 떨며 받아든 수시모집 면접시험 문제지에서였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밀턴의 글은 감동적이었다. 시험지에는 저자와 글의 출처가 적혀 있었는데, 그 날 이후로 난 저 글귀와 [아레오파기티카]라는 이름을 잊은 적이 없다.

어제 저 위에 링크된 신문기사를 읽고, [아레오파기티카]가 떠올랐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지 책장을 넘기며 찾아 봤다.

밀턴의 글이 지닌 힘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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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9 19:29 2005/10/29 19:29
  1. 이경호
    2005/10/30 00:47
    모두에게 통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은
    그때의 사람들은 정말 확신에 차 있을 것 같아.

    웬지 요즘은 서양의 전통적인 사조는
    선악의 확실한 구분에 있음에 비해 동양은 상당히
    선악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관념이 지배하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양비론이 발달하는 것도 그렇고.
  2. 하영
    2005/11/03 18:09
    이거 나도 수시문제로 받아든 기억이 난다.
    맞나? 아무튼 뭔가 문제로 받아들었던 듯.
    그땐 뭔가 멋지게 말했었는데 이젠 머라 하기 힘든데.ㅎ
    역시 한 살한살 먹으면서 느는 건 지혜가 아니라 겁인 것 같아. 예전엔 멋지게 말했던 내 생각들이 이젠 겁이 나서 함부로 말 못하겠더라고.
    슬픈걸ㅎ







Before Sunset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5/10/23 01:48
지난 주말 집에 돌아와서 영화를 두편이나 다운받아 봤다. 책을 펴들고 보긴 싫고, 그렇다고 토요일 저녁에 극장에 가서 그 인파와 씨름하기는 더 싫었다. 결국엔 방에 앉아서 과자를 먹으며 조그만 컴퓨터화면을 들여다보는 쪽을 택했다.

처음으로 본 영화는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이었다. 난 우디 앨런의 영화를 하나도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이런저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는 선택했다. 영화는 웃기려고 애쓰지 않지만 기가막히게 웃기고, 로맨스를 다루지만 오버하지 않고 담담하다. 그냥 쉴새없이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우디 앨런이 나올 뿐이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대한 언급도 상당히 나온다. 왜 이 영화가 그토록 대단하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썩 마음에 들었다.

말 많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 듣는게 재미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디 앨런은 수다를 엄청스레 떨지만, 그는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에 속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득 영화 하나를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쉴새없이 이야기하던, 그리고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던 그 두사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또 듣고 싶었다. 그래서 '비포 선셋'을 다운받았다.

...

9년만에 만났지만, 그 둘은 여전했다. 시간이 제시의 이마에 깊은 주름을 패어 놓았고 셀린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완연했지만, 두 사람은 다시 만난 순간부터 조금도 어색해하거나 뻘쭘해하지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쉴새없이. 화제는 계속 바뀌고 제시의 비행기시간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두사람 모두 좀더 솔직하게 자신과 그들 사이에 대해 이야기하긴 하지만, 두시간 동안 그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떠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듣고 있을 뿐인데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아무리 오랫동안 어떤 사람과 함께 있어도 별 할말이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별 말이 필요없는 경우도 있고, 처음 만났지만 끊임없이 할 말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모건 프리먼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로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관계다.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의 제시와 셀린은 서로에게 계속해서 할 말이 생기는, 그런 관계다.

...


'비포 선라이즈'나 '비포 선셋' 모두, 오버하지 않는 영화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불치병으로 창백해져서 죽어가는 가운데 그 주인공의 상대역을 비롯한 모든 출연배우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둘 중에 하나만 봐야 한다면 '비포 선라이즈'를 보는게 낫겠지만,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나서 보는 '비포 선셋'이야말로 아름답다. 전편의 무게가 후편에 고스란히 실린 채 몇배는 증폭되니까.

...


지난주에 보고 나서 바로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 합본 디비디를 주문했는데, 오늘 집에 다시 와 보니 책상위에 소포가 놓여 있다. 포장을 뜯고 이 장면 저 장면 건너뛰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포 선셋'의 첫장면이야말로 최고다. 과거의 순간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다가 진짜 셀린이 나타나는 그 장면.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를 세 편 본 셈인데(나머지 하나는 '스쿨 오브 락'이다), 세 편 다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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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3 01:48 2005/10/23 01:48
  1. onecent
    2005/10/23 01:49
    줄리 델피를 방명록 아이콘을 추가해야겠다.
  2. 이승현
    2005/10/27 20:38
    '비포 선라이즈'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비포 선셋'도 꼭 봐야지 했는데 아직 못 보고 있네요.ㅠ 조만간 봐야겠어요.ㅋ
  3. 영재
    2005/10/29 21:01
    왠지 반갑다 ㅋㅋ 비포 선라이즈는 이제 '재미있는 청춘멜로영화'라는 표현으로는 왠지 기분이 언짢을 정도지 ㅋㅋ 난 며칠전에 before sunset ost를 샀는데, 비포 선라이즈의 영화속 캐릭터들인 제시와 셀린느는, 이제 남자와 여자의 '원형(ARCHETYPAL)'이라고까지 분석되고 있다고 하더라. 난 전적으로 동감 ㅋ.

    한마디만 더 하자면, 보통 속편을 볼 때에는 전편과 어떤게 재미있나 비교하면서 보게 되는게 인지상정인데, (가령 황비홍 과 황비홍 2 등을 볼 때...) 비포 선셋과 비포 선라이즈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데에 특징이 있지. 이 영화는 삶 그자체기 때문에. 9년전의 우리들의 어떤 날이 9년후의 우리들의 어떤 날보다 더 '재미있었다' 고 이야기 할 수 없듯이... ㅋㅋㅋ

    PS. 내 홈피에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느낀 감동을 쓴 어처구니없는 감상문이 있음..니 졸업사진날의 사진도 볼 겸 들르드록! ㅋㅋ
  4. 비밀방문자
    2005/10/29 21:05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5. 하영
    2005/11/03 18:08
    나도 매우 감동받았다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영재의 비유 매우 맘에 드는데.
    9년전의 어떤 날이 9년 후의 어떤 날보다 더 재밌었다고 히야기할 수 없듯이..라..
    둘다 글을 참 잘써^-^







Jurassic 5

주절주절/음악 Posted at 2005/09/18 18:26
주라식 파이브. 요즘 들어 계속 귀에 꽂고 듣는 그룹이다.

아주 널리 알려진 그룹은 아니지만, 힙합음악을 즐겨듣는 사람들에겐 낯선 이름도 아니다. 난 이곳저곳에서 이름만 간간이 접했었는데, 전부 다 좋은 평가뿐이었던지라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 작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 우연찮게 시디가게에서 이들 이름이 달린 앨범을 발견하고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집어들었다. 그 앨범이 바로 [Jurassic 5 LP]였다.

Jurassic 5 LP

LA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이들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놨다는 곡 'Jayou'를 비롯해서 총 열세곡이 들어 있다. 러닝타임은 내 기억으론 50분을 밑도는, 짧은 앨범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앨범 길이가 아닌 법. 처음 시디를 꺼내들은 때부터 지금까지 시디가 닳도록 듣고 있다.

주라식 파이브의 음악은 요새 유행하는, 풍성한 사운드와 각종 비트로 무장된, 어찌 보면 과대포장이라고 할 수도 있는, 곡들과는 다르다. 간결한 비트에 오버하지 않는 깔끔한 랩을 얹어서 기름기가 전혀 없는, 그러면서도 절로 어깨춤이 나오게 만들만큼 흥겨운 음악이다.

Power in Numbers

[LP]에 한창 빠져있던 도중 그들의 두번째 정규앨범인 [Power in Numbers]도 샀는데, 역시나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기본적인 스타일의 틀은 변하지 않으면서 약간은 LP에 비해 무게가 더해졌다. 쓸데없이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듣는 이를 흥겹게 만드는 실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이들의 첫 정규앨범인 [Quality Control]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는데, 들어본 사람들의 말로는 [Power in Numbers]보다 더 나은 앨범이라고 한다. 실제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올라온 이들은 [Quality Control]로 메인스트림에서도 확실히 인정을 받았다고 하니 그 완성도를 짐작할만 하다. 방금 상아레코드에 주문을 넣었는데, 도착할 때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 맞다. 난 주라식 파이브 모자도 있다. 이걸 본 사람들이 로고를 보고선 제일제당(CJ)이네 어쩌네 하고 오해들을 하고 있는데, 이 기회에 확실히 밝힌다. 저건 주라식 파이브의 이니셜 'J5'를 디자인한 거다. -_-+


혹시라도 관심이 생겼다면, 그러나 덜컥 거금을 주고 앨범을 집어들기가 망설여진다면, 일단 'Jayou'부터 들어보시라. (소리바다에도 떠 있다) 3분이 채 안되는 짧은 노래지만, 내 생각엔 이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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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8 18:26 2005/09/18 18:26
  1. 비밀방문자
    2005/10/09 22:42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형사 : 듀얼리스트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5/09/17 17:24


보지 마라, 보지 마라. 절대로 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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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7 17:24 2005/09/17 17:24
  1. GS.
    2005/09/17 18:18
    수정하지.
    봤다하면 최고 아니면 최악이로군.
  2. 종현.
    2005/09/19 21:49
    어쩐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영화일 것 같다. ㅋ_ㅋ
  3. 영재
    2005/10/13 18:45
    ㅎㅎ
  4. 하영
    2005/11/03 18:11
    ㅎㅎ 강동원 얼굴만은 볼 만할 듯하던데. 예고편보니까







배트맨 비긴즈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5/08/07 15:17
처음에는 마이클 키튼이었다. 위로 치켜올라간 눈썹, 굳게 다문 입가에 패인 주름. 키튼은 결코 편안한 인상을 주는 배우가 아니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갈라져 나왔다.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는, 심기가 불편한, 불안정한 인간. 브루스 웨인에 그는 잘 어울렸다.

그 다음에는 발 킬머였다. 키튼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던 물론이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입술이었다. 알다시피 배트맨은 입술 빼고는 얼굴 전체를 가면으로 가리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브루스 웨인은 입술이 특이하기 그지없게 생긴 사람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만약 브루스 웨인이 발 킬머같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면, 정체를 숨기고 배트맨 짓을 하고 싶었다면 다른데는 다 드러내놓더라도 입술만큼은 반드시 가리고 악당을 때려잡으러 다니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브루스 웨인은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조지 클루니가 역을 맡았다. 키튼의 분위기 같은건 아무래도 좋았다. 킬머의 입술만 아니면 됐다. 그점에선 일단 클루니는 합격이었던 셈.
그러나 아무래도 브루스 웨인하고 클루니는 통 어울리지가 않았다. 가면을 벗은, 바람둥이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 역에는 어느정도 어울렸을지는 몰라도, 밤의 기사 배트맨에는 영 어색했다.
게다가 시커먼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버리기엔 이시대 최고의 미중년 클루니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2005년, 크리스찬 베일이 브루스 웨인으로 나타났다. 썩 괜찮다. 입술이 잘생긴 것도 큰 장점이고, 약간은 우수에 깃든 듯한 표정도 좋다. 마이클 키튼같은 배트맨이 다시 나타나는건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터. 그래도 크리스찬 베일은 브루스 웨인으로 흠잡을 데가 별로 없다.

...


처음에는 팀 버튼이었다. 고담시는 어둡고, 기괴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 다시 말해 팀 버튼의 전매특허 분위기(크리스마스의 악몽을 한번 생각해 보라) - 를 풍겼다. 배트맨은 만화를 통해 우리에게 낯익은 남색/회색/노란색의 타이즈 대신, 온통 시커먼 색으로 뒤덮였다.

그걸 조엘 슈마허가 이어받았다. 그는 고담시를 발랄한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번쩍이는 총천연색 복장을 한 로빈이 마침 등장했고, 배트맨도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덩달아서 그의 옷을 번쩍거리는(그리고 푸른색이 필요이상으로 가미된) 소재로 바꿨다. 도시 전체가 무슨 카니발이라도 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슈마허는 자기 스타일대로 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그 스타일이 배트맨 영화에는 꽝이라는 것. 슈마허는 [오페라의 유령]처럼, 총천연색의 화려함이 필요한 영화만 만드는 편이 낫다. (흑백의 현재를 호화찬란한 과거가 뒤덮어 버리던, 오페라 하우스에 빛깔이 되살아나던 그 인상깊은 첫장면을 생각해보라)

2005년, 슈마허의 손을 거치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던 배트맨 시리즈는 [메멘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에게 넘어갔다. 내가 [메멘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당연히 놀런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제발 박쥐씨를 살려내다오.


...놀런은 성공했다.


more.. (스포일러 주의!)



배트맨 시리즈는 부활했다. [배트맨 비긴즈]의 성공을 발판으로 앞으로 새로운 배트맨 영화가 계속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나로선 제발 크리스토퍼 놀런이 계속 감독을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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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7 15:17 2005/08/07 15:17
  1. kizna
    2005/08/07 15:34
    안녕하세요. 태터 센터에서 보고 들렀습니다.
    정말 좋았지요 비긴즈 ;ㅅ;
    저도 대사 반복하는 게 정말 너무 좋았던지라, 반가워서 답글 남깁니다 ^^
  2. onecent
    2005/08/12 16:26
    안녕하세요. 태터홈에서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비긴즈가 아마도 스타워즈를 제외하곤 올여름 제가 본 영화중 제일이 아니었을지. ㅎ
    써놓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대사 반복되어 나오는게 저거 말고도 몇개 더 있었던 것 같네요. 여튼 인상적이었습니다.
  3. GS.
    2005/08/12 23:03
    봤다하면 제일이야. -_-;
  4. 종현.
    2005/08/15 04:13
    그도 쟈니잉글리쉬와 익스트림OPS에게는 서슴지 않고 혹평을 퍼부어댔지. 그 거셈이 마치 쓰나미같았어.
  5. onecent
    2005/08/17 10:40
    GS./분명히 '스타워즈를 제외하곤' '올여름' 으로 한정시켰다고. 이건 오버하는게 절대 아니야.

    종현./2009 로스트메모리즈 이야기도 한번 들어볼테냐?
  6. 종현.
    2005/08/19 21:51
    한번 들어볼게. 시작해봐.







May the Force be with you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5/07/03 00:03

스타워즈 :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티저 포스터다.

제다이는 분노를 모를지어다.
증오도.

사랑도.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분노에 찬 제다이였다. 그의 분노는 결국 증오가 되어 들끓었다. 그리고 바로 사랑 때문에 그는 분노했고 증오했다.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요다가 한 그 유명한 말을 떠올려보자.
"두려움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으며,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득차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을 때 아나킨은 눈이 뒤집혀 날뛰었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 순간, 아련하게 제국의 테마음악 "The Imperial March"가 들려온다), 사랑하는 파드메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글자 그대로 '눈이 뒤집혀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사람이다.
분노하지 않고 증오도 없으며 사랑도 모르는 건 로봇이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건 보통 사람이 아니라 도사다.
말하자면 제다이는 죄다 도사들인 셈인데, 도사들만 줄줄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재미있을 리가 없다. 무슨 격렬한 사건이 있을리 없으며 모두가 다 원만하고 지혜롭게, 냉철하게 일처리를 해낼 테니 말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으음'하고 신음 약간 흘리고 마는 위대한 제다이 마스터 요다.
자기가 사랑한 제자가 악의 화신이 되어 제다이 학살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도 무슨 옆집 애들 싸움 보듯이 무심하게 '오, 더이상은 못보겠어' 라고 덤덤하게 내뱉고 마는 오비완 케노비. (만약 그 장면이 감정을 완전히 초탈한 제다이를 연기하려 했던 것이라면 이완 맥그리거는 훌륭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올해 골든 라즈베리상은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무조건 이완에게 낙점이다)

요다 카리스마 넘치는거야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우중충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어도 수염 한번만 만져 주면 우아함까지 묻어나오는 케노비가 매력적인 캐릭터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조연이기 때문에 멋져 보이고 위대해 보이는 것이다.
요다나 케노비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두시간 반짜리 영화가 나온다면 관객은 그야말로 곤욕을 치러야 할 거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요다의 도치법이나 케노비의 시니컬하면서도 우아한 영국 액센트를 들어 주는 것도 한시간이 한계다.

그렇기에 스타워즈의 주인공은 전편 삼부작이나 후편 삼부작이나 모두 '제다이 수련을 시작하기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은' 녀석들, 다시말해 사람의 감정이 이미 뿌리깊게 박혀있는 녀석들이 해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편 삼부작의 경우, 루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솔로가 더 인기가 많다. 누군가의 말처럼 "돈과 사랑에 움직이는" 솔로야말로 우리가 동일시할 수 있는 녀석이니까.)

[시스의 복수]는 감정이 증발해 버린 제다이들의 세계에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뒤틀린 감정이 폭발하면서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시스의 복수]를 세 번이나 봤는데, 볼 때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불쌍해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악의 화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야 한다. 팰퍼틴에게 무릎을 꿇는 아나킨을 보면서 도저히 "저 멍청한 녀석. 역시 내공이 부족했던게지" 라고 할수가 없다. 사실 내가 더 닮고 싶은 건 쿨함이 줄줄 흐르는 케노비였지만, 베이더의 분노가 절절하게 와닿았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케노비와의 동일시에 크게 흠을 낸 건 역시 이완의 '오, 더이상은 못보겠어' 였음을 밝혀둔다.)

베이더가 탄생하는 과정까지 다 지켜보고 나니 스타워즈 전체 스토리가 좀더 풍부한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쉭쉭거리는 숨소리만 들어도 모두들 벌벌 떠는 악의 화신, 조금만 맘에 안들면 원거리 목조르기에 들어가는 바로 그 다스 베이더가 아들 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허물어지는 게 이제는 얼마나 당연하게 느껴지는지.

게다가, 가면 때문에 베이더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는 게 얼마나 오묘한가.
베이더가 케노비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가 케노비의 포스를 느끼고는 "느껴본지 오래 된 포스다" 라고 말할 때. 그리고 마침내는 "내가 네 애비다" 라고 할 때까지.
그 암흑투구 속에 대체 무슨 표정이 떠올랐을까.

루카스가 미래를 꿰뚫어 보고 일부러 30년전에 베이더의 투구를 그런 모양으로 만들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베이더에게 무표정의 투구를 주었기 때문에 거꾸로 지금 시점에서 사람들은 그 투구에 아나킨의 표정을 마음껏 덧씌울 수 있게 되었다.

오비완과 다시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분노에 찬, 그러면서도 예전보다 더 여유가 있는 표정을.
루크를 앞에 두고 말할 때는, 파드메 앞에서만은 훨훨 타던 시뻘건 눈을 거두고 어린애같이 되어버리던 바로 그 표정을.

무표정의 투구 덕분에 전편 삼부작과 후편 삼부작은 3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아귀가 딱 맞는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4-5-6, 1-2-3 의 다소 이상한 순서에 따라 영화를 만든 건,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스의 복수]의 엔딩을 보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기 때문이다. [제다이의 귀환]의 엔딩에서는 '이제 정말 끝'이라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베이더와 루크, 레이아 (그리고 솔로)의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기에 [시스의 복수]가 끝났음에도 스타워즈는 끝이 아니다.

이거야말로 돌고도는 스타워즈의 세계관에 딱 들어맞는 엔딩 아닌가.

May the Force be with us all.


꼬리말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5/07/03 00:03 2005/07/03 00:03
  1. 영태
    2005/07/03 21:22
    우하하 꼬리말 너무 웃기는데요?
  2. GUNA.
    2005/07/04 01:19
    포스터 너무맘에든다.
  3. 영태
    2005/07/04 03:40
    지금 생각난건데 왠지 3번의 친구분 JAY형같다는 느낌이ㅋㅋ
  4. onecent
    2005/07/05 11:54
    GUNA/ 저 포스터 당시에 보고선 또 흥분해서 난리도 아니었더랬지. -_-;

    영태/ 틀렸다. 네가 아는 사람인건 맞다만. ㅎ
  5. 종현.
    2005/07/06 18:09
    영태 좀 맞자.
  6. Justine
    2005/07/08 20:38
    꼬릿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긴 하는데..
    2번항목에서 나이와 연기의 상관관계는 글쎄.
    사무엘 잭슨과 이언 맥디미어드는.... 한살차이인데? ^^;;
  7. 가넷
    2005/07/08 23:58
    오오~ 결국 올라왔구나~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구~ ^^
    4,5,6 덕분에 3편의 엔딩이 여운을 오래 남긴다는 건 정말 공감한다.
    1,2,3편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구.
    (영화관 안내원이 인상을 쓰고 바라보는데도 스탭롤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었지.)
    전반적으로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네가 지적한 단점에 대해 "아니야!!!!"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좀 아니라고 느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인정을...;;
    (그 이유가 대본 때문이었나...)
    후후후. 이건 빨리 빨리 써줬어야지~~ ^^
    (네가 이걸 빼먹지 않으리란 건 짐작했다만)
  8. onecent
    2005/07/10 13:19
    종현/ ..

    Justine/ 요다는 800살도 넘었잖습니까. 다들 어린것들 맞죠 뭐. 황제는 몇살이나 먹었는지 모르겠지만..그래도 명색이 시스 군주니 좀 먹긴 먹지 않았겠습니까;

    맥디미어드하고 잭슨하고 나이차이 진짜 안나는군요. -_-;

    ...그런데 써놓고 보니, 나이 많이 먹은건 윈두도 마찬가지일텐데; 요다가 윈두보고 함부로 어린녀석이라고는 못할듯.

    가넷/ 제가 처음 보러 간 날이 개봉일이었는데, 온 사람들이 죄다 팬들이었는지 시작할 때부터 박수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아주 신나게 볼 수 있었죠;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그 영화관에서 일찍 나간 사람이 열명이 채 안됐던 거 같은데; 하여간 대단했죠.

    이번 스타워즈가 여섯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편이 아니었을지.
  9. 이재학
    2005/07/27 00:57
    다스 시디어스가 다스 베이더의 아버지라는..
    미디클로리언인가 하는게 유전병이라 삼대째 내려오는거래
  10. 김건
    2005/08/07 17:48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느꼈던 것...사람마다 감동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

    누구나 훌륭한 작품에 명공연임을 인정하고 절절한 감동을 받았다고들 하는데, 여자친구와 함께 간 나는 정작 그리 큰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뭐, 주인공이 노래부를 때 소름이 끼친 적은 있었지만.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을 보고서도...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이 실망했었다. 웅재와 내가 우리나라 드라마 보면서 딴지걸기 식으로 막 말을 쏟아낼 때처럼 거의 모든 장면마다 마음속으로 딴지가 걸리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감동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왕이면 나도 감동을 느끼는 쪽이었음 좋겠다.

    근데, 웅재야 이런 글 써도 되남? ㅋㅋ
  11. onecent
    2005/08/10 14:11
    이재학/ 그건 네 유일단독설이잖아. 지지자를 찾아볼 수 없는 극소수설. -_-;;

    건/ 물론 이런 글 써도 되지. ㅎ
    흠. 근데 에피소드3이 흠이 역시나 이전 두편처럼 어설픈 구석이 많긴 해도; 엄청 드라마틱하지 않았나;;
    실망했다니 안타깝네_







[실미도] : 1월 5일, 메가박스 9관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관객수 천만명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던 [실미도]. 내가 봤을 당시는 천만명을 돌파한 시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화의 인기가 한창일 당시였다.

[실미도]는 썩 잘 만든 영화다. 다만 과연 이 영화가 관객 천만명을 넘는 최초의 영화가 되었어야 했는지는 좀 의문이다.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이 실미도보다 더 괜찮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동원에서 뒤진 것은, [올드보이]의 경우는 터부를 넘는다는 불쾌감과 잔인함이, [살인의 추억]은 연쇄강간살인이라는 소재의 끔찍함이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송강호설경구와 안성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안성기는 언제나와 똑같이 감정 없는 대사읊기를 했을 뿐이었고 송강호설경구는 배역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 유명한 '비겁한 변명입니다' 장면의 경우, 난 다시 볼 때마다 항상 그 어색함에 닭살이 돋는다) 송강호설경구의 배역을 정재영이 했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물론 정재영은 자신의 배역을 잘 소화했지만)
주요 배우들 중에서 가장 실감나게 연기를 펼친 건 허준호였다.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 : 1월 14일, 메가박스 1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33&ct1=1&ct2=1 참조.


[라스트 사무라이] : 1월 23일, 메가박스 6관
일본 천황의 거슬릴 정도로 서투른 영어, 그리고 사무라이 대장으로 나온 일본인 배우가 기억에 남는다.

말을 타고, 검을 뽑아들고 돌진하는 사무라이들과, 그들을 향해 무차별로 총알을 퍼붓던 기관총을 대비해서 보여 준 클라이막스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땀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밀어내는 차갑고 무신경한 기계.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쓸쓸히 내몰리는 주판이 떠올랐다.

기계가 결코 대신해줄 수 없는 것, 기관총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사무라이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런어웨이] : 1월 31일, 씨네씨티 5관
기대하지 않은 영화였는데, 그 탓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레이첼 와이즈(!), 존 쿠삭, 더스틴 호프만, 진 해크만 등, 등장하는 배우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뉴올리언즈의 낯익은 풍경 또한 반가웠고.

배심제의 약간은 새로운 측면을 알게 해 준 영화였다. 2004년의 화두 중 하나였던 배심제 논의와 맟물린 탓에, 이후 동아리 모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엔딩크레딧 때 나온 노라 존스의 노래도 기억에 남는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 2월 7일,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회고전을 할 당시 볼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영화평론가 김영진씨가 최양일 감독과의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최양일 감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알아주는 거장이었다. -_-;

영화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인물들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마음속 한켠으로는 쓸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판소리에 자주 등장하는 희극적인 비애가 바로 이러한 감정일 것이다. 분명 코메디의 성격을 가진 영화임에도 무턱대고 아무 생각 없이 웃어제낄 수는 없는, 그리고 한없이 진지할 수만도 없는, 오묘한 영화였다.


[태극기 휘날리며] : 2월 16일, 메가박스 3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39&ct1=1&ct2=1 참조.


잭 블랙과 멋쟁이 베이시스트


[스쿨 오브 락] : 3월 1일, 씨네씨티 7관
잭 블랙의 완벽한 연기, 영화와 잘 어울리고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사운드트랙, 락의 저항정신, 게다가 끝내주게 멋있는 베이시스트 역의 배우.

뻔한 스토리를 커버하고도 남는다.
이건 별 네개짜리.


[콜드 마운틴] : 3월 4일, 메가박스 9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0&ct1=1&ct2=1 참조.


[빅 피쉬] : 3월 14일, 메가박스 6관
팀 버튼스럽지 않으면서도 팀 버튼스러운 영화. [배트맨]이나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와 같은 음침함은 사라졌지만, 영화 전체에서 풍기는 환상적인 분위기나 CG를 사용하지 않은 독특한 소품들은 여전하다.

주인공의 아들은 아버지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그토록 알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진실은 사실 그 누구도 완전하게 복원해 낼 수 없는 것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우리는 모두 다 평범한 생선을 빅 피쉬로 둔갑시켜 머리속에 저장해 놓고 있다. 그리고 그게 우리에겐 진실이다.


[홍반장] : 3월 28일, 센트럴시티 5관
세상에서 제일 쿨한 비정규직 노동자 홍반장. 홍반장의 캐릭터는 분명 매력적이었지만(그리고 배우 김주혁은 마음에 들었지만) 영화는 그냥 그럭저럭 수준이었다.

정말 끝내주는 건 이 영화의 예고편이었다. 예고편 막판에 돌연 엑스파일의 성우들이 김주혁과 엄정화의 입모양에 맞춰 더빙을 하는데, 마지막 엄정화가(스컬리의 목소리로) 내뱉는 대사가 압권이었다.

"아니, 멀더 바래요?"

...이런 센스를 영화 내내 끌고 가 줬으면 좋았으련만.


[로젠슈트라세] : 4월 9일, 서울여성영화제
훌륭한 영화였다.
2차대전 당시 유태인과 결혼한 아리안 여성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홀로코스트는 분명 새로웠지만, 변함없이 가슴아픈 경험이었다.
로젠슈트라세에 모인 사람들이 '내 남편을 돌려줘!' 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는 누구라도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다.


[범죄의 재구성] : 4월 25일, 씨네시티 9관
아무리 한기주가 멋있네 어쩌네 해도, 박신양은 [범죄의 재구성]에서처럼 껄렁껄렁한 양아치 역을 할 때 가장 자연스럽다.

"애기야 가자" 보단 "습습 후후"가 더 그럴 듯하단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5월 5일, 메가박스 6관
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도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뜬금없는 제목에서부터 영화 내용에 이르기까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계속해서 뭔가 곱씹게 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뭐가뭔지 알고 나서야 그것에 대해 곱씹을 수 있는 법이니까)

바로 이런 경험, 이런 '무의미'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데 이 영화의 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유지태는 그렇다 쳐도 난 정말 김태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괜히.


[효자동 이발사] 5월 5일, 메가박스 8관
영화를 보고 나서 나오는데, 출구 앞에 웬 아저씨가 피켓을 몸에 걸치고 서 있었다. 전단지를 읽어 보니 자기가 진짜 박정희 머리를 깎아 준 이발사랜다. 박정희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쩌고 하는 내용이 써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별로 크게 주의를 기울이진 않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였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어쩌면 7,80년대를 살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더 이상 공감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발 물러선 시선으로 당시의 거지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격렬한 감정은 영화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나 역시 강한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5월 5일, 메가박스 11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3&ct1=1&ct2=1 참조.
이날 영화를 많이도 봤지만, 그 중에서 마지막에 본 [아라한]이 단연 최고였다. 그 덕에 기분좋게 집에 갈 수 있었던 듯.


[천공의 성 라퓨타] 5월 10일, 강변 CGV 7관
[라퓨타]는 이미 오래 전에 본 터였지만, 극장에서 상영한다길래 강변역까지 가서 봤다.

..전날 잠을 거의 못 잔 탓인지, 중간에 졸아버렸다. -_-

조 히사이시의 음악은 다시 들어도 훌륭했다.


[트로이] 6월 11일, 메가박스 8관

트로이를 보고 나서 헬스하기로 결심했다


"신들은 우리를 질투해. 우리가 죽기 때문이지."

유독 아킬레스의 저 대사가 떠오른다. (잘못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타이의 대모험]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아마도 포프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었을텐데, 밤하늘을 보다가 돌연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울음을 터뜨린 어린 포프에게 포프의 엄마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 수 있는 법.."

영생불멸한다면 그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이겠는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이야말로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하얗게 불태우며 살아갈 수 있다.

...아킬레스가 성문 앞에서 헥토르를 불러낼 때, 헥토르가 나올 때까지 굳이 그렇게 수십번 쉬지 않고 불러야만 했을까. 두어번만 부르고 그냥 기다렸어도 됐을 텐데.


[투모로우] : 6월 15일, 메가박스 1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9&ct1=1&ct2=1 참조.
...에미 로섬(!)의 출연작.


[슈렉 2] : 6월 21일, 메가박스 9관

가증스러운 고양이

1편을 보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프린스 차밍의 찰랑거리는 머리결을 슬로모션으로 잡은 첫장면부터, 끔찍하게 귀여운 당나귀와 용의 혼혈아들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시종일관 유쾌했다.

프린스 차밍이 재수없는 마마보이라거나, 대모 요정님이 사실은 음험하기 짝이 없는 아줌마라거나 하는, 1편에서부터 계속된 동화 패러디도 기발했다. 1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많았지만, 2편을 먼저 보고 1편을 나중에 본 나로선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두 영화가 내세우는 무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것을 먼저 보든지 나중에 보는 영화에서는 신선함을 덜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1편을 보면서 2편보다 특별히 뛰어난 점을 느끼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1편을 먼저 본 사람들에게는 2편이 약간 식상했던 것 아닐까.


[아는 여자], 6월 26일, 메가박스 9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53&ct1=1&ct2=1 참조.
[아라한]과 더불어 아마도 상반기 최고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스파이더맨 2] 6월 30일, 메가박스 1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5&ct1=1&ct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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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7 23:47 2005/01/07 23:47
  1. GS.
    2005/01/08 01:44
    오 재밌는걸. ㅎㅎ
    하반기도 기대된다. In크레더블 ㅋㅋㅋ
  2. 영태
    2005/01/08 16:21
    형 맨 위에 송강호가 아니라 설경구가 아닐까 하는데.ㅋㅋㅋ







프리드리히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드디어 다 읽었다.

니체. 유명한 철학자는 많지만, 니체만큼 인기많은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좌우명은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라고 한다. 이는 원래 니체가 한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아주 도발적인 말 - "신은 죽었다." - 이것도 니체의 작품이다.

영화 [투모로우 Day after Tomorrow] 에 나오는 한 장면.
지구의 기온이 급강하하는 가운데, 주인공 일행은 뉴욕의 도서관 안으로 피신했고, 그 안에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불을 지핀다. 도서관인만큼 땔감으로 쓸 종이는 넘쳐난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이 불길 속으로 던져지는 가운데 도서관 사서는 소중한 책이 없어지는 걸 보고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그러던 그가 어떤 책 하나를 붙잡고 '이것만은 태울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건 바로 니체의 책이다.

[도덕의 계보]가 내가 읽은 유일한 니체의 책이다. 그의 수많은 저서 중 고작 한권으로 평가를 내리는 건 성급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째서 사람들이 그토록 니체에 열광하는지, 무엇이 그토록 그를 매력적으로 만드는지를 알아채는 데는 이 한권으로 충분했다.

격렬한 문체로 세상을 홀랑 뒤집어엎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그의 글을 읽는 건 전율의 연속이었다. 그의 글은 감정적이고, 도발적이며, 분노에 차 있는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기에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힘에의 의지, 진정한 강함을 주장하는 사람답게, 그의 글에는 힘이 넘친다.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원한 자체가 창조적이 되고 가치를 낳게 될 때 시작된다 ... 고귀한 모든 도덕이 자기 자신을 의기양양하게 긍정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밖에 있는 것', '다른 것', '자기가 아닌 것'을 부정한다 : 그리고 이러한 부정이야말로 노예 도덕의 창조적인 행위인 것이다. ... 노예 도덕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반작용이다. 고귀한 가치 평가 방식에서 사정은 정반대다 : 그것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더 감사하고 더 환호하는 긍정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대립물을 찾을 뿐이다.

...원한을 지닌 인간은 정직하지도 순박하지도 않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지도 솔직하지도 않다. 그의 영혼은 곁눈질을 한다.

...그는 '나쁜 적'을, '악한 사람'을 생각해내고, 사실 그것을 근본 개념으로 거기에서 그것의 잔상 또는 대립물로 다시 한번 '선한 인간'을 생각해낸다 - 그것이 자기 자신인 것이다! ... 고귀한 인간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고귀한 인간은 '좋음'이라는 근본 개념을 먼저 자발적으로, 즉 자기 자신에게서 생각해내고, 거기에서 비로소 '나쁨'이라는 관념을 만들게 된다!

"보복하지 않는 무력감은 '선'으로 바뀝니다. 불안한 천박함은 '겸허'로 바뀝니다.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순종'(말하자면 그들이 말하는 자, 즉 이러한 복종을 명령하는 자 - 그들은 이를 신이라 부릅니다)으로 바뀝니다. ... 복수하지 않는 것이 복수하고자 하지 않는 것으로 불리고, 심지어는 용서라고 불리기까지 할 것입니다..."

-[도덕의 계보] 중 제1논문에서 발췌-


진정으로 삶을 긍정하는 것, 능동성을 획득하는 것, 반작용이 아닌 작용으로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고민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배경이 전부 칠해져서 동그라미만 남는 경우, 그리고 동그라미를 직접 종이 위에 칠하는 경우. 당신은 어떤 동그라미가 되고 싶은가?

나는 최소한 한번 더, 아주 꼼꼼하게,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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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1 23:19 2004/10/21 23:19
  1. 하영
    2004/10/23 00:09
    니체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난 차라투스트라..이거 한 권 읽었는데 완전 망치로 한대 맞은 것 같았어..>.<
  2. 가넷
    2004/10/24 16:53
    이런... 니체를 너무 일찍 만난 거 아니냐...
    난 아직 제대로 읽은 책이 하나도 없어. 이해도 안되고. -_-;;
    도덕의 계보... 니체가 기존의 도덕관념을 붕괴시킬 역작이라고 한 만큼 꼭 읽어봐야겠다.
  3. 가넷
    2004/11/01 00:13
    아직 시험 안 끝났니?
  4. onecent
    2004/11/02 23:06
    하영/ 차라투스트라는 읽다가 집어던졌었는데;; 지금 한번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들고 있긴 하지. ㅎ

    가넷/ 시험은 끝난지 꽤 됐어요; 제가 그동안 게을러서 답글에 답을 안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_- (면목없습니다)
    [도덕의 계보]는, 아직도 수업시간에서 계속 다루고 있는지라 여러 번 읽고 있는데, 정말 읽을수록 감탄하게 되는군요. 물론 처음 읽을 때의 충격의 대단함은 말할 것도 없고;
  5. 이경호
    2004/12/04 17:19
    니체의 철학은 참 멋지긴한데
    그가 불러온 역사적인 파장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그들이 천박한 이해를 가진 니체주의자였더라도)

    뭐 실존주의 모두가 지는 멍에이겠지만.
    실존주의적 실험의 결과물.
    그 이름은 파시즘.







책껍질

주절주절 Posted at 2004/09/27 20:19
하드커버 책은 보통의 경우 빳빳한 책껍질로 싸여져서 나온다. 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책의 진짜 표지(말 그대로 '하드'한 '커버' 부분)와는 달리 책껍질은 화려한 디자인으로 책을 더 멋지게 보이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딱딱한 책의 표지에 이것저것 색을 넣고 꾸미는 것보다는 종이에 디자인하는 게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책은 페이퍼백, 즉 문고판보다는 하드커버(양장본)을 더 좋아한다. 손에 잡히는 묵직한 느낌 때문에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우쭐한 기분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문고판을 쥐고 있을 때보다 진지하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에 독서하는 마음가짐을 잡는 데도 양장본이 더 낫다.

손에 잡히는 느낌만 놓고 보자면, 껍질을 벗기는 편을 더 좋아한다. 미끌미끌한 종이의 감촉보다는 딱딱한 커버의 오돌토돌함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쥐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으면 책을 더 많이 쥐고 있으려 들 테고, 많이 쥐고 있으면 자연히 그 안에 써져 있는 글씨를 들여다보는 시간도 늘어날 테니 꿩먹고 알먹고인 셈이다. 그래서 난 하드커버를 읽을 때는 껍질을 벗겨놓는다. 그렇지만 껍질도 책의 일부요, 책을 온전히 보관하고 싶은 마음도 크기 때문에 읽지 않을 때는 다시 껍질에 싸둔다.

그런데 그렇게 껍질을 벗겼다 씌웠다를 하다 보면, 정말로 껍질을 벗긴 편이 훨씬 더 예뻐서 내내 벗겨놓고 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책의 껍질에는 디자인이 잘 되어 있지만 속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 밋밋하기 그지없는 책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책세상에서 나온 니체 전집 중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다. 껍질은 빨간색 바탕에다 니체 얼굴도 그려넣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 같지만, 멋지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정말 멋진 건 껍질을 벗긴 겉표지다. 회색 바탕에 선명한 빨간색으로 책 제목, 전집 권수, 출판사 이름을 새겨 놓았다. 회색과 빨간색의 조화가 그렇게 예쁠 수 없다. 전집을 전부 모아서 껍질을 벗긴 상태로 꽂아 놓으면 보기만 해도 흐뭇할 것 같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프로이트 전집은 책세상 니체전집과는 정반대의 경우다. 프로이트 전집의 경우 껍질이야말로 멋진 디자인을 자랑한다. 전집의 각 권마다 프로이트의 각기 다른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매 권마다 한가지 톤의 색깔을 사용했다. 화가 고낙범씨가 특별히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껍질의 그림들만으로도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껍질을 벗겨놓고 나면 김이 빠진다. 밋밋하기 그지없는 아이보리색 바탕에, 흰색으로 글씨를 새겨놓았다. 바탕색과 글씨색이 비슷해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니체전집처럼 색 배합만 잘 해도 얼마든지 예쁜 책을 만들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

그런가하면 이런 책도 있다. 박영사에서 펴낸 소위 말하는 法書라는 것의 하나다. 껍질 디자인이 화려하지도 않고 멋대가리없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교과서를 휘황찬란하게 디자인할 필요도 사실 없고, 내용은 딱딱하기 그지없는데 껍질 디자인만 발랄하면 그 또한 이상하다. 그냥 일관성있게 딱딱한 편이 차라리 낫다. 그러나 껍질을 벗겨 보면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정면에 책 이름도 안 써놨다. 측면에 책 이름과 저자, 출판사 이름이 찍혀 있긴 하지만, 대체 왜 책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면에는 아무것도 안 써놓은건지?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건가?

때문에 난 법서는 꼭 껍질에 싼 채로 비닐로 한번 더 싸서 들고 다닌다. 자주 들춰보고 들고 다니고 하다 보면 책이 쉽게 닳기 때문에 비닐로 한번 더 싸 주는건 필수다. 비닐로 싸는 대신, 어차피 너덜너덜해지는 껍질을 벗겨버린 채 들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지만, 껍질 벗긴 모양이 저래서야 그렇게 할 마음이 안생긴다.

이 책은 나남출판에서 나온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인데, 상당히 독특하다. 껍질을 씌워놓으나 벗겨 놓으나 디자인에 전혀 차이가 없다. 특이한 건 분명하지만, 저렇게 하드커버에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었는지는 몰라도 커버 표면이 매끈하게 처리되어 있다. 하드커버 특유의 질감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니 저 책도 그냥 껍질 싸 놓은채로 읽는 편이 낫다.

사실, 책은 그 안에 든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요, 표지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다. 그렇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책이 예쁘면 아무래도 손이 더 가게 마련이고, 어차피 읽을 거라면 멋있는 책이 기분이 더 좋은 건 당연하다. 하드커버 책껍질을 벗겨서 읽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출판사들이 니체전집처럼만 책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그다지 힘든 것도 아니다. 색깔 배합을 잘 고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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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7 20:19 2004/09/27 20:19
  1. 어차피양-ㅗ-
    2004/09/27 20:48
    저는 책을 험하게 다루는 편이라 책을 사고나면 항상 껍질을 벗기는 편인데, 제가 산 책중에는 안이 예쁜게 별루 없더라구요. 출판사들이 껍질 안에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런데 법서를 읽으시다니, 법학생이신가 봐요.
  2. onecent
    2004/09/28 21:31
    어차피양-ㅗ-/ 정말 출판사들이 껍질 안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책읽는 사람들한테는 참 좋은 일일텐데 말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매출이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죠. 그리고, 저는 법학생이 맞긴 맞습니다.
  3. 초학구파
    2004/09/30 03:31
    에크리 하드커버에 대한 기대감을 저런 식으로 표출하는건가.
  4. 딸기
    2004/11/05 21:53
    난 책표지 집착쟁이야. 책이든 노트든 귀퉁이 해지는 건 절대절대 못 참아. 그래서 속이 아무리 예뻐도 꼭!껍질이 있어야 해~
    근데 저 헌법학은 정말 너무하지 싶다;; 한번도 벗겨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네~
  5. 이경호
    2004/12/04 17:15
    디자인 계열인 일본이 강국.
    하지만 정작 일본 책 중에 하드커버책은 그 미칠듯한
    가격의 압박으로 살 일이 없다는게
    (아니 불가능하다는게 좀 더 사실적이겠군)
    슬프다고나 할까;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2

권위주의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된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더 발전했는가? 만약 아니라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다시 말해, '왜 한국의 정치는 개판인가?' 라는 물음의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핵심적인 갈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 구조야말로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당들은 이념적으로 전혀 차이를 가지지 못한다. 단지 권력을 쥐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쟁은 이념이나 사회적 균열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지 않는다. 권력을 누가 차지하는가, 권력 획득에 실패한 다음에도 내 밥그릇이 보장될 것인가만을 놓고 죽을동 살동 덤벼들게 된다.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갈등축이 뭔지 따위는 관심사 밖이다. 어차피 그들이 아닌 다른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국회에 있지도 않으니까.

최장집 교수는 외국의 이론을 많이 소개하고 그것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정치현실을 설명해 낸다. 한국 정치의 기원이 무엇인지, 어디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단추를 다시 제대로 끼울 것인지까지 그의 논리는 명쾌하고 설득력이 있다. 산만하게 떠돌던 내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명료화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간을 두고 열심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책의 결론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해결책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제대로 된' 이해와 수용이다. 이런 사람을 사상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시끌벅적 떠들어댔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만약 우리가 갈등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사회의 어떤 집단이 경쟁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p.152)

"한국의 정당은 갈등을 동원하고 사회화하기는커녕 있는 갈등도 무시한다." (p.211)

"갈등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엔진'인 것이다." (p.213)

'남남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남남갈등'이 없는게 바로 문제다. '상생'의 구호를 앞세워 갈등을 덮어버리려고만 드는 행태야말로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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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5 14:18 2004/08/25 14:18
  1. 이경호
    2004/08/25 18:23
    사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내가 생각하기로는
    상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제도인 것 같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정체에 있어서
    최후의 발전 형태라는둥, 역사의 종말이라는둥하는 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계속되는 경제성장이라는 요인이 민주주의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통합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겠지만.. 과연 우리가 돌입하는 세기의 경제
    상황에 미루어 볼 때 민주주의의 황금기가 유지될지는
    의문스럽기도 하다.
  2. onecent
    2004/08/26 00:25
    민주주의가 한정된 상황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제 역시 그 밑바탕에는 수많은 노예의 노동이 자리잡고 있었던 일. 그리고 사실 엄밀히 말해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정말 시민들 전부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지. 대의제도하에서 움직이는 한 한계를 이미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니까. 따라서 민주주의가 정체에 있어서 최후의 발전 형태라는 데는 나 역시 동의하지 않아. 끊임없이 더 나은 제도를 모색해 가야겠지.

    그렇지만 위 글에서 언급한 글처럼 나 역시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인 척하면서 실상은 그와 전혀 다른 현재의 상황을 개선해 나가야겠지.

    그러고 보니 전에 네가 대중조작의 용이성 등을 언급했던 부분과 민주주의에 대한 경계가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대안적 정치형태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겠군.
  3. 박민재
    2004/09/14 00:28
    아악~~어렵게 느껴져요,,

    흠,, 저도 이제 이런 책도 관심을 갖고 읽어 봐야겠네요,,
  4. onecent
    2004/09/18 11:28
    민재// 읽어볼 만한 책인듯. 한번 시간내서 읽어봐 ㅎ
  5. 김건
    2004/11/01 00:01
    나도 막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를 다 읽었다.
    난 읽으면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상당부분 최장집 교수의 견해와 일치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최교수가 노정권을 최근에 강하게 비판했다니 내가 책을 잘못읽은 것인지..원

    최교수가 제시하는 분석의 큰 틀에는 동감하는데 노동의 정치참여라든지 보수언론의 권력화 등의 명제가 실제로 어느정도의 사실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또 가질지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고 판단하기가 어렵구먼.
  6. 김건
    2004/11/01 00:03
    근데 트랙백으로 걸려 있는 곳에 가서 퍼오려는데
    블러그처럼 흔적을 자동으로 남길 수도 없고.
    괜히 몰래 복사하는 느낌만 드는군. 그냥(펌)이라고 붙여야 하나?
  7. onecent
    2004/11/02 23:12
    최근에 최장집교수가 현 정권에 대해 쓴 글은,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음. 인터넷에도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조만간 찬찬히 읽어 봐야지.

    결국 노무현정부도 우리사회의 진정한 갈등구조를 포착하고 표면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최장집씨는 비판하는 것 아닐까 싶긴 한데. 확실히 정당에 의한 갈등축의 표면화라는 점에선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게 없는 듯.

    보수언론의 권력화에 관한 부분은, 물론 나도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 주는 자료를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읽으면서 상당히 설득력있게 다가왔었는데. 거대언론의 영향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분명 유효하지 않을까.







쓰리, 몬스터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4/08/24 13:20
"그 작품이 생겨난 시대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제기된 문제를 가장 극단적으로 다루는 책"이 고전이다. (이곳에서 따옴)


그렇다면 쓰리, 몬스터도 고전이 될 만한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세 편 중에서 두번째 영화는 잘 모르겠지만, 첫번째와 세번째 것의 경우는 적어도 우리 시대의 문제가 반영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시대의 '가장 극단적으로 제기된 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는 좀더 생각해 봐야겠군.

관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건 쉬운 일이다. 피를 스크린에 동이째로 쏟아부으면 된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을 몸서리치게 할 수 있느냐이다. 피는 필요한 만큼만 튀기면 된다.


[+] http://blog.naver.com/greyrain.do?Redirect=Log&logNo=60005039919
[쓰리, 몬스터]의 제작에 대한 이야기. 미리 알고 봤으면 좀 더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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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4 13:20 2004/08/24 13:20
  1. 예지.
    2004/08/24 19:34
    이 영화.은근히 계속 생각난다는..
    감각적인 묘사가 너무 강해서 그 때는 거부감이 강했지만
    거부감이 줄어드니까 남는 내용이 많더군요ㅎ 어쩌면 감독의 의도가 이거 였을지도.. 충격만 받고 금새 잊곤 하는 요즘 수박 겉핥기 식의 뉴스를 풍자하는걸지도.?
  2. onecent
    2004/08/26 00:29
    충격만 받고 금방 잊어버리는 요즘의 세태를 풍자하려고까지 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 요즘의 자극적인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감각이 무뎌진 것이 이 영화가 필요 이상으로 잔혹해질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가 되긴 했겠지. 어지간히 피를 쏟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눈하나 깜짝 안 할거라는 걸 감독들도 잘 알고 있을테니.

    나도 이 영화, 천천히 곱씹어보고 있는 중인데, 실제로 괜찮은 점도 많이 발견하고 있는 중. 여전히 박찬욱 감독이 만든 첫번째 영화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고. '너는 부자에 능력도 좋으면서 왜 착하기까지 한거야'라는 질문이 은근히 날카롭다니까. 물론 정작 극장에서는 그 이후 줄줄이 이어진 그로테스크함에 질려서 잠시 그 질문을 잊어버리기까지 했지만(과도한 잔혹함의 폐혜).







http://www.usatoday.com/sports/columnist/oconnor/2004-08-21-oconnor-hamm_x.htm

"There's no shot clock on justice."


많이 와닿는 말이다.(시효제도가 어쩌구 한다면 -_-;)

아메리카 입장에서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 개판친 경험(사실 위 기사에서 그들이 자각하고 있는 건 오노 사태가 아니라 북미 연합전선으로 캐나다에게 피겨스케이팅 공동금메달을 따게끔 해 준 일이지만)도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같이 명백한 오판 케이스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욕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

'국가간 무한경쟁터'인 올림픽에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따야 할 금메달을 빼앗겼느니 어쨌느니는 난 관심없다. 분명히 오판이 있었고, 양태영 선수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 '인간 양태영'은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한다. 그게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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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2 23:17 2004/08/22 23:17







A Tribe Called Quest

주절주절/음악 Posted at 2004/08/18 22:27
어제부터 정신없이 듣고 있는 앨범. A Tribe Called Quest 의 베스트 앨범 [Anthology]다.

90년대에 활동했고 지금은 은퇴한 그룹. 힙합 음악으로 치면 초창기에 이름을 날렸던, 말하자면 고전이 된 그룹이다. 이름은 몇번 들어 봤지만 그들의 음악을 접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그러나 요즈음의 복잡한 사운드에 비하면 담백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왜 그들이 위대하다고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요즘은 요란하지 않고 좀더 단순한 스타일의 음악에 더 끌린다. Gang Starr 는 정말 최고.


[+] 플레이리스트에 A Tribe Called Quest 의 곡을 하나 추가. 덤으로 Rakim의 곡도 하나 넣었다. Rakim의 곡은 Gang Starr의 DJ Premier가 만든 것. Battle과 잘 비교해서 들어보면 확실히 같은 사람의 색깔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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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8 22:27 2004/08/18 22:27
  1. J.
    2004/08/23 23:58
    으앗 A Tribe Called Quest.. !!
    Q-Tip 솔로 작업물들도 물론 나쁘지 않지만
    역시 ATCQ시절이 좋았지. 요즘은 뭐하나 녀석..
  2. onecent
    2004/08/26 00:32
    전 ATCQ 요즘 새롭게 접해서 듣고 있긴 합니다만, 매력적인 것만은 틀림없네요. 베스트 앨범 말고 정규앨범을 구하고 싶은데 가는 곳마다 품절이니 이거야 원.

    사실 이 앨범하고 Gang Starr 베스트앨범을 같이 샀는데, 저는 Gang Starr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두 그룹의 스타일이 비슷한것 같기도 하지만..스크래치가 많이 이용된다는 점에서 갱스타가 더 멋지군요. ㅎ







아마데우스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4/07/29 23:45
걸작이란 건 바로 이런 영화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세시간짜리를 만들려면 이 정도 수준으로는 만들어라!

어이, 거기 허접스런 시나리오 갖고 두시간 반 중의 절반을 슬로모션으로 때우는 감독들. 가서 밀로스 포먼에게 한 수 배우고 오라. 다섯번째 별은 바로 이런 영화를 위해 남겨놓는 것.




Mediocrity is everywhere!

나는 평범하다. 그러니 고개를 숙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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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9 23:45 2004/07/29 23:45
  1. 가넷
    2004/07/31 09:55
    크흑...!!!
    dvd 산거야? ㅠ_ㅠ 이 영화 정말 끝내주지?
    정말 어렸을 땐 지겨워서 못 보겠던데 몇 년후 다시 tv에서 할 땐 감동 100배...
    dvd 살테다!! 꼭 살테다!!!
    (mbc에서 할 때 성우 배한성씨의 연기도 꽤나 멋졌지...
    더빙도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2. onecent
    2004/08/01 16:34
    네; 디비디 구해서 봤습니다. 보니까 SE와 일반판 두 종류가 있던데.. 나온지 꽤 돼서 그런지 SE는 거의 대부분의 쇼핑몰에서 품절이더군요. 그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재고가 남은 곳을 발견해서 사버렸죠. (그래서 할인혜택은 별로 못봤습니다만;)
    더빙판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모짜르트나 살리에리나 정말 연기하기 쉽지 않은 배역일텐데..







그래, 이제 확실해졌다. 주인공은 헤르미온느다. 책에서라면 비중도 압도적이고 표지도 자기 혼자 독식하니까 포터씨를 주인공으로 인정해줄 수 있다고 해도, 대단히 죄송하오나 영화에선 아니다. 자, 어서 빨리 포스터 가운데자리를 내놓으라 이거야.

그래, 역시 주인공이 가운데에 있어야..


이미 1편과 2편에서부터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가 엠마 왓슨을 위한 것이었음은 분명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오버를 한 건 3편에서 어느 때보다 헤르미온느의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2편에서는 중간에 석화되어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깨어날 때까지 제대로 출연하지도 못하는 불운을 겪었었다. 이번에도 포터씨 주변의 누군가 앓아눕긴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론이고, 그 덕에 헤르미온느의 출연시간에는 영향이 없다. 그래, 저번에도 네녀석이 석화되었어야 했어.

이제 영화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스포일러 주의!)


엠마 왓슨과 알폰소 쿠아론


새 감독 덕택에, 내년에는 해리 포터 영화도 (엠마 왓슨 이외의 뭔가를)기대하면서 보러 갈 수 있게 됐다. ★★★★

+덧붙이기 : 확인한 바에 의하면 4편은 쿠아론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쩝. 그냥 계속 맡았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뭐 에일리언 시리즈처럼 감독마다 어떤 식으로 개성을 드러내나를 보는 것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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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21:08 2004/07/26 21:08
  1. 종현.
    2004/07/27 10:00
    "page three hundred and ninety-four" 이 말 왠지 이상하게 긴장감있어. 리듬감도 예술이고.
  2. 하영
    2004/07/28 23:18
    왜 헤르미온느가 주인공이야? 난 해리포터맡은애가 조아..ㅠ_ㅠ
    얘 크니까 더 맘에 들어..+_+
    아아~해리포터 보구싶당..^_^
  3. 하영
    2004/07/31 23:37
    아아..나 오늘에야보구왔당..ㅠ_ㅠ
    니꺼 보니까 내가 몰라서 지나쳐버린 부분들이 너무 많네..;;
  4. onecent
    2004/08/01 16:35
    나도 한번쯤 더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과연 다시 보러 갈지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나도 다시 보면 처음에 놓친 부분들을 더 많이 발견해낼 수 있을텐데. ㅎㅎ
  5. onecent
    2004/08/01 16:36
    아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해리포터 녀석따위야 헤르미온느에 비하면.. -_-; 그녀석의 출연시간을 전부 헤르미온느에게 헌납해 버렸으면 하는게 내 솔직한 심정; ㅎㅎ
  6. nymphwitch
    2004/08/07 10:11
    울집에서는 나랑 내동생 빼고 두 분은, (그러니까 부모님이)
    헤르미온느 못생겨졌다고 하시더라.
    놀랐음-_- 과연 미의 기준은 다른게야.
  7. onecent
    2004/08/07 19:53
    흠. 못생겨'졌'다는 평가니까.
    미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그리 크게 다른 건 아니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ㅎㅎ
    헤르미온느 인기는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모양이던데.
  8. 아..진짜 기분 나쁘네..
    2005/01/17 00:03
    아..진짜
    맥컬리 컬킨이 어때서..!
    기분나쁘네...
    맥컬리 컬킨 지금 잘 먹고 걔네들보다도 더 잘살고 300억도 넘는 부자에다 밀라 쿠니스 헐리우드 스타랑 결혼하고 마약해도 무죄 판결 나고 그딴식으로 사람 비하시키면 안되지..
  9. onecent
    2005/01/17 12:55
    [론이나 말포이가 너무 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즘 애들이 그렇게 빨리 크는 건 별 수 없는 일. 기본적으로 성장 스토리인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언제나 말포이가 1편에서의 그 조그만 꼬마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이제 말포이는 상당히 끔찍해져 버렸지만 -_-;) 그나마 주연 배우 세사람이 말포이나 맥컬리 컬킨처럼 나쁜 쪽으로 환골탈태하지는 않은 걸 고마워해야 한다.]

    사실 윗분의 댓글을 보고 놀라서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만, 확인해 본 결과 맥컬리 컬킨에 대해 언급한 건 위에 인용한 저 부분의 한줄이 전부입니다.

    사실, 전 맥컬리 컬킨을 '비하'할 의도도 없었고 그 사람을 무시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나홀로 집에] 시절의 귀여운 소년이 나이가 들면서 너무나도 빨리 그 어린 시절의 모습과 달라진 걸 말하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글 쓰신 분께서 '나이가 든 맥컬리 컬킨도 예전 못지않게 귀엽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저로선 어린 시절의 맥컬리 컬킨이 훨씬 마음에 드는 게 사실입니다.

    '나쁜 쪽으로 환골탈태'했다는 건 스크린에 비쳐지는 모습, 그러니까 철저히 외모에 관련된 부분에 한해서 한 말입니다. 실제로 글의 문맥상으로도 어린 배우들이 성장하면서 외모가 변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맥컬리 컬킨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니 오해의 소지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맥컬리 컬킨이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가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저는 글 본문에서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맥컬리 컬킨이라는 '사람'에 대해 제가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셨다면 그건 글 쓰신 분의 오해입니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습니다만, 요약하자면 1)저는 글을 쓸 당시 맥컬리 컬킨을 '비하'시킬 의도로 저 문장을 쓴 것이 아니며, 2) 그러한 의도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 사실 언젠가 맥컬리 컬킨이(물론 이제는 성년이 된 맥컬리 컬킨입니다) 무슨 연예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하는 걸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최근 근황 등등을 다룬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간' 맥컬리 컬킨에 대해서는 호감만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여전히 어린시절 맥컬리 컬킨이 '외모'는 더 호감이 가는게 사실이었습니다만)







킹 아더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4/07/26 02:01
그렇다. 난 처음에는 이 영화를 꽤나 기대하고 있었다.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4&nc=1&ct1=2 참조) 비록 막상 개봉한 후 들려오는 이야기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들이라서 기대치를 낮추긴 했지만.. 그래도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온다는데. 안 볼수야 없다.

그러나...


안 볼 걸 그랬다.

왜냐고? (스포일러 주의)


영화비가 아까운 영화다. 그러면 디비디로 봐야 할까? 문제는 이 영화의 그나마 나은 요소 중의 하나가 큰 스케일이기 때문에 디비디로 봤다간 그마저도 잃게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냥 아예 안 보는 게 여러 모로 좋다. 물론, 키이라 나이틀리 때문에 어떤 것을 감수하고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도 차라리 [캐리비언의 해적]이나 [슈팅 라이크 베컴]을 한 번 더 보는 쪽을 권한다. ★

그래, 가끔 나쁜 영화 찍을때도 있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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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6 02:01 2004/07/26 02:01
  1. 수지.
    2004/07/26 02:50
    얼마나 혹평을 하셨나 궁금해서 와봤더니 -_-ㅋㅋ
    "내내 개폼을 죽어라 잡아대던 적 두목에게 웅장한 대검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더니만, 가슴팍에 종이로 벤 것같은 상처가 나서 피가 조르륵 조르륵 흐르며 죽는 모습이라니"
    이거 진짜 명문장인데요ㅋㅋ 조르륵 조르륵~ +_+
  2. onecent
    2004/07/26 23:30
    지금 보니까 약간 지나치게 혹평을 한 듯도 한게;;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열라 재미없었던 건 분명해.







드디어 공개되었다!

장대한 서사시의 마지막을 장식할 스타워즈 에피소드 3편의 부제가 결정된 것이다 : 'Revenge of the Sith.'

번역을 해보자면 '시스의 복수' 정도가 된다. Sith는 포스의 다크 사이드를 대표하는 녀석들을 일컫는 말이다. 선한 세력을 대표하는 Jedi에 대응되는 녀석들, 쉽게 말해 '나쁜놈들'이다.

시스가 무슨 뜻인지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스'란 단어를 다른 말로 대치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에피소드 6 : Return of the Jedi 를 '제다이의 귀환'으로 번역했던 점을 돌이켜본다면 이번에도 '시스의 복수'라고 그대로 밀고 나갈 것 같긴 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편이 일관성도 있고 더 좋다)

이걸로 총 여섯 편의 에피소드의 부제는 모두 다 정해졌다. 내용에 따라서 처음의 스타워즈 삼부작(에피소드 4,5,6)을 하나의 묶음으로(편의상 1부라고 부르자), 그리고 나중의 스타워즈 삼부작(에피소드 1,2,3)을 또 하나의 묶음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각 에피소드의 부제는 대칭을 이루면서 순환되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1부: Ep.4 새로운 희망(발단) - Ep.5 제국의 역습(전개,위기) - Ep.6 제다이의 귀환(절정,결말)

2부 : Ep.1 보이지 않는 위험(발단) - Ep.2 클론의 습격(전개,위기) - Ep.3 시스의 복수(절정,결말)

(각 에피소드들의 원제목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9&nc=1 참조)

에피소드 6이 처음에는 '제다이의 복수'로 제목이 정해졌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순환의 구조는 보다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는 비단 부제에서만이 아니라, 영화의 내용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아나킨과 루크 부자는 분명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쳐 간다. 그러나 그들의 일생이 겪는 모습은 구조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결과는 판이하다. 아나킨의 성장의 종착점은 시스 전사였고, 그 결과는 제다이의 몰살과 세계의 파멸이었다.(선악구분이 뚜렷한 스타워즈의 세계에서 시스의 승리는 곧 세계의 파멸이다) 그의 아들 루크는 제다이 기사로 성장을 완성해냈고, 그는 시스를 몰아내고 다시금 포스의 균형을 가져온다.

이와 같은 순환의 세계관은 신화학자 조세프 캠벨의 영향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조세프 캠벨은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드는 데 상당한 조언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순환하지만 똑같은 일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닌, 변화하면서 이전 단계를 끌어안아 변증법적으로 발전을 이루는 세계관이 바로 스타워즈 저변에 깔린 틀인 것이다. 아나킨은 그 가공할 만한 능력을 주목받았고, 사람들은 불안정한 포스의 균형을 이루어 낼 예언의 인물이 바로 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체로 불안정한 사람이었고, 결국 다스 베이더가 된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포스의 균형을 이루기는커녕 혼돈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루크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유일한 희망이었고, 그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결국은 시스를 절멸시키고 포스의 균형을 가져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분명 에피소드 1에서 아나킨을 발견해 낸 콰이곤 진은 아나킨이야말로 예언에서 말하는 그 사람이 틀림없다고 장담한다. 아나킨이 기대와 달리 다스 베이더가 되어 제다이를 몰살시키는 주역이 되었을 때, 콰이곤의 예견은 완전히 빗나간 것처럼 보인다. 예언의 인물은 아나킨이 아닌 루크였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좋은 것일까?
루크는 결국 아나킨의 분신에 다름 아니다. 루크가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수 있었다면, 그것은 암흑의 정점에 딴 사람도 아닌 바로 그의 아버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무적, 최강의 전사 다스 베이더가 세계 유일의, 최후의 제다이에게 "아임 유어 파더"라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루크는 아나킨이 길을 잘못 들은 것을 바로잡아 주는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루크가 제다이로서 팰퍼틴과 맞서 싸우긴 했지만, 마지막에 팰퍼틴을 죽인 건 베이더였음을 기억하자. 아나킨은 자신이 시작한 일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마무리지었다. 포스의 균형을 가져온 것은 바로 그였다. 아들을 통해 암흑에서 돌아온 아나킨, 베이더의 가면을 벗고 숨을 거둔 바로 그 아나킨이 예언의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피소드 3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 이미 결말은 모두가 알고 있다. 아나킨의 증오가 폭발하고, 그는 검은 가면을 쓰고 베이더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최후의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파국이다. 가슴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스타워즈에 대한 좋은 기억들(다시 말해, 에피소드4~6의 기억들 -_-;)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은둔한 요다와 오비완, 삼촌과 사는 루크, 입양된 레이아. 그 모든 것은 아나킨이 베이더로 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대가 큰 만큼 불안감도 크다. 에피소드 1과 2는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루카스의 연출력은 형편없었고, 대사나 스토리라인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었다. 에피소드 1, 2를 그나마 끌고 나간 건 과거의 기억들이다. 쓰리피오와 알투디투, 요다, 젊은 오비완, 광선검, 제국의 테마음악. 옛날 스타워즈 시절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새로운 스타워즈 영화들에는 흥미로운 게 없었다. 에피소드 3마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봐 루카스, 당신이 역부족이라면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라도 물건을 한번 만들어 달라 이거야. 전혀 감정이입도 못하는 엔싱크같이 생긴 녀석이 닭살돋는 대사를 내뱉고 고뇌하며 베이더가 되는 걸 연기하는 건 보기 싫다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잖아, 안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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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5 19:48 2004/07/25 19:48
  1. 영태
    2004/07/26 00:10
    아아 아나킨의 청년모습이 최초로 등장하는 에피소드 2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ㅜ.ㅠ 결국 2에서 볼것은 요다씨 최초의 맞짱 뿐
  2. onecent
    2004/07/26 23:28
    음. 진짜로 에피소드2에선 요다 뿐이었어. -_-;
    한가지 더 있다면 제국의 테마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는 것 정도일까나.
  3. 가넷
    2004/07/28 14:17
    오오오!!! 어젠가 그저껜가 AFKN 라디오 듣고 있으니 스타워즈 얘길 하더라구.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애들 둘이서 무지하게 흥분하더라...;;;
    어쨌든 기대해봐야지 어쩌겠어...
    언제 날잡아서 에피소드 4, 5, 6이나 다시 볼까...







아는 여자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4/07/21 16:22
지하철역에서 처음 [아는 여자]의 포스터를 봤을 땐, 그야말로 무덤덤할 뿐이었다. 정재영에 이나영이라. 정재영은 [실미도]에서 꽤 괜찮았지만,(물론 난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실미도]에서 그의 연기를 극찬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가 찍는 영화를 무조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이나영은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배우다. 포스터도 전혀 멋지지 않다. 약간의 장난기 풍기는 사진에 큐트한 글씨를 남발해 놓은, 최근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른 포스터.

따라서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보러 가기로 했을 때도, 나의 기대치는 여전히 제로. 주변에서는 기대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괜한 반발심으로 여간 재미있지 않으면 좋아해 주지 않겠다 라고 꿍한 마음을 먹고 있을 정도였다.

영화가 관객을 사로잡느냐 마느냐는 처음 5분 안에 판가름이 난다는 말이 있다. 이 공식은 내 경우에도 대개 들어맞았다. 나이트크롤러의 환상적인 백악관 습격장면을 본 후에는 [엑스멘2]에 빠져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글래디에이터]의 놀라운 초반 전쟁씬은 그 이후의 지루한 전개를 간신히나마 견디게 해 준다.

또, 영화의 처음 5분은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도 한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처음에 등장하는 문구, <주유소를 왜 터는가? ...그냥>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웃어라' 하고 말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 필이 꽂히면 내내 너무나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 있다. 안 꽂히면? 할수 없지 뭐.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는 초반 윤소이가 빌딩 옥상에서 점프를 하는 그 순간이 바로 승부가 나는 순간이다. '오케이. 이 영화는 황당유쾌액션극이구나. 좋았어!' 가 되거나, '이게 뭐야. 유치찬란하잖아' 가 되는 거다.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주의!

내용 보기(클릭)


주절주절 너무 많이 떠들었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나왔다는 것. 물론 기대치가 극도로 낮았기 때문에 만족이 그만큼 더 크기도 했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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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1 16:22 2004/07/21 16:22
  1. ㅎㅎㅎ
    2004/07/21 18:24
    영화 속 이나영의 사랑방식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실에서도 (자신을 알지못하는 한 남자만을 몇년동안 짝사랑하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ㅎ
  2. 가넷
    2004/07/22 11:44
    가만, 어디서 리뷰를 읽고는 이건 영 아닌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괜찮았나보구나 흐음... (이것도 봐야겠는데...;;)
  3. onecent
    2004/07/22 20:51
    ㅎㅎㅎ/ 사실 영화에서 한 가지 내내 찝찝한 게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과연 저런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이죠. 친구 말마따나 아름다운 사람이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을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환상을 심어주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영화 속 이나영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넷/ 진짜 재밌습니다. 아라한에 이어 상반기 두번째로 재미있는 영화;
  4. 하영
    2004/07/23 00:05
    근데 그거 진짜 야구선수실화를 바탕으로 만든거라던데?
    나 그거 꼭 보구싶었는뎅...+_+
  5. ㅎㅎㅎ
    2004/07/23 20:42
    그럴 수도있죠..^^ 저는 제 얘기같아서 펑펑울고나왔는걸요(ㅋㅋ그렇다고 제가 예쁘다는말은 아니고요-_-;;;;;;)아무쪼록 답글 감사합니다.(^^)(__)(^^)
  6. J.
    2004/07/24 22:18
    맞아 요즘 트리플 크라운을 노리는 박명환의 실화지.. ^^;;
    재미있을거 같애.
  7. onecent
    2004/07/25 18:29
    하영/ 아직 늦지 않았어! 사람들의 호평이 퍼지기 시작해서인지 몰라도 삐까뻔쩍한(그러나 속은 빈) 블럭버스터들 틈에서도 꿋꿋이 상영관을 지키고 있더라고. 내리기 전에 꼭 보길.

    ㅎㅎㅎ/ 그런 사랑을 받는 입장에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먼저 들긴 했습니다만, 사실 진짜 멋진 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J./ 역시 실화란 말이군요! (...그래 나도 희망이.. -_-;)







디트로이트 피스턴즈가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며 LA 레이커스를 박살낸지도 벌써 3주 가량이나 지났다. 그렇게 강력해 보이던 레이커스를, 그냥 이긴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박살'을 내 버린 것이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2004년 NBA 결승 시리즈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서부지구 팀들이 동부지구 팀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서고동저' 가 NBA의 지형도가 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어느새 서부의 패자가 당연히 결승 시리즈를 이길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새크라멘토 킹즈,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샌앤토니오 스퍼스, 그리고 LA 레이커스에 이르기까지 서부는 정말 쟁쟁한 팀들로 가득차 있었고, 그런 팀들과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아 결승 시리즈에 진출한 레이커스가 우승할 것이 당연시되었다. 빈약한 동부지구의 경우, 서부의 실력자들과 그나마 겨뤄볼 만 하다는 인디애나 페이서즈와 디트로이트 피스턴즈가 준결승에서 맞붙었고, 피스턴즈가 인디애나를 힘겹게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대로 그들의 우승 가능성은 너무도 작아 보였던 것이 사실.

빌럽스가 MVP이긴 해도, 사실 누가 타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7전4선승제를 취하는 결승시리즈에서, 피스턴즈는 레이커스를 4대 1로 압도해 버렸다. 피스턴즈가 패배한 건 2차전뿐인데, 그것도 경기 내내 이기고 있다가 종료 직전에 기적적으로 터진 코비 브라이언트의 동점 3점슛 때문에 연장까지 가게 되었고, 맥이 풀린 탓이었는지 연장에서는 레이커스가 분위기를 압도하며 승리했다. 2차전에서의 연장 10분, 그리고 코비가 3점슛을 집어넣은 3초동안이 레이커스가 피스턴즈보다 앞선 경기를 펼친 유일한 시간이었다. 전 시리즈 중 피스턴즈는 10분 3초를 빼고는 단 한순간도 레이커스에게 밀리지 않은 셈. 도리어 내내 레이커스가 피스턴즈에게 끌려다녔다고 해야 옳다. 앞서 이미 사용한, 너무도 적절한 표현을 쓰자면, '박살'이 난 것이다.

ESPN.com의 칼럼니스트 Ric Bucher가 말한 것처럼, 사실 레이커스는 이겨서는 안되는 팀이었다. 시즌 내내 팀의 두 축인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사실 오닐이야말로 단 하나의 축이고, 코비는 곁가지에 불과하지만)의 불화가 끊이질 않았고, 팀원들과 코치가 서로 비난을 공개적으로 퍼붓는 등, 말하자면 콩가루 집안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는 순전히 오닐과 브라이언트 개개인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어영부영 결승전까지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BA의 그 누구도 글자 그대로 '막을 수 없는' 오닐과, 조던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가진 브라이언트의 위력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콩가루였다. 자기 개인의 욕심만 있었지, 팀 분위기를 이끌어서 단합된 힘을 낸다거나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들 다루는 데 그토록 능숙하다던 필 잭슨도 결승전 내내 무력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에 비해 피스턴즈는 어떤가? 이 팀에는 어마어마한 계약을 차고앉은 오닐이나 브라이언트같은 초특급 스타는 없다. 대신 개인기록보다는 팀의 승리를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벤 월러스나 라시드 월러스 같은 선수들이 있을 뿐이다.

'공격은 관중을 불러모으지만, 수비는 승리를 가져온다' 라는 말이 있다. 농구에서 수비는 진정한 궂은일이다. 득점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수비는 잘 해 봐야 별로 티가 안 나는 일에 속한다. 피스턴즈는 철저히 수비중심적 팀이었다. 빌럽스는 탄탄한 체구로 외곽수비를 해내고(경기 내내 서로 부딪치고 치고 받고 하는 농구에 있어서 사실 체구와 힘이 수비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봐야 한다), 프린스는 그 긴 팔을 이용해 레이커스의 주득점원 코비가 설치지 못하도록 막는다. 해밀턴...은 사실 수비만 놓고 보면 스타팅멤버 중에서 가장 능력이 떨어지지만, 지극히 수비중심적인 이 팀에 그나마 안정된 공격력을 제공한다는 점이 이를 커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스턴즈 수비의 핵은, 골밑을 지키면서 동시에 수비에 구멍이 생기면 순식간에 메꾸는 help-defense를 펼친 두 월러스에게 있다.

십년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

헬프가 잘 들어왔다는 건 결국, 다른편보다 한발 더 많이 움직였고 더 빨리 이동하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피스턴즈의 모든 선수들이 그랬다. 단 하나의 슛도 그냥 내 주는 법이 없었다. 들어가건 들어가지 않건, 누군가가 슛을 방해하기 위해 손을 뻗쳤고 공격수의 리듬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뛰어올랐다.

레이커스가 창이라면 피스턴즈는 방패였다. 그리고,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창은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히나 미식축구의 경우, 최고의 공격력을 가진 팀과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팀이 맞붙었을 때 언제나 수비가 승리하곤 한다;)

공격력은 슛감각, 개인기에 의존한다. 수비는 근성이고, 한 발짝 더 뛰고 더 노력하는 것이다. 동료가 뚫렸을 때 그 자리를 자신의 노력으로 메꿔주는, 다섯이서 모두 함께 하는 것이다.

콩가루와 철옹성의 대결. 철옹성이 이긴 게 당연하다. 그리고 이겼어야만 했다. 그래야 농구 팬으로서도 억울하지 않은 법. 실제로 경기를 보면서 내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성실함이 성공을 가져온다는, 소박한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식이 사실임을 피스턴즈는 증명해 보였다. 그들이 흘린 땀에 박수를 보낸다. 부디 내년에도 다시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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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6 21:39 2004/07/06 21:39
  1. JK.
    2004/07/07 01:03
    브라보 피스턴즈.
  2. J.
    2004/07/08 16:53
    그러고보면 이번 유로 2004도 방패의 승리였군.. 근데 "더블-월러스"라인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렇게 좋은 소리를 하기엔 지나치게 강력한거 아냐? ㅎㅎㅎ
  3. onecent
    2004/07/11 22:33
    강력하긴 하지만; 벤 월러스나 라시드 월러스나 둘 다 수비가 강력하잖습니까. 물론 운동능력도 천부적으로 타고났다면 할말은 없지만; 특히 벤 월러스 열심히 움직이는 건 진짜 존경스러울 정도니..
  4. 하영
    2004/07/11 23:28
    그렇긴해도 관중입장에선 역시 창이 재미있지..ㅋㅋ
    저 경기결과는 상관없지만 우편배달부가 넘 불쌍한걸..
  5. onecent
    2004/07/17 07:53
    맞아. 칼말론 나중에는 불쌍해지더라. 레이커스가 너무 깨지니까 통쾌함이 측은함으로 바뀌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