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그냥, 고생을 사서 하는 것, 바로 그게 모든 알싸인들의 숙명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별 생각 없이 알싸에 들어왔습니다. 국제 교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동아리를 뭔가 하기는 해야겠다 하는 흐리멍덩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쩌다가 마지막엔 대표까지 맡게 됐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한번 빠지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들만큼 알싸가 주는 매력이 대단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일단 그 매력에 빠진 다음 순간부터는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알싸에 부족한 점들이 산더미처럼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고쳐 나갈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싸맸습니다.
회원 수는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새로 보는 얼굴이 등장해서 언제나 자기소개하기 바쁠 지경이었습니다. 지부 간 교류도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뚜렷한 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매년 한두 개의 국제행사를 치를 역량은 축적되어 있었지만, 그냥 여러 나라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목표가 불분명하다 보니 세미나 주제는 너무 광범위했고, 그만큼 깊이가 없었습니다. 주제는 천편일률적이었고,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깊이도 없었습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마찰도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저로선 힘들었습니다. 처음 대표직을 맡을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저는 똑같은 문제를 두고 끙끙댔고,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후배들에게 짐을 떠넘긴 채 도망치듯 동아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제 1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제가 후배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부탁은, 제가 여러분에게 떠넘긴 짐을 짊어 져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고쳐보려 했던 문제점들에 대해 여러분도 고민해 달라는 것입니다. 더 나은 알싸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알싸는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에 참가해 보는 것은, 정말 쉽게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입니다. 굳이 국제 행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러 대학의 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그 자체만으로 특별합니다. 처음에 제가 그랬듯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입해서 사람들도 좀 만나고, 외국에도 한두번 나가 보고 하면서 그럭저럭 불만 없이 한두 해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싸가 그저 밋밋한 대학 생활에 스케줄 몇 개를 마련해 주는데 그친다면, 할일 없이 지루한 긴 방학에 그나마 뭔가 이벤트가 되어 주는 데 그친다면, 그리고 그걸로 만족한다면 알싸에서 보낸 시간은 낭비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알싸가 갖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썩히는 것이 아깝습니다. 이십대의 황금같은 시간이 아깝습니다. 굳이 ‘동아리의 가능성’이니 ‘돌아오지 않는 젊음’과 같은 거창한 말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는 건 결국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알싸는 여러분의 허전한 곳을 채워주는 동아리가 되어선 안됩니다. 그래서는 얻을 수도 있을 보다 풍성한 경험을 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나마 채우고자 했던 허전함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테이블 토론 준비를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까 하고 머리를 싸매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며 싸우고 괴로워하고, 밥을 굶고 잠을 줄이며 쓰러질 때까지 바쁘게 뛰어다닐 때에만 허전함이 없어질 것입니다. 민감한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서 토론을 하고,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는 자료를 찾고 읽고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시간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어지간히 깊이 자국을 새겨 놓지 않으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 기억조차 남지 않습니다.
더 크게 뜻을 가져야 합니다. 매년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면서 치르는 행사가 그저 대학생들의 꽤 그럴듯한 방학 이벤트에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여름에 열리는 AF가 아시아 각국의 법학도들이 일년간 공부한 성과물을 발표하고 배워가는 자리가 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고, 한두 해 애를 쓴다고 이뤄질리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틀을 잡아 간다면 분명히 해낼 수 있습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전해에 했던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그럭저럭 큰 행사를 치러낼 수 있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발전은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노하우가 쌓이는 것입니다. 올해 저는, 방학이 아닌 학기 중에 국내 차원에서 어떻게 세미나를 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학기 중의 활동과 방학 때 행사에서 하는 활동을 연결시킬 수 있을지 애를 많이 썼습니다. 이 부분은 노하우가 아직 없기 때문에 방향을 정하는 것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잡는 것까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올해 겪은 시행착오들, 그리고 여러분이 겪을 시행착오들이 쌓여 가면서, 결국에는 역시 전에 했던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어느정도의 성과가 보장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겠죠.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동아리활동인데, 머리 아프게 고민만 하고, 억지로 책 붙들고 공부하고, 언성을 높여 싸워서 되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관계는 인간관계 그 자체가 목표일 때는 얻을 수 없습니다.
2005년 AF가 끝난지도 어느새 두달이 넘은 지난 주, 실로 오랜만에 알싸 동기들과 모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처음으로 다시 보는 얼굴이 많았습니다. 그 동안 임원엠티도 있었고, 총엠티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그때마다 일이 터지는 바람에 어느 쪽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그 덕에 동아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주가 돼서야 친구들을 보게 된 셈입니다. 행사가 끝나고 은퇴했을 당시에는 정말 지긋지긋해서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두달이 지난 후에는 그저 반갑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저 부담없이 웃고 떠들면서 보내는 시간은, 핸드폰 전화부에 등록된 사람 수는 늘려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보기만 해도 반가운 얼굴들을 남겨 주진 않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시간이 덮지 못할 정도의 자국을 내 놓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깊이 자국을 내 놓으면, 나빴던 기억들은 점점 사라지고 즐거운 기억만이 남더군요. 지금도 저는 8월 말의 그 일주일을 서슴없이 ‘악몽’이라고 부르지만, 그 악몽은 이제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악몽이 아니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코끝이 찡해지는 그런 악몽이 됐습니다.
어쩌면 악몽이었기 때문에 지금 코끝이 찡해질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정말 지긋지긋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보기만 해도 반가운지도 모릅니다.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알싸에 남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쏟은 3년이 전혀 허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지난 여름 제 악몽을 진정 끔찍한 악몽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 또한 여러분들에게 꽤나 악몽을 꾸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그 점에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알싸활동도 악몽의 연속이 되길 바랍니다. 코끝이 시릴 정도의 지독한 악몽의.
2005년 11월 13일
2004-2005 아시아법학생연합 한국지부 대표
김웅재
2004-2005 아시아법학생연합 한국지부 대표
김웅재





















2006/02/08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