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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25 박하사탕
- 2006/08/13 돌아온 슈퍼맨 (4)
- 2006/07/16 X-Men 3 : The Last Stand
- 2006/07/02 미션 임파서블 3 (Mission: Impossible III) (4)
- 2006/05/21 다빈치 코드
- 2006/05/14 좋아서 하는 것과 억지로 하는 것에 대하여 (10)
- 2006/04/22 서울여성영화제
- 2006/04/02 브이 포 벤데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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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
난 캐리비안의 해적 1편을 극장에서 두 번이나 봤다. 씩씩하게 아름다우신 키라 나이틀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 잭 스패로우. 그리고 모험으로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테마음악(요새 이 음악 티비에서 도용이 심하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해 여름 개봉한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 홍보는 덜 요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성공한 영화가 되었다.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큰 성공을 발판으로 속편이 제작되었다. 하나도 아닌 두 편을, 매트릭스 시리즈처럼 한꺼번에 촬영한 뒤 두 편으로 나누어 개봉한다는 소식이었다. 속편 이야기가 들려올 때부터 불안했다. 잭 스패로우를 더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인기를 등에 업고 요란만 떤 속편들을, 그것도 하나로 족한 걸 억지로 두 편으로 늘려서 만들었던 매트릭스 시리즈의 실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브룩하이머가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쏟아부었다느니, 브룩하이머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한스 짐머가 음악을 담당하게 되었나느니 하는 이야기들도 위안을 주지 못했다. 영양가는 하나도 없고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는 명목으로 폭발의 규모와 CG사용 빈도만을 질릴 정도로 늘려 놓은 탓에 현실감은 도리어 상실한 대규모 액션장면이 계속되고, 그 때마다 장엄함을 가장한 배경음악이 흐르는,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 영화가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만 커질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캐리비안의 해적 2편은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우스꽝스러움과 번뜩이는 카리스마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던 잭 스패로우는 그저 우스꽝스러울 뿐인 개그캐릭터로 전락해 버렸다. 진정 잭 스패로우다운 모습이 나타난 건 크라켄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괴물아 안녕(Hello, beasty!)" 하고 씩 웃으며 한마디 내뱉는 장면 단 하나뿐이었다. 키라 나이틀리와 올랜도 블룸 역시 영화 내내 과장된 듯한 모습을 지우지 못했고, 화려하고 인상적인 액션장면(가령 돌아가는 물레바퀴 위에서의 전투장면이라거나)은 분명 있었으나 현실감과 진지함이 느껴지지 않아 어딘지 모르게 맥이 빠졌다.
게다가 악역이랍시고 등장한 녀석이 공교롭게도 [오만과 편견]에서 그 쪼다 역을 했던 배우라니. 그 녀석이 등장할 때마다 귀부인 앞에서 오줌을 지린 것처럼 엉거주춤한 포즈로 벌벌 떨던 [오만과 편견]의 장면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와 견딜 수가 없었다. 한스 짐머가 1편의 테마음악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물론 그렇다 해도 원곡이 더 낫다).
2편에 워낙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3편은 애초부터 2편과 비슷하겠거니 하고 기대치를 낮추고 있었던 터라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잭 스패로우의 개그 일변도도 좀 줄어들어서 다행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주윤발이 맡은 인물은 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에 비해 법전(!) 들고 무게 팍팍 잡으며 등장한 잭 스패로우 아버지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출처 : http://www.peppermintcandy.co.kr
[박하사탕].
너무나 가슴아픈 영화다.
그저 그 속에 그저 몸을 맡기고 가기만 해도 더러워지고 짓밟히고 뒤틀려서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곳. 그게 우리 사회다.
그 속에 빠져있는 나는 20년 후에 어떤 모습의 괴물이 되어 있을까.
우리는 기찻길을 바꿔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 3편, 엑스멘 3편, 슈퍼맨 리턴즈, 캐리비안의 해적 2편 그리고 괴물까지. 이번 여름시즌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던 블록버스터들은 웬만큼 챙겨 보았다. 애초에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미션 임파서블은 그럭저럭 볼 만했지만, 기대가 컸던 엑스멘 3편은 힘이 부족했고 마찬가지로 고대했던 캐리비안의 해적은 턱없이 실망스러웠다(잭 스패로우와 키라 나이틀리가 무려 두시간 반동안 나와도 역부족이었으니, 할말 다 한거다). 돈 많이 들인 헐리웃 영화 중에선 그나마 슈퍼맨이 제일 나았다(그리고 괴물이 슈퍼맨보다 낫다).
슈퍼맨 영화를 찍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보자. 뭐가 가장 큰 문제일까?
스토리가 뻔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일 것이다. 악당이 아무리 그럴싸하게 음모를 꾸며도 결국은 영웅이 악당의 계획을 분쇄하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전형적인 구도는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가 따를 수밖에 없는 틀이겠지만, 그 슈퍼히어로가 하필이면 슈퍼맨이기 때문이 일은 더 힘들어진다. 슈퍼맨은 너무 쎄기 때문이다. 빛보다 빠르고 총알보다 단단하며 지구를 거꾸로 돌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넘치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한 특수효과를 사용해서 스펙터클한 영상을 보여 준다고 해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가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슈퍼맨의 지나친 '슈퍼'함은 독이 된다. 미사일을 쏘면 공중에서 미사일을 잡아서 우주로 날려버리질 않나, 지진을 일으켰더니 지각을 파고 들어가서 어긋난 지층을 도로 맞춰놓질 않나, 핵폭탄을 정통으로 맞아도, 그냥 하늘로 올라가서 햇빛 좀 쬐고 나면 완벽하게 회복돼 버린다.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색 돌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관객은 슈퍼맨의 안전을 한순간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슈퍼맨이 가장 지키고 싶은 건 로이스 레인이고 그런 탓에 로이스가 주로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로이스가 추락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든, 침몰하는 배에 갇혀 있든 별로 걱정이 안된다. 추락하는 비행기는 도중에 잡아서 천천히 땅에 내려놓고, 침몰하는 배는 건져내면 된다. 슈퍼맨만이 사용할 수 있는, 구출방법의 무지막지함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비행기에서 로이스를 탈출시키는게 아니고, 배속에서 로이스를 구해내는게 아니다. 비행기 전체를 잡아서 내려놓으면 그 안에 탄 로이스도 자연히 사는거고, 귀찮게 선실 문 열고 로이스를 찾아서 뭍으로 끌고올라갈 거 없이 그냥 배를 들어올려 버리면 되는거다.
이정도 되면 대규모 재난을 로이스를 비롯한 메트로폴리스 사람들에게 아무리 많이 가해 봤자 영화는 삼십분 정도만 지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루해지고 만다. 슈퍼맨이 구해줄 게 뻔하니까. 어떻게든 긴장감을 줄 만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 "뻔함"을 어떻게든 완화해야 한다.
more..(스포일러 주의!)
결말이 어차피 뻔하다면, 최소한 결말이 '어떻게' 나오는지는 가급적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야 재미있는 영화가 되는 것이다. 슈퍼맨 리턴즈는 그런 점에서 도무지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그리고 볼거리만 물리도록 많은)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엑스멘보다는 확실히 나은 영화다. 물론 어느정도의 "뻔함"은 모든 슈퍼맨 영화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겠지만.
[+] 다만 [슈퍼맨 리턴즈]라는 이름은 한심하다. '돌아온 슈퍼맨'이라고 하면 안될게 뭔가? 그렇게 주어-동사 구조가 좋으면, '슈퍼맨, 돌아오다'라고 해버리면 될 것을. 쯧쯧.
X-Men 3 : The Last Stand
기다리고 기다리던 엑스맨 시리즈의 마지막편. 1편과 2편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떠나고 브렛 래트너(러시 아워 시리즈의 감독이다)가 새로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약간 불안해 했던 게 사실이다. 래트너는 원래부터 엑스맨 시리즈의 대단한 팬이라 열심히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문이었지만,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해서 꼭 그 슈퍼히어로의 팬이 더 잘 만들 수 있는 건 아닌 법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멘은 코믹북 시리즈의 영화화 붐에 불을 당긴,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정작 싱어 자신은 제의를 받고 나서부터 만화책을 찾아서 읽어보기 시작했다고 하고, 다 죽어가던 배트맨 시리즈를 기사회생시킨 크리스토퍼 놀런 역시 특별히 만화 배트맨에 심취해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영화 잘 찍는 감독(싱어의 대표작은 유주얼 서스펙트, 놀런은 메멘토)이 슈퍼히어로 영화든 뭐든 다 잘 찍는 거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찾아 본 예고편은 불안감을 어느 정도 없애 주었다. 비스트와 엔젤, 저거넛 등 그동안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캐릭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기대감을 갖게 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인 갬빗은 이번에도 영화 진입에는 실패한 모양이었지만, 어차피 이미 나와 있는 인물들만으로도 러닝타임이 모자랄 정도니 어쩔 수 없다.
개봉일(14일) 전날 메가박스 상영시간표에 '엑스맨'이 떠 있는 것만 보고 허겁지겁 달려가서 헛물을 켜는 우여곡절(그날은 시사회였다. -_-; 시사회 표도 없이 시사회장에 난입하려 했던 셈이다) 끝에, 개봉일 조조로 볼 수 있었다.
뚜껑을 열어 본 결과... 내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났다.
[엑스맨 3]는, 전편들을 능가하는 규모의 액션을 보여 준다. '최후의 전쟁'이라는 부제답게, 매그니토 편의 돌연변이들과 엑스멘의 전면전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매그니토가 그야말로 '엿가락처럼' 구부리는 인상적인 장면에서부터, 매그니토와 파이로가 합작해서 선보이는 불붙은 자동차 공격이랄지, 키티 프라이드와 저거넛의 추격장면 등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볼거리를 많이 제공한다고 해도 이번 엑스멘은 전편들에 비해 힘이 떨어진다. 전편보다 더 많은 캐릭터가 등장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별다른 활약 없이 버려지고 만다. 명실상부 주인공 자리를 꿰찬 울버린에게 비중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악당 우두머리인 매그니토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캐릭터들은 그야말로 눈요기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스톰과 아이스맨, 파이로, 키티 프라이드나 비스트는 그래도 전투에서나마 자기 능력을 발휘했다지만(특히 아이스맨은, 잠깐이었지만 만화책에서의 모습 - 온몸이 얼음덩어리인 모습 - 을 보여 주었다), 매그니토 편에 서서 등장한 대부분의 캐릭터들, 그리고 특히 콜로서스와 엔젤은 전투씬에서조차 심하다 싶을 정도로 버림받았다. 그들의 만화책상의 비중을 생각한다면 아쉽기 짝이 없다.
날개 한번 제대로 못펴본 엔젤
전편들에 비해 대사의 맛깔스러움이 많이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짤막하지만 그러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대사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1편에서 울버린이 "그게(손톱이) 나올 때, 아픈가요?" 라는 로그의 질문에 단 한 마디로 "매번"이라고 내뱉는 장면이나, 2편에서 매그니토가 막무가내로 진입하겠다는 울버린을 비웃으며 "그래서 어쩔 텐가, 손톱으로 긁기라도 하려고?" 하고 조소하는 장면처럼 기억에 박히는 장면이 없었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체스판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매그니토가 나오는 장면만은 예외다) 그와 같은 강한 인상을 남겨야만 하는 순간 - 싸우러 가기를 주저하는 엑스멘을 울버린이 독려하는 장면 - 에서 3편은 맥없이 실패한다. (울버린의 말에 다들 독려가 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좀더 불평을 해 보자면, 울버린의 얼굴이 핀 게 마음에 안들었다. 울버린이 처음 스크린에 등장하던, 1편의 그 장면을 기억하는가? 철창 안에 갇혀서, 얼굴도 드러나지 않은 채 그림자에 묻혀서는 시가 연기를 내뿜는 게, 흡사 성난 맹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미간은 잔뜩 찌푸리고, 상처는 나는 족족 나으니 어디 아픈 데는 하나도 없을 게 분명한데도 마치 십년 동안 두통을 앓고 있었던 것 같은 표정에, 과연 이녀석이 우리편인지 적인지 도무지 모호한, 바로 그 절반쯤은 악마같은 얼굴이 울버린의 매력이었다.
그런데 3편의 울버린은 너무 표정이 밝다. 미간의 주름살도 거의 풀렸고, 심지어 짜증내는 사이클롭스를 차분히 달래주려고 하기까지 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머저리같은 놈, 짜증내려면 골방에 처박혀서 너 혼자 질질 짜라' 정도의 대사를, 그 특유의 '대꾸하면 머리에 바람구멍을 세 개 내 줄테다' 라는 표정으로 내뱉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영화를 보면서 '브라이언 싱어를 돌려줘!' 라고 생각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엑스멘을 버리고 간 브라이언 싱어지만, [슈퍼맨 리턴즈(!)]를 선사해 줬으니 또 뭐라고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엑스맨 3편은 분명 영화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오락영화이긴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데는 미치지 못했다. 1편이나 2편은 기꺼이 두 번씩 보러 갈 정도였으니 이 차이는 꽤 크다. 트릴로지의 마무리가 약간 미진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그나마 마지막 장면에서는 신나게 해 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미션 임파서블 3 (Mission: Impossible III)
여름시즌의 첫 테이프를 화려하게 끊은 미션 임파서블 3. 사이언톨로지에 심취해 독특한 행태를 보이는데다 케이티 홈즈에 빠져서 보기 안 좋을 정도로 허우적대는 모습 때문에 미국에서는 탐 크루즈의 관객 동원력이 예전같지 못한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박스 오피스 성적이 신통찮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는 꽤나 흥행 성적이 좋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지만큼 탐 크루즈에 대한 가십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탓일 듯하다.
1996년에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1편은 꽤나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비록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탓에 두 번째 볼 때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제대로 알 수 있었지만.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얼굴 뜯어내기(;)가 신선했다. 잊을 때쯤이면 돌연 아래턱께를 붙잡고 부욱 하고 얼굴을 잡아뜯어 버리는 바람에 그 때마다 허를 찔리곤 했다. 처음 볼 당시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도 못 하고 있던 터였기에 막판에 범인의 정체가 드러날 때는 꽤나 충격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1편의 성공을 뒤에 업고 2000년에는 속편이 개봉했다. 탐 크루즈의 장발 헤어스타일, 그리고 오우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 화제를 끌었던 걸로 기억한다. 난 일찌감치 기대를 접고 극장까지 찾아가서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시 오우삼의 '대놓고 개폼잡는' 액션 스타일 - 날아오르는 흰 비둘기떼, 휘날리는 롱코트에 선글라스 등등 - 은 이미 식상해지고 있던 터였다. 97년의 [페이스오프]에서 헐리우드는 오우삼의 개폼잡기에 매료됐고, 99년의 매트릭스 1편에서 개폼잡기 액션은 정점에 오른다. 그 이후로 오우삼 스타일의 액션은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었고, 같은 스타일을 답습하면서 단지 액션의 스케일과 액션장면의 길이만을 늘린 영화들은 줄줄이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미션 임파서블 2는 그 대표적인 예고, 매트릭스 속편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나 다를까, 미션 임파서블은 예전 텔레비전 시리즈와는 동떨어진, 전형적인 오우삼 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탐 크루즈는 생김새만 다를 뿐이지 하는 짓이나 격투솜씨까지 사실상 주윤발이나 다름없었다. 하늘에는 여전히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롱코트 대신에 롱커트를 휘날리며 권총을 쏴대고 공중을 가르며 날라차기를 해 대더니만, 급기야는 모래사장에서 단순한 발구르기 한번으로 땅에 놓여 있던 총을 튀어오르게 하는, 네오 수준의 사기 기술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이건 해도 너무했다. 난 나중에 티비로 이 영화를 봤는데, 예상했던 만큼,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만큼 엉망이었다.
그러다 5년 만에 세 번째 영화가 개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편보다는 훨씬 낫지만, 1편보다 월등히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감독은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 [로스트]의 연출을 맡았던 J.J. 에이브럼스로, 영화 연출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정말 글자 그대로 '숨쉴 틈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데, 완급조절에 좀 문제가 있다 싶을 정도다. ('급'만 있지 '완'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영화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맨 처음에 배치하는 편집방식 때문에, 시작하는 순간부터 긴장의 연속이다. 한 사건이 해결됐나 싶으면 더 큰 사건이 터져 버리고, 가까스로 대처했나 싶으면 또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는 식이다.

그러나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 그것도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액션영화에 그런 개연성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신기하고 화려한 첨단장비(가면 만드는 기계가 신기함의 최고봉을 달린다)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거기다 별로 하는 일은 많지 않지만 소름 돋을 정도로 기분나쁜 악당(오웬 데이비언 역을 맡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알고보니 작년에 아카데미상을 탄 배우였다;)도 있겠다, 다리 위의 전투장면과 같은 멋있는 액션 장면이 중간중간 등장해 주니 이정도면 썩 괜찮은 셈이다. 어떻게 평범한 간호사인 이단 헌트 약혼녀가 그렇게 총을 잘 쏘느냐, 세상에 주먹으로 하는 인공호흡도 있느냐 하며 비웃기도 하는데, 어차피 주인공 죽을 리 없다는 건 표 사는 순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주말 동안 침대를 뒹굴거리며 [다빈치 코드]를 읽었다. 남들 다 읽을 때는 청개구리 근성으로 안읽겠다고 유치하게 뻗대다가 결국에는 사정없이 뒷북을 치고 마는 이 꼬락서니라니.
소설을 읽지 않았던 탓에 다들 들뜬 마음으로 영화의 개봉을 기다릴 때도 심드렁했었던 게 사실이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는 한 일부러 보러 갈 생각도 아니었다. 예고편에서 본 톰 행크스의 헤어스타일을 두 시간동안 참아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은 어찌어찌하다가 어제 형 책장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형도 선물받고는 읽을 생각을 안했던 모양이다)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 중간중간 일부러 컴퓨터를 켜서 다빈치 그림을 찾아봐 가면서.
영화화하기 참 좋은 소설이다. 불과 이틀 정도의 시간에 걸친 이야기를 다룰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에 곳곳에서 전개되는 장면들을 챕터를 잘게 나눠서 왔다갔다 하면서 서술하고 있어서 흡사 속도감 살린 편집을 염두에 둔 헐리우드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것 같다. 별다른 각색 없이 바로 크랭크인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소설을 먼저 읽고 나서 영화의 예고편을 봤더라면, 내 나름대로 그려 놓은 로버트 랭던 박사의 이미지에 톰 행크스를 맞춰 보고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예고편에서 본 톰 행크스의 모습이 머리에 박혀 있는 탓에 소설 속의 랭던 박사를 톰 행크스에 끼워맞추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랭던 박사는 내게 우스꽝스런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의 이미지로 각인되고 말았다. 톰 행크스가 랭던 박사 역에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어떤지는 나로선 알 수 없게 됐다.
영화는 소설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모양이고, 그 탓에 책을 읽은 사람들에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할 거라는 게 지배적인 평가인 듯하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난 지금, 영화 상영 금지를 외치는 일부 기독교인들에게 간접적으로라도 시위하기 위해서 기필코 영화를 봐 줘야겠다.
좋아서 하는 것과 억지로 하는 것에 대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큼 행복한 때는 없다. 좋아서 하는 일인만큼 의욕은 충만하고, 자연스레 더 잘 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일은 점점 잘 하게 되고 잘 하게 되니 더 좋아지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에 쏟는 시간이 더 많은 게 현실인 듯하다. 어려서는 하기 싫어 죽겠는 공부를 엄마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고, 나이가 웬만큼 들어 엄마가 시키는 일은 없어지나 싶더니만 이제는 '앞으로 먹고살 일'이 그 억센 손아귀를 옥죄어 들어온다. 좋아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일치하는 삶, 그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삶을 누리려면 일단은 자기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뭔지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그걸 온 힘을 다해서 하면서 기쁨을 누릴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그 일을 통해 '먹고살 일'까지 해결하는 방법도 발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뭐지?
[말아톤]에 나오는 윤초원은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초원이가 달리기를 '잘'하는 건 분명하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곧잘 우수한 성적으로 완주해 낸다. 그렇지만 정작 초원이는 힘들여 완주해 내고 나서도, 메달을 따내도 속시원하게 웃지조차 않는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건 초원이 옆에 있는 엄마다. 엄마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애한테 좋아하는 걸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고, 나는 해냈다. 봐라. 초원이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아까의 말을 바꿔 쓰는게 맞을 듯하다.
"윤초원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윤초원의 엄마는 생각한다/믿고 있다/믿고 싶어한다.
엄마는 아들을 위한답시고 아들에게 달리기를 배우게 하고 계속해서 달리기 연습을 시켰지만, 그건 엄마 자신의 욕망을 (헛되이) 채우기 위해서였다. 초원이는 초코파이가 먹고 싶어서,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엄마한테 혼나기 싫어서 달리고 또 달렸을 뿐이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엄마가 자기 손을 놓아버릴까봐 무서워서. 어렸을 때 동물원에서 자기 손을 놓아버렸던 것처럼..
엄마는 이 사실을 "20년이 걸려서야" 깨닫는다. "초원이는 달리는 걸 좋아해. 그래서 시키는거야"라면서 엄마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달리기를 시키고, 그렇게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잘 달리는 초원이를 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초원이보다 하루 더 늦게 죽고 싶다"는 엄마의 소원은, 영화에서 초원이의 달리기 코치가 정확하게 간파해 내듯이, 초원이가 엄마 없이 하루도 못 살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초원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초원이는 엄마의 욕망에 사로잡혀 질식당하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초원이를 놓아주기로 한다. 억지로 힘든 마라톤을 시키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엄마가 초원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던만큼, 이제껏 초원이도 행여 놓칠세라 그런 엄마를 단단히 그러쥐고 있었다. 엄마가 초원이를 놓아 주자, 고삐에서 풀려난 초원이의 욕망은 스스로 작은 목표물을 붙잡는다. 그건 바로 달리기였다.
달리기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작업을 하게 된 초원이는 달리기를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달릴 때 얼굴에 부딪히던 맞바람을 떠올리고, 그 순간 느꼈던 행복을 기억해 내기 시작한다. 달리고 싶다. 엄마가 달리라고 시키지 않아도, 엄마가 달리면 안된다고 해도!
오로지 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춘천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온 윤초원. 뒤따라온 엄마는 출발선 근처에서 초원이를 찾아낸다.
엄마가 이제부터 마라톤 안한다고 했잖아.
오늘은 춘천 마라톤 하는 날.
아니야. 이제 이런 힘든거 안해. 집에 가.
가서, 짜장면하고 탕수육 먹자. 가자.
뛰다가 도중에 쓰러지면 주사 맞아야 돼. 주사 맞고 싶어?
초원이 안 쓰러져요.
가끔, 배우가 내뱉는 대사 한마디가 마치 영화관 전체를 뒤흔드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네오의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Because I choose to)" 가 그랬고, 샘이 다 죽어가는 프로도에게 "그걸 대신 들어드릴 수는 없지만, 당신을 들고 갈 수는 있어요 (I can't carry it for you, but I can carry you)" 라고 말했을 때가 그랬다. 그리고 윤초원의 바로 저 "안 쓰러져" 역시, 비록 아무런 웅장한 배경음악도 없고 의도된 극적 장치도 없었지만, 영화관을 뒤흔들고도 남았다.
자폐증이 있는 초원이는 영화 내내 스스로 말을 하는 적이 없다. 그가 하는 말은 어디선가 들은 말의 반복일 뿐이다. 텔레비전에서 들은 그대로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초원에서는.."이라고 줄줄 따라하고,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라며 엄마가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할 뿐이다. 그와 조금이나마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가 따라할 수 있는 말을 질문에 선택지로 포함시켜서 해 줘야 한다. "오늘 끝까지 달릴 수 있어, 없어?"/"있어." "초원이 힘들어, 안 힘들어?"/"안 힘들어." 이런 식으로. 지하철에서 얻어맞아 아프고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에서도 초원이는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를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모른다. 엄마가 병원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슬퍼하면서도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라고, 엄마가 따라해보라고 자신에게 해줬던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 윤초원이 마침내 스스로 말한다. 안 쓰러질 거라고. "초원이 쓰러져, 안 쓰러져?" 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렇게 좋아 못살던 짜장면도, 탕수육도 거부하고, 엄마 말 듣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거부한다. 주사 이야기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던 그에게 급기야 엄마는 주사로 위협한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초원이는 "안 쓰러져"라고, 비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지만 힘있게 선언한다. 막무가내로 앞뒤 안가리고 안 쓰러지고 따라서 주사도 안 맞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쓰러질지도 모르고 주사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쓰러지지 않겠다, 그리고 달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저 한 마디가 나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뒤로는 일사천리다. 달리다가 쓰러질 뻔하지만 다시 일어서고, 누군가 쥐어준 초코파이를 버리고 달리는 그 자체를 즐기며 결승점을 통과하고. 그리고 마침내 진짜 기뻐서 웃을 때까지.
이제 또 앞서 말한 문장을 고쳐야 한다.
윤초원은 달리기를 좋아한다.
날 때부터 진짜 좋아하는 것 한 가지를 머리에 각인한 채 태어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좋아하는 일도, 그 출발점을 더듬어 가다 보면 최초의 순간에는 뭔가에 의한 강제가 있었을지 모른다. 초원이한테 달리기가 그랬듯이, 억지로 시켜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게 나중에는 그 자체로 기쁨이 될 수도 있다. '하다 보면 정 든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렇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정 들때까지 무작정 괴로움을 견디면서 억지로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대체 뭔가?
이거, 정말로 쉽지 않다.

지지난 주 토요일,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서울 여성영화제에 다녀왔다. "다녀왔다"고는 하지만, 영화는 한편밖에 보지 못했고, 그렇다고 영화제가 열렸던 영화관(신촌 아트레온) 안에서 분위기를 즐기면서 오래 머물렀던 것도 아니었다. 그날 황사는 그야말로 극악무도했는데, 그 누런 모래폭풍을 뚫고 친구들과 신촌에서 점심을 먹고, 상영시간에 딱 맞춰서 아트레온에 들어가서 영화를 관람한 후,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했다. 간결했지만 좋았다.
본 영화는 마를린 호리스(Marleen Gorris) 감독의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이었다. 시간상으로 주인공 안토니아의 인생 후반부를 다루는데, 안토니아와 그 딸, 손녀, 증손녀를 중심으로 그들이 주위의 여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그들이 꾸려가는 삶은 전형적인 공동체의 모습과는 다르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농장 풍경과 맞물려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안토니아는 물론이고 딸과 손녀 모두 결혼하지 않지만(물론 주변인물 중에는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들의 삶에는-영화 속 표현을 빌자면-"사랑이 넘쳐흐른다".
안토니아가 마을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근처 농장에 사는 농부 바스가 안토니아를 찾아와 (상당히 느닷없고 생뚱맞게;)청혼한다. 안토니아는 좋은 사람인 것 같고, 자기는 아내가 필요하고 자기의 다섯 아들들은 엄마가 필요하다는 게 바스의 말인데, 그에 대한 안토니아의 대답이 아주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 아들들이 필요 없는걸요."
안토니아와 바스는 평생 애인 사이로 지낸다.
시간은 흐르고 행복한 일과 불행한 일, 기쁨과 슬픔이 안토니아의 농장 사람들에게도 찾아오지만, 삶은 계속된다. 안토니아의 친구가 염세주의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그와 특히 가까웠던 손녀 테레즈와 딸 대니엘라가 실의에 빠져 집안이 우울함에 싸여 있을 때, 안토니아가 무릎을 짚으며 일어나면서 절반은 한숨, 절반은 기합으로 한마디 내뱉는다. "Life is to be lived..삶은 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래. 죽지 못해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만큼 살아야 한다.
"우리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고, 어찌 보면 지금 우리 이야기일지도 몰라."
영화가 끝나고 난 뒤, 화장실에서 우연히 들은 [브이포벤데타(V for Vendetta)]에 대한 두 가지 매우 다른 감상이다. 첫 번째 볼멘소리는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사람이 같이 영화를 본 친구에게 실망스럽다는 투로 내뱉은 것이다. 두 번째 관전평은 나보다도 좀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역시 그와 함께 영화를 본 듯한 친구에게 한 말이었다.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영화를 본 뒤에는 일부러라도 화장실에 들러서 사람들의 관전평을 주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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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4월 19일이든, 87년 6월이든, 우리도 기억해야 한다.

[+] 나탈리 포트만은 삭발을 해도 아름다우시다. T_T
[이터널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에는,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골라내 지워주는 '라쿠나'라는 가상의 회사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가슴아픈 일을 겪게 마련인 탓에, 라쿠나 회사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기르던 개가 죽은 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 개를 잊기 위해 기억 제거 시술을 받으려고 하는 노부인부터 시작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옛 연인을 잊기 위해 회사를 찾은 클레멘타인과 조엘까지.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 그 사람이 내 머리속에서 사라진다면, 난 더 이상 가슴아파할 일도 없을 것이고, 기분좋게 새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조엘과 크게 싸운 뒤 클레멘타인은 홧김에 기억 제거 시술을 받고, 그 사실을 알고 충격받은 조엘 역시 복수하는 심정으로 클레멘타인을 기억에서 없애 버리기로 한다.
라쿠나 회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영화에서처럼 손님이 들끓을 게 틀림없다. 괴로운 기억을 입맛대로 골라서 도려내 버릴 수 있다니. 나쁜 기억은 싹 지우고 기분좋은 기억만을 남길 수 있다면 삶은 좀더 행복해질 게 틀림없다.
라쿠나 회사에서 일하는 메리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메리는 명언집에서 본 글귀 두 가지를 외우고 다닌다.
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쉽게 잊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실수조차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d.
순결한 수녀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가! / 세계는 잊는다, 잊혀진 세계에 의해/ 티끌 하나 없는 정신의 영원한 광채! / 기도가 하나씩 받아들여지고, 소망은 하나씩 포기된다.
첫 번째 글귀는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 등장하는 말이다. [선악의 저편]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 구절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도 기억과 관련해서 몇 가지를 언급하는데, 그는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불행한 일을 겪고 나서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증오심을 키우는 사람들, 니체의 표현을 빌자면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들은, 니체가 말하는 강한 자와는 거리가 멀다.
[선악의 저편]과 [도덕의 계보]가 내용이 비슷하다는 걸 생각한다면, 위의 저 구절 역시 비슷한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그 과거의 실수를 계속해서 떠올리며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런 실수를 하다니 쪽팔려 죽겠다' 하는 식으로 괴로워하고 있어서는 결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지나간 일은 어차피 아무리 애를 써도 바꿀 수 없는 법. '쩝. 실수했네.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툭툭 털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진정으로 강한 자라면 일부터 털어버릴 일도 없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잊어버리고 말 테니까.
두 번째 글귀는 알렉산더 포프의 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에서 발췌한 것이다. 수녀가 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 대한 격정적인 사랑과 수녀로서 지켜야 하는 하느님 앞의 경건함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자기와는 달리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티끌 하나 없는 정신'에 대해 찬미를 보내는 구절이다. 아벨라르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엘로이즈로서는, 차라리 아벨라르를 잊어버리고 신 앞에 부끄럽지 않은, 욕정에 휘둘리지 않는 깨끗하고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클레멘타인과 조엘은,(그리고 메리는) 기억을 지우고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는가?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서로에 대해 완전히 잊은 채, 그들이 예전에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다시 만나고 다시 서로에 대해 사랑을 느끼게 된다. 메리 역시 기억을 지우기 전과 마찬가지로 하워드 박사를 사랑하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억 제거 시술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게도 그들이 예전에 살았던 삶의 궤적을 똑같이 따라간다.
이들은 잊고 싶은데도 잊지 못해서 괴로웠던 게 아니다. 그들은 애시당초부터 잊고 싶지 않았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그리고 메리는 하워드를 잊고 싶지 않았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지워갈수록 자기가 클레멘타인을 결코 잊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머리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된다. 라쿠나의 기억 삭제 프로그램은 결국 조엘의 머리속에서 어떻게든 숨으려 하는 클레멘타인을 찾아내 전부 지워버리지만,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보는 순간 뭔가에 홀린 듯이 그녀에게 다시 끌리게 되고, 그건 클레멘타인 역시 마찬가지다. 패트릭과 함께 있으면서 클레멘타인은 끊임없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불안해하던 그녀는 결국 조엘을 처음 보자마자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둘은 자석처럼 서로 달라붙는다.
패트릭은 과거에 조엘이 클레멘타인에게 주었던 선물을 주고, 조엘이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하면서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는데도 클레멘타인은 패트릭을 거부하고, 과거에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을, 거짓말처럼 단번에 찾아낸다. 이런 게 운명이고, 이런 게 인연인 것일까?
그렇게 서로 다시 만나서,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그들이 기억을 지운 적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모르고 처음부터 다시 사랑을 시작했으면 그냥 간단히 문제는 해결됐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싹 지워버리기까지 했는데도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다시 만났고, 그처럼 운명적인 사랑으로 엮인 그들, 보기만 해도 전기가 파지직 통하는 그들은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그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영화 끝. 기분좋은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렇게 기분좋게 끝나지 않는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전에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서로 싸우고 헤어졌으며, 심지어 서로를 잊기 위해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메리가 라쿠나 회사의 기록을 전부 빼내서 시술을 받은 사람들에게 돌려보낸 탓에, 그들은 서로 뭐가 마음에 안 들었으며 어떤 점들이 자신을 화나게 했는지, 왜 싫증이 나게 됐는지...등등, 기억 제거 시술을 받기 전 스스로 녹음해 놓은 목소리를 고스란히 듣게 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잊고자 했던 과거를 전부 알아버리고 말았다. 이제 막 서로가 너무나 마음에 들기 시작한 차였는데, 돌연 과거가, 온갖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 과거가, 그 오랜 시간이 무겁게 그들의 머리를 내려쳤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혼란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시작되려던 그들의 관계는 과거가 되살아남에 따라 이제 끝장이 나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돌아서서 떠나는 클레멘타인을 조엘이 붙잡는다.
Joel: I don't see anything I don't like about you.
난 너한테서 마음에 안 드는 점이 하나도 없어.
Clementine: But you will! But you will, and I'll get bored with you and feel trapped, because that's what happens with me.
그렇지만 마음에 안 들게 될 거야!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난 너한테 싫증을 느끼게 될 거고 갑갑하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왜냐면 난 그렇게 되게 돼 있기 때문이야.
Joel: Okay.
그래도 상관없어.
Clementine: ...Okay.
그래.
Joel: Okay.
그래.
그래도 상관없어. 다시 싸우게 돼 있든 말든, 나중에 서로에게 싫증을 느끼게 되든 말든.
이제야말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기억을 지우기 전의 상태로.
지워버린 과거가 되살아났는데도 그 둘은 서로를 놓지 않기로 한다. 그들은 과거를 그대로 끌어안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니체는 '잊어버리는' 자를 강하다고 추켜세운 것이지, 잊지 말아야 할 것, 잊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지워버리고 문제가 해결됐다고 자위하는 사람을 찬양한 게 아니다.
'티끌 하나 없는 정신'이 내뿜는 광채는 창백하다. 그런 건 신에게나 어울린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빛을 발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게 아닐까. 모래알이 뭉쳐서 진주가 되듯이.
그 둘은 이제 다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비록 시작점에서 끝나지만, 틀림없는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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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3/31 08:29영화감상문만 보고도 이렇게 감동받긴 처음이다.
이번 주말엔 이터널 선샤인이나 빌려볼까.
아, 지금 시간에 뭐하는 거냐고? 은행이 아직 안 열려서 기다리는 중이야. -_-
은행 좀 일찍 열고 늦게 닫으면 안 되나... 쿨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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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cent
2006/06/17 23:16아이고 이런. 그동안 쓰던 스킨에 최신댓글이 안 떠서 새로 댓글이 달린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이터널 선샤인 진짜 괜찮은 영화였죠. ㅎ
자주 와주시면 저야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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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set
처음으로 본 영화는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이었다. 난 우디 앨런의 영화를 하나도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이런저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는 선택했다. 영화는 웃기려고 애쓰지 않지만 기가막히게 웃기고, 로맨스를 다루지만 오버하지 않고 담담하다. 그냥 쉴새없이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우디 앨런이 나올 뿐이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대한 언급도 상당히 나온다. 왜 이 영화가 그토록 대단하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썩 마음에 들었다.
말 많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 듣는게 재미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디 앨런은 수다를 엄청스레 떨지만, 그는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에 속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득 영화 하나를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쉴새없이 이야기하던, 그리고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던 그 두사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또 듣고 싶었다. 그래서 '비포 선셋'을 다운받았다.
아무리 오랫동안 어떤 사람과 함께 있어도 별 할말이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별 말이 필요없는 경우도 있고, 처음 만났지만 끊임없이 할 말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모건 프리먼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로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관계다.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의 제시와 셀린은 서로에게 계속해서 할 말이 생기는, 그런 관계다.
'비포 선라이즈'나 '비포 선셋' 모두, 오버하지 않는 영화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불치병으로 창백해져서 죽어가는 가운데 그 주인공의 상대역을 비롯한 모든 출연배우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둘 중에 하나만 봐야 한다면 '비포 선라이즈'를 보는게 낫겠지만,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나서 보는 '비포 선셋'이야말로 아름답다. 전편의 무게가 후편에 고스란히 실린 채 몇배는 증폭되니까.
지난주에 보고 나서 바로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 합본 디비디를 주문했는데, 오늘 집에 다시 와 보니 책상위에 소포가 놓여 있다. 포장을 뜯고 이 장면 저 장면 건너뛰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포 선셋'의 첫장면이야말로 최고다. 과거의 순간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다가 진짜 셀린이 나타나는 그 장면.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를 세 편 본 셈인데(나머지 하나는 '스쿨 오브 락'이다), 세 편 다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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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2005/10/29 21:01왠지 반갑다 ㅋㅋ 비포 선라이즈는 이제 '재미있는 청춘멜로영화'라는 표현으로는 왠지 기분이 언짢을 정도지 ㅋㅋ 난 며칠전에 before sunset ost를 샀는데, 비포 선라이즈의 영화속 캐릭터들인 제시와 셀린느는, 이제 남자와 여자의 '원형(ARCHETYPAL)'이라고까지 분석되고 있다고 하더라. 난 전적으로 동감 ㅋ.
한마디만 더 하자면, 보통 속편을 볼 때에는 전편과 어떤게 재미있나 비교하면서 보게 되는게 인지상정인데, (가령 황비홍 과 황비홍 2 등을 볼 때...) 비포 선셋과 비포 선라이즈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데에 특징이 있지. 이 영화는 삶 그자체기 때문에. 9년전의 우리들의 어떤 날이 9년후의 우리들의 어떤 날보다 더 '재미있었다' 고 이야기 할 수 없듯이... ㅋㅋㅋ
PS. 내 홈피에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느낀 감동을 쓴 어처구니없는 감상문이 있음..니 졸업사진날의 사진도 볼 겸 들르드록! ㅋㅋ -
하영
2005/11/03 18:08나도 매우 감동받았다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영재의 비유 매우 맘에 드는데.
9년전의 어떤 날이 9년 후의 어떤 날보다 더 재밌었다고 히야기할 수 없듯이..라..
둘다 글을 참 잘써^-^
형사 : 듀얼리스트

그 다음에는 발 킬머였다. 키튼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던 물론이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입술이었다. 알다시피 배트맨은 입술 빼고는 얼굴 전체를 가면으로 가리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브루스 웨인은 입술이 특이하기 그지없게 생긴 사람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만약 브루스 웨인이 발 킬머같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면, 정체를 숨기고 배트맨 짓을 하고 싶었다면 다른데는 다 드러내놓더라도 입술만큼은 반드시 가리고 악당을 때려잡으러 다니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브루스 웨인은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조지 클루니가 역을 맡았다. 키튼의 분위기 같은건 아무래도 좋았다. 킬머의 입술만 아니면 됐다. 그점에선 일단 클루니는 합격이었던 셈.
그러나 아무래도 브루스 웨인하고 클루니는 통 어울리지가 않았다. 가면을 벗은, 바람둥이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 역에는 어느정도 어울렸을지는 몰라도, 밤의 기사 배트맨에는 영 어색했다.
게다가 시커먼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버리기엔 이시대 최고의 미중년 클루니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2005년, 크리스찬 베일이 브루스 웨인으로 나타났다. 썩 괜찮다. 입술이 잘생긴 것도 큰 장점이고, 약간은 우수에 깃든 듯한 표정도 좋다. 마이클 키튼같은 배트맨이 다시 나타나는건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터. 그래도 크리스찬 베일은 브루스 웨인으로 흠잡을 데가 별로 없다.
처음에는 팀 버튼이었다. 고담시는 어둡고, 기괴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 다시 말해 팀 버튼의 전매특허 분위기(크리스마스의 악몽을 한번 생각해 보라) - 를 풍겼다. 배트맨은 만화를 통해 우리에게 낯익은 남색/회색/노란색의 타이즈 대신, 온통 시커먼 색으로 뒤덮였다.
그걸 조엘 슈마허가 이어받았다. 그는 고담시를 발랄한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번쩍이는 총천연색 복장을 한 로빈이 마침 등장했고, 배트맨도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덩달아서 그의 옷을 번쩍거리는(그리고 푸른색이 필요이상으로 가미된) 소재로 바꿨다. 도시 전체가 무슨 카니발이라도 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슈마허는 자기 스타일대로 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그 스타일이 배트맨 영화에는 꽝이라는 것. 슈마허는 [오페라의 유령]처럼, 총천연색의 화려함이 필요한 영화만 만드는 편이 낫다. (흑백의 현재를 호화찬란한 과거가 뒤덮어 버리던, 오페라 하우스에 빛깔이 되살아나던 그 인상깊은 첫장면을 생각해보라)
2005년, 슈마허의 손을 거치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던 배트맨 시리즈는 [메멘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에게 넘어갔다. 내가 [메멘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당연히 놀런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제발 박쥐씨를 살려내다오.
...놀런은 성공했다.
more.. (스포일러 주의!)
배트맨 시리즈는 부활했다. [배트맨 비긴즈]의 성공을 발판으로 앞으로 새로운 배트맨 영화가 계속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나로선 제발 크리스토퍼 놀런이 계속 감독을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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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zna
2005/08/07 15:34안녕하세요. 태터 센터에서 보고 들렀습니다.
정말 좋았지요 비긴즈 ;ㅅ;
저도 대사 반복하는 게 정말 너무 좋았던지라, 반가워서 답글 남깁니다 ^^ -
onecent
2005/08/12 16:26안녕하세요. 태터홈에서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비긴즈가 아마도 스타워즈를 제외하곤 올여름 제가 본 영화중 제일이 아니었을지. ㅎ
써놓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대사 반복되어 나오는게 저거 말고도 몇개 더 있었던 것 같네요. 여튼 인상적이었습니다. -
onecent
2005/08/17 10:40GS./분명히 '스타워즈를 제외하곤' '올여름' 으로 한정시켰다고. 이건 오버하는게 절대 아니야.
종현./2009 로스트메모리즈 이야기도 한번 들어볼테냐?
May the Force be with you

스타워즈 :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티저 포스터다.
제다이는 분노를 모를지어다.
증오도.
사랑도.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분노에 찬 제다이였다. 그의 분노는 결국 증오가 되어 들끓었다. 그리고 바로 사랑 때문에 그는 분노했고 증오했다.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요다가 한 그 유명한 말을 떠올려보자.
"두려움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으며,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득차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을 때 아나킨은 눈이 뒤집혀 날뛰었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 순간, 아련하게 제국의 테마음악 "The Imperial March"가 들려온다), 사랑하는 파드메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글자 그대로 '눈이 뒤집혀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사람이다.
분노하지 않고 증오도 없으며 사랑도 모르는 건 로봇이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건 보통 사람이 아니라 도사다.
말하자면 제다이는 죄다 도사들인 셈인데, 도사들만 줄줄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재미있을 리가 없다. 무슨 격렬한 사건이 있을리 없으며 모두가 다 원만하고 지혜롭게, 냉철하게 일처리를 해낼 테니 말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으음'하고 신음 약간 흘리고 마는 위대한 제다이 마스터 요다.
자기가 사랑한 제자가 악의 화신이 되어 제다이 학살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도 무슨 옆집 애들 싸움 보듯이 무심하게 '오, 더이상은 못보겠어' 라고 덤덤하게 내뱉고 마는 오비완 케노비. (만약 그 장면이 감정을 완전히 초탈한 제다이를 연기하려 했던 것이라면 이완 맥그리거는 훌륭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올해 골든 라즈베리상은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무조건 이완에게 낙점이다)
요다 카리스마 넘치는거야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우중충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어도 수염 한번만 만져 주면 우아함까지 묻어나오는 케노비가 매력적인 캐릭터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조연이기 때문에 멋져 보이고 위대해 보이는 것이다.
요다나 케노비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두시간 반짜리 영화가 나온다면 관객은 그야말로 곤욕을 치러야 할 거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요다의 도치법이나 케노비의 시니컬하면서도 우아한 영국 액센트를 들어 주는 것도 한시간이 한계다.
그렇기에 스타워즈의 주인공은 전편 삼부작이나 후편 삼부작이나 모두 '제다이 수련을 시작하기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은' 녀석들, 다시말해 사람의 감정이 이미 뿌리깊게 박혀있는 녀석들이 해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편 삼부작의 경우, 루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솔로가 더 인기가 많다. 누군가의 말처럼 "돈과 사랑에 움직이는" 솔로야말로 우리가 동일시할 수 있는 녀석이니까.)
[시스의 복수]는 감정이 증발해 버린 제다이들의 세계에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뒤틀린 감정이 폭발하면서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시스의 복수]를 세 번이나 봤는데, 볼 때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불쌍해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악의 화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야 한다. 팰퍼틴에게 무릎을 꿇는 아나킨을 보면서 도저히 "저 멍청한 녀석. 역시 내공이 부족했던게지" 라고 할수가 없다. 사실 내가 더 닮고 싶은 건 쿨함이 줄줄 흐르는 케노비였지만, 베이더의 분노가 절절하게 와닿았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케노비와의 동일시에 크게 흠을 낸 건 역시 이완의 '오, 더이상은 못보겠어' 였음을 밝혀둔다.)
베이더가 탄생하는 과정까지 다 지켜보고 나니 스타워즈 전체 스토리가 좀더 풍부한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쉭쉭거리는 숨소리만 들어도 모두들 벌벌 떠는 악의 화신, 조금만 맘에 안들면 원거리 목조르기에 들어가는 바로 그 다스 베이더가 아들 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허물어지는 게 이제는 얼마나 당연하게 느껴지는지.
게다가, 가면 때문에 베이더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는 게 얼마나 오묘한가.
베이더가 케노비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가 케노비의 포스를 느끼고는 "느껴본지 오래 된 포스다" 라고 말할 때. 그리고 마침내는 "내가 네 애비다" 라고 할 때까지.
그 암흑투구 속에 대체 무슨 표정이 떠올랐을까.
루카스가 미래를 꿰뚫어 보고 일부러 30년전에 베이더의 투구를 그런 모양으로 만들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베이더에게 무표정의 투구를 주었기 때문에 거꾸로 지금 시점에서 사람들은 그 투구에 아나킨의 표정을 마음껏 덧씌울 수 있게 되었다.
오비완과 다시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분노에 찬, 그러면서도 예전보다 더 여유가 있는 표정을.
루크를 앞에 두고 말할 때는, 파드메 앞에서만은 훨훨 타던 시뻘건 눈을 거두고 어린애같이 되어버리던 바로 그 표정을.
무표정의 투구 덕분에 전편 삼부작과 후편 삼부작은 3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아귀가 딱 맞는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4-5-6, 1-2-3 의 다소 이상한 순서에 따라 영화를 만든 건,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스의 복수]의 엔딩을 보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기 때문이다. [제다이의 귀환]의 엔딩에서는 '이제 정말 끝'이라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베이더와 루크, 레이아 (그리고 솔로)의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기에 [시스의 복수]가 끝났음에도 스타워즈는 끝이 아니다.
이거야말로 돌고도는 스타워즈의 세계관에 딱 들어맞는 엔딩 아닌가.
May the Force be with us all.
꼬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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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ne
2005/07/08 20:38꼬릿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긴 하는데..
2번항목에서 나이와 연기의 상관관계는 글쎄.
사무엘 잭슨과 이언 맥디미어드는.... 한살차이인데? ^^;; -
가넷
2005/07/08 23:58오오~ 결국 올라왔구나~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구~ ^^
4,5,6 덕분에 3편의 엔딩이 여운을 오래 남긴다는 건 정말 공감한다.
1,2,3편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구.
(영화관 안내원이 인상을 쓰고 바라보는데도 스탭롤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었지.)
전반적으로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네가 지적한 단점에 대해 "아니야!!!!"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좀 아니라고 느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인정을...;;
(그 이유가 대본 때문이었나...)
후후후. 이건 빨리 빨리 써줬어야지~~ ^^
(네가 이걸 빼먹지 않으리란 건 짐작했다만) -
onecent
2005/07/10 13:19종현/ ..
Justine/ 요다는 800살도 넘었잖습니까. 다들 어린것들 맞죠 뭐. 황제는 몇살이나 먹었는지 모르겠지만..그래도 명색이 시스 군주니 좀 먹긴 먹지 않았겠습니까;
맥디미어드하고 잭슨하고 나이차이 진짜 안나는군요. -_-;
...그런데 써놓고 보니, 나이 많이 먹은건 윈두도 마찬가지일텐데; 요다가 윈두보고 함부로 어린녀석이라고는 못할듯.
가넷/ 제가 처음 보러 간 날이 개봉일이었는데, 온 사람들이 죄다 팬들이었는지 시작할 때부터 박수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아주 신나게 볼 수 있었죠;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그 영화관에서 일찍 나간 사람이 열명이 채 안됐던 거 같은데; 하여간 대단했죠.
이번 스타워즈가 여섯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편이 아니었을지. -
김건
2005/08/07 17:48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느꼈던 것...사람마다 감동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
누구나 훌륭한 작품에 명공연임을 인정하고 절절한 감동을 받았다고들 하는데, 여자친구와 함께 간 나는 정작 그리 큰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뭐, 주인공이 노래부를 때 소름이 끼친 적은 있었지만.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을 보고서도...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이 실망했었다. 웅재와 내가 우리나라 드라마 보면서 딴지걸기 식으로 막 말을 쏟아낼 때처럼 거의 모든 장면마다 마음속으로 딴지가 걸리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감동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왕이면 나도 감동을 느끼는 쪽이었음 좋겠다.
근데, 웅재야 이런 글 써도 되남? ㅋㅋ -
onecent
2005/08/10 14:11이재학/ 그건 네 유일단독설이잖아. 지지자를 찾아볼 수 없는 극소수설. -_-;;
건/ 물론 이런 글 써도 되지. ㅎ
흠. 근데 에피소드3이 흠이 역시나 이전 두편처럼 어설픈 구석이 많긴 해도; 엄청 드라마틱하지 않았나;;
실망했다니 안타깝네_
2004년의 영화들 - 상반기

[실미도]는 썩 잘 만든 영화다. 다만 과연 이 영화가 관객 천만명을 넘는 최초의 영화가 되었어야 했는지는 좀 의문이다.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이 실미도보다 더 괜찮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동원에서 뒤진 것은, [올드보이]의 경우는 터부를 넘는다는 불쾌감과 잔인함이, [살인의 추억]은 연쇄강간살인이라는 소재의 끔찍함이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요 배우들 중에서 가장 실감나게 연기를 펼친 건 허준호였다.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 : 1월 14일, 메가박스 1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33&ct1=1&ct2=1 참조.
[라스트 사무라이] : 1월 23일, 메가박스 6관
일본 천황의 거슬릴 정도로 서투른 영어, 그리고 사무라이 대장으로 나온 일본인 배우가 기억에 남는다.
말을 타고, 검을 뽑아들고 돌진하는 사무라이들과, 그들을 향해 무차별로 총알을 퍼붓던 기관총을 대비해서 보여 준 클라이막스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땀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밀어내는 차갑고 무신경한 기계.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쓸쓸히 내몰리는 주판이 떠올랐다.
기계가 결코 대신해줄 수 없는 것, 기관총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사무라이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런어웨이] : 1월 31일, 씨네씨티 5관
기대하지 않은 영화였는데, 그 탓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레이첼 와이즈(!), 존 쿠삭, 더스틴 호프만, 진 해크만 등, 등장하는 배우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뉴올리언즈의 낯익은 풍경 또한 반가웠고.
배심제의 약간은 새로운 측면을 알게 해 준 영화였다. 2004년의 화두 중 하나였던 배심제 논의와 맟물린 탓에, 이후 동아리 모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엔딩크레딧 때 나온 노라 존스의 노래도 기억에 남는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 2월 7일,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회고전을 할 당시 볼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영화평론가 김영진씨가 최양일 감독과의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최양일 감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알아주는 거장이었다. -_-;
영화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인물들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마음속 한켠으로는 쓸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판소리에 자주 등장하는 희극적인 비애가 바로 이러한 감정일 것이다. 분명 코메디의 성격을 가진 영화임에도 무턱대고 아무 생각 없이 웃어제낄 수는 없는, 그리고 한없이 진지할 수만도 없는, 오묘한 영화였다.
[태극기 휘날리며] : 2월 16일, 메가박스 3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39&ct1=1&ct2=1 참조.

잭 블랙과 멋쟁이 베이시스트
[스쿨 오브 락] : 3월 1일, 씨네씨티 7관
잭 블랙의 완벽한 연기, 영화와 잘 어울리고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사운드트랙, 락의 저항정신, 게다가 끝내주게 멋있는 베이시스트 역의 배우.
뻔한 스토리를 커버하고도 남는다.
이건 별 네개짜리.
[콜드 마운틴] : 3월 4일, 메가박스 9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0&ct1=1&ct2=1 참조.
[빅 피쉬] : 3월 14일, 메가박스 6관
팀 버튼스럽지 않으면서도 팀 버튼스러운 영화. [배트맨]이나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와 같은 음침함은 사라졌지만, 영화 전체에서 풍기는 환상적인 분위기나 CG를 사용하지 않은 독특한 소품들은 여전하다.
주인공의 아들은 아버지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그토록 알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진실은 사실 그 누구도 완전하게 복원해 낼 수 없는 것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우리는 모두 다 평범한 생선을 빅 피쉬로 둔갑시켜 머리속에 저장해 놓고 있다. 그리고 그게 우리에겐 진실이다.
[홍반장] : 3월 28일, 센트럴시티 5관

정말 끝내주는 건 이 영화의 예고편이었다. 예고편 막판에 돌연 엑스파일의 성우들이 김주혁과 엄정화의 입모양에 맞춰 더빙을 하는데, 마지막 엄정화가(스컬리의 목소리로) 내뱉는 대사가 압권이었다.
"아니, 멀더 바래요?"
...이런 센스를 영화 내내 끌고 가 줬으면 좋았으련만.
[로젠슈트라세] : 4월 9일, 서울여성영화제
훌륭한 영화였다.
2차대전 당시 유태인과 결혼한 아리안 여성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홀로코스트는 분명 새로웠지만, 변함없이 가슴아픈 경험이었다.
로젠슈트라세에 모인 사람들이 '내 남편을 돌려줘!' 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는 누구라도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다.
[범죄의 재구성] : 4월 25일, 씨네시티 9관
아무리 한기주가 멋있네 어쩌네 해도, 박신양은 [범죄의 재구성]에서처럼 껄렁껄렁한 양아치 역을 할 때 가장 자연스럽다.
"애기야 가자" 보단 "습습 후후"가 더 그럴 듯하단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5월 5일, 메가박스 6관
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도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뜬금없는 제목에서부터 영화 내용에 이르기까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계속해서 뭔가 곱씹게 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뭐가뭔지 알고 나서야 그것에 대해 곱씹을 수 있는 법이니까)
바로 이런 경험, 이런 '무의미'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데 이 영화의 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유지태는 그렇다 쳐도 난 정말 김태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괜히.
[효자동 이발사] 5월 5일, 메가박스 8관
영화를 보고 나서 나오는데, 출구 앞에 웬 아저씨가 피켓을 몸에 걸치고 서 있었다. 전단지를 읽어 보니 자기가 진짜 박정희 머리를 깎아 준 이발사랜다. 박정희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쩌고 하는 내용이 써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별로 크게 주의를 기울이진 않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였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어쩌면 7,80년대를 살아 보지 못한 나로서는 더 이상 공감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발 물러선 시선으로 당시의 거지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격렬한 감정은 영화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나 역시 강한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5월 5일, 메가박스 11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3&ct1=1&ct2=1 참조.
이날 영화를 많이도 봤지만, 그 중에서 마지막에 본 [아라한]이 단연 최고였다. 그 덕에 기분좋게 집에 갈 수 있었던 듯.
[천공의 성 라퓨타] 5월 10일, 강변 CGV 7관
[라퓨타]는 이미 오래 전에 본 터였지만, 극장에서 상영한다길래 강변역까지 가서 봤다.
..전날 잠을 거의 못 잔 탓인지, 중간에 졸아버렸다. -_-
조 히사이시의 음악은 다시 들어도 훌륭했다.
[트로이] 6월 11일, 메가박스 8관
트로이를 보고 나서 헬스하기로 결심했다
"신들은 우리를 질투해. 우리가 죽기 때문이지."
유독 아킬레스의 저 대사가 떠오른다. (잘못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타이의 대모험]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아마도 포프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었을텐데, 밤하늘을 보다가 돌연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울음을 터뜨린 어린 포프에게 포프의 엄마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 수 있는 법.."
영생불멸한다면 그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이겠는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이야말로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하얗게 불태우며 살아갈 수 있다.
...아킬레스가 성문 앞에서 헥토르를 불러낼 때, 헥토르가 나올 때까지 굳이 그렇게 수십번 쉬지 않고 불러야만 했을까. 두어번만 부르고 그냥 기다렸어도 됐을 텐데.
[투모로우] : 6월 15일, 메가박스 1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9&ct1=1&ct2=1 참조.
...에미 로섬(!)의 출연작.
[슈렉 2] : 6월 21일, 메가박스 9관

가증스러운 고양이
프린스 차밍이 재수없는 마마보이라거나, 대모 요정님이 사실은 음험하기 짝이 없는 아줌마라거나 하는, 1편에서부터 계속된 동화 패러디도 기발했다. 1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많았지만, 2편을 먼저 보고 1편을 나중에 본 나로선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두 영화가 내세우는 무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것을 먼저 보든지 나중에 보는 영화에서는 신선함을 덜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1편을 보면서 2편보다 특별히 뛰어난 점을 느끼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1편을 먼저 본 사람들에게는 2편이 약간 식상했던 것 아닐까.
[아는 여자], 6월 26일, 메가박스 9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53&ct1=1&ct2=1 참조.
[아라한]과 더불어 아마도 상반기 최고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스파이더맨 2] 6월 30일, 메가박스 1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5&ct1=1&ct2=1 참조.
그렇다면 쓰리, 몬스터도 고전이 될 만한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세 편 중에서 두번째 영화는 잘 모르겠지만, 첫번째와 세번째 것의 경우는 적어도 우리 시대의 문제가 반영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시대의 '가장 극단적으로 제기된 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는 좀더 생각해 봐야겠군.
관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건 쉬운 일이다. 피를 스크린에 동이째로 쏟아부으면 된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을 몸서리치게 할 수 있느냐이다. 피는 필요한 만큼만 튀기면 된다.
[+] http://blog.naver.com/greyrain.do?Redirect=Log&logNo=60005039919
[쓰리, 몬스터]의 제작에 대한 이야기. 미리 알고 봤으면 좀 더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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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2004/08/24 19:34이 영화.은근히 계속 생각난다는..
감각적인 묘사가 너무 강해서 그 때는 거부감이 강했지만
거부감이 줄어드니까 남는 내용이 많더군요ㅎ 어쩌면 감독의 의도가 이거 였을지도.. 충격만 받고 금새 잊곤 하는 요즘 수박 겉핥기 식의 뉴스를 풍자하는걸지도.? -
onecent
2004/08/26 00:29충격만 받고 금방 잊어버리는 요즘의 세태를 풍자하려고까지 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 요즘의 자극적인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감각이 무뎌진 것이 이 영화가 필요 이상으로 잔혹해질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가 되긴 했겠지. 어지간히 피를 쏟지 않고서는 사람들이 눈하나 깜짝 안 할거라는 걸 감독들도 잘 알고 있을테니.
나도 이 영화, 천천히 곱씹어보고 있는 중인데, 실제로 괜찮은 점도 많이 발견하고 있는 중. 여전히 박찬욱 감독이 만든 첫번째 영화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고. '너는 부자에 능력도 좋으면서 왜 착하기까지 한거야'라는 질문이 은근히 날카롭다니까. 물론 정작 극장에서는 그 이후 줄줄이 이어진 그로테스크함에 질려서 잠시 그 질문을 잊어버리기까지 했지만(과도한 잔혹함의 폐혜).
어이, 거기 허접스런 시나리오 갖고 두시간 반 중의 절반을 슬로모션으로 때우는 감독들. 가서 밀로스 포먼에게 한 수 배우고 오라. 다섯번째 별은 바로 이런 영화를 위해 남겨놓는 것.

Mediocrity is everywhere!
나는 평범하다. 그러니 고개를 숙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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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4/07/31 09:55크흑...!!!
dvd 산거야? ㅠ_ㅠ 이 영화 정말 끝내주지?
정말 어렸을 땐 지겨워서 못 보겠던데 몇 년후 다시 tv에서 할 땐 감동 100배...
dvd 살테다!! 꼭 살테다!!!
(mbc에서 할 때 성우 배한성씨의 연기도 꽤나 멋졌지...
더빙도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
onecent
2004/08/01 16:34네; 디비디 구해서 봤습니다. 보니까 SE와 일반판 두 종류가 있던데.. 나온지 꽤 돼서 그런지 SE는 거의 대부분의 쇼핑몰에서 품절이더군요. 그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재고가 남은 곳을 발견해서 사버렸죠. (그래서 할인혜택은 별로 못봤습니다만;)
더빙판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모짜르트나 살리에리나 정말 연기하기 쉽지 않은 배역일텐데..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아즈카반의 죄수
그래, 역시 주인공이 가운데에 있어야..
이미 1편과 2편에서부터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가 엠마 왓슨을 위한 것이었음은 분명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오버를 한 건 3편에서 어느 때보다 헤르미온느의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2편에서는 중간에 석화되어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깨어날 때까지 제대로 출연하지도 못하는 불운을 겪었었다. 이번에도 포터씨 주변의 누군가 앓아눕긴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론이고, 그 덕에 헤르미온느의 출연시간에는 영향이 없다. 그래, 저번에도 네녀석이 석화되었어야 했어.
이제 영화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스포일러 주의!)
엠마 왓슨과 알폰소 쿠아론
새 감독 덕택에, 내년에는 해리 포터 영화도 (엠마 왓슨 이외의 뭔가를)기대하면서 보러 갈 수 있게 됐다. ★★★★
+덧붙이기 : 확인한 바에 의하면 4편은 쿠아론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쩝. 그냥 계속 맡았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뭐 에일리언 시리즈처럼 감독마다 어떤 식으로 개성을 드러내나를 보는 것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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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cent
2004/08/01 16:35나도 한번쯤 더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과연 다시 보러 갈지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나도 다시 보면 처음에 놓친 부분들을 더 많이 발견해낼 수 있을텐데. ㅎㅎ -
onecent
2004/08/01 16:36아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해리포터 녀석따위야 헤르미온느에 비하면.. -_-; 그녀석의 출연시간을 전부 헤르미온느에게 헌납해 버렸으면 하는게 내 솔직한 심정; ㅎㅎ -
nymphwitch
2004/08/07 10:11울집에서는 나랑 내동생 빼고 두 분은, (그러니까 부모님이)
헤르미온느 못생겨졌다고 하시더라.
놀랐음-_- 과연 미의 기준은 다른게야. -
onecent
2004/08/07 19:53흠. 못생겨'졌'다는 평가니까.
미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그리 크게 다른 건 아니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ㅎㅎ
헤르미온느 인기는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모양이던데. -
아..진짜 기분 나쁘네..
2005/01/17 00:03아..진짜
맥컬리 컬킨이 어때서..!
기분나쁘네...
맥컬리 컬킨 지금 잘 먹고 걔네들보다도 더 잘살고 300억도 넘는 부자에다 밀라 쿠니스 헐리우드 스타랑 결혼하고 마약해도 무죄 판결 나고 그딴식으로 사람 비하시키면 안되지.. -
onecent
2005/01/17 12:55[론이나 말포이가 너무 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즘 애들이 그렇게 빨리 크는 건 별 수 없는 일. 기본적으로 성장 스토리인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언제나 말포이가 1편에서의 그 조그만 꼬마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이제 말포이는 상당히 끔찍해져 버렸지만 -_-;) 그나마 주연 배우 세사람이 말포이나 맥컬리 컬킨처럼 나쁜 쪽으로 환골탈태하지는 않은 걸 고마워해야 한다.]
사실 윗분의 댓글을 보고 놀라서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만, 확인해 본 결과 맥컬리 컬킨에 대해 언급한 건 위에 인용한 저 부분의 한줄이 전부입니다.
사실, 전 맥컬리 컬킨을 '비하'할 의도도 없었고 그 사람을 무시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나홀로 집에] 시절의 귀여운 소년이 나이가 들면서 너무나도 빨리 그 어린 시절의 모습과 달라진 걸 말하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글 쓰신 분께서 '나이가 든 맥컬리 컬킨도 예전 못지않게 귀엽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저로선 어린 시절의 맥컬리 컬킨이 훨씬 마음에 드는 게 사실입니다.
'나쁜 쪽으로 환골탈태'했다는 건 스크린에 비쳐지는 모습, 그러니까 철저히 외모에 관련된 부분에 한해서 한 말입니다. 실제로 글의 문맥상으로도 어린 배우들이 성장하면서 외모가 변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맥컬리 컬킨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니 오해의 소지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맥컬리 컬킨이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가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저는 글 본문에서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맥컬리 컬킨이라는 '사람'에 대해 제가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셨다면 그건 글 쓰신 분의 오해입니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습니다만, 요약하자면 1)저는 글을 쓸 당시 맥컬리 컬킨을 '비하'시킬 의도로 저 문장을 쓴 것이 아니며, 2) 그러한 의도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 사실 언젠가 맥컬리 컬킨이(물론 이제는 성년이 된 맥컬리 컬킨입니다) 무슨 연예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하는 걸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최근 근황 등등을 다룬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간' 맥컬리 컬킨에 대해서는 호감만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여전히 어린시절 맥컬리 컬킨이 '외모'는 더 호감이 가는게 사실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안 볼 걸 그랬다.
왜냐고? (스포일러 주의)
영화비가 아까운 영화다. 그러면 디비디로 봐야 할까? 문제는 이 영화의 그나마 나은 요소 중의 하나가 큰 스케일이기 때문에 디비디로 봤다간 그마저도 잃게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냥 아예 안 보는 게 여러 모로 좋다. 물론, 키이라 나이틀리 때문에 어떤 것을 감수하고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도 차라리 [캐리비언의 해적]이나 [슈팅 라이크 베컴]을 한 번 더 보는 쪽을 권한다. ★

그래, 가끔 나쁜 영화 찍을때도 있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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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2004/07/26 02:50얼마나 혹평을 하셨나 궁금해서 와봤더니 -_-ㅋㅋ
"내내 개폼을 죽어라 잡아대던 적 두목에게 웅장한 대검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더니만, 가슴팍에 종이로 벤 것같은 상처가 나서 피가 조르륵 조르륵 흐르며 죽는 모습이라니"
이거 진짜 명문장인데요ㅋㅋ 조르륵 조르륵~ +_+
Star Wars Episode III : Revenge of the Sith
장대한 서사시의 마지막을 장식할 스타워즈 에피소드 3편의 부제가 결정된 것이다 : 'Revenge of the Sith.'
번역을 해보자면 '시스의 복수' 정도가 된다. Sith는 포스의 다크 사이드를 대표하는 녀석들을 일컫는 말이다. 선한 세력을 대표하는 Jedi에 대응되는 녀석들, 쉽게 말해 '나쁜놈들'이다.
시스가 무슨 뜻인지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스'란 단어를 다른 말로 대치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에피소드 6 : Return of the Jedi 를 '제다이의 귀환'으로 번역했던 점을 돌이켜본다면 이번에도 '시스의 복수'라고 그대로 밀고 나갈 것 같긴 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편이 일관성도 있고 더 좋다)
이걸로 총 여섯 편의 에피소드의 부제는 모두 다 정해졌다. 내용에 따라서 처음의 스타워즈 삼부작(에피소드 4,5,6)을 하나의 묶음으로(편의상 1부라고 부르자), 그리고 나중의 스타워즈 삼부작(에피소드 1,2,3)을 또 하나의 묶음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각 에피소드의 부제는 대칭을 이루면서 순환되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2부 : Ep.1 보이지 않는 위험(발단) - Ep.2 클론의 습격(전개,위기) - Ep.3 시스의 복수(절정,결말)
(각 에피소드들의 원제목은 http://www.onecent.x-y.net/tt/index.php?pl=49&nc=1 참조)

이와 같은 순환의 세계관은 신화학자 조세프 캠벨의 영향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조세프 캠벨은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드는 데 상당한 조언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순환하지만 똑같은 일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닌, 변화하면서 이전 단계를 끌어안아 변증법적으로 발전을 이루는 세계관이 바로 스타워즈 저변에 깔린 틀인 것이다. 아나킨은 그 가공할 만한 능력을 주목받았고, 사람들은 불안정한 포스의 균형을 이루어 낼 예언의 인물이 바로 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체로 불안정한 사람이었고, 결국 다스 베이더가 된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포스의 균형을 이루기는커녕 혼돈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루크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유일한 희망이었고, 그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결국은 시스를 절멸시키고 포스의 균형을 가져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분명 에피소드 1에서 아나킨을 발견해 낸 콰이곤 진은 아나킨이야말로 예언에서 말하는 그 사람이 틀림없다고 장담한다. 아나킨이 기대와 달리 다스 베이더가 되어 제다이를 몰살시키는 주역이 되었을 때, 콰이곤의 예견은 완전히 빗나간 것처럼 보인다. 예언의 인물은 아나킨이 아닌 루크였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좋은 것일까?
루크는 결국 아나킨의 분신에 다름 아니다. 루크가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수 있었다면, 그것은 암흑의 정점에 딴 사람도 아닌 바로 그의 아버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무적, 최강의 전사 다스 베이더가 세계 유일의, 최후의 제다이에게 "아임 유어 파더"라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루크는 아나킨이 길을 잘못 들은 것을 바로잡아 주는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루크가 제다이로서 팰퍼틴과 맞서 싸우긴 했지만, 마지막에 팰퍼틴을 죽인 건 베이더였음을 기억하자. 아나킨은 자신이 시작한 일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마무리지었다. 포스의 균형을 가져온 것은 바로 그였다. 아들을 통해 암흑에서 돌아온 아나킨, 베이더의 가면을 벗고 숨을 거둔 바로 그 아나킨이 예언의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피소드 3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 이미 결말은 모두가 알고 있다. 아나킨의 증오가 폭발하고, 그는 검은 가면을 쓰고 베이더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최후의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파국이다. 가슴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스타워즈에 대한 좋은 기억들(다시 말해, 에피소드4~6의 기억들 -_-;)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은둔한 요다와 오비완, 삼촌과 사는 루크, 입양된 레이아. 그 모든 것은 아나킨이 베이더로 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대가 큰 만큼 불안감도 크다. 에피소드 1과 2는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루카스의 연출력은 형편없었고, 대사나 스토리라인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었다. 에피소드 1, 2를 그나마 끌고 나간 건 과거의 기억들이다. 쓰리피오와 알투디투, 요다, 젊은 오비완, 광선검, 제국의 테마음악. 옛날 스타워즈 시절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새로운 스타워즈 영화들에는 흥미로운 게 없었다. 에피소드 3마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봐 루카스, 당신이 역부족이라면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라도 물건을 한번 만들어 달라 이거야. 전혀 감정이입도 못하는 엔싱크같이 생긴 녀석이 닭살돋는 대사를 내뱉고 고뇌하며 베이더가 되는 걸 연기하는 건 보기 싫다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잖아, 안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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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4/07/28 14:17오오오!!! 어젠가 그저껜가 AFKN 라디오 듣고 있으니 스타워즈 얘길 하더라구.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애들 둘이서 무지하게 흥분하더라...;;;
어쨌든 기대해봐야지 어쩌겠어...
언제 날잡아서 에피소드 4, 5, 6이나 다시 볼까...






2007/08/09 01:16
2007/08/10 01:33
캐리비안의 해적도 그 점에서는 똑같지.
2007/08/11 18:33
아, 그 사람 아버지였어?? 우리둘다 집중력고갈로 슬슬 이해못할 때 등장해서 누군가했는데...;;;ㅋ
2007/08/12 19:41
해적들이 법전 앞에서 부들부들 떠는 게 참 어이가 없었지..;ㅎㅎ
2007/08/26 21:18
2007/08/27 20:17
아아..나도 1편만 찍고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데는 백프로 공감.
그렇지만 2편, 3편은 1편 성공 탓인지 돈은 엄청나게 벌어들였더라고. 영화사 입장에서는 돈 되는데 영화를 안 만들리가 없고...
깔끔하게 하나로 끝내길 기대할 수는 없는걸까.
[스위니 토드]는 꼭 챙겨봐야겠구나.
2007/10/11 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