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없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영화평론가 정성일 인터뷰두 개 읽게 되었다.

씨네21과의 인터뷰가 좀 더 길고,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동진 기자와의 인터뷰에 있는 내용은,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씨네21 인터뷰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면 씨네21 인터뷰만 읽어봐도 무방할 듯하다.

"나는 이런 말을 인용하고 싶다. 차이밍량이 서울에 왔을 때 누군가 질문했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의 차이는 무엇인지. 차이밍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영화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 나는 거기에 진리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시대에 대한 반작용'을 이야기하는 아래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다만 그가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로 규정한 '실용주의'는 사실 90년대의 것이라기보다는 해방 이후 계속해서 형성되고 강화되어 왔던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각각의 시대는 이전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내가 생각하기에 70년대는 교양의 시대였다. 그때는 <사상계>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을 비롯한 많은 계간지가 나왔고, 지금과는 다르게 파워가 있었다. 그런데 교양과 지성의 단점은 입으로만 떠들지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작용으로 80년대는 행동의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실천으로 나갔다. 그런데 정치의 결정의 다른 판본은 도그마이므로, 90년대는 다양성의 시대를 요구했다. 90년대는 문화의 시대였다. 막시즘만 진보가 아니고 페미니즘과 이반과 수많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진보를 말했다. 이 문화의 시대의 약점은 실속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실용주의가 된 것 같다. 지금 사람들은 실용적인 게 아니면 견디지를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미친 것이다. 나는 이 실용주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돗자리를 깔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웃음),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 보일 것 같다. 실용주의 시대가 계속될지, 아니면 반작용이 나와 실용주의를 끝장내고 다른 시대를 불러올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것을 선점할 것인지 아니면 시대에 매달려 질질 끌려갈 것인지 지켜보아야 한다. 비평가는 예언하는 것이 직업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평하는 것이 직업이다. 비평이라는 것은 시대에서 가장 뒤에 오는 것이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에는 한번 가봐야겠다. 딱히 그 영화제 상영작들에 흥미가 당긴다거나 해서가 아니라(나는 상영작들이 뭔지도 아직 모른다), 5분이면 터덜터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서 한다는데 안 가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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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7 02:18 2007/07/17 02:18







remember Penny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6/09/24 11:22


remember Penny Hardaway


..그의 이름은 내 아이디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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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4 11:22 2006/09/24 11:22







사무라이 참프루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6/08/27 14:32


[카우보이 비밥]을 만든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2004년작, [사무라이 참프루].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이것저것 뒤섞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 따라올 자가 없어 보인다. [비밥]에서는 우주SF에다가 카우보이와 재즈를 섞어내더니 이번에는 에도시대 사무라이에다 힙합을 버무려버렸다.

시대는 에도시대라는데, 칼자루를 마이크삼아 비트박스를 넣는 사무라이가 등장했다가, 페인트통과 붓을 들고 다니면서 단속을 피해 그래피티를 그려대는 사무라이도 나오는가 하면, 대포로 무장한 미국 배의 침공을 야구시합으로 이겨버리는 사무라이도 있는 식이다. 당장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무겐은 검술이라기보단 브레이크댄스에 가까운, 카포에라 비스무레한 신공을 보여준다.

흉내내기 어려운 센스. [비밥]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 엔딩에서도 딱 적당한 만큼만 여운을 남기는 게, 구질구질한 거 없이 깔끔하고 좋다.




... 자, 이제 남은 건 돈 모아서 디비디 사고 피겨 사고 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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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7 14:32 2006/08/27 14:32
  1. 득희
    2006/09/07 04:00
    오옷 웅재형~
    이게 형이 말씀하신 에니메이션!
    정말 센스 있네요 하핫!
    • onecent
      2006/09/11 11:24
      아니 이게 누구야.ㅎ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오셨나; ㅎㅎ
      웰컴웰컴.

      사무라이 참프루는 진짜로 일부러 시간내서 볼만한 가치가 있어..
  2. 승현
    2006/09/17 23:05
    5화 정도까지 보다가 어찌어찌하여 다 못봤는데..다시 시도해보려구요ㅎ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봤는데 보자마자 와타나베씨 작품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정말 비밥에서의 스탈과 분위기 물씬-그러면서도 뭔가 다른.







침묵과 열광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6/07/30 12:37

강양구·김병수·한재각, 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후마니타스, 2006
이성주, 황우석의 나라, 바다출판사, 2006


[침묵과 열광]은 황우석 사태의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이른바 '과학기술동맹'을 지목하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황우석 사태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한다.

"'황우석 사태'의 핵심에는 물론 황 교수의 과학 사기 사건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 과학 사기 사건이 전 국민적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전 세계적인 스캔들로 불거진 데는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탓이 크다. 정치권·정부·언론·재계·의학계·과학계의 권력층이 황 교수와 여러 형태의 이해 관계를 맺으면서 '황우석 사태'를 배태시키고 심화시킨 것이다."

황우석 사태를 배태시킨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과학기술동맹'이지만, 정부의 인사들은 문책이 되지 않은 채 여전히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기업들이 이 사태에서 수행한 역할은 아예 부각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황우석 교수라는 한 과학자 개인이…벌인 사기 사건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한다. '모두가 황우석에게 속았다'는 식의 평가는 드러난 객관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이번 사태를 책임져야 할 관련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불순하기조차 하다. 반성과 문책이 수반되지 않은 일은 다시 벌어지는 법이다."

한편에는, "좀처럼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을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열등감과 공허감을 일거에 극복해 줄 영웅으로 인식"됐던 황우석에 대한 맹목적이고 "다분히 애국주의 색채를 띤" 열광이 있다.

논문 조작이 밝혀지고 '황우석 사태'가 이제 결말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도, 황 교수에 대한 열광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 그 애국주의적 열정에는 비장감마저 보인다.… '황우석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다. 황우석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것을 잉태시킨 사회구조적 원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부와 기업, 그리고 과학기술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다시 밀월관계를 맺을 테고, 그 과정에서 실험 과정의 투명성과 윤리성(난자 채취 문제가 제대로 거론되지도 못했던 점을 기억하라)은 짓밟힐 것이다. 거기다 한국의 대중은 '국익'이란 커튼으로 언제든지 모든 것을 덮어 버릴 태세가 되어 있다.

[황우석의 나라]의 저자 이성주는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는 황우석 사태를 지켜보다 언론의 행태에 환멸을 느껴 2006년 사직서를 내고 14년간의 기자생활을 접고 이 책을 썼다. 그런 탓에 언론사 내부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는 포퍼(K.Popper)에게서 영감을 얻어 황우석 사태를 낳은 언론과 과학계, 정치권의 문제점이 바로 '민주주의 시스템'의 부재라고 진단을 내리는데, 이는 어찌 보면 식상할 정도로 타당한(당연히 여기는 것이지만 그 당연한 것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 지적이라 할 것이다.

황우석에 대한 열광은 한국의 대중을 움직이는 동인의 한 발현에 불과하다. (가령, 여길 한번  찬찬히 살펴보라. 그 이면에 깔린 심리는 황우석 사태에서 드러난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어째서 그런 열광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것이 바로 내가 가장 흥미가 있었던 점이었고 황우석 사태에 관련된 책을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침묵과 열광]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황우석의 나라]는 서문에서 "왜 우리는 황 교수에게 그렇게 열광을 했고…극단적인 행태를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현대 정신의학의 여러 이론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본문 내용은 '왜' 그러한 열광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나타난 현상들을 "부인"이니 "투사"니 하는 전문용어로 포섭시키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의 의문점들에 대한 답은 아마도 대중심리학 책들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두 권을 굳이 다 읽을 필요는 없고, 보다 총체적인 관점과 다양한 문제제기, 그리고 깊이 있는 분석을 보여 주는 [침묵과 열광]을 꼼꼼히 읽어보면 될 듯하다. 황우석 사태는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그에 대한 치열한 반성은 반드시, 언제까지고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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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30 12:37 2006/07/30 12:37
  1. 재학
    2006/07/30 16:32
    허생이 말한 것처럼, 땅이 좁고 사람이 적어서 그래요..
  2. onecent
    2006/08/06 18:27
    사람이 적은거 같진 않아 딱히;;; ㅎㅎ

    그나저나 너 언제쯤 귀국하냐.







피닉스 너마저..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6/06/04 12:37

동부지구는 마이애미가 디트로이트에게 4대 2로 승리.
지난 3년간의 철벽수비와 팀워크는 어디로 갔는지. 한두명의 슈퍼스타를 믿고 날뛰던 녀석들에게 농구는 다섯명이서 하는 경기라는 걸 깨우쳐주던, 벼랑끝에 몰릴수록 더 강해지던 디트로이트 피스턴즈는 온데간데 없었다. 동부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피스턴즈의 시대는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이렇게 열렬한 홈 팬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피닉스 선즈도 조금 전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6차전을 지고 말았다. 서부지구 결승 시리즈는 댈러스의 4대 2 승리.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매 시리즈마다 드라마를 연출해 내던 신데렐라 팀 피닉스의 기적적인 행진도 끝났다. 피닉스 팬은 아니었지만, 올해 플레이오프를 지켜보면서는 이 팀을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라운드에서 밥맛없는 코비에게 제대로 한방 먹여 준 것만으로도 피닉스 팬이 돼 줘야 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응원하던 팀들은 모두 져 버렸다.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사진 출처는 NB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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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4 12:37 2006/06/04 12:37







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These passions, like great winds, have blown me hither and thither, in a wayward course, over a great ocean of anguish, reaching to the very verge of despair.

I have sought love, first, because it brings ecstasy - ecstasy so great that I would often have sacrificed all the rest of life for a few hours of this joy. I have sought it, next, because it relieves loneliness--that terrible loneliness in which one shivering consciousness looks over the rim of the world into the cold unfathomable lifeless abyss. I have sought it finally, because in the union of love I have seen, in a mystic miniature, the prefiguring vision of the heaven that saints and poets have imagined. This is what I sought, and though it might seem too good for human life, this is what--at last--I have found.

With equal passion I have sought knowledge. I have wished to understand the hearts of men. I have wished to know why the stars shine. And I have tried to apprehend the Pythagorean power by which number holds sway above the flux. A little of this, but not much, I have achieved.

Love and knowledge, so far as they were possible, led upward toward the heavens. But always pity brought me back to earth. Echoes of cries of pain reverberate in my heart. Children in famine, victims tortured by oppressors, helpless old people a burden to their sons, and the whole world of loneliness, poverty, and pain make a mockery of what human life should be. I long to alleviate this evil, but I cannot, and I too suffer.

This has been my life. I have found it worth living, and would gladly live it again if the chance were offered me.

...


친족법 시험공부를 하던 중, 지겨움에 부들부들 떨다가 갑자기 무슨 충동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무작정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중도로 향했다.

다짜고짜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을 빌렸다. 위의 글은 그 책의 머리말이다.

과연 나도 언젠가는 이런 글을 써낼 수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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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8 22:37 2005/12/08 22:37
  1. 이경호
    2005/12/11 16:19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문학가였던

    버트란드 러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환생이라 해도 믿겠다.

    역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 글도 매우 잘 쓰네.

    명문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

    심리학 수업에서 어줍게 주워온 지식으로는 인간은

    착각없이는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그러지만,

    역시 러셀의 다음과 같은 한마디에 이끌리는건

    아마 너도 그렇겠지.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 을 택하겠다."

    게다가 뛰어난 지성에 손색없는 언행일치를 보여주는

    강인한 의지. 위인이란 이런 사람을 칭하는 것이겠지.
  2. 하영
    2005/12/15 18:59
    해석을 부탁하는건...무리겠지...ㅎㅎ;;
  3. onecent
    2005/12/16 16:34
    단순하지만 압도적으로 강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삶을 지배해 왔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그리고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연민. 이 열정들은 마치 커다란 바람처럼 나를 여기저기로 변덕스레 몰아댔다. 거대한 괴로움의 바다를 지나서, 절망의 바로 문턱에 이를때까지.

    내가 사랑을 추구했던 이유는, 첫째로, 그것이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너무나 커서 다만 몇 시간이라도 그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라면 나머지 생을 다 희생했었을 법한 그런 희열을. 다음으로, 그것이 외로움을 덜어 주기 때문이다. 영혼이 몸서리치며 세계의 끝자락 너머 차갑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는 그 끔찍한 외로움을.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렸던 천국의 영상의 신비로운 축소판을 바로 사랑의 결합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했던 것이고, 비록 인간의 삶에겐 과분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마침내 이것을 찾아냈다.

    마찬가지 열정을 갖고 난 지식을 추구했다. 나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나는 별들이 왜 반짝이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수(數)로 하여금 끊임없는 변화를 지배하게 하는 피타고라스적 힘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이것을 조금은, 많이는 아니지만, 해냈다.

    사랑과 지식은, 그것들을 얻은 만큼은, 나를 천국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언제나 연민이 날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게 했다. 고통에 찬 비명의 메아리가 내 가슴 속에서 울려퍼진다. 기근에 시달리는 아이들, 억압자에게 고문당하는 피해자들, 자식들에게 짐이 될 뿐인 가여운 노인들, 외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 가난, 그리고 고통 은 인간 삶의 이상을 조롱거리로 만든다. 나는 이 악을 누그러뜨리고 싶지만, 힘이 닿지 못하고, 나 또한 고통받는다.

    이게 내가 살아온 삶이다. 꽤 살아볼 만 했다고 생각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 것이다.



    ...저 아름다운 문체까지 번역하는 건 내겐 벅찬 일이야;;
  4. 하영
    2005/12/26 18:39
    감동이야. 고마워...쥬륵ㅠ







어제 밤에 편집위원장 영재군으로부터 문자메세지를 받았습니다. 2005년 AF자료집에 넣을 대표인사를 써 달라고 합니다. 이미 행사 시작 전에 영어로 써 놓은 게 있지만, 자료집에는 영어 외에 한글판으로도 글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한글로 된 문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냥 영어로 된 글을 번역해서 손쉽게 일을 끝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지가 않습니다. 해마다 자료집에 실리는,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로 시작해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와 ‘준비하느라 고생한 모두에게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틀에 박힌 대표인사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글 부탁을 받고 나니 문득 지난 3년간 내가 겪은 많은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8월말 그 덥고 힘들었던 일주일의 기억이 하나하나 되살아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냥, 고생을 사서 하는 것, 바로 그게 모든 알싸인들의 숙명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별 생각 없이 알싸에 들어왔습니다. 국제 교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동아리를 뭔가 하기는 해야겠다 하는 흐리멍덩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쩌다가 마지막엔 대표까지 맡게 됐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한번 빠지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들만큼 알싸가 주는 매력이 대단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일단 그 매력에 빠진 다음 순간부터는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알싸에 부족한 점들이 산더미처럼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고쳐 나갈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싸맸습니다.

회원 수는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새로 보는 얼굴이 등장해서 언제나 자기소개하기 바쁠 지경이었습니다. 지부 간 교류도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뚜렷한 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매년 한두 개의 국제행사를 치를 역량은 축적되어 있었지만, 그냥 여러 나라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목표가 불분명하다 보니 세미나 주제는 너무 광범위했고, 그만큼 깊이가 없었습니다. 주제는 천편일률적이었고,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깊이도 없었습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마찰도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저로선 힘들었습니다. 처음 대표직을 맡을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저는 똑같은 문제를 두고 끙끙댔고,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후배들에게 짐을 떠넘긴 채 도망치듯 동아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제 1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제가 후배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부탁은, 제가 여러분에게 떠넘긴 짐을 짊어 져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고쳐보려 했던 문제점들에 대해 여러분도 고민해 달라는 것입니다. 더 나은 알싸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알싸는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에 참가해 보는 것은, 정말 쉽게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입니다. 굳이 국제 행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러 대학의 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그 자체만으로 특별합니다. 처음에 제가 그랬듯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입해서 사람들도 좀 만나고, 외국에도 한두번 나가 보고 하면서 그럭저럭 불만 없이 한두 해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싸가 그저 밋밋한 대학 생활에 스케줄 몇 개를 마련해 주는데 그친다면, 할일 없이 지루한 긴 방학에 그나마 뭔가 이벤트가 되어 주는 데 그친다면, 그리고 그걸로 만족한다면 알싸에서 보낸 시간은 낭비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알싸가 갖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썩히는 것이 아깝습니다. 이십대의 황금같은 시간이 아깝습니다. 굳이 ‘동아리의 가능성’이니 ‘돌아오지 않는 젊음’과 같은 거창한 말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는 건 결국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알싸는 여러분의 허전한 곳을 채워주는 동아리가 되어선 안됩니다. 그래서는 얻을 수도 있을 보다 풍성한 경험을 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나마 채우고자 했던 허전함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테이블 토론 준비를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까 하고 머리를 싸매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며 싸우고 괴로워하고, 밥을 굶고 잠을 줄이며 쓰러질 때까지 바쁘게 뛰어다닐 때에만 허전함이 없어질 것입니다. 민감한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서 토론을 하고,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는 자료를 찾고 읽고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시간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어지간히 깊이 자국을 새겨 놓지 않으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 기억조차 남지 않습니다.

더 크게 뜻을 가져야 합니다. 매년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면서 치르는 행사가 그저 대학생들의 꽤 그럴듯한 방학 이벤트에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여름에 열리는 AF가 아시아 각국의 법학도들이 일년간 공부한 성과물을 발표하고 배워가는 자리가 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고, 한두 해 애를 쓴다고 이뤄질리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틀을 잡아 간다면 분명히 해낼 수 있습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전해에 했던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그럭저럭 큰 행사를 치러낼 수 있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발전은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노하우가 쌓이는 것입니다. 올해 저는, 방학이 아닌 학기 중에 국내 차원에서 어떻게 세미나를 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학기 중의 활동과 방학 때 행사에서 하는 활동을 연결시킬 수 있을지 애를 많이 썼습니다. 이 부분은 노하우가 아직 없기 때문에 방향을 정하는 것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잡는 것까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올해 겪은 시행착오들, 그리고 여러분이 겪을 시행착오들이 쌓여 가면서, 결국에는 역시 전에 했던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어느정도의 성과가 보장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겠죠.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동아리활동인데, 머리 아프게 고민만 하고, 억지로 책 붙들고 공부하고, 언성을 높여 싸워서 되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관계는 인간관계 그 자체가 목표일 때는 얻을 수 없습니다.


...


2005년 AF가 끝난지도 어느새 두달이 넘은 지난 주, 실로 오랜만에 알싸 동기들과 모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처음으로 다시 보는 얼굴이 많았습니다. 그 동안 임원엠티도 있었고, 총엠티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그때마다 일이 터지는 바람에 어느 쪽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그 덕에 동아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주가 돼서야 친구들을 보게 된 셈입니다. 행사가 끝나고 은퇴했을 당시에는 정말 지긋지긋해서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두달이 지난 후에는 그저 반갑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저 부담없이 웃고 떠들면서 보내는 시간은, 핸드폰 전화부에 등록된 사람 수는 늘려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보기만 해도 반가운 얼굴들을 남겨 주진 않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시간이 덮지 못할 정도의 자국을 내 놓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깊이 자국을 내 놓으면, 나빴던 기억들은 점점 사라지고 즐거운 기억만이 남더군요. 지금도 저는 8월 말의 그 일주일을 서슴없이 ‘악몽’이라고 부르지만, 그 악몽은 이제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악몽이 아니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코끝이 찡해지는 그런 악몽이 됐습니다.

어쩌면 악몽이었기 때문에 지금 코끝이 찡해질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정말 지긋지긋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보기만 해도 반가운지도 모릅니다.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알싸에 남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쏟은 3년이 전혀 허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지난 여름 제 악몽을 진정 끔찍한 악몽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 또한 여러분들에게 꽤나 악몽을 꾸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그 점에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알싸활동도 악몽의 연속이 되길 바랍니다. 코끝이 시릴 정도의 지독한 악몽의.



2005년 11월 13일
2004-2005 아시아법학생연합 한국지부 대표
김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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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3 21:54 2005/11/13 21:54
  1. 이재학
    2006/02/08 02:20
    처음 보는 글인데;;; 역시 김웅재 마무리까지 빡쎄다 ㅎㅎㅎ







아레오파기티카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5/10/29 19:29
http://news.nate.com/Service/natenews/ShellView.asp?ArticleID=2005102717575651112&LinkID=1&Title=%EA%B2%BD%ED%96%A5%EC%8B%A0%EB%AC%B8

...온갖 종류의 교리가 풀려나서 세상에 밀어닥치는 와중에도 진리는 전투를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가 검열제와 금지 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은 부당하게도 진리의 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진리의 논박이야말로 최선의 억압이며 가장 확실한 억압입니다. ...

진리가 전능한 신 다음으로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누구입니까.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필요 없고 전략도 필요 없으며 검열제 또한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오류가 진리의 힘에 맞서 싸울 때 사용하는 수단이며 방책입니다. 진리에게 자유의 공간을 제공해 주십시오. 그리고 진리가 잠들었을 때 묶지 마십시오. 진리는 묶여 있을 때는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

존 밀턴, [아레오파기티카]


그토록 '자유'를 목놓아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자유가 문제될 때는 딴소리를 한다.

아침에는 검은 가면, 저녁에는 흰 가면. 상황에 맞춰 가면을 바꿔쓰고 그 뒤에 숨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기회주의자라 부른다.

...


[+] [아레오파기티카]의 저 부분을 처음 읽은 건, 2002년이 다 저물어가는 어느 날 아침, 부들부들 떨며 받아든 수시모집 면접시험 문제지에서였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밀턴의 글은 감동적이었다. 시험지에는 저자와 글의 출처가 적혀 있었는데, 그 날 이후로 난 저 글귀와 [아레오파기티카]라는 이름을 잊은 적이 없다.

어제 저 위에 링크된 신문기사를 읽고, [아레오파기티카]가 떠올랐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지 책장을 넘기며 찾아 봤다.

밀턴의 글이 지닌 힘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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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9 19:29 2005/10/29 19:29
  1. 이경호
    2005/10/30 00:47
    모두에게 통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은
    그때의 사람들은 정말 확신에 차 있을 것 같아.

    웬지 요즘은 서양의 전통적인 사조는
    선악의 확실한 구분에 있음에 비해 동양은 상당히
    선악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관념이 지배하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양비론이 발달하는 것도 그렇고.
  2. 하영
    2005/11/03 18:09
    이거 나도 수시문제로 받아든 기억이 난다.
    맞나? 아무튼 뭔가 문제로 받아들었던 듯.
    그땐 뭔가 멋지게 말했었는데 이젠 머라 하기 힘든데.ㅎ
    역시 한 살한살 먹으면서 느는 건 지혜가 아니라 겁인 것 같아. 예전엔 멋지게 말했던 내 생각들이 이젠 겁이 나서 함부로 말 못하겠더라고.
    슬픈걸ㅎ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2

권위주의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된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더 발전했는가? 만약 아니라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다시 말해, '왜 한국의 정치는 개판인가?' 라는 물음의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핵심적인 갈등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 구조야말로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당들은 이념적으로 전혀 차이를 가지지 못한다. 단지 권력을 쥐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쟁은 이념이나 사회적 균열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지 않는다. 권력을 누가 차지하는가, 권력 획득에 실패한 다음에도 내 밥그릇이 보장될 것인가만을 놓고 죽을동 살동 덤벼들게 된다.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갈등축이 뭔지 따위는 관심사 밖이다. 어차피 그들이 아닌 다른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국회에 있지도 않으니까.

최장집 교수는 외국의 이론을 많이 소개하고 그것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정치현실을 설명해 낸다. 한국 정치의 기원이 무엇인지, 어디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단추를 다시 제대로 끼울 것인지까지 그의 논리는 명쾌하고 설득력이 있다. 산만하게 떠돌던 내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명료화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간을 두고 열심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책의 결론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해결책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제대로 된' 이해와 수용이다. 이런 사람을 사상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시끌벅적 떠들어댔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만약 우리가 갈등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사회의 어떤 집단이 경쟁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p.152)

"한국의 정당은 갈등을 동원하고 사회화하기는커녕 있는 갈등도 무시한다." (p.211)

"갈등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엔진'인 것이다." (p.213)

'남남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남남갈등'이 없는게 바로 문제다. '상생'의 구호를 앞세워 갈등을 덮어버리려고만 드는 행태야말로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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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5 14:18 2004/08/25 14:18
  1. 이경호
    2004/08/25 18:23
    사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내가 생각하기로는
    상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제도인 것 같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정체에 있어서
    최후의 발전 형태라는둥, 역사의 종말이라는둥하는 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계속되는 경제성장이라는 요인이 민주주의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통합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겠지만.. 과연 우리가 돌입하는 세기의 경제
    상황에 미루어 볼 때 민주주의의 황금기가 유지될지는
    의문스럽기도 하다.
  2. onecent
    2004/08/26 00:25
    민주주의가 한정된 상황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제 역시 그 밑바탕에는 수많은 노예의 노동이 자리잡고 있었던 일. 그리고 사실 엄밀히 말해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정말 시민들 전부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지. 대의제도하에서 움직이는 한 한계를 이미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니까. 따라서 민주주의가 정체에 있어서 최후의 발전 형태라는 데는 나 역시 동의하지 않아. 끊임없이 더 나은 제도를 모색해 가야겠지.

    그렇지만 위 글에서 언급한 글처럼 나 역시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인 척하면서 실상은 그와 전혀 다른 현재의 상황을 개선해 나가야겠지.

    그러고 보니 전에 네가 대중조작의 용이성 등을 언급했던 부분과 민주주의에 대한 경계가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대안적 정치형태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겠군.
  3. 박민재
    2004/09/14 00:28
    아악~~어렵게 느껴져요,,

    흠,, 저도 이제 이런 책도 관심을 갖고 읽어 봐야겠네요,,
  4. onecent
    2004/09/18 11:28
    민재// 읽어볼 만한 책인듯. 한번 시간내서 읽어봐 ㅎ
  5. 김건
    2004/11/01 00:01
    나도 막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를 다 읽었다.
    난 읽으면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상당부분 최장집 교수의 견해와 일치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최교수가 노정권을 최근에 강하게 비판했다니 내가 책을 잘못읽은 것인지..원

    최교수가 제시하는 분석의 큰 틀에는 동감하는데 노동의 정치참여라든지 보수언론의 권력화 등의 명제가 실제로 어느정도의 사실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또 가질지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고 판단하기가 어렵구먼.
  6. 김건
    2004/11/01 00:03
    근데 트랙백으로 걸려 있는 곳에 가서 퍼오려는데
    블러그처럼 흔적을 자동으로 남길 수도 없고.
    괜히 몰래 복사하는 느낌만 드는군. 그냥(펌)이라고 붙여야 하나?
  7. onecent
    2004/11/02 23:12
    최근에 최장집교수가 현 정권에 대해 쓴 글은,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음. 인터넷에도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조만간 찬찬히 읽어 봐야지.

    결국 노무현정부도 우리사회의 진정한 갈등구조를 포착하고 표면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최장집씨는 비판하는 것 아닐까 싶긴 한데. 확실히 정당에 의한 갈등축의 표면화라는 점에선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게 없는 듯.

    보수언론의 권력화에 관한 부분은, 물론 나도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 주는 자료를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읽으면서 상당히 설득력있게 다가왔었는데. 거대언론의 영향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분명 유효하지 않을까.







http://www.usatoday.com/sports/columnist/oconnor/2004-08-21-oconnor-hamm_x.htm

"There's no shot clock on justice."


많이 와닿는 말이다.(시효제도가 어쩌구 한다면 -_-;)

아메리카 입장에서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 개판친 경험(사실 위 기사에서 그들이 자각하고 있는 건 오노 사태가 아니라 북미 연합전선으로 캐나다에게 피겨스케이팅 공동금메달을 따게끔 해 준 일이지만)도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같이 명백한 오판 케이스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욕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다.

'국가간 무한경쟁터'인 올림픽에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따야 할 금메달을 빼앗겼느니 어쨌느니는 난 관심없다. 분명히 오판이 있었고, 양태영 선수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 '인간 양태영'은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한다. 그게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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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2 23:17 2004/08/22 23:17







디트로이트 피스턴즈가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며 LA 레이커스를 박살낸지도 벌써 3주 가량이나 지났다. 그렇게 강력해 보이던 레이커스를, 그냥 이긴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박살'을 내 버린 것이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2004년 NBA 결승 시리즈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서부지구 팀들이 동부지구 팀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서고동저' 가 NBA의 지형도가 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어느새 서부의 패자가 당연히 결승 시리즈를 이길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새크라멘토 킹즈,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샌앤토니오 스퍼스, 그리고 LA 레이커스에 이르기까지 서부는 정말 쟁쟁한 팀들로 가득차 있었고, 그런 팀들과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아 결승 시리즈에 진출한 레이커스가 우승할 것이 당연시되었다. 빈약한 동부지구의 경우, 서부의 실력자들과 그나마 겨뤄볼 만 하다는 인디애나 페이서즈와 디트로이트 피스턴즈가 준결승에서 맞붙었고, 피스턴즈가 인디애나를 힘겹게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대로 그들의 우승 가능성은 너무도 작아 보였던 것이 사실.

빌럽스가 MVP이긴 해도, 사실 누가 타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7전4선승제를 취하는 결승시리즈에서, 피스턴즈는 레이커스를 4대 1로 압도해 버렸다. 피스턴즈가 패배한 건 2차전뿐인데, 그것도 경기 내내 이기고 있다가 종료 직전에 기적적으로 터진 코비 브라이언트의 동점 3점슛 때문에 연장까지 가게 되었고, 맥이 풀린 탓이었는지 연장에서는 레이커스가 분위기를 압도하며 승리했다. 2차전에서의 연장 10분, 그리고 코비가 3점슛을 집어넣은 3초동안이 레이커스가 피스턴즈보다 앞선 경기를 펼친 유일한 시간이었다. 전 시리즈 중 피스턴즈는 10분 3초를 빼고는 단 한순간도 레이커스에게 밀리지 않은 셈. 도리어 내내 레이커스가 피스턴즈에게 끌려다녔다고 해야 옳다. 앞서 이미 사용한, 너무도 적절한 표현을 쓰자면, '박살'이 난 것이다.

ESPN.com의 칼럼니스트 Ric Bucher가 말한 것처럼, 사실 레이커스는 이겨서는 안되는 팀이었다. 시즌 내내 팀의 두 축인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사실 오닐이야말로 단 하나의 축이고, 코비는 곁가지에 불과하지만)의 불화가 끊이질 않았고, 팀원들과 코치가 서로 비난을 공개적으로 퍼붓는 등, 말하자면 콩가루 집안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는 순전히 오닐과 브라이언트 개개인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어영부영 결승전까지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BA의 그 누구도 글자 그대로 '막을 수 없는' 오닐과, 조던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가진 브라이언트의 위력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콩가루였다. 자기 개인의 욕심만 있었지, 팀 분위기를 이끌어서 단합된 힘을 낸다거나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들 다루는 데 그토록 능숙하다던 필 잭슨도 결승전 내내 무력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에 비해 피스턴즈는 어떤가? 이 팀에는 어마어마한 계약을 차고앉은 오닐이나 브라이언트같은 초특급 스타는 없다. 대신 개인기록보다는 팀의 승리를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벤 월러스나 라시드 월러스 같은 선수들이 있을 뿐이다.

'공격은 관중을 불러모으지만, 수비는 승리를 가져온다' 라는 말이 있다. 농구에서 수비는 진정한 궂은일이다. 득점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수비는 잘 해 봐야 별로 티가 안 나는 일에 속한다. 피스턴즈는 철저히 수비중심적 팀이었다. 빌럽스는 탄탄한 체구로 외곽수비를 해내고(경기 내내 서로 부딪치고 치고 받고 하는 농구에 있어서 사실 체구와 힘이 수비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봐야 한다), 프린스는 그 긴 팔을 이용해 레이커스의 주득점원 코비가 설치지 못하도록 막는다. 해밀턴...은 사실 수비만 놓고 보면 스타팅멤버 중에서 가장 능력이 떨어지지만, 지극히 수비중심적인 이 팀에 그나마 안정된 공격력을 제공한다는 점이 이를 커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스턴즈 수비의 핵은, 골밑을 지키면서 동시에 수비에 구멍이 생기면 순식간에 메꾸는 help-defense를 펼친 두 월러스에게 있다.

십년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

헬프가 잘 들어왔다는 건 결국, 다른편보다 한발 더 많이 움직였고 더 빨리 이동하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피스턴즈의 모든 선수들이 그랬다. 단 하나의 슛도 그냥 내 주는 법이 없었다. 들어가건 들어가지 않건, 누군가가 슛을 방해하기 위해 손을 뻗쳤고 공격수의 리듬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뛰어올랐다.

레이커스가 창이라면 피스턴즈는 방패였다. 그리고,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창은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히나 미식축구의 경우, 최고의 공격력을 가진 팀과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팀이 맞붙었을 때 언제나 수비가 승리하곤 한다;)

공격력은 슛감각, 개인기에 의존한다. 수비는 근성이고, 한 발짝 더 뛰고 더 노력하는 것이다. 동료가 뚫렸을 때 그 자리를 자신의 노력으로 메꿔주는, 다섯이서 모두 함께 하는 것이다.

콩가루와 철옹성의 대결. 철옹성이 이긴 게 당연하다. 그리고 이겼어야만 했다. 그래야 농구 팬으로서도 억울하지 않은 법. 실제로 경기를 보면서 내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성실함이 성공을 가져온다는, 소박한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식이 사실임을 피스턴즈는 증명해 보였다. 그들이 흘린 땀에 박수를 보낸다. 부디 내년에도 다시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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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6 21:39 2004/07/06 21:39
  1. JK.
    2004/07/07 01:03
    브라보 피스턴즈.
  2. J.
    2004/07/08 16:53
    그러고보면 이번 유로 2004도 방패의 승리였군.. 근데 "더블-월러스"라인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렇게 좋은 소리를 하기엔 지나치게 강력한거 아냐? ㅎㅎㅎ
  3. onecent
    2004/07/11 22:33
    강력하긴 하지만; 벤 월러스나 라시드 월러스나 둘 다 수비가 강력하잖습니까. 물론 운동능력도 천부적으로 타고났다면 할말은 없지만; 특히 벤 월러스 열심히 움직이는 건 진짜 존경스러울 정도니..
  4. 하영
    2004/07/11 23:28
    그렇긴해도 관중입장에선 역시 창이 재미있지..ㅋㅋ
    저 경기결과는 상관없지만 우편배달부가 넘 불쌍한걸..
  5. onecent
    2004/07/17 07:53
    맞아. 칼말론 나중에는 불쌍해지더라. 레이커스가 너무 깨지니까 통쾌함이 측은함으로 바뀌고..-_-;







폴 오스터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4/07/03 21:50

폴 오스터의 초상화. 출처는 rednotebook.com

사실 폴 오스터란 작가에 대해 올해 초만 해도 아는 게 전혀 없던 터. 그러다 아무 생각없이 책방에서 집어들게 된 책이 바로 [뉴욕 삼부작]이었다. (사실상 열린책들의 예쁜 책 디자인이 한몫했다; 밋밋하고 멋없는 책이었으면 지나가다가 집어들게 되었을 리가 없다 -_-)

그리고 나서 봤더니만, 이미 상당히 유명한 작가잖아 이거. 책 속지의 작가 사진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도 인상적이었고.. 뒷표지는 찬사들로 가득차 있고. 뭐 한번 읽어보자..라는 심정으로 사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그 이후 며칠동안 붙들고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버렸다.

그 뒤로는 차례로 [달의 궁전]을 사서 역시 단숨에 읽었고, 바로 오늘 세 번째로 선택한 [환상의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는 다시 [리바이어던]을 집어들고 사 왔다. 한 작가에게 이렇게 몰두해 본 건 처음인 듯 싶다. 그만큼 폴 오스터의 소설은 매력적이다.

그의 책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삶을 스스로 파괴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여 삶이 완전히 소진될 지경까지 이르러서 다시금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등장 인물. 그의 글에서 풍겨나오는 환상적이고 기묘한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는다. 대화가 거의 없고 독백으로 이어지는 글. 그만큼 오스터의 소설은 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데 주력한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 그게 폴 오스터의 매력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이 하루 만에 이울지만 오래 사는 사람은 누구나 살아서 죽는다. 삶을 헤쳐 나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서너 가지 모습을 뒤에 남기는데 그 하나하나의 모습은 다른 모습과 다르다. 우리는 과거라는 안개 너머로 다른 시대의 우리 초상들을 보듯 그 모습들을 본다.>


<만일 내가 삶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 삶을 파멸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야 한다.>


<위기의 순간들이 사람들에게서 배가된 생명력을 창조해 낸다. ... 사람들은 곤경에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충실한 삶을 살지 못한다.>


-'환상의 책' 중에서


내가 읽은 세 권의 책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뉴욕 삼부작]이다. 다른 두 소설에서 나타나는 모티브의 원형이 바로 뉴욕 삼부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좀더 환상적이고 난해한 형태로. [달의 궁전]과 [환상의 책]은 뉴욕 삼부작에 비하면 더 읽기 쉽고, 줄거리의 면에서는 더 재미있다. 그렇지만 뉴욕 삼부작이야말로 강한 충격을 주는 책이다.

한번쯤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폴 오스터를 권한다.

+ 관심이 있다면 http://www.rednotebook.com (폴 오스터의 팬사이트) 에 들러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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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3 21:50 2004/07/03 21:50







나는 조던을 봤다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3/04/19 09:19
마이클 조던이 은퇴했다. 93년, 99년에 이어 세번째로.
아쉽게도 위저즈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고, 지난 필라델피아 전이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마이클 조던. 오늘날 아무리 농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심지어 스포츠 자체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이키 가게 앞을 지나가며 그의 포스터를 한 번이라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티비에서 그가 출연하는 게토레이 광고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진열장에 전시된, 열여덟개(;;;)나 되는 에어조던을 신어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스스로 조던의 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96년 그가 처음으로 컴백했을 때, 난 조던이 싫었다. 그 이후로 내가 좋아하던 올랜도의 발목을 번번이 잡는 그와 시카고 불스가 싫었다.

그러나 어느덧 나는 조던의 팬이 되어 있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적어도 그가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의 끝을 모르는 투지와 천재성, 아름답기까지한 그의 플레이를 바라본 사람이라면.. 조던을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너희는 베이브 루스가 뭔지 모른다고. 그가 방망이를 치켜들고 '저기에 쳐서 넣겠다' 라고 외치던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캐시어스 클레이가 무하마드 알리가 되어 '내가 최고다' 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선동렬이 '무등산 폭격기' 로 불리던 시절을 모른다고.

그래, 난 모른다. 난 못봤다. 베이브 루스, 미키 맨틀, 알리,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모두 내게는 짤막짤막한 영상으로만 떠오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일으켰던 센세이션, 그 속에 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난 봤다.
조던이 날아올라 덩크를 꽂는 모습을.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보지도 않고 골을 넣는 모습을.
그가 혀를 내밀고 돌파하는 모습을. 무인지경처럼 수비를 헤집고 덩크하는 모습을.

96년 그가 처음으로 컴백한 날, 바지를 거꾸로 입고 뛰던 그 때, 난 그를 봤다.
그가 경기 종료 버저와 함께 승리골을, 정말 말도 안되게 집어넣을 때, 난 그를 봤다.
컴백 후 아버지의 날에 우승컵을 거머쥐고 눈물을 흘릴 때, 난 그를 봤다.
그리고 2003년 그가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날 때에도, 난 조던이 만든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우리의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 자랑스레, 약간은 거만하게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에어조던을 신어 봤다고.

난 마이클 조던이 출연한 나이키 광고를 봤다고.

난 조던이 이루어낸 기적의 순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난 마이클 조던을 볼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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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9 09:19 2003/04/19 09:19
  1. 하영
    2004/07/11 23:30
    난 선동렬이 무등산폭격기였을 때를 봤어..+_+
    (역시 광주..ㅠ_ㅠ)







얼마전 새로 생긴 ManiaDVD 란 가게 앞을 지나던 중..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반지의 제왕 액션피규어가 진열되어 있는걸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피규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곳은 아니지만, 주문하면 원하는걸 갖다 주겠다고는 한다. 진열되어 있던 것은 섀도우팩스에 올라탄 갠달프와 브레고를 탄 아라곤이었는데.. 그리고 더불어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돌진하는 요다라던가, 오비완 케노비, 윈두를 비롯하여 악마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스폰까지, 하여간 구미를 당기는게 아주 많았다.

가게로 들어가 각 피규어의 가격을 물어보고 좌절을 금치 못하던 중(요즘 주머니사정이 아주 좋지 못하다).. 그 중에 그나마 저가였던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 피규어를 사들고 나왔다.

뭐. 스파이크야 원래 멋있으니. 이렇게 만들어놔도 멋있는건 마찬가지다. 얼굴이 그다지 스파이크와 흡사하지 않아 보이지만; 원래 피규어라는게 다 그런거니까; 게다가 중요한건, 왼손에 슬쩍 잡고 있는 저 담배인 것이다.



삐딱하게 선 폼하며, 잘난척 하는 듯하며 씩 웃는 표정하며.

아아. 카우보이 비밥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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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1 03:14 2003/04/11 03:14







전 추리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매니아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탐정이나 범죄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죠. 다들 아시겠지만, 해문출판사(로고로 뚱하게 생긴 팬더를 쓰는 출판사죠)에서 나온 추리소설걸작선은 전50권 중 서른권정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사실 해문시리즈는 너무 유명하죠). 그것도 한꺼번에 마구잡이로 산 게 아니라, 한권 한권 차곡차곡 사서 읽고 하면서 모은 거라 지금까지도 제겐 소중한 책들이죠. 하도 많이 봐서 너덜너덜한 책도 있고, 또 여러 권을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해서 지금은 스무권 가량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해문의 추리걸작시리즈는, 제가 듣기로는 원작을 정당한 허가를 거치지 않고 무단에 가깝게 번역한 거라고 하더군요. 그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구할 수 없는 절판된 시리즈입니다. 해문에서 나왔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도 마찬가지라고 하는군요. 요즈음 새로운 판본으로 해문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선집을 내긴 하는 거 같습니다만.

어쨌든, 그 해문추리걸작 시리즈에서, 당연하게도,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진 작품이 있다면 바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조금 못 미치지만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역시 쌍벽을이루고 있었죠. 당연히 어렸을 때부터 홈즈와 뤼팽은 저를 사로잡았고, 그 둘을 중심으로 책을 구하곤 했습니다. (물론 고학년이 되면서 엘러리 퀸이나 윌리엄 아이리시,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서스펜스에 있어서 홈즈나 뤼팽보다 훨씬 훌륭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1년전쯤부터 황금가지에서 홈즈 전집이 출판되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완역본인데다가, 삽화도 원본이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에는 수험생 신분이라 뭐든 제약이(심리적으로) 걸리는 상황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전 홈즈 전집을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황금가지의 홈즈 시리즈는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추리소설 열풍이 불어닥쳤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홈즈 작품들을 앞다투어 출판하기 시작했고, [내가 질까 보냐]라는 식으로 아르센 뤼팽 역시 국내 서점에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추리소설에 관심많은 저로선 너무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뤼팽 시리즈도 바로 수집에 착수했고, 사는 김에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전집도 사버렸습니다.

1년 가량 새로 홈즈 책이 나올 때마다 사서 틈틈히 읽기를 한 결과, 바로 얼마 전 마지막 9권까지 제 책장에 꽂히게 되었습니다. 책 사기를 좋아하시는 사람들은 다 그런 건지 몰라도, 한꺼번에 아홉권짜리 전집을 사는 것과 한권 한권씩 사서 꽂아넣는 건 분명히 느낌이 다릅니다. 그것도 열독하면서 모은다면 애착은 더 커지게 마련이죠. 뤼팽 시리즈는 황금가지의 것이 아닌 까치에서 나온 책들을 사고 있습니다만, 아직 완간이 되지 않았죠. 출간된 것들은 전부 구입했습니다만;

황금가지의 홈즈 전집은 번역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원서로도 홈즈 작품을 몇개 가지고 있는데,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분명히 깔끔하게 잘 된 번역이긴 합니다만, 미묘한 부분은 좀 부족한 거 같습니다. 예를 들면, 왓슨 박사와 홈즈의 말투는 분명히 차이가 있음에도 번역본에서의 어조는 똑같습니다. 물론 그러한 부분까지 완벽히 번역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충분히 압니다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요. 뤼팽 시리즈의 번역은, 불어지식이 전무한지라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한명은 괴팍하고 천재적인 탐정, 다른 사람은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도둑. 상극을 달리는 두 사람입니다만, 저같은 경우는 뤼팽을 더 좋아합니다. 신출귀몰에 초인적 능력까지 보여주는 뤼팽은 홈즈보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비판받을수도 있겠습니다만, 캐릭터 자체의 매력에 있어선 아무래도 뤼팽이 한수 위인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는 홈즈에 비해 울고, 웃고, 사랑하고, 고뇌하는 뤼팽이 더 독자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거겠죠.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척척 해내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둘은 실제로 작품 속에서 격돌하기도 합니다. 뤼팽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이 심심찮게 홈즈를 그의 작품에 끌어들이곤 했죠. 당시 유럽에선 홈즈 탄생 이후 추리소설 붐 비슷한게 일었던 모양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르블랑 역시 그 붐을 업고 뤼팽을 탄생시킨 사람이니, 홈즈보다 뤼팽에 적합한 상대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르블랑이 쓰는 뤼팽의 소설이다 보니 홈즈와 왓슨은 코믹하고 괴상하게 그려지고, 둘의 대결에선 뤼팽의 손을 들어주죠.(물론 홈즈에 대한 존중은 잊지 않습니다만, 부분부분 거의 조롱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죠) 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도일의 항의에 따라 르블랑은 셜록 홈즈 Sherlock Holmes 를 철자를 살짝 바꿔 엘록 숄메 Herlock Sholmes로 바꿔서 슬쩍 넘어갔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홈즈 시리즈는 단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 비해 뤼팽 시리즈는 장편소설이 상당히 많습니다. 사실 홈즈 작품 중 장편은 단 네편에 불과하고, 작품의 재미에 있어서도 단편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뤼팽 시리즈는 홈즈에 비해 추리소설적인 특성은 훨씬 적은 대신에 어드벤쳐의 성격이 더 강하죠. 사람마다 둘 중 어떤 스타일을 더 좋아하느냐는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뤼팽의 소설들을 더 좋아하는 것 뿐입니다.

예전의 해문추리걸작 시리즈와 이번의 완역판의 차이점이라면, 완역판답게 '진짜' 홈즈와 뤼팽이 어떠했는지를 만날 수 있다는 거죠. 홈즈가 사건이 없을 때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코카인을 정기적으로 복용한다던가 하는 부분은 아동용으로 제작된 해문 시리즈에선 결코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근엄하고 멋있게만 그려지던 홈즈의 괴팍한 부분을 훨씬 더 잘 알 수 있죠. 뤼팽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역판을 읽으면서 전 [이제까지 속았었구나] 하고 생각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죠. ^_^ 이제까지는 진짜 흑진주를 마지막에 주인에게 돌려주는 멋진 신사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허무맹랑한 거짓말이었다던가(사실 그렇죠. 도둑이 직업인 뤼팽이 뭐하러 비싼 걸 돌려줍니까;) 유리를 깨고 도둑질하는 줄 알았던 뤼팽이 사실은 정교하게 자물쇠를 따는 기술이 있었다던가 하는 겁니다. 뭐..해문 시리즈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도덕적으로 올바른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랬다는 게 이해가 안되는건 아닙니다..;;

굳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더라도 홈즈나 뤼팽 시리즈는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홈즈 시리즈의 걸작 중의 걸작인 '얼룩진 끈' 이라던가 '빨간 머리 클럽의 비밀', 홈즈 장편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바스커빌 집안의 개'는 적극 추천입니다. 뤼팽의 작품 중에선 '아르센 뤼팽의 고백'이라는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그리고 '기암성'이나 '813', '녹색 눈의 아가씨' 등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들입니다(거의 전부 다잖아;). 그리고..재미면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아르센 뤼팽 대 셜록 홈즈'도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한다는 점에서 볼만하죠.

앞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에까지 발을 넓혀보고 싶습니다만..그건 워낙 방대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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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3 02:28 2003/01/03 02:28
  1. 왜잠이안오지ㅠ
    2007/10/14 05:37
    오빠가 뤼팽을 더 좋아한다니, 의외인데요?; 왠지 반대일줄 알았어요.ㅋㅋ
    • onecent
      2007/10/14 20:22
      그런가;
      절대로 잡히지 않는 도둑, 머리좋고 미워하기 힘든 사기꾼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도 드물잖아? ㅎㅎ
  2. 왜잠이안오지ㅠ
    2007/10/14 05:40
    어린이시절을 해문 아가사크리스티 시리즈와 함께했더랬죠;ㅋ
    • onecent
      2007/10/14 20:22
      잠깐..
      근데 동이 트도록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자네는 누구...세요?







우리 곁에는 오늘도 원색 타이즈를 갖춰입고 자랑스레 팬티를 바지위로 꺼내입은 뒤 지구를 구하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수많은 '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멘, 그리고 하다못해 후레시맨까지, 전세계 모든 '맨'들이 [저사람만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라고 고백한, 그리고 사실상 그들 모두가 한꺼번에 덤벼도 상대가 안되는 한 사람의 '맨'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그렇습니다. 평범한 인간, 즉 막말로 옆집 아저씨와 별반 다를 바가 없으면서 돈써서 장비 만들어서 싸우는 배트맨은 말할 필요도 없고, 스파이더맨이 아무리 거미줄을 쏴댄들, 그리고 엑스멘의 스톰이 폭풍을 일으키고 싸이클롭스가 레이저빔을 쏘고 로그가 펀치를 날리면서 동시에 울버린이 강철손톱으로 찌른들, 슈퍼맨에게 상처 하나라도 입힐 수 있겠습니까?

배트맨이야 주먹 한방이면 영원히 잠들게 할 수 있고, 거미줄 찢는거야 일도 아닙니다(일단은 피하면 되니까 찢을 필요도 없겠지만). 폭풍? 이사람의 콧바람이 곧 폭풍입니다; 레이저빔? 도대체 과녁조준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니 어디다가 대고 쏘겠습니까? 로그의 펀치야 어디 벼룩이 물었나..할 거고, 울버린의 손톱은 타이즈는 찢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사람의 살갖은 못 찢습니다. 아마 손톱이 먼저 부러지겠죠;

아. 후레시맨 말입니까? 걔네는 총 만들어서 쏘려고 합체동작 하다가 다 뻗어버릴겁니다. -_-;

이렇듯, 슈퍼맨은 문자 그대로 최강의 파워를 가진 '맨'입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바로 그 점이 갈수록 슈퍼맨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맞서서 대등하게 싸울 만한 적수가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다른 '맨'들은 얻어맞고 쥐어터지면서 벼랑끝에 몰리는 위기에 빠졌다가 극적으로 승리를 거둬서 보는 이들에게 서스펜스(;)를 제공하는 반면, 슈퍼맨의 싸움은 싱겁기 그지없었던 것이었죠. 물론 최대의 약점인 크립토나이트(그 녹색 돌 말입니다)가 있다고는 해도, 정신분열증인 배트맨, 돌연변이로서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는 스파이더맨, 인간들 구해주고도 미움받는 엑스멘의 괴로움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슈퍼맨이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신선하고 풋풋하게(-_-;).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했을법한 의문들이 있죠. 슈퍼맨이, 즉 클라크 켄트씨에겐 로이스가 첫사랑일까? 슈퍼맨의 고등학교 성적은 어땠을까? 슈퍼맨은 사춘기 때 스트레스를 마을 뒷산을 부수면서 풀었을까? 정체를 들킬 뻔한 적은 없었을까?

그래서 등장한 TV시리즈가 바로 Smallville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바로 클라크 켄트, 그것도 고등학생 클라크 켄트입니다.

켄트 집안에 입양되어서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던 클라크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상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가공할만한 힘(아버지의 트랙터를 집어던지는 등등)과 스피드는 가지고 있었지만, 난데없이 자다 깨보니 공중에 떠 있질 않나, 눈에 힘 좀 주니까 투시가 되질 않나..;;;

클라크가 살고 있는 마을인 스몰빌은, 시골의 작은 마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12년전 거대한 운석이 이 마을에 떨어졌기 때문이죠. 운석이 떨어진 날 밤 이후 마을 곳곳에는 녹색으로 빛나는 운석 파편들이 널려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석과 함께 스몰빌에 내려앉은 우주선에선 검은머리의 어린아이가 기어나와 켄트씨에게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클라크는 이상하게도 운석파편 목걸이를 하고 있는, 그리고 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라나에게 다가갈 때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을 못차리게 됩니다. 그 때문에 좋아하면서도 말 한번 제대로 못 걸죠. 그러다가 마침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운석 파편들(이게 바로 크립토나이트)이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상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죠. 사춘기의 클라크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 와중에서도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은 결국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나서게 되죠.

이게 대충 스몰빌의 설정입니다. 스몰빌은 슈퍼맨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슈퍼맨과 악당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가 겪는 학교생활에서의 갈등, 사춘기의 문제들을 주로 다루면서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연애생활에 고민하는 슈퍼맨이라. 상상이 가십니까? 그리고 그의 미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과거를 엿보는 것 또한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여기에다 스몰빌에선 나중에 슈퍼맨의 최고 적이 되는 렉스 루터가 클라크의 친구로 등장합니다. 어긋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두 사람이 같이 지내는 것을 보는 것 또한 묘하죠.

미국에서는 시즌1이 성공을 거둔 후 시즌2가 진행중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선 요즈음 한창 AFKN에서 매주 일요일 저녁 일곱시에 방송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우연찮게 보고서는 끌려서 계속 보고 있죠.

일단, 캐스팅 하나는 끝내준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리스토퍼 리브가 그랬던 것처럼, Tom Welling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슈퍼맨의 이미지 그대로입니다. 2미터에 달하는 큰 키에, 검은 머리카락과 순수해 보이는 표정까지. 물론 연기력은 좀더 발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서포팅캐스트도 꽤 잘 구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버피나 앨리맥빌 같은 드라마보다 좀 어색함이 묻어나오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건 아직 시즌1이기 때문이라고 눈감아줄 수 있죠.

뭐..그냥 그렇고 그런 여느 틴에이지 드라마잖아! 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슈퍼맨이 나오는데 '그렇고 그런'이란 말은 좀 어폐가 있죠?
게다가, 타이즈도 아직 안 입기 때문에 특별히 혐오감을 준다거나 하는 일도 없습니다. ^_^;;

한국에서 DVD로 출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것도 같습니다만 확인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번역이 되어서 DVD로 나왔다면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군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음주 일요일부터라도 한번 보시는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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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30 02:27 2002/12/30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