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日常 Posted at 2009/06/26 22:11
방금 전 검찰시보 송별회 겸 새로 오신 실무관님 환영회를 마치고 돌아왔다.
집은 시끌벅적하다. 형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형수님은 한복 곱게 차려 입으시고는 외숙모들한테 붙잡혀 있고, 형은 안절부절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고.
둘 다 얼굴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검찰시보가 드디어 끝났다. 월요일 하루만 남았다.
두 달,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참 길었고 배운 점도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끝나서 다행이다. 이제 머릿속엔 온통 유럽 생각뿐이다.

김동률의 '출발' 틀어놓고 한껏 여행 떠나기 전의 설렘을 만끽하는 중이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책도 보면서 계획도 슬슬 세워야 하는데.
일단 무작정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막연히 낙관적인 생각뿐이다.

남은 건 교체를 맡겨 놓은 아이팟이 화요일까지는 준비가 되는 것뿐.
(아이팟 없으면 여행길은 진짜 큰일이다 -_-)

가자, 유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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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22:11 2009/06/26 22:11
  1. 기인
    2009/06/28 04:22
    오빠 저 오랜만에 왔어요 ㅋㅋ
    와 그런데 유럽 오시나요? 독일은 안들르시는지-
    하긴 유럽 여행 오는 사람들중에 근처에 오는 사람을 못봤습니다만;
    날씨도 더운데 즐겁게 건강히 여행 잘 하시기를요- :)
    • onecent
      2009/06/30 21:47
      오랜만이야_ㅎㅎ
      연수원에서 전문기관연수를 해외로 가서 이번에 유럽에 가게 됐어. 근데 안타깝게도 독일에 들르지는 않고_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고 프랑스에 가는데 파리에 오래 있을거야.
      독일에도 가봐야 하는데. 앞으로 기회가 있겠지_
      너도 날 더운데 건강 조심하렴.
  2. 김건
    2009/06/29 10:44
    ㅎㅎ 좋겠구먼.
    예전에도 말했듯이 일단 일 시작하면 해외여행은 맘처럼 쉽게 갈 수 없게 되지. 잘 다녀오쇼.

    난 화요일에 딸딸이 아빠될 예정 ^^
    • onecent
      2009/06/30 21:47
      형 정말정말 축하해!
      형수님도 아기도 다 건강하지? 형수님께 안부 전해줘.







포스가 함께 하길

日常 Posted at 2009/06/21 23:14

내일 시험 보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그 사람들 중에 이 글을 볼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그래도.

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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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1 23:14 2009/06/21 23:14







1.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이 인정된다고 보임.
이 부분에서 남은 쟁점은 공적 관심사안에 대한 보도라는 점에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보도가 아닌 한 위법성이 조각된다"라는 법리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을지일 뿐임.
그러나 검찰 수사결과 발표만 놓고 봤을 때, 다툼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조각되기 힘들어 보임.

2. 업무방해죄 부분은,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행위가 있는지 약간 의문.
명예훼손죄 부분보다는 좀 덜 명확하다고 생각함.

3. 이 사건과 관련성이 극히 적다고 판단되는, 사적인 대화임이 명백한 이메일을 공개한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됨. 검찰 입장에서 봐도, 수사결과에 대해 괜히 욕먹을 빌미만 제공한 셈이 되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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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21:06 2009/06/18 21:06
  1. 김건
    2009/06/19 17:10
    정확한 사실관계는 모르겠지만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이 맞나?

    검찰의 이메일 공개는 적어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은지?;;

    글구 구성요건에 기계적으로는 맞추어 넣을 수 있다고 해도 정책을 비판한 언론에 대하여 담당 공무원 명예 훼손되었다고 기소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있나 모르겠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은 법률가라는 직업이 참 치졸하게 느껴지는군.
    • onecent
      2009/06/19 21:07
      음..검찰 수사결과 발표문을 한번 읽어봐. 대검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어. 최소한 그 내용을 보면 구성요건해당성은 인정된다고 보는 게 맞는듯.

      검찰의 이메일 공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것과 피디들의 명예훼손죄 성부와는 별개의 문제지.

      그리고, 정책비판언론에 대해서 정부기관장이 자기 명예가 훼손됐다고 대뜸 고소한 것부터가 코메디라는 데에도 동의해. 사실 검찰이나 법원 같은 사법기관에 오지 말아야 할 문제가 자꾸 넘어오는 게 사법기관 입장에서는 제일 난감한 문제라고 생각함. 요즘 검찰시보하면서 느끼는거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못한 사람은 모조리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 잘못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거잖아? 도덕적 비난가능성만 있는 잘못도 있고, 불법행위책임은 인정되지만 형사처벌할 정도는 아닌 잘못도 있고, 형사처벌해야 하는 잘못도 있는 거지. 근데 사람들은 조금의 잘못만 있어도 죄다 검찰에 고소부터 한단 말이야(이명박 욕을 만평에 집어넣은 만화가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한 것도 바로 이런 경우겠지).

      나는 누구보다도 피디수첩 제작진의 사실왜곡이 없었다고 믿고 싶어한 사람이야. 그리고 실제로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검찰이 이야기한 것처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는 건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다음 기사가 참조가 됨;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619151210)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도 의도적인 오역이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고(내가 많이 실망한 것도 바로 이 오역 부분이지), 허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내용도 있다고 봐(법원의 정정보도사건 판결도 마찬가지 의견이었지).

      그렇게까지 오역을 하고 심하게 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송이었을 텐데 너무 무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울 따름이지.
      다투기에 따라서, 그리고 법정에서 추가로 밝혀질 사실관계에 따라서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는 있다고 보이니까, 그리고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일방 당사자의 입장일 뿐이니까, 좀더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겠지.

      법은 사회현상을 절대로 다 규율할 수 없어.
      이 세계가 모래밭이라면, 법으로 그 세계를 규율하려 드는 것은 맨손으로 그 모래를 움켜뜨려는 것과 같겠지.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게 대부분이야.
      그런 의미에서 사법부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이야. 더구나 형사 사법기관은 더 말할 나위도 없어.

      토론을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인데도 토론할 줄 모르는 사람들, 도무지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죄다 검찰과 법원(그리고 헌재)에 떠넘겨 놓고는 검찰과 법원의 입만 쳐다보고 있어. 그게 오늘날 법률가들의 진정한 비극이 아닐까.

      그 때문에 나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우리 나라의 법률가들에게 사법소극주의적 사고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
  2. 김건
    2009/06/22 23:10
    나도 한번 구해서 읽어 봐야겠네. 신문 기사만으로 보는 경우에도 약간 의도적인 오역이 있는 것 같다는 기사가 실려서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좀 걱정이 되었었는데, 사실관계상 그렇게 인정될 가능성이 좀 꽤 있나보군...아쉽군. 검찰에서 이메일 공개한 것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검찰이나 정부가 의도한 바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드네. 법원에서 무죄가 나와도 어차피 일부 사람들은 법원이 좌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정치의 권위가 없으니 모든 것을 사법기관의 권위를 빌어 처리하고자 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사법만능주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삼성 판결을 보면서 법원에 대한 기대도 많이 접었지만, 그래도 법원이 검찰보다 조금은 낫다는 생각은 아직은 유효한 것 같아.

    검찰이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이 얼마나 막강하고 또 한편으로는 위험한 것인지 요즘 정말 실감하고 있지. 자의적 검찰권의 행사,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대한 불공평한 검찰권 행사가 만연하고 있는데(예컨대, 공정택 사건과 노무현 또는 주경복 사건, 용산사건/경찰의 시위대 폭행사건과 시위대의 경찰에 대한 폭행/교통방해/집시법 위반 사건 등) 이러한 불공정한 검찰권 행사 자체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고, 사회 안정을 위해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말을 꺼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사실이 더 아쉬운 것 같아.

    암튼, 주로 한쪽 신문기사만을 보다보니 이건처럼 fact를 더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원칙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군.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검찰은 사법소극주의, 법원은 진보적 의미에서의 사법적극주의가 필요하지 않나 싶군.

    Good night~







서울대학교 학생 시국선언

스크랩 Posted at 2009/06/10 21:0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9612.html

동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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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21:01 2009/06/10 21:01







봉준호의 [마더]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9/06/07 20:46

나는 봉준호가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의 현 상황과 문제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연출한 영화를 나는 세 편밖에 보지 못했다. [살인의 추억], [괴물] 그리고 최근 개봉한 [마더].
그러나 위 세 편의 영화에는 일관된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나는 그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그 문제의식은 바로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이다.
봉준호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언제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그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그들 혼자서(마더), 또는 둘이서(살인의 추억), 또는 일가족만으로는(괴물) 해결하기에 너무나도 벅찬 것들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 문제들은 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만 하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문제들은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며, 그 해결을 위해 사회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연쇄강간살인범을 잡는 것, 그것은 두 명의 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수사기관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현서를 납치해 간 것은 한강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봉준호의 비유를 그대로 따라간다면_여기엔 미군이 한몫했다)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 괴물은 비단 현서뿐만 아니라 모든 서울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가 나서서 괴물을 잡아야 옳다.
여고생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는 것 또한 마더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국가의 수사기관이 나서서 진범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개개인이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사회적 시스템은, 언제나 실패하고 만다.

연쇄살인범의 신발자국과 같은 중요한 증거는, 현장보존과 같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절차 미숙 때문에 무참히 사라져 버린다. 또 한 사람의 희생자를 막기 위해 경찰력 증원을 요청하지만, 시위 진압에 이미 경찰력을 모두 동원한 상부에서는 증원 요청을 거절한다. 수사 시스템은 군홧발로 엄한 피의자를 두들겨패는 식으로만 작동한다. 그리고 그러한 식의 시스템 운용은 무수한 희생자만을 낳고, 문제 해결에는 실패한다. 너무나도 범인을 잡고 싶었던 형사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혐의를 받던 바보 피의자는 자살한다. 군홧발로 그 바보 피의자를 두들겨패던 형사는 그 군화를 신을 오른발을 잃고 만다.

국가는, 느닷없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괴물을 잡는 것보다는, 명확히 검증도 되지 않은, 괴물이 보유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그토록 방역에는 결벽증과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작 괴물을 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괴물을 잡는다고 뿌린 오렌지색 가루는, 그 오렌지색 가루 살포와 정부의 대응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진압하고 있던 경찰관의 목숨은 앗아가지만 정작 괴물을 죽이지는 못한다. 괴물을 죽이는 건 현서네 가족이다. 그나마도 이미 현서는 죽은 뒤에. 심지어 그 난리를 겪고 나서도, 현서 대신 새로 생긴 아들을 지키는 건 국가가 아니다. 여전히 송강호는 총을 곁에 두고 스스로 자신의 가족을 지켜야 한다(마지막 장면).

[마더]에서도 경찰, 변호사, 검사 등 진범을 잡기 위해서, 그리고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 마련되어 있는 사회적 시스템은 전부 다 실패하고 만다. 경찰은 바보 피의자를 두고 엉터리 자백을 받아내고, 변호사는 상담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연줄을 이용해 유야무야 사건을 처리하려 한다. 검사는 변호사가 사 주는 술을 처먹고 술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의 주변 인물을 조사하고, 피해자의 행적을 추적하는 등 응당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국가에 의해 수사권이 부여되어 있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아무런 권한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마더 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문제의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도 희생자들은 생겨난다. 모든 걸 다 제껴놓고 나의 안위를 위해 고군분투해줄, (한국의) 엄마가 없는 어떤 사람, 그리고 마더까지도. 마더와 도준이의 밥상은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위 세 영화에서 모두, 주인공들은 정말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정말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그러나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없다. 도와 주라고 우리가 그 자리에 앉혀 놓은 사람들은 그들을 돕지 않는다.
정말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그리고 위 세 영화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은,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의 말을 통 들어 주질 않는다는 것이다.
소통의 부재. 다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편견만으로 대화를 이끄는 사람들.
송강호가 [괴물]에서 마취약의 기운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억지로 입을 움직여 간신히 내뱉던 말이 뭐였는지 기억나는가? "왜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 주는거야"였다. [괴물]을 두고 반미영화네 뭐네 열심히 떠들지만, 내게는 저 말이 가장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렇다. 지금 여기,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바로 그런 곳이다.
어느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엄마, 아무도 믿지 마."). 문제 해결을 혼자 힘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사회.

그렇게 타인에 대한 신뢰가 증발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나를 지켜 주는 건 결국 가족 뿐이다.
그리고 가족들끼리 지켜 주는 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엄마가 아들 지켜주는 때이다. 기묘하게도 [괴물]에선, 바로 이 가장 강력한 연대관계가 쏙 빠져있다. 엄마가 아닌 사람들(아빠, 할아버지, 삼촌, 고모)이 아들이 아닌 사람(여자아이)을 지키내기 위해 힘을 합친다. [괴물]의 가족들보다 [마더]의 엄마가 결과적으로 조금이나마 더 문제해결에 성공하는 건 우연일까? 그게 우연이든 감독의 의도든 간에, 우리나라에서 아들 살리려고 덤비는 엄마를 당할 사람이 없는 건 분명하다.

개인 스스로, 또는 가족들끼리 문제를 해결하게끔 내버려 두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결국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만다.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태생부터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문제이기도 하고, 애초부터 혼자 힘으론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도 힘을 합쳐서 해결하기 위해, 바로 그것을 위해 우리는 '국가'란 놈을 만든 것 아닌가? 연쇄강간살인범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납치된 딸을 무사히 되찾기 위해, 아들이 별다른 증거도 없이 살인범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경찰, 검찰, 군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만들고, 무죄추정의 원칙이니 신체의 자유니 하는 것을 헌법에 적어 놓은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 놓은 국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우리가, 엄마가, 아빠할아버지고모삼촌이 나서야 하는가? 그것도 무력하기 짝이 없는 공기총, 양궁, 화염병, 쇠파이프를 들고서? 대포와 탱크, 기관총과 미사일은 어디 갔는가?

봉준호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문제를 던지고 있다.
[살인의 추억]은, 시스템이 처참하게 실패했던, 명백하게 국가가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던 독재정권 시절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봉준호가 서 있는 시점은 그 때가 아니라 지금이다. 경찰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송강호의 모습을 영화 막판에서 보여 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제목에 '추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일종의 회고담이다. 봉준호는 그 시절을 오늘날에 서서 되돌아보고 있다.

거기서 그냥 끝났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달라졌으니까, 독재정권은 없어졌으니까, 더 이상은 군홧발로 피의자를 두들겨패는 식으로 피의자를 신문하지는 않으니까, 이제는 법의학도 발전하고 수사기법도 과학화되었으니까, 봉준호는 그저 과거 우리 사회가 지녔던 문제점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말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괴물]이 나왔다.
[괴물]에서 봉준호는 말한다. 달라지지 않았다. 독재정권이 없어졌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키게끔 내모는 곳이다. 사람들이 한강에 뛰어들게끔 내모는 사회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을 내몰다간, 뛰어내린 사람들을 먹고 자란 괴물이 한강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그나마도 이제껏 그 괴물을 잡은 것은 화염병과 쇠파이프였다. 그러나 그런 식의 대응은 너무나도 희생이 크지 않았던가. 다음에 괴물이 튀어나오면, 그 때는 어쩔 것인가. 이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살인의 추억]을 [괴물]보다 더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백 년 후 이 시대의 진정한 고전으로 평가받을 만한 영화는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대의 문제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는 영화, 그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영화('재밌게 잘 찍은 영화'라는 점도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괴물의 CG가 어설프니 어쩌네 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부차적인 문제다. CG의 질은 영화의 훌륭함을 결정하는 데 아주아주 미약한 영향력밖에 없다(어이 심감독님, 당신한테 하는 이야깁니다).

[마더]는, [괴물]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의 큰 틀을 따라가면서도, 오늘날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고유한 상황 - 엄마와 아들 간의 강력한, 유별난 유대관계 - 을 새로이 추가해서 보여 준다. 엄마와 아들 간의 유별난 유대관계가 정확하게 어떠한 사회적 문제상황을 구성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으므로 길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의 특징적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낳는 현상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한번 고민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더] 또한 훌륭한 영화다.

봉준호의 문제의식은 결국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나타나는 상황이 제기하는 문제와 동일한 것이다.
개인의 초인적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 그래서 피곤하고, 살기 힘든 사회.
[우생순]은 그러한 사회를 기적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헤쳐 나가는 극히 소수의 영웅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영화다.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의 눈물과 땀이 얼마나 멋있는지.
한편 봉준호는 그러한 사회 속에서 실패하고 마는 나머지 절대 다수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어쩌지 못하고 마는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 일인지.

[마더]를 보면서 나는 계속해서 [괴물]이 떠올랐고, 또 [바벨]이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가. 그들의 말을 우리는 과연 듣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서로가 하는 말을 조금만 더 귀담아 듣는다면,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면 좀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혈연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신뢰의 끈으로 묶고, 그렇게 해서 거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을 위하여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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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7 20:46 2009/06/07 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