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위채무부담과 가등기의 종류
   허위채무를 부담하고 가등기를 경료하여 주는 경우, 부담하는 허위채무의 종류에 따라서 경료되는 가등기의 법적 성질이 달라진다. 허위로 부동산에 관한 매매계약을 가장하여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보전을 위한 가등기(이하 ‘보전가등기’라 한다)를 경료하게 될 것이고, 허위로 금전채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채무 담보를 위한 가등기(이하 ‘담보가등기’라 한다)를 경료하게 될 것이다.


2. 가등기 경료행위가 ‘허위양도’에 해당하는지 여부

허위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보전가등기를 경료한 경우, 본등기가 경료되지 않은 이상 부동산의 ‘양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가등기를 경료하는 행위는 강제집행면탈죄에서 말하는 ‘허위양도’에 해당할 여지는 없으며 오로지 ‘허위의 채무 부담’에 해당할 뿐이다. 따라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등기 경료행위가 아니라 가등기의 등기원인이 되는 허위채무부담행위이다.


3. 허위채무부담행위가 강제집행면탈죄를 구성하기 위한 요건

그런데 허위로 채무를 부담하는 행위가 언제나 강제집행면탈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은닉, 손괴, 허위양도 또는 허위의 채무를 부담하여 채권자를 해할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즉, 허위로 채무를 부담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허위채무부담행위가 실제로 채권자의 강제집행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허위채무부담행위가 채권자의 강제집행에 해를 끼치는지 여부는 부담하는 허위채무의 종류와 채권자의 채권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만약 채권자의 권리가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인 경우, 채무자가 허위로 금전채무를 부담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하여 담보가등기를 경료하여 주었다고 하더라도, 채권자의 권리는 이전등기청구권이며 금전채권이 아니므로 채무자가 허위의 금전채무를 부담한 사실만으로는 이전등기청구권의 집행에 어떠한 침해가 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대법원 1982. 5. 25. 선고 81도3136 판결 참조).

결국 허위채무부담행위(그리고 가등기를 경료하는 행위)가 강제집행면탈죄를 구성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채권자의 권리와 허위로 부담한 채무의 종류에 따라 발생하는 네 가지 경우의 수를 구분하여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4. 유형별 검토

가. 채권자의 권리가 금전채권인 경우

  (1)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허위로 부담한 경우(보전가등기 경료)

    (가) 판례 : 없음

    (나) 검토

단순히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허위로 부담한 것만으로는 금전채권의 강제집행에 어떠한 장애가 되지 않으므로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허위로 부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해 주기까지 한다면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감소시켜 강제집행에 실질적인 해를 끼치게 될 것이나, 이 경우는 허위양도에 의한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므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허위로 부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보전을 위한 보전가등기까지 경료한 경우에는 금전채권의 강제집행에 장애를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보전가등기가 경료된 이후에 강제경매 개시등기가 이루어지고 경매절차가 진행되는 경우, 보전가등기는 경매로 부동산을 취득한 매수인이 인수하는 부담이 되고, 따라서 보전가등기의 존재는 경매목적물의 가격을 산정하는 데 있어서도 고려된다. 그러므로 보전가등기가 존재하는 경우 경매절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매수를 꺼리게 되고, 결국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서 경매가 이루어지는 결과가 되어 채권자들이 채권의 만족을 제대로 얻지 못하게 될 위험이 크다.

문제는 이처럼 허위채무를 부담하는 행위와 그에 따라 가등기까지 경료하는 행위를 달리 취급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인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보전가등기가 경료되었는지 여부에 따라서 금전채권의 강제집행에 미치는 효과가 현저히 다르므로 양자를 구별해서 취급하는 것이 충분히 설득력을 얻는다. 대법원 또한 “피고인이 위 판시와 같은 허위의 금전채무를 부담한 사실만으로는 위 채권자들의 지분이전등기청구권의 집행에 어떠한 침해가 된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위 허위채무부담에 따라 경료한 가등기가 위 채권자들의 권리실현에 장애가 된다면 별문제이나…”라고 설시하여 단순 허위채무부담행위와 허위채무부담에 이은 가등기 경료행위가 강제집행면탈죄의 성립여부와 관련하여 달리 취급될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채권자의 권리가 금전채권인 경우, 허위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부담하는 행위만으로는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지 않으나, 소유권이전등기를 허위로 부담하고 그 보전을 위하여 가등기까지 경료한 때에는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2) 금전채무를 허위로 부담한 경우(담보가등기 경료)

  (가) 판례 :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한다.

대법원 1996. 1. 26. 선고 95도2526 판결,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8도3184 판결.

  (나) 검토

금전채권에 의한 강제집행은 채무자의 재산에 대한 강제경매 등의 환가절차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채무자에 대한 다른 채권자들도 경매절차에 참여하여 배당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므로 허위로 금전채무를 부담할 경우 결과적으로는 정당한 채권자가 배당받을 금액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허위로 금전채무를 부담하는 행위는 금전채권의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해할 위험이 발생한다. 만약 허위의 금전채무부담행위에 더하여 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한 담보가등기까지 설정하는 경우, 담보가등기는 저당권과 마찬가지로 우선변제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채권자의 강제집행에 해를 끼치는 정도가 더 크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허위채무부담’ 요건과 ‘채권자를 해할 것’의 요건이 모두 충족되므로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한다.


나. 채권자의 권리가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인 경우


  (1)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허위로 부담한 경우(보전가등기 경료)

    (가) 판례 :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 위 판시중의 가등기는 그것이 비록 그 판시와 같은 통모에 의하여 가장한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할지라도 … 위 가등기에 순위보전의 효력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전술 매매예약상의 청구권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던 만큼 이를 직접적으로 甲(채권자)의 그 판시와 같은 청구권에 기한 강제집행을 불능케 하는 사유에 해당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바이니…” (대법원 1967. 12. 18. 선고 67도1166 판결)

    (나) 검토

소유권이전등기의무의 강제집행을 면탈하기 위하여 타인에게 부동산을 허위로 매도하고(이중매매 상황이 된다) 그 타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보전을 위한 가등기를 경료하여 주었다고 하더라도, 본래의 채권자는 자신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에 기한 강제집행을 완료할 수 있다. 즉, 채권자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아 그 판결을 이용하여 단독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할 수 있으며, 타인 명의로 보전가등기가 경료되어 있는지 여부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집행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허위채무부담’ 요건은 충족되나 ‘채권자를 해할 것’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이후에 가등기에 기한 본등기가 경료된다면 채권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직권 말소되겠지만, 그 경우에는 본등기 경료행위를 허위양도에 의한 강제집행면탈죄로 처벌하면 될 것이다.


  (2) 금전채무를 허위로 부담한 경우(담보가등기 경료)

    (가) 판례 :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채권자인 소외 甲의 권리는 이 사건 토지의 1382/3951 지분에 대한 이전등기청구권이며 금전채권이 아니므로 피고인이 위 판시와 같은 허위의 금전채무를 부담한 사실만으로는 위 채권자들의 지분이전등기청구권의 집행에 어떠한 침해가 된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위 허위채무부담에 따라 경료한 가등기가 위 채권자들의 권리실현에 장애가 된다면 별문제이나 가등기는 본래 본등기를 위한 순위보전의 효력밖에 없는 것이므로 가등기가 경료된 것만으로는 위 채권자들의 지분이전등기청구권의 집행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대법원 1982. 5. 25. 선고 81도3136 판결)

    (나) 검토

위 대법원 판결의 설시와 같이, 채권자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에 대한 강제집행은 채권자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는 것으로 완료되므로 채무자가 허위의 금전채무를 아무리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강제집행에 대한 장애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채권자를 해할 것’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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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11:22 2009/05/27 11:22
  1. onecent
    2009/05/27 11:23
    검찰에서 이런 것만 하면 즐겁게 출근할텐데 말이야..







사법은 곧 책임이다. 죄를 지은 자에게는 벌을 내림으로써 책임을 지게 한다. 약속을 한 자에게는 그 약속을 지키게끔 하고, 이를 어겼을 때는 손해를 배상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한다.
책임은 사후적인 것이다. 행동규범을 세우는 것이 먼저 있고, 그 행동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규범에 맞지 않은 행동이 벌어졌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맨 마지막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책임은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규범을 세우는 것은 쉽다. 그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은 그보다 어렵다. 그러나 규범에 맞춰 행동하지 못했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이는 당장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분명하다. 생활계획표를 번지르르하게 짜 놓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극기, 인내, 근면성실 등 온갖 좋다는 단어는 죄다 좌우명으로 가져다 써서 벽에 걸어 놓는 것까지는 언제라도,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계획표에 따라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벽에 아무리 극기라고 써 붙여 놔도 순간의 충동을 참지 못하고 지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계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임은 이처럼 너무나 어려운 것이지만, 한편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올바른 것으로, 가치있는 것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으로 생각하고 합의하여 만들어낸 규범들(근대 국가에서는 ‘법률’이 가장 대표적인 형태이다)은, 책임이 없다면 한갓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규범은 그것이 지켜질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규범을 지키는 일은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움으로써만 가능하다. 규범을 어기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여기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이 장기적인 안목과 합리적인 양보에 따른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종이에 훌륭한 글귀를 써서 걸어두는 것은 쉽다.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서로 차분하게 의논하고 토론해서 규범을 제정할 때는, 서로의 단기적인 이익을 조금씩 양보해서 가급적이면 모두가 이익이 되게끔 규범의 내용을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현실에서 순간순간의 갖가지 욕망과 충동에 맞닥뜨리게 되면 누구나 단기적인 이익만을 좇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책임 없이 방치하다 보면 결국 사회는 모두가 매 순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반면 모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회는 결국 모두가 서로의 행위를 신뢰하는 사회가 된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는 신뢰가 구축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대의를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작은 이익을 희생한다. 약속을 깨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른다는 신뢰가 구축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상대방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 법이다.

가인 김병로의 삶은 구한말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격동의 해방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덕분에 80여 년에 걸친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곧 지금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규정한 지난 80여 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는 것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지난 세월은 ‘책임의 부재’라고 요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제에 협력하여 부를 축적하고 조선 사람들을 핍박했던 친일파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나마도 뒤늦게 구성된 반민특위의 활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일제시대 때 악명 높은 경찰이었던 노덕술 등을 체포하자 이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질 새도 없이 도리어 경찰이 반민특위의 본부를 습격하고 특위요원들을 연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6∙25 전쟁 당시 ‘안심하라’는 공식발표를 믿고 서울에 남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은 도망가며 한강 다리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는 전세가 회복되자 돌아와서 그 때 떠나지 말라는 그들의 말을 믿은 사람들을 부역자로 몰아 처벌하려 들었다.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 온갖 기본권을 헌법에 버젓이 명시해 두고도 정작 정부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자들은 그 입을 막고, 신문을 정간시키고, 부당구속과 고문을 일삼았다. 규범을 믿고 따른 자들은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규범을 어긴 자들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그때그때마다 그들이 취했던 기회주의적 태도 덕에 득세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책임의식의 상실, 신뢰의 부재로 신음하고 있다면 그 큰 이유는 이러한 책임이 실종된 현대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이 사라진 지난 수십 년의 결과가 바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사회, 영화 ‘괴물’에 잘 드러난 것처럼(괴물에게 잡혀간 현서를 필사적으로 찾는 건 결국 가족들이지, 국가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아둥바둥 자기 앞가림을 해야만 겨우겨우 자기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책임 부재’의 현대사에서 가인 김병로 선생은 홀로 외로이 버티고 서 있는 단단한 바위 같다. 그는 밀려오는 기회주의의 파도 속에서도 원칙을 놓지 않는다. 일제의 탄압에도,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독재 정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소신을 지킨다. 가인은 책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것을 일관되게 못마땅해 했고, 결국 그 때문에 스스로 몸담았던 한민당에서 탈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장으로 있던 시절 반민특위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탄압에 맞서기도 하였다. 이승만 하야 후에도 “일제잔재의 경찰관을 재등용하지 말 것, 이승만정권에 추종아부한 각계 간부를 과도정부의 모든 기구에서 제거하고 숙청할 것”을 요구했고, “죄형법정주의, 형벌불소급의 원칙, 만인의 법 앞의 평등의 원칙 등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파괴된다”는 재야 법조인들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이승만 정부 시절의 부정선거원흉과 부정축재자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장까지 지냈던 가인이 과연 죄형법정주의, 형벌불소급의 원칙, 만인의 법 앞의 평등의 원칙을 등한시했던 것일까? 나는 가인이 사법, 나아가 법치의 핵심이 곧 책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생애에 걸쳐 일관되게 그는 잘못했던 사람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나 일제가 물러난 직후의 해방기나 이승만이 하야한 직후 과도정부가 들어선 시기와 같이, 표면적으로 나타난 큰 변화 탓에 사람들이 보다 세세한 책임추궁에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격변기일수록 가인은 앞장서서 책임의 확보를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널리 퍼져나가지 못하고 작은(그러나 힘찬) 외침으로만 남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규범 그 자체, 더 나아가 그 규범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단계의 주춧돌이 책임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가인이 책임 확보를 본업으로 하는 사법부의 초대 수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이 즐거움보다 많은 우리 현대사에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그의 책임성은 비단 사회규범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개인적 규범의 차원, 즉 윤리와 도덕의 차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법관은 남들로부터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결벽에 가까운 청렴생활을 했던 것, 공과 사를 칼처럼 구분했던 것 등 그는 실로 도덕률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토록 스스로 엄격하게 책임을 지며 살았던 그였기에 사회 문제에 있어서도 책임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렇기에 그가 내리는 판결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인을 보며 책임을 생각했다. 그의 삶의 모습이 담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도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다. 그 때문에 독서감상문 제출일 새벽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인 김병로 평전’의 독서 과제가 주어지고 난 뒤 그 긴 여름 동안 차일피일 책 읽는 것을 미뤄 온 내 게으름에 대하여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밤이 깊어지고 마감시한이 다가올수록 대충 넘겨 읽는 발췌독만으로 감상문을 작성하고자 하는 유혹에 계속 부딪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80평생을 통해 책임을 몸소 보여 준 사람의 삶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나 자기모순적인 짓이었다. 지난 두 달 간의 나태함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작은 행위를 하는 것 - 책을 완독하고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쓰는 것 -이 가인의 후배로서, 가인의 손길이 아직 남아 있는 법전을 뒤적거리며 살아갈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가인의 비문에는 “비록 몸은 가셔도 조국을 위한 기원은 살아 있어 길이 나라의 힘이 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나라의 힘까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내게 보여 준 모범이 길이 내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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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2 22:43 2009/05/22 22:43
  1. onecent
    2009/05/22 22:46
    이건, 연수원 1년차 때 여름방학 과제였던 '가인 김병로 평전' 서평으로 쓴 것이다.
    글에도 썼듯이 제출일 당일 새벽에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요즘 검찰시보를 하면서, 사람들을 수사하고 기소하고 구형을 하면서 새삼 '책임'이 화두로 떠올랐다.
    전에 써 둔 것이 생각나서 곱씹어 보면서 생각이나 정리할 겸 여기에 올려놓는다.







이것저것

주절주절/기타 Posted at 2009/05/18 22:00
1. 직장생활 2주만에 이렇게 월요일이 싫어질 줄이야.
일요일 저녁에 어둑어둑해지면 얼마나 우울한지. 이런 기분은 중학교 다닐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2. 지난 금요일, 근 1년만에 선생님께 안부 전화를 넣었다.
내가 스승의 날에 일부러 전화 거는 선생님은 한 분 뿐이다.
"요새 수업 어떠세요, 재미있으세요?" 라고 묻자 선생님께서는 기운빠진 목소리로 "재미없다"고 하셨다.
예전 내가 수업 들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모양이다.
선생님께서는 또 "예전 너희 때가 재미있었는데.."라고도 하셨다.

저도 재밌었어요, 그때. 두고두고 못 잊을만큼.

조만간 찾아뵙고 술이라도 한 잔 올려야겠다.


3. 토요일 아침만 되면 꼭두새벽에 귀신같이 일어나서 부리나케 일산으로 향한다.
그러다 보니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지하철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한 번 갈때마다 한 시간씩 걸리니까.
지하철에선 뭐라도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으니, 그 동안 평소에 시간이 참 없는데도 책 읽은 건 되려 3, 4월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먼저 [부자 아빠의 몰락].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모든 사람들의 공공복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논증해 내는 책이다. 논증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책이 분량도 얼마 안 되고 평이한 문체로 읽기 쉽게 쓰여졌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이다.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넓고 깨끗하게 틔워 준다. 시간 내서 일부러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주류 언론의 일간지 사설을 읽으며 답답해진 가슴에 한 줄기 시원한 비를 뿌려주는 책이다. 건전한 상식으로, 합리적인 사고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최소한 한 사람은 더 있다는 생각에 든든해진다. 이 책 역시 시론집이니만큼 평이하고 읽기 쉬운 문체로 되어 있어 부담도 적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주요 문제들에 대하여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 준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과 종부세 옹호론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준구 교수는 한국의 폴 크루그먼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크루그먼의 [대폭로]의 한국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한홍구 교수가 쓴 [특강]. 이 책 역시 앞의 두 권과 마찬가지로 읽기 쉽고, 그러면서도 내용은 얻어 갈 게 많다. 읽는 내내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았다. 내용 자체는 여기저기서 한 번쯤은 주워들은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도 같지만, 뉴라이트의 기원과 그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웠다.

세 권 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영양가는 많다.
세 권 다 선뜻 추천을 날린다.


4. 검찰 시보를 하면서 매일매일 느끼는 게 참 많지만, 그 중에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 경찰 수사권 독립은 시기상조다.
- 수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피의자들은 변호인의 조력을 적극 구할 필요가 있다.
- 검찰에서는 아직도 구속을 구속사유와 무관한 제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 공판중심주의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난 피의자들이 왜이리도 불쌍한지 모르겠다. 아직 악질 피의자를 못 만나봐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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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22:00 2009/05/18 22:00
  1. 김건
    2009/05/20 17:51
    ㅎㅎ 지하철에서 책 읽던 시절이 그립네. 난 출근길이 3정거장 밖에 안되서 책 읽기에는 너무 짧지...퇴근길은 전철 끊겨 택시로..;;

    여유없는 평일과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로 인해 정말 강인한 의지가 없이는 책 읽기가 참 쉽지 않네. 그나마 최근 읽은 몇 권은 서평도 안 쓴채 기억에서 서서히 희미해져가네.

    경찰수사권 독립은 시기상조라는 말은 지당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검찰이 경찰보다 얼마나 낫나 하는 생각도 드네. 물론 전반적으로는 훨씬 낫겠지만,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사실 차별성이 없는 듯...
    • onecent
      2009/05/25 22:40
      검찰에서 직장생활 해 보니까 책 읽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주말에든 평일 밤이든 일부러라도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겠어.
      몸에 배면 자연스럽게 될 텐데 말이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란 측면에선 별로 차이가 없다는 데는 동의. 난 다만 수사의 초점을 맞추는 점이랄지, 그나마도 적법절차를 지키려고 하는 점이랄지 하는 부분에서는 검찰이 경찰보다 아직 낫다고 봐..







검찰청으로

日常 Posted at 2009/05/03 22:35
내일부터는 2년차 사법연수생 실무수습의 꽃이라는 검찰 실무수습이다.
이미 검찰 수습을 마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검찰 재밌다고들 난리지만 난 그냥 시큰둥하다.

아직 검찰 수습은 시작도 안했는데
3, 4월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 대학과 아주 비슷한 그 공기가 벌써부터 그립다.
이제 막 압구정동에 도착해서 짐 풀고 씻고 앉았는데
일산 집의 창을 뚫고 들어오던 햇살이 그립고
오며가며 우연히 마주치던 친구들이 벌써부터 그립다.

검찰 생활이 재미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나간 날이 아쉽다.
지도검사님이 좋은 분이길 바랄 뿐이다.
아까 오는 길에 눈이 마주친 고양이녀석을 믿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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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22:35 2009/05/03 22:35
  1. Tae
    2009/05/04 03:52
    아 나도 집에 가고 싶다..

    암튼 다 잘될거야

    힘내 웅보
    • onecent
      2009/05/04 18:54
      아이고 오랜만이야.
      네 앞에서 향수병 타령하는게 좀 웃긴거같다.
      자네야말로 힘내시게.
  2. onecent
    2009/05/04 18:55
    이 빌어먹을 놈의 고양이자식..
  3. 혹자
    2009/05/08 01:24
    고양이가 널 비웃었나보군 ㅋㅋ
    • onecent
      2009/05/10 20:08
      원래 밤에 고양이 마주치면 항상 운이 좋았는데 말이야.
      뭔가 좋은 일이 따로 생길 모양이지 아마.
  4. 혹자
    2009/05/14 17:38
    검찰식당에서.. 만두라도 한개 더 나오려나......